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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108권, 선조 32년 1월 9일 경인 1번째기사 1599년 명 만력(萬曆) 27년

강상으로 나아가 마 제독을 맞이하여 위로하다

상이 강상(江上)으로 나아가 마 제독(麻提督)을 맞이하여 위로하였다.

제독의 접반사 이광정(李光庭)이 먼저 와서 서계하기를,

"제독이 가만히 신에게 말하기를 ‘서 급사(徐給事)와 정 주사(丁主事)가 모두 탄핵을 받았는데, 에게 아첨하였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이윽고 제독이 이르러 사례하니, 상이 말하기를,

"흉적이 달아났으니 황은이 망극하며 대인의 은덕 또한 갚을 길이 없습니다."

하고, 몸소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해를 이어 수고한 정황에 대해 치사(致謝)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이는 귀국의 큰 복입니다. 제가 한 일은 배신이 직접 보았고 현왕(賢王)께서 익히 들으신 바이니 번거롭게 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행군할 때 남도의 부로(父老)들이 고기와 술을 가지고와서 맞이했으니, 군사(軍事)에 공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은 예의(禮義)의 나라로서 참혹하게 병화를 입었다가 지금 재조(再造)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제반 앞날을 위한 계책은 오직 예단(睿斷)에 달려 있습니다. 역전(力戰)의 장사로서 권응수(權應銖)·김응서(金應瑞)·성윤문(成允文) 같은 자들은 모두 양장(良將)이니 동방에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여러 대인들이 우리 나라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만, 대인은 가장 먼저 본국에 왔고 지난해 울산(蔚山)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으므로 금년에 재차 진격한다면 적은 스스로 도망칠 것입니다."

하니, 제독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이순신(李舜臣)이 혈전을 벌이다가 죽었는데, 저는 그를 직접 만나보지는 못하였으나 탄복할 만합니다. 그의 자손에게 포상하여 그 충렬을 정표(旌表)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이미 추장(追奬)의 은전을 존교(尊敎)대로 하였습니다. 등 총병(鄧摠兵)이 우리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가 죽었으니 참으로 애석합니다."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성 안에 들어가 처리할 일이 많아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교외에 사람이 너무 많으니 번거로울 듯싶습니다."

하고, 일어나 나갔다. 상이 뒤따라 그의 아문에 도착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멀리 강가에까지 나와 위로해 주시고 또 왕가(枉駕)하시니 미안합니다."

하였다. 상이 사례하고, 이어서 묻기를,

"대인이 몸소 부산(釜山)·도산(島山) 및 연해의 적채(賊寨)까지 가셨었는데, 형세가 어떠했습니까?"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이번에 왜적이 물러간 것은 관백(關白)의 죽음으로 말미암은 듯합니다. 조만간 다시 쳐들어 올 것인데 그 해독은 반드시 더욱 심할 것입니다. 그러니 방수(防守)하는 데에 십분 마음을 써야 할 것입니다. 적채의 배치와 형세의 험난하고 평이함은 배신이 직접 보았으니 제가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이와 같이 염려하여 주시니 매우 감사합니다. 다만 극도로 잔파(殘破)되었으므로 자존(自存)할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참으로 말씀하신 것과 같으나 그 잔파된 가운데에서 진기시킬 방법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천병(天兵)과 협력하여 요해처를 나누어 지키면 어찌 저 적들을 두려워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이미 천병의 힘을 빌어 왜적을 물리쳤는데 다시 천병에게 유방(留防)해 주기를 요청하는 것은 우리 나라로서는 감히 꺼낼 수 없는 일입니다만, 우리의 힘으로서는 자진(自振)할 방법이 만무하므로 할 수 없이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유병(留兵)시킬 생각이십니까?"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3로의 총병(摠兵)이 모두 돌아와야 의정(議定)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예물을 주고 나왔다.


  • 【태백산사고본】 68책 108권 7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555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군사(軍事)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인사-관리(管理)

○庚寅/上幸江上, 迎慰麻提督。 提督接伴使李光庭先來書啓曰: "提督密謂臣曰: ‘徐給事丁主事, 皆被參劾。’ 蓋則以諂順于故也云而已。" 提督至謝, 上曰: "兇賊退遁, 皇恩罔極, 大人之德, 亦無以爲報。" 申其親冒矢石, 連年勞苦之狀, 提督曰: "此貴國之洪福。 俺之行事, 陪臣之所目覩, 賢王之所熟聞, 不須多費辭說。 行師之際, 南中父老, 以牛、酒相迎, 軍事有功可知。 第朝鮮以禮義之邦, 酷被兵火, 今得再造, 凡善後之策, 唯在睿斷。 力戰將士, 如權應銖金應瑞成允文, 皆良將, 東方不可謂無人。" 上曰: "諸大人於小邦事, 莫不盡心, 而大人最先東來。 上年蔚山之捷, 已破賊膽, 故今年再進, 賊自遁矣。" 提督有喜色曰: "不敢當。 李舜臣血戰死之, 俺雖不見其面目, 爲之歎服。 賞其子孫, 以旌其忠, 可也。" 上曰: "已擧追奬之典如尊敎矣。 鄧摠兵死於小邦之事, 慘哉!" 提督曰: "天朝亦必褒美。" 仍曰: "城中多事, 請辭。 郊外人稠似煩。" 遂起去, 上跟幸其衙門。 提督曰: "遠勞江上, 又此枉駕, 未安。" 上謝之, 仍問曰: "大人親履釜山島山及沿海賊寨, 形勢如何?" 曰: "今次賊退之也, 或出於關白之死。 早晩更來, 其肆毒必甚矣。 防守之事, 必須十分用意乃可。 賊寨布置、形勢險夷, 陪臣之所見, 非俺所可容喙。" 上曰: "軫念至此, 深謝。 但殘破之極, 不知所以自存之計。" 提督曰: "誠如尊命, 然就其殘破之中, 思其振起之策。 又協我天兵, 分守要害, 何畏乎賊?" 上曰: "旣賴天兵而退賊, 又請天兵而留防, 藩邦之所不敢發, 而以小邦之力, 萬無自振之策, 不得不出於此。 敢問留兵多少?" 提督曰: "三路摠兵俱回, 方可議定。" 上呈禮物而出。


  • 【태백산사고본】 68책 108권 7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555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군사(軍事)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