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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108권, 선조 32년 1월 6일 정해 1번째기사 1599년 명 만력(萬曆) 27년

조여매와 이방춘의 관소에 가서 담소하다

상이 용산(龍山)에 있는 조 지현(趙知縣) 【조여매(趙汝梅). 】 관소에 갔다.

상이 이르기를,

"세배가 늦어 미안하오이다."

하니, 지현이 말하기를,

"멀리 임어하시어 감사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인이 양곡의 방출을 맡아 우리 나라가 많은 덕을 입었습니다. 다만 공억(供億)과 같은 작은 일에도 뜻에 맞게 못하였으니 부끄럽소이다."

하니, 지현이 말하기를,

"무슨 덕될 것이 있겠습니까. 비축한 양곡이 떨어지게 되었다고 들었는데, 이는 갑자기 조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 미리 조처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자, 상이 승지 남이신(南以信)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대인이 만약 양곡의 수량에 대해 묻는다면 호조 판서는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 대인이 양곡이 떨어지게 되었다고 한 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니, 이신이 아뢰기를,

"판서가 새로이 임명되어 자세히 모를 듯 싶습니다. 아마 떨어진 것은 대미(大米)일 것입니다. 당소미(唐小米)는 아직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하였다. 지현이 자리에서 소첩(小帖) 한 장을 써서 상에게 올렸다. 그 내용에,

"제가 양곡의 방출을 절약하여 각 장관들로부터 원망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저(當宁)에게 【군문(軍門)을 가리킨 것이다. 】 정청(呈請)하여 의주(義州)에 있는 관량(管糧)을 조달하도록 허가를 받았습니다. 제가 돌아갈 때 사용할 말과 인부를 미리 정돈시켜 주십시오."

하였는데, 상이 이르기를,

"대인이 이곳에서 양곡을 맡아 주시어 많은 혜택을 입었는데, 지금 서쪽으로 돌아가신다는 말을 들으니, 매우 서운하외다. 대인이 돌아가시면 누가 대신 맡게 되오?"

하니, 지현이 말하기를,

"아무 공효도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남들의 원망만 샀으니 돌아가려고 합니다. 진 경력(陳經歷)이 저를 대신한다고 합니다. 이곳의 창관(倉官) 남근(南瑾) 등과 통관(通官) 현사백(玄士白)에게 상을 내려 노고에 보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자, 상이 명한 대로 따르겠다고 하였다. 그때 한 사람이 지현의 곁에 서 있다가 지현을 통하여 소지(小紙) 한 장을 올렸는데, 그는 바로 황응양(黃應陽)의 매자(妹子)라는 자였다. 그 소지의 내용은 대개 ‘황응양은 양 경리의 문하관(門下官)으로 동쪽 일에 노고가 많았으나 양공이 탄핵을 받자 응양에게까지 누가 미쳐 요양 분수도(遼陽分守道) 장야(張爺)가 옥에 가두었다.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구씨(舅氏)의 노고를 생각하여 당저 노야(當宁老爺)에게 부탁해 하루 빨리 풀려나도록 해주신다면 매우 다행이겠다.’ 하는 것이었다. 지현이 그 사람의 뜻을 전하여 고하기를,

"분수도가 별달리 조정의 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멋대로 가두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양 경리의 일로 인하여 황응양까지 가두었다 하니, 매우 상서롭지 못한 일이오. 이일을 마음에 간직하겠소이다."

하고, 이어 작별하고 나와 입성하였다. 이어 좌 유격(左遊擊)의 관소로 가서 술 두어 순배를 들고 나왔다. 이어 이 부총(李副總) 【이방춘(李芳春). 】 관소로 갔다. 상이 이르기를,

"왜적을 물리친 것은 곧 황은이며 대인의 공 또한 많았습니다."

하니, 부총이 말하기를,

"이는 국왕의 큰 복이십니다. 제가 지난해 울산(蔚山)의 싸움에서 눈비를 무릅쓰고 싸웠고 금년에도 이와 같이 하였으니 이러한 사정을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어찌 잊을 수가 있겠소이까. 무슨 말로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소. 다만 대인의 은덕에 보답할 길이 없소이다."

하자, 부총은 두서너 번 거듭 자신의 공을 자랑하였다. 상이 더욱 공손히 치사하니, 부총이 말하기를,

"제가 바라는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다만 청사(靑史)에 ‘삼협장(三協將) 이방춘(李芳春)은 양장(良將)이었다.’라고 이름을 남기게 된다면 만족합니다. 음식을 먹은지 오래되면 배가 고프고 물건이 오래되면 못 쓰게 되지만 선명(善名)은 없어지지 아니 합니다. 사람의 현부(賢否)에 대해서는 저절로 공론(公論)이 있게 마련이니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하자, 상이 이르기를,

"대인의 말씀이 지극하오. 대인의 공에 대해 과인은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오. 감격할 뿐이외다."

하였다. 부총이 말하기를,

"이순신(李舜臣)은 충신입니다. 이러한 자가 십여 명만 있다면 왜적에 대해 무슨 걱정할 것이 있겠습니까. 배신 권희(權憘)는 저를 따라다니며 노고가 많았습니다. 그의 말이 길에서 죽었으므로 제가 왜마(倭馬)를 사도록 하였더니, 가 땅에 엎드려 말하기를 ‘비록 도보로 다니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짓은 할 수 없다.’ 하였는데, 이 말은 황금으로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중조(中朝) 관원의 예로 대우하였습니다. 통관(通官)도 3년이나 저를 따라다니며 노고가 매우 많았으니 특별히 포상하여 주십시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이는 직분상 마땅히 해야 할 일이나 말씀대로 하겠소이다."

하였다. 부총이 말하기를,

"맨 먼저 소서행장(小西行長)을 평양(平壤)에서 고통스럽게 만들었고, 두 번째 가등청정(加藤淸正)도산(島山)에서 곤궁에 빠뜨렸으며, 세 번째 심안도(沈安道)를 해중(海中)에서 무찌르자, 이 왜적들이 천병을 크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10년 동안은 조선을 침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습니다. 지금 마음 편히 술을 마시는 것도 모두 왜적을 물리친 여흥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모두가 천은(天恩)입니다."

하였다. 드디어 작별하고 나왔다.


  • 【태백산사고본】 68책 108권 4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554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군사-병참(兵站) / 인물(人物) / 외교-명(明) / 인사-관리(管理)

○丁亥/上幸龍山 趙知縣 【汝梅。】 所館。 上曰: "歲拜最晩, 不勝未安。" 曰: "遠臨, 多謝。" 上曰: "大人句管放糧, 小邦多蒙德意, 而如供億細事, 亦不得稱情, 惶愧。"知縣曰: "何德之有? 第聞糧儲將竭, 此非卒辦之物。 預爲措處何如?" 上顧謂承旨南以信曰: "大人若問糧餉數, 戶曹判書不可不對。 大人所謂糧之將竭, 何哉?" 以信對曰: "判書新差, 恐不得詳知。 大槪所乏者, 大米也。 唐小米, 尙多有云。" 知縣於座上, 書一小帖, 進于上。 有曰: "俺以節省放糧, 取怨於各將官, 故呈請當宁, 【指軍門。】 準調義州管糧。 歸時夫馬, 預須整齊。" 上曰: "大人在此管糧, 蒙惠不貲。 今聞西歸, 不勝缺然。 大人去後, 誰當代者?" 曰: "曾無才効, 反取人怨, 必欲歸去。 陳經歷當代我云。 此處倉官南瑾等及通官玄士白, 請加賞, 以酬其勞。" 上曰: "依命。" 有一人立于知縣之側, 因知縣, 進一小紙, 乃黃應陽妹子云者也。 蓋以也, 以楊經理門下官, 多有勞於東事, 而楊公被參, 累及應陽, 遼陽分守道爺禁獄。 伏乞大王, 推念舅氏微勞, 懇於當宁老爺, 早脫囹圉, 幸甚。 知縣以其人之意, 傳告曰: "分守道別無朝廷之命, 而擅自囚之。" 上曰: "以之故, 而至囚黃應陽云, 不祥之甚也。 此事當留心。" 仍辭出入城。 幸左遊擊所館, 酒數巡罷黜。 仍幸李副總 【芳春。】 所館。 上曰: "賊退, 是皇恩, 亦大人之功居多。" 曰: "國王洪福。 俺上年蔚山之役, 暴露雨雪, 今年又如此, 此情事, 願乘念焉。" 上曰: "何可忘也? 不知所喩。 但無路報德。" 副總自伐其功, 再三不已。 上稱謝愈恭, 副總曰: "俺非有所望。 但流名靑史曰: ‘三協將李芳春良將’ 云, 則足矣。 食久則餒, 物舊則弊, 而善名則不磨。 凡人之賢否, 自有公論, 何可誣也?" 上曰: "大人之言至哉! 大人之功, 寡人不知所報。 徒懷感激而已。" 副總曰: "李舜臣, 忠臣也。 有此輩十數人, 何憂乎賊? 陪臣權憘, 從俺多勞。 渠馬斃於路, 俺使買馬, 伏地曰: ‘雖徒步, 此則所不可爲。’ 此言黃金不換。 故俺待之以中朝衣冠之禮。 通官亦跟俺三年, 其苦極矣。 另加褒賞。" 上曰: "此職分當爲, 然依命。" 副總曰: "一惱行長平壤, 再困淸正島山, 三捷沈安道於海中。 此賊大畏天兵, 可保十年不犯朝鮮矣。 今此吃酒平心, 皆退賊餘興。" 上曰: "何莫非天恩?" 遂辭出。


  • 【태백산사고본】 68책 108권 4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554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군사-병참(兵站) / 인물(人物) / 외교-명(明)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