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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07권, 선조 31년 12월 7일 무오 5번째기사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좌의정 이덕형이 이순신의 포장을 요청하다

좌의정 이덕형(李德馨)의 장계에,

"이순신(李舜臣)의 사람됨을 신이 직접 확인해 본 적이 없었고 한 차례 서신을 통한 적 밖에 없었으므로 그가 어떠한 인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전일에 원균(元均)이 그의 처사가 옳지 못하다고 한 말만 듣고, 그는 재간(才幹)은 있어도 진실성과 용감성은 남보다 못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신이 본도에 들어가 해변 주민들의 말을 들어보니, 모두가 그를 칭찬하며 한없이 아끼고 추대하였습니다. 또 듣건대 그가 금년 4월에 고금도(古今島)로 들어갔는데, 모든 조치를 매우 잘하였으므로 겨우 3∼4개월이 지나자 민가와 군량의 수효가 지난해 한산도(閑山島)에 있을 때보다 더 많았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그의 재능이 남보다 뛰어난 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유 제독(劉提督)이 힘껏 싸우는 데 뜻이 없다는 것을 간파한 뒤에는 국가의 대사(大事)를 전적으로 수병에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신이 주사에 자주 사람을 보내어 이순신으로 하여금 기밀의 일을 주선하게 하였더니, 그는 성의를 다하여 나라에 몸바칠 것을 죽음으로써 스스로 맹세하였고, 영위하고 계획한 일들이 모두가 볼 만하였습니다. 따라서 신은 나름대로 생각하기를 ‘국가가 주사의 일에 있어서만은 훌륭한 주장(主將)을 얻어서 우려할 것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가 전사하였으니 앞으로 주사의 일을 책임지워 조치하게 하는데 있어 그만한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참으로 애통합니다. 첩보(捷報)가 있던 날 군량을 운반하던 인부들이 이순신의 전사 소식을 듣고서 무지한 노약자라 할지라도 대부분 눈물을 흘리며 서로 조문하기까지 하였으니, 이처럼 사람을 감복시킬 수 있었던 것이 어찌 우연한 것이겠습니까. 그리고 양향(糧餉)을 조치하는 등 모든 일에 있어서 요리해야 할 일들이 매우 광범위한데 하루 아침에 주관하는 사람이 없다면 필시 죄다 산실될 것입니다. 특별히 새 통제사를 임명하시어 마음을 다해 요리하고 장병들을 위무하여 뿔뿔이 흩어지지 않도록 하소서. 이순신이 나라를 위하여 순직한 정상은 옛날의 명장에게도 부끄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포장(褒奬)하는 거조를 조정에서 각별히 시행하소서."

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7책 107권 9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542면
  • 【분류】
    인물(人物) / 군사(軍事)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인사-관리(管理)

    ○左議政李德馨狀啓:

    李舜臣之爲人, 臣不曾見面, 通一聞問, 未知其爲如何。 前日但聞元均說稱處事不是處, 意謂幹才則有之, 而純實勇敢, 則下於人矣。 及臣入本道聽海邊居民, 交口稱讃, 愛戴不已。 又聞其四月, 始入古今島, 而布置施措, 曲盡其宜, 纔過數四月, 民戶軍餉, 盛於舊年閑山島所有, 始知其才過人。 及劉提督無意於力戰, 而大事不得不全仰於水兵也。 臣頻數差人于舟師, 令李舜臣, 周旋機宜, 其盡誠徇國, 以死自誓, 營爲規畫, 儘爲可觀。 臣私謂國家舟師之事, 主將得人, 可無虞矣, 不幸徑死鋒鏑。 前頭責委布置, 難得如此人者, 誠可痛惜矣。 報捷之日, 運糧夫丁, 得聞李舜臣身死, 雖無知老弱, 多有出泣而相慰者。 得此於人, 豈偶然哉? 且措置糧餉諸事, 料理甚廣, 一朝無主管, 必致蕩然散失。 特命新統制使, 盡心料理, 撫綏將卒, 俾不至渙散。 李舜臣爲國死職之狀, 無愧於古將。 褒奬之擧, 自朝廷, 別爲施行事。

    啓下備邊司。


    • 【태백산사고본】 67책 107권 9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542면
    • 【분류】
      인물(人物) / 군사(軍事)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