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변사가 중국 군사를 본국에 보내는 일에 대해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피폐한 중국 군사를 먼저 보내는 일에 대해서 접반사 노직(盧稷)이 중군(中軍)을 만나 조정에서 상의한 것을 말하자, 중군이 말하기를 ‘피폐한 군사뿐만 아니라 근간에 5일마다 한 부대씩 편성하여 차례차례 돌아갈 것이니 우선 기다리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군사를 머물러 두는 일에 대해서 중군도 역시 진 도독(陳都督)을 머물러 두려고 하는데, 그밖의 다른 장관 중에서 주둔시키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떠나기 전에 와서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접반사가 오 총병(吳總兵)과 진인(陳寅)·진잠(陳蠶) 두 유격을 말하자, 중군이 말하기를 ‘오 총병은 늙었고 이곳에 온 지 오래되었으니, 그는 필시 머물러 있기를 싫어할 것이다. 다시 의논하여 가지고 오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머무는 군사에 대해서 흑자는 말하기를 ‘육군 2만 명, 수군 5천 명이 좋겠다.’ 합니다. 그러나 육군의 수가 너무 많아 군량을 대주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1만 명이면 적당할 듯하나 그 정도로는 오히려 고단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머무는 군사의 많고 적은 숫자는 의당 군량의 다소에 따라야 할 것이니, 이런 일은 밖에서 의논하여 조처해야 할 일이요, 나의 알 바가 아니다. 그리고 내가 중국 사람을 많이 만나 보았지만 하나도 옳은 사람이 없었다. 기만하는 것으로 공업(功業)을 삼고 사기치는 것으로 능사를 삼으며 음흉하고 시기하는 것을 서로 높이고 부박하고 궤탄한 것을 숭상하는 데다가 탐욕이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무장(武將)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문관(文官)이란 자들도 이런 평가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점으로 미루어 보면 중국의 인심이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나는 못내 탄식하고 있다. 지금 머물러 주둔할 장수를 취하자면 반드시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라야 서로 협력하여 수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적변이 있거나 적이 트집을 잡는 일이 있더라도 사실대로 중국 조정에 보고하지 않을 것이니 우리 나라는 필시 그들에게 농락당하여 환난이 더욱 커질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 경들은 깊이 생각하여 처리해야 한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7책 107권 3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539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외교-명(明)
○備邊司啓曰: "疲兵先送事, 接伴使盧稷, 已與中軍相議道達, 則非獨疲兵, 近日當爲五日作運, 次次旋歸矣, 姑待之云。 且留兵事, 中軍亦欲以陳都督留在, 其餘將官欲留者, 前期來告云。 接伴使以吳摠兵、陳寅、陳蠶兩遊擊爲言, 則中軍曰: ‘吳摠兵老矣, 來此已久, 彼必厭之。 須更議以來。 且留兵, 或云陸兵二萬, 水兵五千爲可, 但陸兵過多, 難於應餉。 若一萬則似當, 然猶似孤單,’ 未知何以爲之。 敢稟。" 傳曰: "留兵之衆寡, 當由於糧餉之多少。 此則在外議處, 非予所知。 且予閱天下之人多矣, 無一可人。 以欺罔爲功業, 以詐慌爲能事, 險猜相高, 浮誕相尙, 貪之一字, 又根於其性。 武將何足道, 文亦不免焉。 天下人心從可知矣, 予嘗竊嘆。 今取留鎭之將, 必須以正直誠信者, 然後乃可協守。 不然, 雖有賊變, 或賊有執言之事, 不以實報于朝廷, 我國必爲其所賣, 爲患滋大。 此在諸卿熟思而處之。"
- 【태백산사고본】 67책 107권 3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539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