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망기로 정원에 해상의 승리에 관한 전교를 내리다
비망기로 정원에 전교하기를,
"왜적이 중국군과 전투에서 승리한 뒤 까닭없이 일시에 물러갔으니 사세로 헤아려 보건대 그럴 리가 없다. 실제로 중국군이 두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는 반드시 천장이 감언 이설(甘言利說)로 화친하자고 꾀어 물러가게 한 것인데 우리 나라가 그간의 사정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후일 반드시 꼬리가 드러날 것이다. 왜적의 모략과 병력은 우리의 10배나 되며 우리 나라 사람처럼 어리석고 모략이 옹졸하지 않다. 하루아침에 견고한 성과 험한 소굴을 모두 버리고 스스로 물러가면서 성채(城寨)도 그대로 놓아두고 식량도 남겨두고 갔으니, 그들이 깔보는 정상을 쉽게 알 수 있다. 병법(兵法)에 ‘장차 취하려면 반드시 잠시 준다.’고 하였다. 옛날 간리불(幹离不)이 잠시 물러가자 송(宋)나라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여 서로 경축하고 상황(上皇)을 맞이하고 근왕병(勤王兵)을 흩어보냈다가 끝내 변경(汴京)의 함락을 가져왔으니 그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을 만하다. 그러니 오늘의 일은 근심할 일이고 축하할 일이 아니니 나의 말을 잊지 말라. 그러나 해상(海上)에서의 승리는 왜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하였으니 이는 조금 위안도 되고 분도 풀린다."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전일 유 제독(劉提督)이 질관(質官)을 보낸 일을 군문에게 일찍이 고하게 하였는데 군문이 알고 있는가? 정원이 만약 상세히 알지 못하면 상세히 살펴 아뢰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7책 106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537면
- 【분류】군사(軍事) / 외교-명(明) / 외교-왜(倭)
○以備忘記, 傳于政院曰:
倭賊戰勝天兵之後, 無端一時俱退, 揆之於勢, 固無其理。 實非畏天兵而然也, 此必天將甘言乞和, 誘而退之, 而我國未能盡得其間事狀耳。 後日必有其尾。 賊之智計、兵力, 十倍於我, 非若我國人之愚而謀拙也。 一朝盡棄堅城險穴而自退, 至或城寨有宛然, 糧餉有傳授, 其輕藐之狀, 不難知也。 兵法曰: "將欲取之, 必姑與之。" 昔幹离不纔退, 宋人動色相慶, 延上皇罷勤王, 終致汴京之陷, 其愚可嗤。 今日之事可憂, 而不可徒賀也。 幸記予言。 唯海上之捷, 足破賊膽, 此則稍慰洩憤矣。
仍傳曰: "前日劉提督遣質官, 如許事, 軍門前曾使告之, 軍門知之乎? 政院若未能詳知, 則詳察以啓。"
- 【태백산사고본】 67책 106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537면
- 【분류】군사(軍事) / 외교-명(明)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