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간원이 유성룡을 탄핵하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풍원 부원군(豐原府院君) 유성룡은 간사한 자질에다 간교한 지혜로 명성과 벼슬을 도둑질하여 사람을 해쳐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세상을 속여도 세상이 깨닫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그 평생의 심술입니다. 정권을 잡은 이래로 붕당을 결성하여 국사를 그르치고 사사로이 행하여 백성을 괴롭힌 죄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정철(鄭澈)이 악한 짓을 멋대로 할 때에 우성전(禹性傳)과 이성중(李誠中)은 성룡의 심복으로서 간사한 정철에게 붙어서 사대부들에게 피해를 끼쳤으니, 지금까지 화(禍)가 계속되는 것은 모두 성룡이 남몰래 사주한 것입니다. 공론이 이미 발론 된 뒤에도 성룡은 성전과 성중 두 사람이 탄핵당한 것을 분하게 여겨 감정을 품고 늘 원망하여 마침내 사류(士類)와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자기 뜻에 거슬리는 자는 원수처럼 배척하고 자기에게 아첨하는 자는 진출(進出)이 남보다 늦을까 염려하니 불량한 무리들이 그림자처럼 성룡의 문에 붙어 조정을 시끄럽게 하고 사론(士論)을 분열시켜 남북(南北)의 설(說)이 또 세상에 떠돌고 있는데, 이는 실로 성룡이 그 시초를 만든 것입니다.
왜적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 수 없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모두 아는 일인데 성룡은 대신으로서 맨 먼저 화친을 주장하고 호택(胡澤)이 나왔을 때에 기미책(羈縻策)을 힘써 주장하여 드디어 심유경(沈惟敬)과 서로 표리(表裏)가 되었습니다. 이에 중국에서 그것을 꼬투리로 삼아 왜적을 봉(封)하는 칙서 내용에 ‘조선에서 일본을 봉해줄 것을 요청했다.’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으니, 이는 온 나라 백성들이 바다에 빠져 죽을지언정 듣지 않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룡은 조정의 의논이 허락하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그 일을 깊이 숨겨 대관(臺官)이 알지 못하도록 하고 황신(黃愼)이 떠나간 뒤에 대관이 비로소 듣고 논하였으니, 그의 조정을 멸시하고 기탄없는 짓을 함이 극심합니다. 지난해 왜적이 서울에 다가왔는데도 오히려 화친하자는 의견을 가지고 비변사에서 큰소리를 치니, 유영경(柳永慶)이 앉아 있다가 분이 나서 일어나 말하기를 ‘전일에도 이미 잘못을 저지르고 오늘 또 다시 잘못을 저지르려고 하는가?’ 하니 성룡이 문득 성을 내며 ‘영공(令公)의 비석에는 화친을 주장하지 않았다고 써야 하겠다.’ 하였으니, 그의 방자한 짓에 대해 누가 가슴 아파하지 않겠습니까. 또 소응궁(蕭應宮)의 말을 빙자하여 사의(邪議)를 고취시켜 자기 뜻을 멋대로 시행하려고 하자, 김응남(金應南)이 혼자 차자를 올려 그의 부당함을 진술하였는데, 성룡이 도리어 회계(回啓)하기를 ‘신과 응남의 의견이 별로 다른 것이 없다.’ 하였으니, 간사함을 숨기고 상을 속인 죄가 또한 극심합니다. 끝내 사기(事機)를 저해하여 천하의 대사를 망쳤으니 이는 우리 나라의 죄인일 뿐만이 아니라 실로 천하의 죄인입니다.
양 경리(楊經理)가 왜적을 토벌하는 데 뜻을 두어 화친을 주장하는 성룡을 현저하게 비난하였으므로 성룡은 늘 유감을 품었는데 경리가 참소를 당한 것은 그의 욕구에 적중된 것이라, 조정에서 경리를 위하여 변무(辨誣)하려고 하면 ‘이 일은 내가 아는 바가 아니니 우의정에게 말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고, 과도(科道)에게 정문(呈文)하려고 하면 앞에 자기 이름 쓰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아 매번 원임 대신(原任大臣)을 먼저 쓰게 했으니 그 마음은 정응태(丁應泰)를 거스릴까 염려하여 그런 것입니다. 오직 화친을 주장하는 한 가지 생각만이 마음속에 가득차 있었으므로 직무를 담당한 지 6∼7년 동안 그가 경영하고 조처한 것이 대부분 유명 무실하였고, 다만 문자나 짓는 것으로 그날 그날의 책임을 때웠으며, 남의 말에 관심을 두지 않고 멋대로 고집을 부려 하는 일마다 정치를 해치는 짓만 했습니다. 훈련 도감(訓鍊都監)을 맡거나 군문(軍門)을 체찰(體察)하면서도 속오 작미(束伍作米)의 법과 선봉 차관(選鋒差官)의 설을 주장하여 폐단을 만들고 그를 빙자하여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며, 불같은 호령으로 절도없이 징수하여 끝내 백성들로 하여금 도탄에 빠지게 하고 촌락이 텅비게 하였으며, 피해가 가축에까지 미쳐 모든 존재가 하나도 안주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원망은 위로 돌아가게 하고 이권(利權)은 전적으로 자기에게 돌렸으니, 성룡은 어쩌면 그렇게도 자기를 위하는 계책에는 성실하고 국가를 위하는 계책에는 성실하지 못하단 말입니까. 관작을 멋대로 남발하여 선심을 쓰고 은혜를 갚기도 하였으며 자기의 심복들을 내외에 포진시켰습니다. 각진의 여러 장수와 크고 작은 군읍(郡邑)에는 반드시 친척 중에서 친한 자를 임명하여 보냈고, 참하관(參下官)을 승진시켜 줄 때는 자격이 수령을 감당할 만하다고 하였지만 반은 시골의 친한 사람들이었으며, 서례(庶隷)의 미천한 자를 발탁할 때는 둔전(屯田) 지키는 관리를 설치한다고 하였으나 거의 모두가 자신에게 아첨하는 추한 무리들이었습니다. 뇌물과 선물꾸러미가 남모르게 오가니 비루한 일은 말을 하자면 지극히 추할 뿐입니다. 광주(廣州)의 사전(私田)에 백성들을 시켜 경작하고 단양(丹陽)의 신장(新庄)에 포망(逋亡)한 자들을 소집하였으며, 안동(安東)의 구제(舊第)는 기름진 땅을 많이 점령하였는데도 부역을 하지 않으므로 부사(府使) 정사호(鄭賜湖)가 그 가호에 부역을 시키려고 하자 남몰래 친한 자를 시켜 남쪽 지방으로 좌천시키니, 식자들은 모두 침뱉고 욕하였습니다.
이는 성룡의 죄상의 대략인데, 지난번 중국에 사신 가는 것을 회피한 일로 약간의 견책을 받았으나 다만 정승만을 체직시켰으니, 어떻게 그의 죄를 징계하고 온 나라 사람들에게 사과하겠습니까. 나머지 위세가 아직까지 치성하므로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시비가 밝혀지지 않고 공론이 시행되지 않으니 후일의 화(禍)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인 바 참으로 한심합니다. 삭탈 관작시켜 조야(朝野)의 울분은 조금이나마 쾌하게 하소서.
사헌부 지평 이흘(李忔)은 그이 친동생인 이협(李悏)이 이몽학(李夢鶴)의 반란에 연루되어 죽었으니 중요한 사헌부의 직책에 있을 수 없습니다. 여론이 온당치 않게 여기니 체직시키도록 명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어찌 그러기까지야 하였겠는가. 전해 들은 말은 반드시 모두가 사실이 아닐 것이다. 이미 체직시킨 대신을 다시 논할 필요 없다. 이흘의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7책 106권 9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532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인물(人物) / 변란(變亂) / 군사-군역(軍役) / 재정-역(役)
○丁酉/司諫院啓曰: "豐原府院君 柳成龍, 以邪佞之資, 濟之以材慧, 盜名字竊爵位, 害人而人不知, 欺世而世不悟, 此其平生之肝肺也。 秉權以來, 植黨誤國, 行私病民之罪, 不一而足。 當鄭澈肆毒之日, 禹性傳、李誠中, 以成龍之腹心, 諂附奸澈, 流害縉紳, 至于今禍猶未已者, 無非成龍之陰嗾也。 及其公論旣發之後, 成龍憤兩人被劾, 挾憾怏怏, 遂與士類異焉。 忤志者排之若讐, 媚己者進之恐後, 不逞之輩, 影附其門, 致令朝著不靖, 士論乖角, 南北之說, 又行於世, 此實成龍之所作俑也。 倭賊之不可共一天, 嬰孩之所同知, 而成龍身爲大臣, 首倡和議, 當(胡睪)〔胡澤〕 出來之時, 力主羈縻之說, 遂與沈惟敬, 相爲表裏, 以致皇朝執言, 封倭勑中, 有朝鮮請封之語。 此一國臣民, 欲爲蹈海, 而不願聞者也。 成龍恐其朝論不許, 則深諱其事, 使臺官不得知, 黃愼旣發之後, 臺官始聞而論之, 其蔑朝廷無忌憚極矣。 上年賊逼京師, 猶執乞和之見, 大言於備邊司, 柳永慶在坐憤惋而起曰: ‘旣誤於前日, 又欲再誤於今日耶?’ 成龍輒怒曰: ‘令公碑上, 當書不主和議。’ 其縱恣之狀, 孰不痛心? 又藉蕭應宮之說, 鼓動邪議, 欲逞己志, 金應南獨箚陳其不可, 成龍乃返回啓曰: ‘臣與應南之見, 別無異同。’ 其匿詐誣上, 亦已甚矣。 終始沮撓事機, 壞了天下大事, 此非但我國罪人, 實天下之罪人也。 楊經理意在討賊, 顯斥成龍主和, 故成龍常銜之, 經理之被參, 適中其欲。 朝廷欲爲經理(變)〔辨〕 誣則曰: ‘此事非我所知, 告諸右相可也。’ 欲爲呈文於科道, 則不肯首書己名, 每以原任大臣書之, 蓋其心恐忤丁應泰而然也。 惟其主和一念, 撑柱於中, 故擔當六七年來, 其所營爲布置, 率皆有名而無實, 只以揮毫弄墨, 爲課日塞責之地, 而不有人言, 剛愎自用, 作事害政, 無所不至。 其如訓鍊都監、體察軍門, 束伍作米之法, 選鋒差官之說, 因緣作弊, 憑藉牟利, 號令(房)〔旁〕 午, 徵斂無節, 終使生民塗炭, 村落蕭然, 害及雞豚, 無一物得安。 其所怨歸於上, 利專於身, 是何成龍誠於謀己, 而不誠於謀國也? 擅弄名器, 施惠酬恩, 爪牙鷹犬, 布列內外。 各鎭諸將, 大小郡邑, 必以族相厚者差遣, 圖遷參下之官, 則作才堪守令之號, 而半是鄕井之親, 欲拔庶隷之賤, 則設屯田把守之官, 而擧皆舐痔之輩。 賄賂潛通, 苞苴暗行, 鄙陋之事, 言之可醜。 廣州私田, 役民耕耘, 丹陽新庄, 召集逋亡, 安東舊第, 廣占膏腴, 不知徭役, 而府使鄭賜湖欲役其戶, 則陰使所親黜之, 南中有識, 莫不唾罵。 此其成龍罪狀大槪, 而頃者厭避朝 天一事, 略被譴責, 只遞台輔, 其何以懲其罪而謝國人乎? 餘焰尙熾, 人皆疑懼, 是非不明, 公論不行, 他日之禍, 有不可勝言, 誠可寒心。 請命削奪官爵, 少快朝野之憤。 司憲府持平李忔, 其同生弟悏, 死於李夢鶴之逆獄。 風憲重地, 不可冒居。 物情殊以爲未便, 請命遞差。" 答曰: "豈至於此乎? 傳聞之言, 未必皆實。 已遞之大臣, 不須更論。 李忔事, 依啓。"
- 【태백산사고본】 67책 106권 9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532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인물(人物) / 변란(變亂) / 군사-군역(軍役) / 재정-역(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