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망기를 통해 병 때문에 선위하겠다는 뜻을 대신에 알리다
비망기로 대신에게 전교하기를,
"전부터 병 때문에 감히 그대로 무릅쓰고 있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선위(禪位)를 청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경들은 번번이 탁사(托辭)로 여겨 유념하지 않은 채 국사를 생각하지 않고 있으니, 나는 매우 민망하게 여긴다. 용종(龍鍾)한데다 고질적인 병의 정상은 이제 다시 거론할 필요가 없다. 저번 한강(漢江) 가에 갔다 온 뒤부터 갑자기 중병(重病)을 얻어 내 생각으로는 반드시 죽을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수일 뒤에 큰 증세는 조금 덜한 듯했지만 지금까지 누워 있는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원기(元氣)가 날로 위축되어 점점 다해지고 있으니, 이는 대체로 병의 근원이 깊은 것이어서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생각하건대, 일어나지 못하게 될지 약(藥)의 효력을 여러날 뒤에 보게 될지는 기필할 수 없다. 이처럼 어렵고 위태로운 때를 당하여 중국의 대소 장관(將官)들이 서울에 가득히 머물러 있는데 나의 병세가 이와 같으니 나랏일을 생각할 때 통한스러운 마음이 가슴 속에 응어리져 있다는 것을 내가 전에 한 말에서 징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과연 병을 핑계로 선위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병은 반드시 정양(精養)해야 되는 것이다. 외침(外侵)과 내삭(內鑠)이 있는데도 잘 조섭(調攝)한 경우는 있지 않았다.
지금 병 때문에 침상에 앓아 누워 있는데도 구름 쌓이듯이 많은 국가의 기무(機務)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응수(應酬)하느라 일각(一刻)도 쉴 수가 없다. 아, 병을 무릅쓰고 일을 한다 한들 나랏일에 있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몸만 손상시킬 뿐이다. 또 반드시 나라를 상망(喪亡)시키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니, 어찌 대신들이 유의할 일이 아니겠는가. 심질(心疾)이 더욱 극심해져서 전광증(顚狂症)으로 크게 부르짖으며 인사(人事)를 살피지 못하니 곁에 있는 자들이 놀라 탄식하지 않은 이가 없다. 이는 심장이 먼저 상한 것이어서 상하지 않은 것이라곤 오직 한 줌의 기(氣)뿐이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더욱 하루도 그대로 무릅쓰고 있을 수 없으니 경들은 다시 헤아려서 사실을 갖추어 곧바로 중국 장수에게 고하라. 그리하여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이 속히 처치(處置)되도록 하면 나랏일에도 매우 다행한 일이고 종사(宗社)를 위해서도 매우 다행스런 일이며, 여러 대인(大人)들에 대해서도 매우 다행한 일이고 만백성들에게도 매우 다행한 일이겠다."
하였다. 영의정 유성룡(柳成龍), 우의정 이원익(李元翼)이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하교를 받드니, 매우 황공하고 실망스런 마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요즈음 성상의 기력이 응접하시는 번거로움 때문에 지쳤습니다. 또 일기가 순조롭지 못함으로 인하여 잠시 상도(常度)를 잃으신 것을 성 안에 있는 대소 중국 장수들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만일 응접하는 회수를 줄이고 약물(藥物)을 친근히 하시면 오래지 않아 절로 회복될 것인데 천만 뜻밖에 또한 이와 같은 전교를 내리시니, 신들은 서로 돌아보면서 실색(失色)할 뿐 무어라 진달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지금이 어떠한 때이고 이 일이 어떤 일이기에 번번이 하교하시는 것입니까? 조정에 가득한 신료(臣僚)들만이 함께 놀라고 해괴하게 여길 뿐이 아닙니다. 중국 장관(將官)들이 듣는다면 또한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신들은 감히 여러 말씀을 올려 번독스럽게 진달하여 아뢰지 못하겠습니다. 삼가 깊이 생각하시어 다시는 이와 같은 전교를 내리지 마심으로써 군하(群下)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민망스러움을 금치 못하겠다. 중국 장수와 의논하여 세자로 하여금 임시 국정을 섭행(攝行)하게 해주기 바란다."
하였다. 재차 아뢰기를,
"신들의 심정을 이미 상달하였는데 성교(聖敎)를 또 내리시니 더욱 민망하고 답답한 심정 금치 못하겠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신들이 전부터 진달하여 아뢰었으므로 이미 더 아뢸 말이 없습니다. 더구나 오늘날의 상황은 전일에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삼가 다시 성념(聖念)을 더하시어 다시 이러한 전교를 내리지 않으시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2책 97권 38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393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 외교-명(明)
○備忘, 傳于大臣曰:
自前將病不敢仍冒之意, 請辭非一二計, 卿等每諉以托辭, 惟庸罔念, 不以國事爲意, 予嘗甚悶。 龍鍾痼病之狀, 今不必更擧。 自頃日江頭往還, 忽得重病, 自分必死。 數日之後, 大勢雖似稍歇, 而至今僵臥不能起, 元氣日就萎薾, 奄奄澌盡。 此蓋發源深, 非一朝一夕之致。 意者, 或不起, 或見效藥力於累日之後, 未可期, 當此艱危, 天朝大小將官滿在京中, 而病勢如此, 言念國事, 痛纏于懷。 予之前所言, 可以驗矣。 果可謂託辭乎? 病必靜養, 未有外侵內鑠而能爲調攝者。 今病臥在床, 而機務雲委, 晝夜酬應, 不得一刻暫息。 嗚呼! 抱病冒病, 何益於國事? 而適足以喪其身, 又必至於喪其國, 豈非大臣留意處乎? 心疾尤劇, 顚狂大呼, 不省人事, 在側者莫不驚嘆。 此幷與方寸而先喪之, 所未喪者, 唯一握之氣耳, 豈不哀哉? 尤不可一日而仍冒, 願卿等更爲商量, 備將事實, 直告于天將, 得病垂死之人, 速爲處置, 國事幸甚, 宗社幸甚, 諸大人幸甚, 萬民幸甚。
領議政柳成龍、右議政李元翼啓曰: "臣等伏承下敎, 不勝惶恐隕越之至。 近日玉候勞傷於應接之煩, 且緣風氣不調, 以致暫愆常度, 城中大小天將, 亦皆知之。 若節省應接, 親近藥物, 不久自當平復, 千萬意外, 又下如此之敎, 臣等相顧失色, 不知所達。 今時何時, 此事何事, 而每每下敎乎? 非徒滿庭臣僚, 所共驚駭, 而天朝將官聞之, 則又以爲何如也? 臣等不敢多爲辭說, 煩瀆陳啓。 伏望三思, 勿更爲如此之敎, 以安群下之情。" 答曰: "無任悶極。 可議于天將, 令世子權攝是望。" 再啓曰: "臣等之情, 已爲上達, 而聖敎又下, 尤不勝悶鬱之至。 此事, 臣等自前陳啓, 已無餘蘊。 況今日, 又非前日之比。 伏望更加聖念, 勿再下敎, 不勝幸甚。" 答曰: "知道。"
- 【태백산사고본】 62책 97권 38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393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왕실-국왕(國王)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