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헌부가 전쟁에서의 권율과 조경의 무책, 무능을 탄핵했으나 각하되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도원수(都元帥) 권율(權慄)은 장령(將領)의 명을 받았으면 밤낮으로 적개심을 돋울 것을 생각하여야 함에도 오랫동안 적과 대치하고 있으면서 한 가지의 대응책도 세우지 못하였습니다. 지난날 주사(舟師)의 싸움은 조정의 명령이 있었다 하더라도 원수가 된 자로서는 힘을 헤아리고 시기를 보아서 대항하기 어려울 것 같으면 그 상황을 치계(馳啓)하여 후회가 없도록 했어야 합니다. 그러데 이러한 계획은 하지 않고 경솔한 생각과 부질없는 행동으로 원균(元均)에게 엄한 곤장을 쳐서 독촉했다가, 마침내 6년 동안 경영하여 어렵게 마련한 주사를 단번에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많은 산책(山柵)을 한 곳도 지키지 못함으로써 적이 호남으로 들어가 군민(軍民)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남원(南原)이 함락되고 나니 전라도는 다 적의 수중에 들어갔고, 호서의 각 고을도 유린당하여 창칼이 거쳐 간 곳은 해골이 들판에 즐비하니 지난 임진년 보다도 더 참혹하였으며, 경기의 고을까지 바짝 쳐들어와서 도성을 지키지 못할 뻔하였으니, 이는 망국의 원수(元帥)입니다. 그의 죄상은 율대로 처벌하더라도 부족한데, 더구나 먼저 대피하여 영남에서 서울로 도망쳐 와서는 강탄(江灘)을 지키고자 함이라고 핑계를 대며 버젓이 장계를 올렸으니, 이것이 과연 원수가 외방의 책임을 맡은 체모이겠습니까. 인심의 울분이 이처럼 극도로 달하였는데 율이 장차 무슨 면목으로 다시 하늘의 해를 보며 장병들을 호령하겠습니까."
그리고 재차 명령을 받아 남쪽으로 내려가던 날에도 요해처로 향하지 않고 영남의 산속 절간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평시처럼 무사태평하게 밤낮으로 술에 빠져 있었습니다. 여론이 들끓는다는 소문을 듣고 나서는 그 죄를 은폐하고자 호남 지방의 적이 물러간 곳만 맴돌며 노니는 채, 여태 아무런 계획도 실시하는 일이 없이 한가로이 오가며 여전히 시일을 허송하고 있으니, 어떻게 힘을 다하여 적을 토벌하고 장수들을 검속하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조정이 그 대임(代任)을 어렵게 여겨서 옳지 못함을 알고도 여태 바꾸지 않고 있으나 조정 신하 중에 찾는다면 어찌 권율보다 나은 자로 적임자가 없겠습니까. 권율을 속히 나국하여 율대로 죄를 정하도록 명하고 비변사로 하여금 그 대임을 속히 가려 보내도로 하소서.
조경(趙儆)의 사람됨은 성품이 본시 곧지 못하여, 훈련 도감 당상으로서 일을 처리할 적에 잔 꾀를 많이 씀으로써 군정(軍情)이 복종하지 않은 지가 벌써 오래되었습니다. 더구나 이번에 남쪽으로 내려가라는 명을 받고서 권율의 전령(傳令)에만 의탁한 채 적을 추격할 생각은 없었으니, 그가 하는 계획이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당초 군사를 거느리고 출발할 적에 지름길로 들지 않고 기어코 우회하는 길로 들어 마냥 천천히 가면서 겁을 먹고 지체하는 꼴에 사람들이 통분해 하지 않는 자가 없었습니다. 공론도 이 때문에 크게 일어났던 것인데, 나국한 지 얼마 안 되어 서둘러 석방을 명하시니, 물정이 더욱 놀라와 하고 있습니다. 대장(大將)의 죄를 벌하지 않은 채 한갓 편장(褊將)과 수령의 죄만 다스린다면 이는 큰 잘못은 제쳐 두고 작은 실수만 살피는 격입니다. 이러고서도 어떻게 기강을 진작시키고 군율을 신칙할 수 있겠습니까. 조경을 다시 나국하여 율대로 죄를 정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도원수의 일은 논한 바가 너무 지나치다. 한창 왜적과 대치하고 있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겠는가. 조경은 별로 지체한 정적(情迹)이 없고 다만 도원수의 절제 때문이었다. 더구나 한 명의 적도 잡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는 자가 어떻게 지체하려는 생각이 있었겠는가. 훈련 도감 당상을 사람들이 다 같이 미워하여도 실정 밖의 무거운 죄를 가할 수는 없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1책 94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331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군사(軍事) / 외교-왜(倭) / 사법-탄핵(彈劾) / 인물(人物)
○司憲府啓曰: "都元帥權慄, 旣受推轂之命, 所當日夜思奮敵愾, 而久對賊壘, 無一策應之事。 曩者舟師之戰, 雖有朝廷之命令, 而爲元帥者, 度力相時, 當以難能抵敵之狀, 馳啓朝廷, 俾無後悔, 而計不出此, 率意妄作, 嚴杖元均以督之, 終使六年經營, 艱辦舟師, 一敗無餘, 許多山柵, 亦無一處保守, 馴致賊入湖南, 軍民潰散。 南原旣陷, 全羅擧道, 盡沒於賊中, 湖西各邑, 亦被蹂躪, 鋒刃所經, 暴骨滿野, 甚於壬辰之慘, 迫至畿邑, 都城幾不守, 是亡國之元帥也。 其爲罪狀, 雖依律而不足, 而況抽身先避, 自嶺南奔至京師, 托以欲守江灘, 偃然狀啓, 是果元帥受閫之體乎? 人心之憤鬱, 至於此極, 慄將何面目, 復見天日, 號令列校乎? 且再受命而南下, 不向要害之地, 深入嶺南山谷寺刹, 日夜沈醉, 有若平時無憂者然, 及聞物論洶洶, 欲掩其罪, 遨遊於湖南賊退之處, 尙無措畫設施之事, 閑往閑來, 玩愒猶前, 何望其奮力討賊, 檢勑諸將乎? 朝廷難於其代, 知其不可, 尙不遞易, 求諸朝臣, 優於權慄者, 豈無其人乎? 請權慄亟命拿鞫, 依律定罪, 其代, 令備邊司, 急速擇遣。 趙儆之爲人, 性本不直, 以訓鍊都監堂上, 處事之際, 多用巧計, 軍情之不服久矣。 況今受命南下, 托於權慄之傳令, 無意追賊, 其爲行計, 亦甚詐矣。 當初領兵發行, 不由直路, 必由迂路, 緩緩徐行, 畏怯逗遛之狀, 人莫不痛憤。 公論因此大發, 拿鞫未久, 遽命放釋, 物情尤爲駭憤。 不誅大將之罪, 徒治褊裨及守令, 則是緦小功之察也。 其何以振肅律紀而申嚴軍令乎? 請趙儆更命拿鞫, 依律定罪。" 答曰: "都元帥事, 所論過矣。 方與賊對, 豈可如是? 趙儆別無逗遛之情, 只固元帥節制。 況以不得一賊爲恨者, 豈有逗遛之意乎? 訓鍊都監堂上, 人所共惡, 未可輕以情外重罪加之。
- 【태백산사고본】 61책 94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331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군사(軍事) / 외교-왜(倭) / 사법-탄핵(彈劾)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