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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93권, 선조 30년 10월 2일 기미 9번째기사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중국군 장수들이 사로잡은 왜적을 활쏘기의 표적으로 삼아 죽이다

접대 도감(接待都監)이 아뢰기를,

"오늘 경리가 교장(敎場)에 나와서 모 유격(茅遊擊)의 군사로 하여금 진법을 익히게 하고 교전(交戰)도 시험했습니다. 이어 모 유격 이상의 장관들과 자리를 같이 하여 술을 마시고 표적에 활을 쏘게 한 다음 영국윤(寗國胤)이 사로잡아 온 왜적을 끌어내어 기둥에 묶어놓고 경리가 군복으로 갈아 입고서 먼저 목을 쏘아 맞힌 뒤에 배꼽 아래를 쏘았고, 여러 장수들도 모두 마구 쏘았습니다. 활을 쏘기 직전에 먼저 항왜(降倭)를 시켜 ‘너는 두려우냐?’고 물으니, 왜적은 ‘두렵지 않다.’고 대답하였는데 5∼6개의 화살을 맞은 후에야 죽었습니다. 죽은 후에 경리가 뜰에 내려가서 직접 그 화살을 뽑아 냄새를 맡으며 비린내도 나지 않는다 하고 날이 어둡도록 그 왜적에게 쉬지 않고 쏘았으며, 송업남(宋業男)을 불러 말하기를 ‘이 왜적이 조선 사람을 매우 많이 살해했으므로 내가 극도록 화가 치밀어 이와 같이 쏜 것이다. 이러한 뜻을 네가 배신(陪臣)에게 말해서 국왕에게 아뢰도록 하라.’ 하고, 또 박인상(朴仁祥)에게 말하기를 ‘내가 이 왜적을 쏘아 죽인 것이 어떠한가?’ 하니, 인상이 대답하기를 ‘노야의 은혜에 감사함을 다 말할 수 없다.’ 하자 경리가 그렇겠다고 하고 헤어질 때 경리가 손수 그 왜적의 머리를 베고 나머지 여러 장수들도 다 마구 찍곤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0책 93권 4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304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接待都監啓曰: "當日經理到敎場, 令茅遊擊軍習陣, 試以交戰。 仍與遊擊以上諸將官, 許坐饋酒, 使之射的, 寗國胤所擒子, 卽令拿入, 立柱結縛, 經理變着戎服, 先射其項, 次射臍下, 諸將官亦多亂射。 當其臨射, 先使降倭問曰: ‘汝怕乎?’ 其答曰: ‘我不怕’ 云。 至五六箭乃死。 死後, 經理下庭, 親拔其矢, 嗅之曰: ‘不腥。’ 至昏, 射其不已, 招宋業男曰: ‘此朝鮮人甚多, 我十分的怒他, 如是射之。 此意爾可說與陪臣, 啓知國王’ 云。’ 又言于朴仁祥曰: ‘我之射此何如?’ 仁祥對曰: ‘謝不盡者, 老爺恩典也。’ 經理曰: ‘可。’ 臨罷, 經理手斬其頭, 其餘列將皆亂斫矣。" 傳曰: "知道。"


  • 【태백산사고본】 60책 93권 4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304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