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92권, 선조 30년 9월 13일 경자 7/7 기사 /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경기 감사 홍이상이 중전과 동궁의 피난 상황에 관해 보고하다
국역
경기 감사 홍이상(洪履祥)이 치계(馳啓)하였다.
"중전(中殿)과 동궁(東宮)이 상수참(湘水站)에서 주정(晝停)하였는데, 지정된 각관(各官)들이 모두 나와 대기하지 않아 공상(供上)을 전폐하였습니다. 저녁에 마전(麻田) 앞 강에 이르렀는데 작은 배 4척 만이 있었으므로 수많은 인마(人馬)와 배종한 사람들이 도로를 꽉 메운 채 밤중에야 강을 건너 마전에 도착하였습니다. 전도되고 미안스러운 상황을 차마 말할 수 없는데 몹시 비통스러운 심정으로 석고 대죄(席蒿待罪)합니다. 별장(別將) 한명련(韓明璉)이 소초평(蘇草坪)에서 싸워 참살(斬殺)한 바가 매우 많았습니다."
원문
선조실록92권, 선조 30년 9월 13일 경자 7/7 기사 /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경기 감사 홍이상이 중전과 동궁의 피난 상황에 관해 보고하다
국역
경기 감사 홍이상(洪履祥)이 치계(馳啓)하였다.
"중전(中殿)과 동궁(東宮)이 상수참(湘水站)에서 주정(晝停)하였는데, 지정된 각관(各官)들이 모두 나와 대기하지 않아 공상(供上)을 전폐하였습니다. 저녁에 마전(麻田) 앞 강에 이르렀는데 작은 배 4척 만이 있었으므로 수많은 인마(人馬)와 배종한 사람들이 도로를 꽉 메운 채 밤중에야 강을 건너 마전에 도착하였습니다. 전도되고 미안스러운 상황을 차마 말할 수 없는데 몹시 비통스러운 심정으로 석고 대죄(席蒿待罪)합니다. 별장(別將) 한명련(韓明璉)이 소초평(蘇草坪)에서 싸워 참살(斬殺)한 바가 매우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