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선조실록 91권, 선조 30년 8월 15일 계유 2번째기사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접반사 장운익이 소대를 청하여 도독 마귀와 나눈 밀담 내용을 보고하다

마 도독(麻都督)의 접반사 장운익(張雲翼)이 소대(召對)를 청하니 상이 별전에 나아가 장운익을 인견하였는데, 좌부승지 김신원(金信元), 주서 송석경(宋錫慶), 검열 정홍익(鄭弘翼)·이필영(李必榮)이 입시하였다. 운익이 아뢰기를,

"은밀히 아뢸 말씀이 있어 소대(召對)를 청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좌우를 물리쳐 라는 말인가?"

하였다. 운익이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적의 형세가 긴급하여 내전을 피난시키는 일에 대하여 비변사가 신으로 하여금 도독에게 은밀히 품하라 하였는데 아직까지 적절한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오늘 마침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에 비망기에 있는 사연을 간절히 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도독은 즉시 좌우를 물리치고 신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서 신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말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내가 만약 성을 지키게 된다면 성 안은 싸움터가 될 것이니 시급히 조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지금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 하기에, 신이 말하기를 ‘대인의 생각을 듣고 싶다.’ 하였더니, 도독이 말하기를 ‘옛사람 중에는 처첩을 군대에 편입시킨 자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국왕의 궁권(宮眷)이 이 성 안에 있다고 해서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전일 국왕의 자녀를 강화로 피신시키라 한 것도 이런 뜻에서였다. 만약 나에게 묻는다면, 대피시키라고 권할 수는 없는 입장이나 사세로 보면 그럴 수밖에 없으니, 기회를 보아 비밀리에 몇 사람씩[密密稠稠] 사잇길을 따라 피해 나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비밀리에 몇 사람씩 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

하자, 신원이 아뢰기를,

"대체로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하였다. 운익이 아뢰기를,

"도독이 말하기를 ‘나는 그대나라의 사정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경리(經理)는 성품이 사납고 소 안찰(蕭按察)은 경망스러워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없는 자들이니, 그들이 혹시라도 이런 일을 안다면 성내면서 책망할 염려가 없지 않다. 그대들은 모름지기 십분 신중하고 은밀하게 하라. 외인(外人)들이 아무리 궁권(宮眷)이 피난갔다고 다들 말하여도 나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제독의 뜻은 자기에게 이 일을 품하지 말고 은밀히 행하라는 것이니, 만약 자기에게 품하게 되면 막을 수도 없고 허락할 수도 없어 난처해질 것이고 또한 상사(上司)가 알게 될까 두려워 그랬을 것이다."

하였다. 운익이 아뢰기를,

"그의 뜻은 몰래 내보내어 보고 듣는 이들을 번거롭게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어떻게 아무도 모르게 나갈 수 있겠는가. 사람의 이목은 속일 수가 없으니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였다. 운익이 아뢰기를,

"남원(南原)의 위태로운 사태에 대하여 도독이 말이나 얼굴빛에는 나타내지 않고 있으나, 문하(門下)의 말을 들어보면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기색이 뚜렷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어찌하여 남원에 군사를 나눠 보내 구제하지 않는가?"

하였다. 운익이 아뢰기를,

"도독이 근심하는 것은 남원이 아니라 가등청정(加藤淸正)이 곧바로 서울로 쳐들어올까 하는 것입니다. 만약 청정남원을 포위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오 총병(吳摠兵)공주(公州)로 가고 도독 또한 호남으로 진격하려 하는데, 막상 남원의 백성들은 모두 도망한 채 중국군만이 외로운 성을 지키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통분할 일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당초 양 총병(楊摠兵)이 왔을 때에는 호남과 영남을 꼭 지켜야 한다고 했는데 모화관(慕華館)에서 영위연(迎慰宴)을 베풀 때에는 갑자기 어느 곳을 지켜야 하는지 물었다. 그때 비변사가 남원을 지켜야 한다고 하자 한 마디로 즉시 결정을 내렸는데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사관(史官)도 함께 들었지만 양 총병이 말하기를 ‘우리는 범과 같고 적은 양과 같으니 저들이 어떻게 우리를 당하겠는가.’ 하였는데, 아무리 진정시킬 목적으로 한 말이라 해도 너무 경솔한 것 같았다. 지금 남원을 보존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하였다. 김신원이 아뢰기를,

"오랫동안 포위된 성 안에 있으면 땔감을 마련하기도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북병(北兵)의 장기(長技)는 오로지 기마전에 있는데 포위된 성 안에서는 말을 달릴 수가 없을 것이니 반드시 구원병이 있어야 성을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복남(李福男)이 내려간다 해도 이런 잔약한 군졸로 어떻게 해낼 수 있겠습니까. 양원(楊元)은 북장(北將)이니 호병[㺚兵]에 대해서는 알는지 몰라도 왜병(倭兵)은 상대해본 경험이 없을 터이니 매우 염려가 됩니다. 도독이 한 부대의 군사를 나눠 보내지 않으면 남원의 포위는 좀처럼 풀리지 않을 듯싶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도독도 북장인데 어떻게 왜적을 막을 수 있겠는가. 도독도 의문스럽다."

하자, 운익이 아뢰기를,

"신도 의심스럽습니다. 도독이 늘 말하기를 ‘호병 한 사람은 왜병 열 사람과 맞먹는다.’ 하였는데, 이는 호병과 왜병의 우열을 알지 못하고서 한 말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모두 ‘도독은 백전 백승의 장수다.’라고 하는데 신이 보기에 하찮은 무리와 싸울 적에는 그럴 수 있겠지만 왜적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는 그러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체로 병세(兵勢)가 평양 때만 못할 뿐 아니라 무기도 없다."

하니, 신원이 아뢰기를,

"대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개인이 갖고 있는 무기는 평양에서보다 우수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도독은 어떠한 인물인가?"

하니, 운익이 아뢰기를,

"그의 속 마음을 알 수 없으나 대체로 침착하고 전략이 있으며 좋아하고 싫어하는 기색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성패 이둔(成敗利鈍)을 진실로 예측할 수는 없으나 쉽게 얻을 수 있는 인물은 아닙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당초에 우리가 축성하는 일은 불가하다고 누차 말하였으나 10만 군사가 아니면 지키기 어렵다는 것은 감히 스스로 말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반드시 쌓으려고 하니 축성이 불가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그만둘 일이지, 알면서도 시행하려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니, 운익이 아뢰기를,

"신이 보기에는 전적으로 성을 지키는 데에 뜻이 있지 않은 듯합니다. 상사(上司)의 분부를 거역할 수 없어서 우선 축조하려는 것 같은데 임시(臨時)하여 지킬 수 있으면 지키고 그렇지 못하면 버림으로써 책임은 다하였다는 핑계를 대기 위한 계책인 듯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나도 이미 그가 책임만 때우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였다. 운익이 아뢰기를,

"신의 졸렬한 생각으로는, 만약 바다에 떠 있는 적이 불시에 서해를 돌아서 나온다면 앞뒤로 적을 상대하게 되어 더욱 손쓸 곳이 없어질까 염려됩니다. 안흥량(安興梁)에 배를 모아 적을 방어하는 계책이 오늘날의 급선무라고 생각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런 생각은 한산(閑山)이 패망하였을 때에 내가 이미 말했다. 지금 청정(淸正)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 점이 매우 우려된다."

하였다. 운익이 아뢰기를,

"화는 반드시 소홀한 데에서 발생하는 것이니 매사를 충분히 고려하여 미리 조처해야 합니다."

하고, 신원은 아뢰기를,

"남은 배를 모아서 안흥량에 일진(一陣)을 설치하고 중국에 수군을 요청하여 강화에 주둔시킴으로써 성세(聲勢)를 돕게 하면, 적이 쉽게 침략하지 못할 것이니, 이 점을 비변사에서 반드시 조처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말이 옳다."

하였다. 운익이 아뢰기를,

"서울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나가 장차 도성이 텅 비게 되었으니 이 점이 매우 염려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상인(常人)도 피난하고 있는가?"

하자, 운익이 아뢰기를,

"중국인이 머무르고 있던 집은 모두 도망쳤으므로 앞으로 의지할 데가 없게 되었습니다. 모두 금단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남정들은 다시 돌아오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하고, 신원은 아뢰기를,

"서민들만 도망간 것이 아니라 조사(朝士)들도 도망갔으니, 이 일을 법부(法府)에 말하여 각별히 치죄해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의 존망과 천하의 안위(安危)는 오로지 남원에 달렸으니, 남원에서 차질이 생기면 와해되고 말 것이다. 도독은 어떻게 계책을 세우고 있는가?"

하니, 운익이 아뢰기를,

"도독은 위로 군문(軍門)과 경리(經理)가 있으므로 임의로 할 수 없습니다."

하고, 신원은 아뢰기를,

"중국은 군기가 매우 엄중하므로 장사(將士)들이 후퇴하거나 도피하지 못하는데, 우리 나라는 한산(閑山)에서 전패하였을 때만 해도 군율을 위반한 변장(邊將)과 수령들을 군법에 의해 조처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그대로 본직을 맡게 하였습니다. 백의 종군을 시키는 것도 형벌을 감해 주는 것인데 더구나 그대로 본직에 머물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통렬하게 치죄하여 군정을 엄숙히 해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8책 91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280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군사(軍事) / 외교-왜(倭) / 외교-명(明)

麻都督接伴使張雲翼請對, 上御別殿, 引見張雲翼。 左副承旨金信元、注書宋錫慶、檢閱鄭弘翼ㆍ李必榮入侍。 雲翼曰: "有密啓事, 故請對矣。" 上曰: "欲辟左右乎?" 雲翼對曰: "否。 賊勢緊急, 內殿移避事, 備邊司令臣, 微稟于都督, 而未得其便, 今日適乘可言之機, 卽以備忘記辭緣, 懇切言之, 則都督卽辟左右, 引臣入房, 言於臣曰: ‘爾雖不言, 俺已料得矣。 俺若守城, 則城中當爲戰場, 此事不可不速處。 然則今欲何以爲之?’ 臣曰: ‘欲聞大人處分。’ 都督曰: ‘古人有妻妾編於行伍者, 而此則不然。 國王宮眷,在此城中, 小無所益。 前日俺欲使國王子女, 往避江華者, 亦此意。 若問於俺, 則雖不可勸之使避, 以勢言之, 則不得不爾。 觀其機會, 密密稠稠, 從叉路出避可也。" 上曰: "密密稠稠云者, 何謂也?" 信元曰: "蓋使人不知云之意也。" 雲翼曰: "都督說稱俺備諳爾國事情, 故有此云云。 經理性歹, 蕭按察狂妄, 不可與謀事者, 幸若知之, 不無嗔責之患。 爾須十分愼密爲之。 雖外人皆曰出避, 俺則不信也。" 上曰: "提督之意, 蓋欲不使之稟也, 旣稟之後, 則止之不可, 許之亦不可, 且恐上司之知也。" 雲翼曰: "其意則欲令潛出, 使之勿煩見聞也。" 上曰: "何能潛爲? 人之耳目, 不可掩也, 事勢極難耳。" 雲翼曰: "南原阽危, 都督則雖不形於言色, 而聞門下之言, 憂懼之色, 可掬。" 上曰: "然則何不分往救耶?" 雲翼曰: "都督之憂, 不在南原, 而惟恐淸正直擣京城。 若聞淸正往圍南原, 則吳揔兵當送公州, 都督亦欲前進湖南矣, 南原人民盡爲逃散, 天將獨守孤城云, 此甚痛憤矣。" 上曰: "當初楊揔兵之來, 以爲當守湖、嶺, 慕華館迎慰時, 猝然問曰: ‘當守何地?’ 備邊司以南原爲可, 一言卽決, 其意至今未可曉也。 史官亦聞之耳。 之言曰: ‘俺則如虎, 賊則猶羊, 彼烏敢當我哉?’ 此雖鎭定之言, 似爲疎脫。 今若得全南原, 何幸!" 金信元曰: "久在圍城, 樵採極難。 北兵長技, 惟在於馬, 而圍城之中, 旣無用武之地, 必有援兵, 可以得全。 李福男今雖下去, 驅此殘卒, 何能有爲? 楊元, 北將也。 只知禦, 未曾嘗, 深可慮也。 都督若不分送一枝, 南原之圍, 恐未易解也。" 上曰: "都督, 亦是北將, 豈知禦? 都督, 亦可疑也。" 雲翼曰: "臣亦疑之。 每曰: ‘一敵十。’ 此不知彼此之言也。 唐人皆言: ‘都督百戰百勝之將’ 云, 而以臣見之, 沈蟄則有之矣, 嘗則未也。" 上曰: "大槪兵勢, 不及於平壤, 又無器械矣。" 信元曰: "大砲則不來, 而身上器具, 勝於曩時。" 上曰: "都督, 何如人也?" 雲翼曰: "其中雖未可知, 大槪沈厚有術, 喜怒不形於色。 成敗利鈍, 固未可逆覩, 不多得之人也。" 上曰: "當初我國, 以築城一事, 屢言其不可, 而不敢自言都城非十萬難守事。 必欲築之, 知其不可, 則斯可已矣, 猶且築之, 是何意耶?" 雲翼曰: "以臣見之, 似不在於專意守城。 上司分付, 不得搪塞, 今姑築之, 臨時可守則守, 不可則棄之, 欲爲塞責之計耳。" 上曰: "予已料得有若塞責者然矣。" 雲翼曰: "小臣有迷劣之憂, 浮海之賊, 若不意繞出西海, 則腹背受敵, 尤無措手之地。 如安興梁收聚船隻, 以爲防守之計, 爲今日最急矣。" 上曰: "此意, 予曾於閑山見敗之日, 已言之矣。 聞淸正至今不動云, 此甚可憂。" 雲翼曰: "禍必生於所忽, 所當熟思而預處之。" 信元曰: "收集餘船, 設一陣於安興梁, 又請天朝水兵, 駐於江華, 以爲聲援, 賊未得容易衝突。 備邊司必爲處置矣。" 上曰: "此言是矣。" 雲翼曰: "京城之人, 奔波出去, 一城將空, 此甚可悶。" 上曰: "常人, 亦出避乎?" 雲翼曰: "唐人所接之家, 盡爲逃出, 將無依止之處。 雖不得一切禁斷, 男丁則使之還集, 可矣。" 信元曰: "非但下輩, 朝士亦爲出去, 此事言于法府, 可別懲治。" 上曰: "我國存亡、天下安危, 係於南原, 南原蹉跌, 則瓦解矣。 都督何以作計?" 雲翼曰: "都督上有軍門、經理, 不可任意爲之。" 信元曰: "天朝則軍律甚嚴, 故將士不敢退遁。 閑山戰敗, 邊將、守令, 非徒不置之軍法, 又使之仍察其任。 雖令白衣從軍, 亦且末減, 況此仍任乎? 所當痛治, 以肅軍政也。"


  • 【태백산사고본】 58책 91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280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군사(軍事) / 외교-왜(倭)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