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선조실록 90권, 선조 30년 7월 29일 무오 1번째기사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대신·비변사 당상·삼사의 관원들과 적의 진격에 대한 방책을 논의하다

상이 별전에 나아가 대신 및 비변사 당상·삼사(三司)인 영돈녕부사 이산해(李山海), 영의정 유성룡(柳成龍), 행 판중추부사 윤두수(尹斗壽), 좌의정 김응남(金應南)·행 지중추부사 정탁(鄭琢), 해평 부원군(海平府院君) 윤근수(尹根壽), 행 형조 판서 김명원(金命元), 공조 판서 이헌국(李憲國), 이조 판서 홍진(洪進), 예조 판서 김찬(金瓚), 병조 판서 이항복(李恒福), 행 대호군 신잡(申磼), 사헌부 대사헌 이기(李墍), 행 훈련원 도정 최원(崔遠), 이조 참판 강신(姜紳), 병조 참판 노직(盧稷), 호조 참판 심우승(沈友勝), 행 상호군 조경(趙璥), 행 승정원 도승지 이호민(李好閔), 행 사간원 대사간 이희득(李希得), 홍문관 부제학 신식(申湜), 저작 윤의립(尹義立)을 인견하였는데, 주서 박승종(朴承宗), 가주서 허적(許𥛚), 검열 임수정(任守正)·이필영(李必榮) 등이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적세는 반드시 수륙으로 동시에 진격할 것이니 이를 어쩌면 좋은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수륙으로 동시에 전라도로 향하였다고 합니다."

하고, 항복은 아뢰기를,

"신이 도독을 찾아가서 말하기를, ‘지금 왜적이 수륙으로 동시에 진격하여 그 사세가 매우 위급하니 양(楊)·오(吳) 양장으로 하여금 영남으로 옮겨 주둔하고 진 유격(陳遊擊)전주로 가서 주둔하기를 청한다.’ 하니, 도독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즉시 이문(移文)하여 속히 전주로 가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듣기로는 경상도에 식량이 부족하다 하니 만약 식량이 고갈되면 진퇴에 있어 낭패를 초래하게 된다. 왜장 가등청정(加藤淸正)장희춘(蔣希春)에게 보낸 글을 보면, 비록 필부 필부(匹夫匹婦)에게라도 감히 속일 수 없다고 하였으니, 이는 우리 나라와 당신네나라를 지적하여 말한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왜적과 우리와 말이 통하지 않게 되었으니 그 글에 답하기를 「대병이 모처에 주둔하고 있는데, 만약 너희들이 군사를 해산하여 돌아간다면 우리도 철수하여 옛날에 약속했던 호의를 다시 이행하겠다. 」 하여 편지가 왕복하는 동안에 8월이 지나면 군마(軍馬)를 대거 집합시킬 수 있을 것이니 근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것은 왜군을 늦추려는 말이니 왜적이 어찌 그 말을 믿겠는가."

하자, 항복이 아뢰기를,

"대체로 우리 군사가 적기 때문에 염려해서일 뿐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아직은 중국 장수가 하는 대로 따라야 할 것이다."

하고, 항복이 아뢰기를,

"심유경(沈惟敬)이 알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들으니 궁성(宮城)을 개토(開土)217) 한다고 하는데 언제 하기로 하였는가?"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이미 하고 있습니다."

하고, 상이 이르기를,

"개토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술사(術士)가 말하기를, ‘반드시 세 곳을 파헤쳐야 길하다.’ 하므로 이미 대명전(大明殿) 앞을 파헤쳤습니다. 이는 대체로 극히 오활하나 그 설을 끝내 무시할 수 없고 또한 수축하지 않으면 저들은 반드시 태만하다는 이유로 노할 것이니, 아직은 그들의 말에 따라 수축해야 하는데 역사할 군사가 적어 실로 근심스럽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진장(陳將)이 이미 전주로 향하였으니 경성에 있는 군사를 공주(公州)로 대신 보내는 일을 다시 요청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여러 번 요청하였습니다."

하고, 응남이 아뢰기를,

"순천(順天) 근처에 파수할 군사가 없으니 진장을 순천으로 보낼 것을 요청함이 옳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적세의 강약을 관찰하여 행동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만약 적의 세력이 약하면 진장을 순천으로 보내기를 요청하는 편이 옳을 것이나 만약 강성하면 진장의 군사는 3천 명에 지나지 않으니 어찌 감당하겠는가?"

하자, 호민은 아뢰기를,

"지금 우리 나라에 와 있는 중국 군졸은 모두가 북병(北兵)이니 이러한 장마철에는 쓸 수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헌국이 아뢰기를,

"군율이 해이해져서 심지어는 군관들마저 모두 도피할 것을 꾀하고 있으니 이러고서는 스스로 떨치고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지금 남방이 갈수록 위급해지고 있는데 종일토록 한담만 하고 있으면 적을 방어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중국에 주문(奏聞)할 것인지, 도독에게 간청할 것인지, 우리 나라가 스스로 방어할 것인지에 대한 계책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자, 성룡이 아뢰기를,

"양(楊)·오(吳) 양장에게 요청하여 점차로 진군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중국 대장이 이곳에 있으니 대신이 찾아가서 논의하고 모든 것을 도독의 분부대로 따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그들의 뜻을 살펴보니, 늘 안팎으로 적병의 침입을 받을까 우려하여 적이 진군하는 방향을 알고나서야 조처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수로가 더 위급하니 남아 있는 배를 불러 모아 안흥량(安興梁) 등지에서 파수하고 견내량(見乃梁)에서 지켜야 하며 그밖에 달리 조치할 곳은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비변사에서도 견내량을 지키고자 하는가? 이곳은 지킬 수 없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배는 그런대로 수집할 수 있으나 격군(格軍)과 무기는 모두 탕산(蕩散)되어 남은 것이 없으니 이 점이 매우 우려됩니다."

하고, 헌국은 아뢰기를,

"왜적이 침입한 지 6년인데도 지금에서야 비로소 급급히 서두르고 있으니 진실로 가소로운 일입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비변사를 속히 해체한 뒤에야 무슨 일이든지 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서 잡담만 늘어놓고 결국엔 이루어지는 것도 없으며, 한 사람이 나름대로 의견을 제시하면 상호간에 시비만 논쟁하여 결정하지 못하고 시일만 허송하니, 이는 마치 길옆에 집을 짓는데 3년이 지나도 완성하지 못한다는 속담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해서야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하니, 상은 미소만 짓고 답은 하지 않았다. 성룡이 아뢰기를,

"신은 안으로 수상을 맡고 있고 밖으로는 체찰하는 책임을 담당하고 있으니, 신이 비록 용렬하기는 하나 어떻게 국가사를 잠시라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제반사를 요리하려고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나 전일에 적을 토벌하지 못하였다고 비난도 받았었고 신도 역시 역량이 부족함을 자인하고 있으니, 지금 만약에 상직(相職)을 교체해주셔서 오로지 외임(外任)만을 전담하게 된다면 죽음으로써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지금 또 크게 근심스러운 점은 중국 군사가 몰려오면 군량이 부족해지리라는 것입니다. 성영(成泳)이 관량사(管糧使)로 내려가긴 했으나 적군이 발동하면 손쓸 곳이 없을 것입니다."

하고, 두수가 아뢰기를,

"강화부(江華府)는 백성들이 많고 전략적인 지역이니 미리 조치하여 방수(防守)할 계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용상을 어루만지며 한탄하다가 잠시 후에 이르기를,

"중국 장수의 분부를 시급히 거행하여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하라. 경리가 늘 말하기를 ‘조선 사람과는 함께 일을 할 수 없다.’고 하니 이는 대체로 우리 나라 사람들이 느리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 것이다. 그러하니 각별히 독려하여 이전의 습관을 다시 따르지 않도록 하라."

하였다. 희득이 아뢰기를,

"신이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왕의 말씀은 한 번 나오면 사방 사람들이 모두 귀를 기울이고 듣습니다. 지난 번에 중국 장수를 따라 일선에 나서기를 의망하신다는 하교는 인심을 충분히 감격시킬 수 있었습니다. 미리 거둥하실 계책을 세워서 어김없이 실행한다는 뜻을 보여 주소서."

하고, 성룡은 아뢰기를,

"이와 같이 위급한 시기를 맞아서 득실과 존망은 인재를 쓰고 못 쓰고에 달려 있는데 그중에서도 장상(將相)은 더욱 중요합니다. 소신 같은 자는 오래도록 재상 자리에 있으며 힘을 다하려 해도 지혜와 생각이 모자랄 뿐 아니라 소견도 넓지 못하고 기력이 쇠퇴하고 정신이 혼미하여 여러 가지 행사를 논의할 때에 관찰력이 전혀 없으므로 결국엔 국사를 그르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하니 재상 직위는 교체하시고 오로지 체찰사 직위만 맡겨 전담하도록 하시면 남쪽으로 내려가서 군량을 주선하여 중국 군병을 접대하면서 또한 우리 나라 군병도 초발(抄發)하는 등 대응할 여러 가지 일들을 완벽하게 못하더라도 반드시 죽음로써나라에 보답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재상의 직위는 경솔히 교체할 수 없거니와 남쪽으로 내려가서 여러 가지 임무를 보살피는 것은 임의대로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8책 90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270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정론-정론(政論) / 군사(軍事)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註 217]
    개토(開土) : 땅을 파기 시작함.

○戊午/上御別殿, 引見大臣及備邊司堂上、三司。 領敦寧府事李山海、領議政柳成龍、行判中樞府事尹斗壽、左議政金應南、行知中樞府事鄭琢海平府院君 尹根壽、行刑曹判書金命元、工曹判書李憲國、吏曹判書洪進、禮曹判書金瓚、兵曹判書李恒福、行大護軍申磼、司憲府大司憲李墍、行訓鍊院都正崔遠、吏曹參判姜紳、兵曹參判盧稷、戶曹參判沈友勝、行上護軍趙璥、行承政院都承旨李好閔、行司諫院大司諫李希得、弘文館副提學申湜、著作尹義立、注書朴承宗、假注書許𥛚、檢閱任守正李必榮入侍。 上曰: "賊勢, 必水陸竝進, 奈之何?" 成龍曰: "水陸竝向全羅云矣。" 恒福曰: "臣往見都督謂曰: ‘今賊水陸竝進, 其勢甚急。 請令兩將, 移駐嶺南, 陳遊擊進屯全州云’, 則都督曰: ‘然卽當移文, 速往全州, 聞慶尙道糧餉不敷, 若至匱竭, 進退狼狽。 見淸正蔣希春書, 雖匹夫匹婦, 不敢欺云, 此指我朝與爾國也。 今賊與我則不可言也, 當答其書曰: 「大兵駐於某處, 若解兵, 則當撤還, 修其舊好云。」 往復之間, 八月已盡, 軍馬大集, 則無復可憂’ 云。" 上曰: "彼乃緩兵之辭也, 賊豈信乎?" 恒福曰: "大槪以兵孤爲憂耳。" 上曰: "唐將所爲, 姑從之可也。" 恒福曰: "可, 勿使沈惟敬知之。" 上曰: "聞開土宮城云, 在何日耶?" 恒福曰: "已爲矣。" 上曰: "開土, 何意也?" 恒福曰: "有術士以爲: ‘當破三處, 乃吉云’, 故已破大明殿前。 大槪極爲迂闊, 然不可終棄之地。 且若不修, 彼必以怠慢爲怒, 姑可修築, 而軍士甚少, 是實可悶。" 上曰: "將已向全州, 以在京之兵, 替送公州事, 未可更請耶?" 恒福曰: "每請之耳。" 應南曰: "順天近處, 無把守之兵, 可請遣將於順天。" 上曰: "觀賊强弱, 爲之可矣。 賊若勢小, 則可請送將於順天, 若鴟張, 則兵不過三千, 何可當也? 山海曰: "天兵未可盡送乎? 大將下去, 則必鎭定矣。" 好閔曰: "今之來此者, 皆是北兵, 當此雨水, 不可用也。" 憲國曰: "軍律解弛, 至於軍官, 儘皆謀避。 如此而萬無自振之理。" 上曰: "今南方危急, 終日閑談, 何補於防賊? 或奏聞天朝, 或請於都督, 或我國自爲之計可矣。" 成龍曰: "當請兩將, 漸次進兵。" 上曰: "天朝大將在此, 大臣往議, 一從都督分付可矣。" 成龍曰: "觀其意, 則每以腹背受敵爲憂, 欲知賊定向, 然後處之。 當今水路尤急, 當抄餘船, 瞭望於安興梁等處, 把截於見乃梁, 此外無可爲之地矣。" 上曰: "備邊司欲守見乃梁耶? 不可守也。" 成龍曰: "船隻猶或可集, 格軍、器械, 蕩散無餘, 極憫。" 憲國曰: "賊來六載, 今始曰急急爲之, 誠可笑也。 臣意以爲速罷備邊司, 然後可以做事。 群聚雜談, 竟無所成, 一人出言, 互相是非, 猶豫未決, 動經時日, 比如作室道傍, 三年不成。 如此而何事可爲?" 上微笑不答。 成龍曰: "臣內爲首相, 外爲體察, 臣雖庸惡, 豈忘國事? 料理諸事, 夜不能寐, 而前人以不討賊爲非, 臣實狼狽。 若遞相職, 責以外任, 則當以死自效。 方今又有大可憂者, 天兵沓至, 糧餉不給。 成泳雖以管糧使下去, 賊若發動, 無着手處矣。" 斗壽曰: "江華爲府, 人民富庶。 形勢之地, 預爲措置, 以爲防守之計。" 上撫床歎息良久曰: "將分付, 須趁急擧行, 毋失機會。 經理每言, 朝鮮之事, 不可爲云者, 以其弛緩之故。 更加刻勵, 毋踵前習。" 希得曰: "臣當進一言。 王言一出, 四方感聽。 頃者有願從天將之敎, 此足以感激人心。 請預爲擧動之計, 以示丁寧之意。" 成龍曰: "當此危急, 得失存亡, 在於用人, 而將相爲尤重。 如小臣者, 久在相位, 雖欲勠力, 智慮淺短, 所見狹少, 加以氣力澌敗, 精神耗喪, 凡於議事之際, 茫昧不察, 終誤國事。 請鐫改相職, 責以體察, 俾專其任, 則當下去南方, 措置糧餉, 接濟天兵, 抄發軍兵, 策應諸事, 雖不得稱其職, 當以死報朝廷。" 上曰: "不可輕易遞改。 下去策應, 當任爲之。"


  • 【태백산사고본】 58책 90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270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정론-정론(政論) / 군사(軍事) / 외교-왜(倭)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