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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90권, 선조 30년 7월 26일 을묘 5번째기사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도원수 권율이 한산도의 군사 상황을 보고하고 이순신의 파견을 건의하다

7월 21일에 성첩(成貼)한 도원수 권율의 서장에 아뢰기를,

"신의 군관인 최영길(崔永吉)한산도에서 지금에야 비로소 나왔는데 그가 말하기를 ‘원균(元均)이 사지를 벗어나 진주로 향하면서 말하기를, 「사량(蛇梁)에 도착한 대선(大船) 18척과 전라선(全羅船) 20척은 본도에 산재해 있고, 한산에 머물러 있던 군민(軍民)·남녀·군기(軍器)와 여러 곳에서 모여든 잡선(雜船) 등을 남김없이 창선도(昌善島)에 집합시켜 놓았으며, 군량 1만여 석은 일시에 운반하지 못하여 덜어내어 불태웠고, 격군(格軍)은 도망하다 패배한 배는 모두 육지 가까운 곳에 정박시켰으므로 사망자는 많지 않았다. 」고 하였다.’ 하였습니다. 최영길을 곧이어 올려보내겠습니다. 이순신(李舜臣)에게 흩어져 도망한 배를 수습하도록 사량으로 들여보내소서."

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啓下)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8책 90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269면
  • 【분류】
    군사(軍事) / 외교-왜(倭)

○七月二十一日成貼都元帥權慄書狀:

臣軍官崔永吉, 自閑山島, 今始出來云: "元均免死, 向晋州, 傳說: ‘蛇梁時到大船十八隻、全羅船二十餘隻, 本道散在, 閑山留住軍民、男女、軍器、輳集雜船, 無遺收到于昌善島, 軍糧萬餘石, 一時不得載運, 除出焚火, 格軍則奔敗之船, 皆艤於連陸, 故死亡者不多’ 云。" 崔永吉隨後上送。 李舜臣則以收拾散亡船, 入送蛇梁事。

啓下備邊司。


  • 【태백산사고본】 58책 90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269면
  • 【분류】
    군사(軍事)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