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88권, 선조 30년 5월 29일 기미 1/3 기사 /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주역》을 진강하고 김응남이 서계초를 올리고 군량·축성 문제 등을 의논하다
국역
상이 아침에 별전으로 나아갔다. 영사(領事) 김응남(金應南), 지사(知事) 윤근수(尹根壽), 【책 보기를 몹시 좋아하여 늙어도 더욱 도타왔으니 뜻이 있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사람됨이 경솔하여 재상의 풍도가 없었다. 】 특진관(特進官) 신점(申點)·강신(姜紳), 참찬관(參贊官) 이호민(李好閔), 집의(執義) 한준겸(韓浚謙), 사간(司諫) 윤경립(尹敬立), 시독관(侍讀官) 이형욱(李馨郁), 검토관(檢討官) 정혹(鄭㷤), 기사관(記事官) 박승업(朴承業)·이지완(李志完)·정홍익(鄭弘翼)이 입시하였다. 상이 전날 강한 것을 다 읽자, 형욱이 《주역》의 ‘상(象)에 이르기를, 뇌전이 서합이니[象曰雷電噬嗑]’에서부터 ‘도리어 독을 입는다. [反毒之]’라는 부분까지 진강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초효(初爻)에는 ‘발을 멸한다. [滅趾]’ 하고, 육이효(六二爻)에는 ‘코를 멸한다. [滅鼻]’라 하고, 육삼효(六三爻)에는 ‘석육(腊肉)’이라 한 것은 무엇인가?"
하자, 응남이 아뢰기를,
"발(趾)이 아래에 있기 때문에 초효에 비유한 것입니다."
하고, 정혹이 아뢰기를,
"‘코를 멸한다.’는 것은 깊이 들어간 뜻을 취한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발을 멸한다.’는 것은 발꿈치를 벤 것을 이르는가?"
하자, 정혹이 아뢰기를,
"발을 벤 것이 아니라, 발이 묻히는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지(趾)는 발꿈치인가, 발가락인가?"
하자, 형욱이 아뢰기를,
"《운회(韻會)》에는 발(足)이라 하였고, 세속에서는 발뒤꿈치[跟]라 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족쇄를 채워 발[趾]이 묻힌 것인가?"
하자, 정혹이 아뢰기를,
"그렇습니다."
하고, 호민이 아뢰기를,
"견고하게 채운 것을 뜻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육이(六二)는 유약한데, 형벌을 내리는 사람이 되어 양강(陽剛)한 사람을 다스리는 격이다."
하자, 호민이 아뢰기를,
"유약함으로 강함을 다스리는 것은 어려울 듯하나, 중정(中正)하기 때문에 능히 다스리는 것입니다."
하고, 정혹이 아뢰기를,
"유약함으로 강함을 다스리기 때문에 코를 멸함[沒鼻]에 이른 뒤에야 되는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른바 ‘코가 멸함에 이른다.’는 것은 유약함으로 강함을 다스리기 때문에 비록 다스린다 하여도 끝내는 코를 잃는 액운이 있단 말인가, 아니면 강한 자를 다스리려면 반드시 깊이 다스리라는 뜻인가?"
하자, 정혹이 아뢰기를,
"뒤에 말씀하신 것이 옳습니다. 앞에 하신 말씀은 본의(本義)의 뜻이고, 뒤에 하신 말씀은 정전(程傳)의 뜻입니다."
하고, 호민이 아뢰기를,
"‘독을 만난다. [遇毒]’란 말이 있으니, 이는 모두 형벌을 내리는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괘(離卦)를 혹은 이(離)로 쓰기도 하고 혹은 단지 이(离)로 쓰기도 하는데 같은 글자인가?"
하자, 호민이 아뢰기를,
"이(离)는 불[火]의 형태를 취하였고, 이(離)는 의리(義理)까지 함께 취하였는데, 그 실상은 같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불이 이(离)에 속하는데, 문자가 생겨난 뒤에 이(离)로 쓴 것이다. 어찌 ‘걸렸다’는 뜻이 있겠는가."
하자, 호민이 아뢰기를,
"이괘(離卦)에 ‘해와 달이 하늘에 걸렸다.’란 말이 있는데, 이 뜻을 쓴 것입니다."
하고, 응남이 아뢰기를,
"불이란 겉은 밝고 안은 어두운데, 꿩[雉]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离) 곁에 추(隹)를 덧붙인 것입니다."
하였다. 준겸이 나아가 아뢰기를,
"전에 아뢴 허잠의 가자를 개정하도록 하소서."
하자, 상이 이르기를,
"바꿀 수 없다."
하였다. 경립이 나아가 아뢰기를,
"현재의 급선무는 사신 행차를 속히 통행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사신의 행차는 역로(驛路)에 달려 있습니다. 신이 전날 서로(西路)182) 를 오가며 보니, 대로(大路)의 7개 역참(驛站)은 비록 잔파(殘破)되었다고 하지만 역말을 세울 수가 있었으며, 금교 찰방(金郊察訪)은 하인들을 거느리고 역(驛)에서 30리나 떨어진 밖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명(使命)의 행차에는 반드시 쇄마(刷馬)를 내라고 하는 까닭에 지체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만일 중국 군사들이 사용할 파발마는 민간에서 내게 하고, 사신의 행차에는 모두 역마[馹馬]를 타게 한다면 매우 편할 것입니다. 감사에게 하유하여 잘 조치하도록 하소서."
하자, 상이 이르기를,
"해당 관서로 하여금 살펴서 하도록 하라."
하였다. 준겸이 또 아뢰기를,
"파발마를 세우는 부역은 여러 도가 같습니다. 개성부(開城府)는 잔파된 곳으로서 6필을 세우고 있는데, 강원도만은 이 부역을 면제받고 있으므로 백성들이 불공평함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강원도와 송경(松京)183) 은 멀지 않으니, 강원도에도 3필을 세우도록 하여 부역을 공평하게 하소서."
하자, 상이 이르기를,
"강원도에는 전혀 사는 백성이 없다. 그러나 해조로 하여금 의논해서 하도록 하라."
하였다. 경립이 또 아뢰기를,
"박진(朴晉)의 사망은 중국 장수에게 구타를 당해서입니다. 죽은 뒤에 보니, 가슴뼈가 부러져 있었다 합니다. 국가의 일로 죽은 것이니, 다른 사람에 비하여 더욱 참혹합니다. 지난번에 홍계남(洪季男)의 노모(老母)에게 음식물을 하사하도록 명하자, 중외(中外)가 모두 감격했었습니다. 박진이 홍계남과 어찌 다르겠습니까. 그에게도 노모가 있으니 구휼하는 은전(恩典)이 내려져야 할 것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그에게 노모가 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지금 적성(積城)의 무덤 아래에 있습니다."
하였다. 【임진 왜란에 여러 고을들이 바람에 쓰러지듯 도망쳐 숨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박진은 밀양 부사(密陽府使)로 혼자서 외로운 군대를 이끌고 대적을 막으려 하였으니, 그의 충성과 의기는 여러 장수들에 비하여 탁월한 것이었다. 】 상이 이르기를,
"늠료(廩料)를 주려고 하는가?"
하자, 대답하기를,
"홍계남의 예와 같이 늠료를 주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해사로 하여금 의논해서 하도록 하라."
하였다. 신점이 아뢰기를,
"박진을 구타한 중국 장수는 누승선(婁承先)입니다."
하자, 준겸이 아뢰기를,
"박진의 뼈가 부러진 곳을 신도 보았습니다. 그는 병으로 사직하고자 하였으나 남쪽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을 피하려 한다는 혐의가 있으므로 감히 신병을 말하지 못하다가 죽음에 이른 것입니다."
하였다. 호민이 아뢰기를,
"형개(邢玠)는 남경(南京)으로부터 와서 병부 상서(兵部尙書)가 된 까닭에 적들의 형세를 몰라 배신을 차송하도록 하였습니다. 지금 총독(總督)으로서 밀운(密雲)에 있는데, 물음에 대답할 사신을 병부에 보내야 하겠습니까, 밀운으로 보내야 하겠습니까?"
하자, 상이 이르기를,
"이러한 일들은 비변사에서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하라."
하였다. 호민이 아뢰기를,
"어제 아뢴 황치경(黃致敬)의 서장에 유정(劉綎)도 온다 하였으니, 그는 반드시 사천(四川) 출신의 군사를 이끌고 올 것입니다. 형개는 왜적들이 노여움을 간직한 것이 이미 깊으니 십만 대군이 아니고는 대적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많은 군사가 만일 도착하면 형편상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중신을 보내어 대군을 압록강 연변에 주둔해 있으면서 중국의 군량이 수송되어 오기를 기다린 뒤에 나오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그 말이 옳다. 중원에서 천하의 병력을 동원하여 나오니, 우리 나라의 급선무는 군량을 준비시켜 접제(接濟)할 길을 만드는 데 있다. 만일 미처 준비를 못하고 있다가 대군이 갑자기 도착한다면 그 어려움은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관고(官庫)는 곳곳마다 탕진되었으니, 민간에 있는 곡식들을 거두어 모아 접제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당장 시급한 일이다."
하니, 응남이 나아가 아뢰기를,
"민간에 저축된 곡식도 온갖 방법으로 수탈하여 이미 바닥이 났습니다. 그러나 부득이한 일이니, 싸움터에 나갈 수 없는 백성으로 하여금 각기 쌀 한 말씩을 내게 하되 가난한 사람은 다섯 되를 내게 하소서."
하였다. 호민이 아뢰기를,
"형 군문이 행장에게 보낸 편지를 보니, 그 뜻은 억양(抑揚)하여 대병력으로 위압해서 적으로 하여금 스스로 물러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저들은 비록 전쟁을 하지 않으려 할지라도 우리 나라로서는 부득이 전쟁을 벌여야 한다. 저 왜적들이 동황제(東皇帝)라고 자칭하고 있으니, 어찌 스스로 물러가겠는가."
하였다. 응남이 아뢰기를,
"십만 대군의 군량은 결코 댈 수 없습니다. 소신의 생각에는 우리 나라의 힘으로 적과 결전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고, 이어 소매 속에서 서계초(書啓草)를 꺼내어 올렸다. 그 내용에,
"천하 국가는 반드시 먼저 큰 계책을 정해 놓아야 합니다. 큰 계책이 정해지지 않으면 여러 의견이 멋대로 나오고, 여러 의견이 멋대로 나오면 사람들의 마음이 의심스러워지고, 사람들의 마음이 의심스러워지면 모든 일이 확립되지 못하여 멸망이 닥쳐오게 됩니다. 지금 많은 적군이 국경에 있어 국가의 형세가 위급하니, 상하가 걱정하여 밤낮으로 생각하는 것은 모두 적을 막는 한 가지 일입니다.
그런데 싸울 것인지 수비할 것인지 강화할 것인지를 아직도 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은 오늘날의 계책이 싸울 것인지 지킬 것인지 강화할 것인지를 모르겠습니다. 고금 천하에 적진을 대하고 있으면서 싸우지도 않고 수비하지도 않고 강화하지도 않고서 끝까지 그 나라를 보전한 것은 있지 않았습니다.
신이 지금의 의논들을 보니, 싸우자는 자, 수비하자는 자, 강화하자는 자들이 각기 자기 주장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우리 나라가 피폐해진 뒤여서 병력이 매우 약한데, 적들은 이미 험지를 차지하여 소굴이 매우 튼튼하니, 함께 싸우기 어렵다.’고 합니다. 혹자는 ‘적이 다시 왔으니,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와 적은 형편상 함께 존재할 수 없으니, 싸워도 망하고 싸우지 않아도 망한다.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공격하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이것은 싸우자는 의논이 각기 다른 것입니다.
혹자는 ‘적이 이미 오래 버틸 계책을 하고 있으니 우리도 오래 버틸 계책을 세워야 한다. 여러 도의 군읍에 성을 쌓고 목책을 세워 적이 오면 들어가 있고, 적이 물러나면 나와 농사를 지어 각기 맡은 지역을 지키면서 적을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하며, 혹자는 ‘변경은 울타리이고 내륙은 안방과 같다. 울타리가 튼튼하지 않고서 안방이 보존되는 일은 있지 않으니, 적경과 가까운 곳에 서너 개의 큰 진을 세우고 팔도의 정예병을 불러모아 적의 충돌을 막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수비하자는 의논이 각기 다른 것입니다. 강화하자는 한 가지 일에도 혹은 옳다 하고 혹은 그르다 하여 이설이 있습니다. 지금 이 세 가지 계책을 일찍 결정하지 않을 수 없는데 여러 의논이 이처럼 각기 다르기 때문에 머뭇거리며 지연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니, 못내 한심스럽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화의하기 위하여 뒤따라갔던 자들이 적의 괴수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되돌아왔으며, 청적(淸賊)184) 이 나와서는 협박하고 요구하는 것이 한이 없으니, 이런 때에 견마(犬馬)와 피폐(皮幣)를 가지고 적인(狄人)들과 우호(友好)하기를 바란들 되지 않을 것185) 입니다. 강화가 이미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면 지금의 계책으로는 수비와 싸움만이 있을 뿐입니다. 중국군이 때마침 도착하였으니, 이는 우리 나라의 존망이 달려 있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저 왜적들이 이것을 듣는다면 반드시 꺼리는 마음이 있을 것이고, 국내의 민심도 이미 다소 진정되어 싸우려는 마음이 자못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정예병을 거둬들여 진격해서 적을 도모하려는 계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천하의 일은 그르쳐지고 말 것입니다.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옛사람들의 말에 ‘험한 곳을 의지해 수비하면 수비가 견고해지기 쉽고, 견고한 수비를 의지해 싸움을 하면 싸움에 이기기 쉽다.’ 했습니다. 이것은 용병(用兵)하는 방법이 견고하게 수비할 수 있는 다음에야 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이 들으니, 울산(蔚山)과 양산(梁山) 등지에는 점령할 만한 많은 요새가 있다고 합니다. 여러 장수들에게 이러한 곳으로 나아가 진영과 성벽을 설치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밖으로는 중국군으로 후원을 삼고, 안으로는 우리의 군사로 스스로를 강하게 한 다음, 적병이 증원되기 전에 혹은 출병하여 도전하기도 하고 혹은 적들을 불러내어 공격하기도 하며 혹은 그들이 심어 놓은 곡식을 쓸어버리기도 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주사(舟師)를 번갈아 쉬면서 오가게 하여 적의 군량 수송로를 차단한다면 적이 비록 강성하더라도 그 형세가 저절로 꺾일 것입니다. 오늘의 계책으로는 아마 이보다 좋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중국군이 속속 나오고 있어 그 수가 만여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나라의 양식은 이 해를 넘길 만한 것이 없습니다. 군량이 떨어지면 군사가 돌아가는 것은 공명(孔明)도 면하지 못한 것입니다.186) 지금 만일 오랫동안 지구전을 벌여 적과 교전하지 않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군량이 떨어지면, 중국군은 앞에서 흩어지고 우리 군사는 뒤에서 무너질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닥쳐올 환란은 임진년과 같을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이것이 신이 밤낮으로 염려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바입니다.
요즈음 동렬(同列)들의 생각을 보니, 역시 신과 같았습니다. 지난번 소대(召對)할 때에 각기 아뢴 바가 있었으니, 전하께서 이미 통촉하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다만 소신은 말이 어눌하여 신의 소회를 엄숙한 자리에서 다 말씀드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번거로움을 피하지 않고 대략 아뢰니, 성명(聖明)께서는 살피소서."
하였다. 근수가 아뢰기를,
"병기는 흉기이고 전쟁은 위험한 방법이니, 어찌 한 차례 싸움을 벌여 사생(死生)을 결판한단 말입니까."
하자, 상이 이르기를,
"다른 말들은 우선 놔두고 오늘의 계책은 군량 조치가 가장 급선무이다. 유사(有司)들이 하는 일에는 미진한 점이 많다. 예를 들어 공명 고신첩(空名告身帖)으로 말하면 어떤 사람이 얼마쯤의 곡식을 모았는지 말하지 않고 전체 숫자만을 계문(啓聞)하고 있다. 작은 일도 이렇게 해서는 안되는데 이처럼 큰일을 어찌하여 이름을 적어 알리지 않는단 말인가. 비변사도 역시 잘못이다."
하였다. 정혹이 아뢰기를,
"지난번 지방에 나갔더니 농사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금년에는 백성들이 농사를 많이 짓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결복(結卜)과 요역(徭役)이 극심한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수령 중에 혹 공용(公用)을 빙자하여 세금을 거두어서 사사로이 사용하는 자들이 있으니, 특별히 엄금시켜야 할 것입니다."
하자, 호민이 아뢰기를,
"정혹의 말은 잘못입니다. 만일 이처럼 제멋대로 사용하는 자가 있다면, 곧바로 이름을 들어 아뢰었을 것입니다."
하니, 정혹이 아뢰기를,
"결복을 사용하는 수를 호조에는 보고하지 않더라도 감사에게 품하고 쓰게 한다면 범람한 짓들은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각도의 감사들은 가솔을 거느리고 산성(山城)으로 들어가 살도록 하라고 내가 전교했었다. 그런데 그 뒤에 들으니 단지 가솔을 거느려 가기만 하고 산성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하니, 본래의 뜻과 어긋나는 것이다. 원래 양계(兩界) 이외에는 가솔을 거느리고 가지 않는 것이 상례(常例)인데, 내가 특별히 산성으로 거느리고 들어가게 한 것은 난리를 당해 굳게 지키게 하려고 해서였다. 그런데 지금 그렇지 못하고 민폐만 끼치고 있으니, 이는 개정해야 할 것이다."
하자, 응남이 아뢰기를,
"상교가 지당하십니다. 수령들이 혹 그의 아내는 딴 곳으로 보내놓고, 단지 첩과 여종들을 데리고 산성으로 들어가 지공(支供)하게 해서 책임만 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임시 실내[假室內]’라는 풍자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수령이 가솔을 거느리고 가는 것은 떳떳한 법이나, 감사가 가족을 거느리고 가는 것은 불법이다. 당초 설립한 뜻과도 다르며 전에 없었던 폐단만 일으키는 것이니, 어찌 옳겠는가."
하였다. 신점이 아뢰기를,
"당초 경성을 순검(巡檢)할 때에 백성들은 식량이 없어 서로 잡아먹고 물력이 탕진되어 있었던 까닭에 수축하지 못했었습니다. 지금 경성을 살펴보니, 적들이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 몇 군데입니다. 적이 만일 높은 곳으로 올라가 포를 쏜다면 매우 곤란한 형세에 처할 것입니다. 이런 곳들에는 불가불 목책을 설치해야 할 것이며, 곡성(曲城)도 쌓아야 할 것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자세한 내용을 들었으면 한다."
하니, 신점이 아뢰기를,
"중국은 뾰족한 성벽에 현안(懸眼)을 만들어 내려다 보면서 밑에 있는 적들을 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반드시 곡성을 만든 뒤에야 성에 접근하는 적을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또 우리 나라 성제(城制)는 성가퀴에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변방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횃불을 태우는 구멍이라 하는데, 섭 유격(葉遊擊)187) 의 새로운 제도에는 이런 것들이 없습니다. 이것은 중원에는 물력이 넉넉하여 등불을 달아 환히 비추게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난번 항왜(降倭)의 말에 ‘이곳에는 성곽을 지킬 계책을 세우지 않는가? 만일 성 아래에 섶을 쌓아 불을 지르면 대낮처럼 밝게 비추어 적이 감히 접금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갑자기 준비하기 어려운데, 왜 미리 준비하지 않는가?’ 했습니다. 또 격대(隔臺)는 한 번 세운 뒤에는 수삼 년을 지탱할 수 있는데, 우리 나라는 인심이 매우 나빠 반드시 이것을 철거해 버릴 것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그 제도는 어떠한 것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성카퀴 위에 판자로 지붕을 지어 성 바깥으로 내밀게 하여서는 구멍을 뚫고 포를 쏘게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이것이 어찌 견고하겠는가. 큰 나무로 얽어맨다면 단단할 듯한데, 단 쉽게 썩을 것이다."
하고, 상이 또 이르기를,
"비변사가 의논해서 하도록 하라."
하니, 응남이 아뢰기를,
"성안의 백성들에게 한 달 동안 부역을 하게 하고, 경기의 군병과 사대부 집안의 종들도 함께 부역을 시켜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근수가 아뢰기를,
"전날 조강(朝講)에 상께서 ‘중국 장수가 만일 나오면 나도 나아갈 것이다.’란 전교가 계셨습니다. 만일 이 계획을 굳게 지키신다면 국가의 큰 다행일 것입니다."
하자, 상이 한동안 말없이 있었다. 사시(巳時) 말에 소대(召對)를 파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6책 88권 42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234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사상-유학(儒學) / 교통-육운(陸運) / 군사-병참(兵站) / 군사-통신(通信) / 사법-법제(法制)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재정-역(役) / 재정-국용(國用) /
- [註 182] 서로(西路) : 황해도와 평안도.
- [註 183] 송경(松京) : 개성.
- [註 184] 청적(淸賊) : 청정을 낮게 이르는 말.
- [註 185] 견마(犬馬)와 피폐(皮幣)를 가지고 적인(狄人)들과 우호(友好)하기를 바란들 되지 않을 것 : 견마는 개나 말 등의 애완동물이며 피폐(皮幣)는 짐승의 가죽이나 비단을 가리킴. 옛날 주 문왕(周文王)의 조고(祖考)인 고공단보(古公亶父)는 오랑캐인 훈육(獯鬻:흉노족)의 침공을 받고 견마와 피폐로 강화하려고 하였으나 침략이 계속되자, 수도를 기산(岐山)의 아래로 옮기고 말았다. 《맹자(孟子)》 양혜왕 하(梁惠王下). 즉 조선도 예서(禮書)나 폐백을 가지고 일본과 강화할 수 없음으로 말한 것이다.
- [註 186] 군량이 떨어지면 군사가 돌아가는 것은 공명(孔明)도 면하지 못한 것입니다. : 공명(孔明)은 삼국 시대 촉한(蜀漢)의 명재상인 제갈량(諸葛亮)의 자(字). 공명이 후주(後主)가 등극한 6년째 되던 겨울에 위(魏)에 출격하여 진창(陳倉)을 포위했으나 결국 군량의 수송이 막히자 퇴각하고 말았으며, 또 9년에는 기산(祈山)에 출병하였다가 역시 군량이 여의치 못하여 결국 퇴각하였다. 그후 두 번째 기산 출정에는 군량의 수송을 위해 목우(木牛)·유마(流馬)를 만들어 군량 수송의 어려움을 해결하였다. 《삼국지(三國志)》 제갈량전(諸葛亮傳).
- [註 187] 섭 유격(葉遊擊) : 섭금(葉金)을 가리킴.
원문
○己未/上朝御別殿。 領事金應南、知事尹根壽、 【酷好觀書, 至老彌篤, 可謂有志。 然爲人輕卒, 無宰相風度。】 特進官申點ㆍ姜紳、參贊官李好閔、執義韓浚謙、司諫尹敬立、侍讀官李馨郁、檢討官鄭㷤、記事官朴承業ㆍ李志完ㆍ鄭弘翼入侍。 上讀前所講畢, 馨郁進講《周易》象曰雷電噬嗑, 止反毒之也。 上曰: "初謂滅趾, 六二謂滅鼻, 六三謂腊肉, 何也?" 應南曰: "趾在下故, 於初取譬。" 㷤曰: "滅鼻, 取其深入之意也。" 上曰: "滅趾者, 刖之云乎?" 㷤曰: "非刖也, 沒也。" 上曰: "趾字, 跟乎? 足指乎?" 郁曰: "韻會謂足也, 俗語則謂跟也。" 上曰: "加械, 沒其趾乎?" 㷤曰: "然。" 好閔曰: "堅加之意也。" 上曰: "〔六〕 二以柔, 爲用刑之人, 而治陽剛之人矣。" 好閔曰: "以柔治剛, 似難, 而得其中正, 故能治之矣。" 㷤曰: "以柔治剛, 故至於沒鼻而後可也。" 上曰: "所謂至於滅鼻者, 以柔治剛, 雖能治之, 終有滅鼻之厄乎? 治强剛之人, 必須深治之意乎?" 㷤曰: "後之傳敎, 是也。 前所傳敎者, 《本義》之意也, 後所傳敎者, 《程傳》之意也。" 好閔曰: "有遇毒之語, 則皆以用刑之人, 言之也。" 上曰: "《離卦》, 或書離字, 或只書离字, 其字同乎?" 好閔曰: "离字取火象, 離字幷取義理, 其實則同。" 上曰: "火屬于离, 而文字出然後, 以離書之。 豈有離云云義耶?" 好閔曰: "《離卦》有日月離于天, 用此義也。" 應南曰: "火, 外明內暗, 雉亦然, 故离傍加隹矣。" 浚謙進啓曰: "許潜改正事前啓。" 上曰: "不可改。" 敬立進啓曰: "當今急務, 在於速通使臣, 而使臣之行, 係於驛路。 臣前日往來西路, 則大路七站, 雖曰殘破, 亦可立馬, 而金郊察訪, 率其下人, 耕作於距驛三十里之外。 使命之行, 必責出刷馬, 故以致淹滯。 今若唐兵擺撥, 責出于民, 而出使之人, 皆騎馹馬, 則甚爲便矣。 請下諭監司處, 使之善處。" 上曰: "令該司察爲。" 浚謙又啓曰: "擺撥之役, 諸道同然, 而開城府, 以殘破之地, 至立六匹, 江原道獨免此役, 民情怨其不均。 江原距松京不遠, 請使立三匹, 以均其役。" 上曰: "江原道, 頓無居民, 然令該曹議爲。" 敬立又啓: "朴晋之死, 因唐將歐打。 死後視之, 則胸骨折傷云。 死以國事, 比他尤慘矣。 頃者洪季男老母, 命給食物, 中外莫不感激。 朴晋與季男豈異? 其老母在, 宜加恤典。" 上曰: "其老母在乎?" 對曰: "時在積城墓下矣。" 【壬辰之亂, 列郡風靡, 逃竄不暇, 而晋以密陽府使, 獨領孤軍, 欲遏大賊, 其忠誠義氣, 卓越諸將矣。】 上曰: "欲給料乎?" 對曰: "依洪季男例, 給料似當。" 上曰: "令該司議爲。" 申點曰: "朴晋被打唐將, 乃婁承先也。" 浚謙曰: "朴晋折骨處, 臣亦見之矣。 欲以病辭, 而嫌於圖避南下, 故不敢言病, 以至於死。" 好閔曰: "邢玠來自南京, 爲兵部, 故不識賊情, 使差送陪臣矣。 今以總督在密雲, 備問使送于兵部乎? 送于密雲乎?" 上曰: "此等事, 令備邊司議處。" 好閔曰: "昨日所啓黃致敬書狀, 劉綎亦來云。 必是率川兵來也。 蓋邢玠以爲倭賊蓄怒已甚, 非十萬兵, 不可敵云。 此大軍若到, 勢難支吾。 今宜差遣重臣, 請令大軍, 留屯鴨綠那邊, 待中朝糧餉搬運, 然後出來爲當。" 上曰: "此言是矣。 中原動天下之兵以來, 我國急務, 在於措備糧餉, 以爲接濟之路耳。 若未及措備, 而大軍遽至, 則不可說也。 官庫則在在板蕩, 須收聚民間穀, 以爲接濟。 此目前最急之策也。" 應南進曰: "民間所儲, 百般侵責, 亦已竭矣。 然事出於不得已, 請令民之不能赴戰者, 各出米一斗, 貧者五升。" 好閔曰: "觀邢軍門與行長書, 其意抑揚, 欲以大兵壓之, 使賊自退爾。" 上曰: "彼雖欲不用兵, 而我國則不得不用兵也。 彼賊自稱東皇帝, 豈容自退?" 應南曰: "十萬軍糧餉, 決不可支。 小臣之意, 以我國之力, 與賊決戰, 勢所不已也。" 仍自袖中, 出啓草以進。 其言曰:
凡爲天下國家者, 必先定大計。 大計不定, 則群議橫生, 群議橫生, 則衆心疑貳, 衆心疑貳, 則百事不立, 喪亡至矣。 今者大敵壓境, 國勢岌岌, 上下憂勞, 日夜籌度者, 無非禦賊一事, 而其於戰、守、和三者, 未有所定。 臣未知今日之計, 爲出於戰乎, 出於守乎, 出於和乎, 古今天下, 與敵對壘者, 未有不戰、不守、不和, 而終能保有其國者也。 臣竊觀今之議戰、守、和者, 各有所執。 或以爲: "我國摧殘之餘, 兵力單弱, 賊已據險, 巢穴甚固, 難與交戰。" 或以爲: "賊之再來, 其志可知。 我與賊, 勢不俱存, 戰亡, 不戰亦亡。 與其坐而待亡, 莫如伐之。" 此論之所以不同也。 或以爲: "賊旣爲久計, 我亦當爲久計。 令諸路郡邑, 築城樹柵, 賊至入處, 賊去出耕, 各守信地, 以待賊之可勝。" 或以爲: "邊境, 藩籬也; 內地, 堂奧也。 未有不固藩籬, 而能全堂奧者, 宜於近賊境上, 建置三四大鎭, 召聚八方精兵, 以禦賊之衝突。" 此論守之所以不同也。 若和之一事, 或以爲可, 或以爲不可, 亦有異同之說。 今此三計, 不可不早爲之定, 而以其群議, 不同如彼, 故遲延猶豫, 以迄于今, 可勝嘆哉? 臣之愚意, 跟隨之去, 不見賊酋面目而還, 淸賊之來, 恐脅要(素)〔索〕 , 無所不至。 當此之時, 雖欲以犬馬皮幣, 講好於狄人, 恐不可得也。 講好旣不可得, 則今之爲計, 唯有守與戰, 而天兵之至, 適當於此時。 此乃我國存亡之一大機也。 彼賊聞之, 必有所畏憚, 而國內人心, 亦已小定, 頗有欲戰之心。 不於此日, 收聚精銳, 以爲進圖之計, 則天下之事去矣。 尙復何言? 古人有言曰: "因險爲守則守易固, 因守爲戰則戰易勝。" 蓋以用兵之道, 得其可守, 然後可以戰故也。 臣聞蔚山、梁山之境, 多有可據之險。 宜令諸將, 進至此處, 設置營壁, 外以天兵爲援, 內以我軍自强, 須及賊衆未添之前, 或出兵以撓之, 或致賊而擊之, 或伐其所種之穀, 而且令舟師, 番休往來, 遮遏兵糧之路, 則彼賊雖盛, 其勢自蹙。 今日之計, 恐無大於此者也。 目今天兵續來, 多至萬餘, 而我國見糧, 無終歲之餉。 糧盡則師還, 孔明所不免。 今若曠日持久, 不與交戰, 而一朝糧乏, 天兵散於前, 我軍潰於後, 則將來之禍, 不但如壬辰而止。 此臣所以日夜痛悶, 而不知所出者也。 近觀同列之意, 亦與臣同。 曩者召對之時, 各有所達, 聖鑑想已下燭矣。 唯是小臣, 言訥辭拙, 不能盡其所懷於嚴威之下, 故不避瀆略以啓。 伏願聖明, 垂察焉。
根壽曰: "兵凶戰危, 豈可一戰, 決死生乎?" 上曰: "姑捨他言, 今日之計, 措置糧餉, 爲急務也。 有司所爲, 多有未盡。 如功名告身若干, 則不言某人募聚若干石, 而只以都數啓聞。 小事, 固不可如此。 如此事, 何不小名啓知乎? 備邊司亦爲非矣。" 鄭㷤曰: "頃往外方, 民事不可說也。 今年則百姓唯恐起耕之多, 問之則曰: ‘以結卜, 徭役極重故也。’ 守令或有憑公收斂, 而私自用者, 另爲嚴禁爲當。" 好閔曰: "鄭㷤非矣。 若有如此擅用者, 所當直擧其名而啓之矣。" 㷤曰: "卜結所用之數, 雖不報於戶曹, 而稟於監司用之, 則似可防其汎濫矣。" 上曰: "各道監司, 挈其家屬, 入處山城, 予之敎也。 其後聞, 只挈其家, 而不入山城, 與本意相戾矣。 兩界外, 不得挈家者, 乃常法, 而另使挈入山城者, 欲其臨亂固守也。 今則不然, 只貽民弊, 此宜改定也。" 應南曰: "上敎至當矣。 守令輩, 或送其妻于他處, 只與妾若婢子, 入于山城, 使爲支供, 以塞其責, 故有假室內之譏云爾。" 上曰: "守令挈家, 法也; 監司挈家, 則不法也。 異當初設立之意, 而滋前日所無之弊, 豈可也哉?" 申點曰: "當初巡檢京城之時, 人民相食, 物力蕩敗, 故不能修築矣。 今觀京城, 被賊俯瞰者數三處。 賊若登高放砲, 則勢極難矣。 此等處, 不可不設柵, 而曲城亦不可不築也。" 上曰: "予欲審問之。" 點曰: "中國則以尖壁, 爲懸眼俯瞰, 而射在下之賊也。 我國則必爲曲城, 然後可瞰近城之賊也。 且我國城制, 堞上有孔。 聞邊人之言, 則爲爇炬之孔, 而葉遊擊新制則無此。 蓋中原物力饒富, 懸燈以照云矣。 頃日降倭言: ‘此處不爲城守計乎? 若於城下, 積柴爇火, 則其明如晝, 賊不敢近。 此難猝備, 何不預措云。" 且隔臺, 則一設之後, 可支數三年, 而我國人心甚惡, 必爲撤去矣。" 上曰: "其制如何?" 對曰: "於堞上, 用板作屋, 出臨城表, 穿穴放砲矣。" 上曰: "此豈堅乎? 以大木交置, 則似堅而但易朽矣。" 上曰: "備邊司議爲之。" 應南曰: "宜使城中民, 赴一月之役, 而如京畿軍及士大夫奴子, 亦可竝役矣。" 根壽曰: "前日朝講, 自上有一天將若到, 則予亦前進之敎云。 若堅定此計, 則國家幸甚。" 上默然良久。 巳末罷對。
- 【태백산사고본】 56책 88권 42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234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사상-유학(儒學) / 교통-육운(陸運) / 군사-병참(兵站) / 군사-통신(通信) / 사법-법제(法制)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재정-역(役) / 재정-국용(國用) /
선조실록88권, 선조 30년 5월 29일 기미 1/3 기사 /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주역》을 진강하고 김응남이 서계초를 올리고 군량·축성 문제 등을 의논하다
국역
상이 아침에 별전으로 나아갔다. 영사(領事) 김응남(金應南), 지사(知事) 윤근수(尹根壽), 【책 보기를 몹시 좋아하여 늙어도 더욱 도타왔으니 뜻이 있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사람됨이 경솔하여 재상의 풍도가 없었다. 】 특진관(特進官) 신점(申點)·강신(姜紳), 참찬관(參贊官) 이호민(李好閔), 집의(執義) 한준겸(韓浚謙), 사간(司諫) 윤경립(尹敬立), 시독관(侍讀官) 이형욱(李馨郁), 검토관(檢討官) 정혹(鄭㷤), 기사관(記事官) 박승업(朴承業)·이지완(李志完)·정홍익(鄭弘翼)이 입시하였다. 상이 전날 강한 것을 다 읽자, 형욱이 《주역》의 ‘상(象)에 이르기를, 뇌전이 서합이니[象曰雷電噬嗑]’에서부터 ‘도리어 독을 입는다. [反毒之]’라는 부분까지 진강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초효(初爻)에는 ‘발을 멸한다. [滅趾]’ 하고, 육이효(六二爻)에는 ‘코를 멸한다. [滅鼻]’라 하고, 육삼효(六三爻)에는 ‘석육(腊肉)’이라 한 것은 무엇인가?"
하자, 응남이 아뢰기를,
"발(趾)이 아래에 있기 때문에 초효에 비유한 것입니다."
하고, 정혹이 아뢰기를,
"‘코를 멸한다.’는 것은 깊이 들어간 뜻을 취한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발을 멸한다.’는 것은 발꿈치를 벤 것을 이르는가?"
하자, 정혹이 아뢰기를,
"발을 벤 것이 아니라, 발이 묻히는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지(趾)는 발꿈치인가, 발가락인가?"
하자, 형욱이 아뢰기를,
"《운회(韻會)》에는 발(足)이라 하였고, 세속에서는 발뒤꿈치[跟]라 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족쇄를 채워 발[趾]이 묻힌 것인가?"
하자, 정혹이 아뢰기를,
"그렇습니다."
하고, 호민이 아뢰기를,
"견고하게 채운 것을 뜻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육이(六二)는 유약한데, 형벌을 내리는 사람이 되어 양강(陽剛)한 사람을 다스리는 격이다."
하자, 호민이 아뢰기를,
"유약함으로 강함을 다스리는 것은 어려울 듯하나, 중정(中正)하기 때문에 능히 다스리는 것입니다."
하고, 정혹이 아뢰기를,
"유약함으로 강함을 다스리기 때문에 코를 멸함[沒鼻]에 이른 뒤에야 되는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른바 ‘코가 멸함에 이른다.’는 것은 유약함으로 강함을 다스리기 때문에 비록 다스린다 하여도 끝내는 코를 잃는 액운이 있단 말인가, 아니면 강한 자를 다스리려면 반드시 깊이 다스리라는 뜻인가?"
하자, 정혹이 아뢰기를,
"뒤에 말씀하신 것이 옳습니다. 앞에 하신 말씀은 본의(本義)의 뜻이고, 뒤에 하신 말씀은 정전(程傳)의 뜻입니다."
하고, 호민이 아뢰기를,
"‘독을 만난다. [遇毒]’란 말이 있으니, 이는 모두 형벌을 내리는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괘(離卦)를 혹은 이(離)로 쓰기도 하고 혹은 단지 이(离)로 쓰기도 하는데 같은 글자인가?"
하자, 호민이 아뢰기를,
"이(离)는 불[火]의 형태를 취하였고, 이(離)는 의리(義理)까지 함께 취하였는데, 그 실상은 같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불이 이(离)에 속하는데, 문자가 생겨난 뒤에 이(离)로 쓴 것이다. 어찌 ‘걸렸다’는 뜻이 있겠는가."
하자, 호민이 아뢰기를,
"이괘(離卦)에 ‘해와 달이 하늘에 걸렸다.’란 말이 있는데, 이 뜻을 쓴 것입니다."
하고, 응남이 아뢰기를,
"불이란 겉은 밝고 안은 어두운데, 꿩[雉]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离) 곁에 추(隹)를 덧붙인 것입니다."
하였다. 준겸이 나아가 아뢰기를,
"전에 아뢴 허잠의 가자를 개정하도록 하소서."
하자, 상이 이르기를,
"바꿀 수 없다."
하였다. 경립이 나아가 아뢰기를,
"현재의 급선무는 사신 행차를 속히 통행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사신의 행차는 역로(驛路)에 달려 있습니다. 신이 전날 서로(西路)182) 를 오가며 보니, 대로(大路)의 7개 역참(驛站)은 비록 잔파(殘破)되었다고 하지만 역말을 세울 수가 있었으며, 금교 찰방(金郊察訪)은 하인들을 거느리고 역(驛)에서 30리나 떨어진 밖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명(使命)의 행차에는 반드시 쇄마(刷馬)를 내라고 하는 까닭에 지체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만일 중국 군사들이 사용할 파발마는 민간에서 내게 하고, 사신의 행차에는 모두 역마[馹馬]를 타게 한다면 매우 편할 것입니다. 감사에게 하유하여 잘 조치하도록 하소서."
하자, 상이 이르기를,
"해당 관서로 하여금 살펴서 하도록 하라."
하였다. 준겸이 또 아뢰기를,
"파발마를 세우는 부역은 여러 도가 같습니다. 개성부(開城府)는 잔파된 곳으로서 6필을 세우고 있는데, 강원도만은 이 부역을 면제받고 있으므로 백성들이 불공평함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강원도와 송경(松京)183) 은 멀지 않으니, 강원도에도 3필을 세우도록 하여 부역을 공평하게 하소서."
하자, 상이 이르기를,
"강원도에는 전혀 사는 백성이 없다. 그러나 해조로 하여금 의논해서 하도록 하라."
하였다. 경립이 또 아뢰기를,
"박진(朴晉)의 사망은 중국 장수에게 구타를 당해서입니다. 죽은 뒤에 보니, 가슴뼈가 부러져 있었다 합니다. 국가의 일로 죽은 것이니, 다른 사람에 비하여 더욱 참혹합니다. 지난번에 홍계남(洪季男)의 노모(老母)에게 음식물을 하사하도록 명하자, 중외(中外)가 모두 감격했었습니다. 박진이 홍계남과 어찌 다르겠습니까. 그에게도 노모가 있으니 구휼하는 은전(恩典)이 내려져야 할 것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그에게 노모가 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지금 적성(積城)의 무덤 아래에 있습니다."
하였다. 【임진 왜란에 여러 고을들이 바람에 쓰러지듯 도망쳐 숨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박진은 밀양 부사(密陽府使)로 혼자서 외로운 군대를 이끌고 대적을 막으려 하였으니, 그의 충성과 의기는 여러 장수들에 비하여 탁월한 것이었다. 】 상이 이르기를,
"늠료(廩料)를 주려고 하는가?"
하자, 대답하기를,
"홍계남의 예와 같이 늠료를 주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해사로 하여금 의논해서 하도록 하라."
하였다. 신점이 아뢰기를,
"박진을 구타한 중국 장수는 누승선(婁承先)입니다."
하자, 준겸이 아뢰기를,
"박진의 뼈가 부러진 곳을 신도 보았습니다. 그는 병으로 사직하고자 하였으나 남쪽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을 피하려 한다는 혐의가 있으므로 감히 신병을 말하지 못하다가 죽음에 이른 것입니다."
하였다. 호민이 아뢰기를,
"형개(邢玠)는 남경(南京)으로부터 와서 병부 상서(兵部尙書)가 된 까닭에 적들의 형세를 몰라 배신을 차송하도록 하였습니다. 지금 총독(總督)으로서 밀운(密雲)에 있는데, 물음에 대답할 사신을 병부에 보내야 하겠습니까, 밀운으로 보내야 하겠습니까?"
하자, 상이 이르기를,
"이러한 일들은 비변사에서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하라."
하였다. 호민이 아뢰기를,
"어제 아뢴 황치경(黃致敬)의 서장에 유정(劉綎)도 온다 하였으니, 그는 반드시 사천(四川) 출신의 군사를 이끌고 올 것입니다. 형개는 왜적들이 노여움을 간직한 것이 이미 깊으니 십만 대군이 아니고는 대적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많은 군사가 만일 도착하면 형편상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중신을 보내어 대군을 압록강 연변에 주둔해 있으면서 중국의 군량이 수송되어 오기를 기다린 뒤에 나오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그 말이 옳다. 중원에서 천하의 병력을 동원하여 나오니, 우리 나라의 급선무는 군량을 준비시켜 접제(接濟)할 길을 만드는 데 있다. 만일 미처 준비를 못하고 있다가 대군이 갑자기 도착한다면 그 어려움은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관고(官庫)는 곳곳마다 탕진되었으니, 민간에 있는 곡식들을 거두어 모아 접제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당장 시급한 일이다."
하니, 응남이 나아가 아뢰기를,
"민간에 저축된 곡식도 온갖 방법으로 수탈하여 이미 바닥이 났습니다. 그러나 부득이한 일이니, 싸움터에 나갈 수 없는 백성으로 하여금 각기 쌀 한 말씩을 내게 하되 가난한 사람은 다섯 되를 내게 하소서."
하였다. 호민이 아뢰기를,
"형 군문이 행장에게 보낸 편지를 보니, 그 뜻은 억양(抑揚)하여 대병력으로 위압해서 적으로 하여금 스스로 물러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저들은 비록 전쟁을 하지 않으려 할지라도 우리 나라로서는 부득이 전쟁을 벌여야 한다. 저 왜적들이 동황제(東皇帝)라고 자칭하고 있으니, 어찌 스스로 물러가겠는가."
하였다. 응남이 아뢰기를,
"십만 대군의 군량은 결코 댈 수 없습니다. 소신의 생각에는 우리 나라의 힘으로 적과 결전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고, 이어 소매 속에서 서계초(書啓草)를 꺼내어 올렸다. 그 내용에,
"천하 국가는 반드시 먼저 큰 계책을 정해 놓아야 합니다. 큰 계책이 정해지지 않으면 여러 의견이 멋대로 나오고, 여러 의견이 멋대로 나오면 사람들의 마음이 의심스러워지고, 사람들의 마음이 의심스러워지면 모든 일이 확립되지 못하여 멸망이 닥쳐오게 됩니다. 지금 많은 적군이 국경에 있어 국가의 형세가 위급하니, 상하가 걱정하여 밤낮으로 생각하는 것은 모두 적을 막는 한 가지 일입니다.
그런데 싸울 것인지 수비할 것인지 강화할 것인지를 아직도 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은 오늘날의 계책이 싸울 것인지 지킬 것인지 강화할 것인지를 모르겠습니다. 고금 천하에 적진을 대하고 있으면서 싸우지도 않고 수비하지도 않고 강화하지도 않고서 끝까지 그 나라를 보전한 것은 있지 않았습니다.
신이 지금의 의논들을 보니, 싸우자는 자, 수비하자는 자, 강화하자는 자들이 각기 자기 주장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우리 나라가 피폐해진 뒤여서 병력이 매우 약한데, 적들은 이미 험지를 차지하여 소굴이 매우 튼튼하니, 함께 싸우기 어렵다.’고 합니다. 혹자는 ‘적이 다시 왔으니,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와 적은 형편상 함께 존재할 수 없으니, 싸워도 망하고 싸우지 않아도 망한다.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공격하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이것은 싸우자는 의논이 각기 다른 것입니다.
혹자는 ‘적이 이미 오래 버틸 계책을 하고 있으니 우리도 오래 버틸 계책을 세워야 한다. 여러 도의 군읍에 성을 쌓고 목책을 세워 적이 오면 들어가 있고, 적이 물러나면 나와 농사를 지어 각기 맡은 지역을 지키면서 적을 이길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하며, 혹자는 ‘변경은 울타리이고 내륙은 안방과 같다. 울타리가 튼튼하지 않고서 안방이 보존되는 일은 있지 않으니, 적경과 가까운 곳에 서너 개의 큰 진을 세우고 팔도의 정예병을 불러모아 적의 충돌을 막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수비하자는 의논이 각기 다른 것입니다. 강화하자는 한 가지 일에도 혹은 옳다 하고 혹은 그르다 하여 이설이 있습니다. 지금 이 세 가지 계책을 일찍 결정하지 않을 수 없는데 여러 의논이 이처럼 각기 다르기 때문에 머뭇거리며 지연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니, 못내 한심스럽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화의하기 위하여 뒤따라갔던 자들이 적의 괴수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되돌아왔으며, 청적(淸賊)184) 이 나와서는 협박하고 요구하는 것이 한이 없으니, 이런 때에 견마(犬馬)와 피폐(皮幣)를 가지고 적인(狄人)들과 우호(友好)하기를 바란들 되지 않을 것185) 입니다. 강화가 이미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면 지금의 계책으로는 수비와 싸움만이 있을 뿐입니다. 중국군이 때마침 도착하였으니, 이는 우리 나라의 존망이 달려 있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저 왜적들이 이것을 듣는다면 반드시 꺼리는 마음이 있을 것이고, 국내의 민심도 이미 다소 진정되어 싸우려는 마음이 자못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정예병을 거둬들여 진격해서 적을 도모하려는 계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천하의 일은 그르쳐지고 말 것입니다.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옛사람들의 말에 ‘험한 곳을 의지해 수비하면 수비가 견고해지기 쉽고, 견고한 수비를 의지해 싸움을 하면 싸움에 이기기 쉽다.’ 했습니다. 이것은 용병(用兵)하는 방법이 견고하게 수비할 수 있는 다음에야 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이 들으니, 울산(蔚山)과 양산(梁山) 등지에는 점령할 만한 많은 요새가 있다고 합니다. 여러 장수들에게 이러한 곳으로 나아가 진영과 성벽을 설치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밖으로는 중국군으로 후원을 삼고, 안으로는 우리의 군사로 스스로를 강하게 한 다음, 적병이 증원되기 전에 혹은 출병하여 도전하기도 하고 혹은 적들을 불러내어 공격하기도 하며 혹은 그들이 심어 놓은 곡식을 쓸어버리기도 하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주사(舟師)를 번갈아 쉬면서 오가게 하여 적의 군량 수송로를 차단한다면 적이 비록 강성하더라도 그 형세가 저절로 꺾일 것입니다. 오늘의 계책으로는 아마 이보다 좋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중국군이 속속 나오고 있어 그 수가 만여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나라의 양식은 이 해를 넘길 만한 것이 없습니다. 군량이 떨어지면 군사가 돌아가는 것은 공명(孔明)도 면하지 못한 것입니다.186) 지금 만일 오랫동안 지구전을 벌여 적과 교전하지 않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군량이 떨어지면, 중국군은 앞에서 흩어지고 우리 군사는 뒤에서 무너질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닥쳐올 환란은 임진년과 같을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이것이 신이 밤낮으로 염려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바입니다.
요즈음 동렬(同列)들의 생각을 보니, 역시 신과 같았습니다. 지난번 소대(召對)할 때에 각기 아뢴 바가 있었으니, 전하께서 이미 통촉하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다만 소신은 말이 어눌하여 신의 소회를 엄숙한 자리에서 다 말씀드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번거로움을 피하지 않고 대략 아뢰니, 성명(聖明)께서는 살피소서."
하였다. 근수가 아뢰기를,
"병기는 흉기이고 전쟁은 위험한 방법이니, 어찌 한 차례 싸움을 벌여 사생(死生)을 결판한단 말입니까."
하자, 상이 이르기를,
"다른 말들은 우선 놔두고 오늘의 계책은 군량 조치가 가장 급선무이다. 유사(有司)들이 하는 일에는 미진한 점이 많다. 예를 들어 공명 고신첩(空名告身帖)으로 말하면 어떤 사람이 얼마쯤의 곡식을 모았는지 말하지 않고 전체 숫자만을 계문(啓聞)하고 있다. 작은 일도 이렇게 해서는 안되는데 이처럼 큰일을 어찌하여 이름을 적어 알리지 않는단 말인가. 비변사도 역시 잘못이다."
하였다. 정혹이 아뢰기를,
"지난번 지방에 나갔더니 농사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금년에는 백성들이 농사를 많이 짓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결복(結卜)과 요역(徭役)이 극심한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수령 중에 혹 공용(公用)을 빙자하여 세금을 거두어서 사사로이 사용하는 자들이 있으니, 특별히 엄금시켜야 할 것입니다."
하자, 호민이 아뢰기를,
"정혹의 말은 잘못입니다. 만일 이처럼 제멋대로 사용하는 자가 있다면, 곧바로 이름을 들어 아뢰었을 것입니다."
하니, 정혹이 아뢰기를,
"결복을 사용하는 수를 호조에는 보고하지 않더라도 감사에게 품하고 쓰게 한다면 범람한 짓들은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각도의 감사들은 가솔을 거느리고 산성(山城)으로 들어가 살도록 하라고 내가 전교했었다. 그런데 그 뒤에 들으니 단지 가솔을 거느려 가기만 하고 산성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하니, 본래의 뜻과 어긋나는 것이다. 원래 양계(兩界) 이외에는 가솔을 거느리고 가지 않는 것이 상례(常例)인데, 내가 특별히 산성으로 거느리고 들어가게 한 것은 난리를 당해 굳게 지키게 하려고 해서였다. 그런데 지금 그렇지 못하고 민폐만 끼치고 있으니, 이는 개정해야 할 것이다."
하자, 응남이 아뢰기를,
"상교가 지당하십니다. 수령들이 혹 그의 아내는 딴 곳으로 보내놓고, 단지 첩과 여종들을 데리고 산성으로 들어가 지공(支供)하게 해서 책임만 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임시 실내[假室內]’라는 풍자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수령이 가솔을 거느리고 가는 것은 떳떳한 법이나, 감사가 가족을 거느리고 가는 것은 불법이다. 당초 설립한 뜻과도 다르며 전에 없었던 폐단만 일으키는 것이니, 어찌 옳겠는가."
하였다. 신점이 아뢰기를,
"당초 경성을 순검(巡檢)할 때에 백성들은 식량이 없어 서로 잡아먹고 물력이 탕진되어 있었던 까닭에 수축하지 못했었습니다. 지금 경성을 살펴보니, 적들이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 몇 군데입니다. 적이 만일 높은 곳으로 올라가 포를 쏜다면 매우 곤란한 형세에 처할 것입니다. 이런 곳들에는 불가불 목책을 설치해야 할 것이며, 곡성(曲城)도 쌓아야 할 것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자세한 내용을 들었으면 한다."
하니, 신점이 아뢰기를,
"중국은 뾰족한 성벽에 현안(懸眼)을 만들어 내려다 보면서 밑에 있는 적들을 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반드시 곡성을 만든 뒤에야 성에 접근하는 적을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또 우리 나라 성제(城制)는 성가퀴에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변방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횃불을 태우는 구멍이라 하는데, 섭 유격(葉遊擊)187) 의 새로운 제도에는 이런 것들이 없습니다. 이것은 중원에는 물력이 넉넉하여 등불을 달아 환히 비추게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난번 항왜(降倭)의 말에 ‘이곳에는 성곽을 지킬 계책을 세우지 않는가? 만일 성 아래에 섶을 쌓아 불을 지르면 대낮처럼 밝게 비추어 적이 감히 접금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갑자기 준비하기 어려운데, 왜 미리 준비하지 않는가?’ 했습니다. 또 격대(隔臺)는 한 번 세운 뒤에는 수삼 년을 지탱할 수 있는데, 우리 나라는 인심이 매우 나빠 반드시 이것을 철거해 버릴 것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그 제도는 어떠한 것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성카퀴 위에 판자로 지붕을 지어 성 바깥으로 내밀게 하여서는 구멍을 뚫고 포를 쏘게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이것이 어찌 견고하겠는가. 큰 나무로 얽어맨다면 단단할 듯한데, 단 쉽게 썩을 것이다."
하고, 상이 또 이르기를,
"비변사가 의논해서 하도록 하라."
하니, 응남이 아뢰기를,
"성안의 백성들에게 한 달 동안 부역을 하게 하고, 경기의 군병과 사대부 집안의 종들도 함께 부역을 시켜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근수가 아뢰기를,
"전날 조강(朝講)에 상께서 ‘중국 장수가 만일 나오면 나도 나아갈 것이다.’란 전교가 계셨습니다. 만일 이 계획을 굳게 지키신다면 국가의 큰 다행일 것입니다."
하자, 상이 한동안 말없이 있었다. 사시(巳時) 말에 소대(召對)를 파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6책 88권 42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234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사상-유학(儒學) / 교통-육운(陸運) / 군사-병참(兵站) / 군사-통신(通信) / 사법-법제(法制)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재정-역(役) / 재정-국용(國用) /
- [註 182] 서로(西路) : 황해도와 평안도.
- [註 183] 송경(松京) : 개성.
- [註 184] 청적(淸賊) : 청정을 낮게 이르는 말.
- [註 185] 견마(犬馬)와 피폐(皮幣)를 가지고 적인(狄人)들과 우호(友好)하기를 바란들 되지 않을 것 : 견마는 개나 말 등의 애완동물이며 피폐(皮幣)는 짐승의 가죽이나 비단을 가리킴. 옛날 주 문왕(周文王)의 조고(祖考)인 고공단보(古公亶父)는 오랑캐인 훈육(獯鬻:흉노족)의 침공을 받고 견마와 피폐로 강화하려고 하였으나 침략이 계속되자, 수도를 기산(岐山)의 아래로 옮기고 말았다. 《맹자(孟子)》 양혜왕 하(梁惠王下). 즉 조선도 예서(禮書)나 폐백을 가지고 일본과 강화할 수 없음으로 말한 것이다.
- [註 186] 군량이 떨어지면 군사가 돌아가는 것은 공명(孔明)도 면하지 못한 것입니다. : 공명(孔明)은 삼국 시대 촉한(蜀漢)의 명재상인 제갈량(諸葛亮)의 자(字). 공명이 후주(後主)가 등극한 6년째 되던 겨울에 위(魏)에 출격하여 진창(陳倉)을 포위했으나 결국 군량의 수송이 막히자 퇴각하고 말았으며, 또 9년에는 기산(祈山)에 출병하였다가 역시 군량이 여의치 못하여 결국 퇴각하였다. 그후 두 번째 기산 출정에는 군량의 수송을 위해 목우(木牛)·유마(流馬)를 만들어 군량 수송의 어려움을 해결하였다. 《삼국지(三國志)》 제갈량전(諸葛亮傳).
- [註 187] 섭 유격(葉遊擊) : 섭금(葉金)을 가리킴.
원문
○己未/上朝御別殿。 領事金應南、知事尹根壽、 【酷好觀書, 至老彌篤, 可謂有志。 然爲人輕卒, 無宰相風度。】 特進官申點ㆍ姜紳、參贊官李好閔、執義韓浚謙、司諫尹敬立、侍讀官李馨郁、檢討官鄭㷤、記事官朴承業ㆍ李志完ㆍ鄭弘翼入侍。 上讀前所講畢, 馨郁進講《周易》象曰雷電噬嗑, 止反毒之也。 上曰: "初謂滅趾, 六二謂滅鼻, 六三謂腊肉, 何也?" 應南曰: "趾在下故, 於初取譬。" 㷤曰: "滅鼻, 取其深入之意也。" 上曰: "滅趾者, 刖之云乎?" 㷤曰: "非刖也, 沒也。" 上曰: "趾字, 跟乎? 足指乎?" 郁曰: "韻會謂足也, 俗語則謂跟也。" 上曰: "加械, 沒其趾乎?" 㷤曰: "然。" 好閔曰: "堅加之意也。" 上曰: "〔六〕 二以柔, 爲用刑之人, 而治陽剛之人矣。" 好閔曰: "以柔治剛, 似難, 而得其中正, 故能治之矣。" 㷤曰: "以柔治剛, 故至於沒鼻而後可也。" 上曰: "所謂至於滅鼻者, 以柔治剛, 雖能治之, 終有滅鼻之厄乎? 治强剛之人, 必須深治之意乎?" 㷤曰: "後之傳敎, 是也。 前所傳敎者, 《本義》之意也, 後所傳敎者, 《程傳》之意也。" 好閔曰: "有遇毒之語, 則皆以用刑之人, 言之也。" 上曰: "《離卦》, 或書離字, 或只書离字, 其字同乎?" 好閔曰: "离字取火象, 離字幷取義理, 其實則同。" 上曰: "火屬于离, 而文字出然後, 以離書之。 豈有離云云義耶?" 好閔曰: "《離卦》有日月離于天, 用此義也。" 應南曰: "火, 外明內暗, 雉亦然, 故离傍加隹矣。" 浚謙進啓曰: "許潜改正事前啓。" 上曰: "不可改。" 敬立進啓曰: "當今急務, 在於速通使臣, 而使臣之行, 係於驛路。 臣前日往來西路, 則大路七站, 雖曰殘破, 亦可立馬, 而金郊察訪, 率其下人, 耕作於距驛三十里之外。 使命之行, 必責出刷馬, 故以致淹滯。 今若唐兵擺撥, 責出于民, 而出使之人, 皆騎馹馬, 則甚爲便矣。 請下諭監司處, 使之善處。" 上曰: "令該司察爲。" 浚謙又啓曰: "擺撥之役, 諸道同然, 而開城府, 以殘破之地, 至立六匹, 江原道獨免此役, 民情怨其不均。 江原距松京不遠, 請使立三匹, 以均其役。" 上曰: "江原道, 頓無居民, 然令該曹議爲。" 敬立又啓: "朴晋之死, 因唐將歐打。 死後視之, 則胸骨折傷云。 死以國事, 比他尤慘矣。 頃者洪季男老母, 命給食物, 中外莫不感激。 朴晋與季男豈異? 其老母在, 宜加恤典。" 上曰: "其老母在乎?" 對曰: "時在積城墓下矣。" 【壬辰之亂, 列郡風靡, 逃竄不暇, 而晋以密陽府使, 獨領孤軍, 欲遏大賊, 其忠誠義氣, 卓越諸將矣。】 上曰: "欲給料乎?" 對曰: "依洪季男例, 給料似當。" 上曰: "令該司議爲。" 申點曰: "朴晋被打唐將, 乃婁承先也。" 浚謙曰: "朴晋折骨處, 臣亦見之矣。 欲以病辭, 而嫌於圖避南下, 故不敢言病, 以至於死。" 好閔曰: "邢玠來自南京, 爲兵部, 故不識賊情, 使差送陪臣矣。 今以總督在密雲, 備問使送于兵部乎? 送于密雲乎?" 上曰: "此等事, 令備邊司議處。" 好閔曰: "昨日所啓黃致敬書狀, 劉綎亦來云。 必是率川兵來也。 蓋邢玠以爲倭賊蓄怒已甚, 非十萬兵, 不可敵云。 此大軍若到, 勢難支吾。 今宜差遣重臣, 請令大軍, 留屯鴨綠那邊, 待中朝糧餉搬運, 然後出來爲當。" 上曰: "此言是矣。 中原動天下之兵以來, 我國急務, 在於措備糧餉, 以爲接濟之路耳。 若未及措備, 而大軍遽至, 則不可說也。 官庫則在在板蕩, 須收聚民間穀, 以爲接濟。 此目前最急之策也。" 應南進曰: "民間所儲, 百般侵責, 亦已竭矣。 然事出於不得已, 請令民之不能赴戰者, 各出米一斗, 貧者五升。" 好閔曰: "觀邢軍門與行長書, 其意抑揚, 欲以大兵壓之, 使賊自退爾。" 上曰: "彼雖欲不用兵, 而我國則不得不用兵也。 彼賊自稱東皇帝, 豈容自退?" 應南曰: "十萬軍糧餉, 決不可支。 小臣之意, 以我國之力, 與賊決戰, 勢所不已也。" 仍自袖中, 出啓草以進。 其言曰:
凡爲天下國家者, 必先定大計。 大計不定, 則群議橫生, 群議橫生, 則衆心疑貳, 衆心疑貳, 則百事不立, 喪亡至矣。 今者大敵壓境, 國勢岌岌, 上下憂勞, 日夜籌度者, 無非禦賊一事, 而其於戰、守、和三者, 未有所定。 臣未知今日之計, 爲出於戰乎, 出於守乎, 出於和乎, 古今天下, 與敵對壘者, 未有不戰、不守、不和, 而終能保有其國者也。 臣竊觀今之議戰、守、和者, 各有所執。 或以爲: "我國摧殘之餘, 兵力單弱, 賊已據險, 巢穴甚固, 難與交戰。" 或以爲: "賊之再來, 其志可知。 我與賊, 勢不俱存, 戰亡, 不戰亦亡。 與其坐而待亡, 莫如伐之。" 此論之所以不同也。 或以爲: "賊旣爲久計, 我亦當爲久計。 令諸路郡邑, 築城樹柵, 賊至入處, 賊去出耕, 各守信地, 以待賊之可勝。" 或以爲: "邊境, 藩籬也; 內地, 堂奧也。 未有不固藩籬, 而能全堂奧者, 宜於近賊境上, 建置三四大鎭, 召聚八方精兵, 以禦賊之衝突。" 此論守之所以不同也。 若和之一事, 或以爲可, 或以爲不可, 亦有異同之說。 今此三計, 不可不早爲之定, 而以其群議, 不同如彼, 故遲延猶豫, 以迄于今, 可勝嘆哉? 臣之愚意, 跟隨之去, 不見賊酋面目而還, 淸賊之來, 恐脅要(素)〔索〕 , 無所不至。 當此之時, 雖欲以犬馬皮幣, 講好於狄人, 恐不可得也。 講好旣不可得, 則今之爲計, 唯有守與戰, 而天兵之至, 適當於此時。 此乃我國存亡之一大機也。 彼賊聞之, 必有所畏憚, 而國內人心, 亦已小定, 頗有欲戰之心。 不於此日, 收聚精銳, 以爲進圖之計, 則天下之事去矣。 尙復何言? 古人有言曰: "因險爲守則守易固, 因守爲戰則戰易勝。" 蓋以用兵之道, 得其可守, 然後可以戰故也。 臣聞蔚山、梁山之境, 多有可據之險。 宜令諸將, 進至此處, 設置營壁, 外以天兵爲援, 內以我軍自强, 須及賊衆未添之前, 或出兵以撓之, 或致賊而擊之, 或伐其所種之穀, 而且令舟師, 番休往來, 遮遏兵糧之路, 則彼賊雖盛, 其勢自蹙。 今日之計, 恐無大於此者也。 目今天兵續來, 多至萬餘, 而我國見糧, 無終歲之餉。 糧盡則師還, 孔明所不免。 今若曠日持久, 不與交戰, 而一朝糧乏, 天兵散於前, 我軍潰於後, 則將來之禍, 不但如壬辰而止。 此臣所以日夜痛悶, 而不知所出者也。 近觀同列之意, 亦與臣同。 曩者召對之時, 各有所達, 聖鑑想已下燭矣。 唯是小臣, 言訥辭拙, 不能盡其所懷於嚴威之下, 故不避瀆略以啓。 伏願聖明, 垂察焉。
根壽曰: "兵凶戰危, 豈可一戰, 決死生乎?" 上曰: "姑捨他言, 今日之計, 措置糧餉, 爲急務也。 有司所爲, 多有未盡。 如功名告身若干, 則不言某人募聚若干石, 而只以都數啓聞。 小事, 固不可如此。 如此事, 何不小名啓知乎? 備邊司亦爲非矣。" 鄭㷤曰: "頃往外方, 民事不可說也。 今年則百姓唯恐起耕之多, 問之則曰: ‘以結卜, 徭役極重故也。’ 守令或有憑公收斂, 而私自用者, 另爲嚴禁爲當。" 好閔曰: "鄭㷤非矣。 若有如此擅用者, 所當直擧其名而啓之矣。" 㷤曰: "卜結所用之數, 雖不報於戶曹, 而稟於監司用之, 則似可防其汎濫矣。" 上曰: "各道監司, 挈其家屬, 入處山城, 予之敎也。 其後聞, 只挈其家, 而不入山城, 與本意相戾矣。 兩界外, 不得挈家者, 乃常法, 而另使挈入山城者, 欲其臨亂固守也。 今則不然, 只貽民弊, 此宜改定也。" 應南曰: "上敎至當矣。 守令輩, 或送其妻于他處, 只與妾若婢子, 入于山城, 使爲支供, 以塞其責, 故有假室內之譏云爾。" 上曰: "守令挈家, 法也; 監司挈家, 則不法也。 異當初設立之意, 而滋前日所無之弊, 豈可也哉?" 申點曰: "當初巡檢京城之時, 人民相食, 物力蕩敗, 故不能修築矣。 今觀京城, 被賊俯瞰者數三處。 賊若登高放砲, 則勢極難矣。 此等處, 不可不設柵, 而曲城亦不可不築也。" 上曰: "予欲審問之。" 點曰: "中國則以尖壁, 爲懸眼俯瞰, 而射在下之賊也。 我國則必爲曲城, 然後可瞰近城之賊也。 且我國城制, 堞上有孔。 聞邊人之言, 則爲爇炬之孔, 而葉遊擊新制則無此。 蓋中原物力饒富, 懸燈以照云矣。 頃日降倭言: ‘此處不爲城守計乎? 若於城下, 積柴爇火, 則其明如晝, 賊不敢近。 此難猝備, 何不預措云。" 且隔臺, 則一設之後, 可支數三年, 而我國人心甚惡, 必爲撤去矣。" 上曰: "其制如何?" 對曰: "於堞上, 用板作屋, 出臨城表, 穿穴放砲矣。" 上曰: "此豈堅乎? 以大木交置, 則似堅而但易朽矣。" 上曰: "備邊司議爲之。" 應南曰: "宜使城中民, 赴一月之役, 而如京畿軍及士大夫奴子, 亦可竝役矣。" 根壽曰: "前日朝講, 自上有一天將若到, 則予亦前進之敎云。 若堅定此計, 則國家幸甚。" 上默然良久。 巳末罷對。
- 【태백산사고본】 56책 88권 42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234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사상-유학(儒學) / 교통-육운(陸運) / 군사-병참(兵站) / 군사-통신(通信) / 사법-법제(法制)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재정-역(役) / 재정-국용(國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