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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85권, 선조 30년 2월 4일 을축 2번째기사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금대부가 경성에 오려 하는 이유 등에 관해 대신들과 논의하다

사시(巳時)에 상이 대신 및 비변사 유사 당상을 명초(命招)하여 별전(別殿)에서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장희춘(蔣希春)이 와서 하는 말에 적의 형세가 근일 다시 어떠하다던가?"

하니, 김응남(金應南)이 아뢰기를,

"그가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전일의 배나 된다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변장들의 숨김이 더욱 심하다. 울산 군수(蔚山郡守)는 적과 대적하다가 불리하였는데도 조정에서는 아득하게 듣지 못하였으니, 남의 신하가 되어 어떻게 기망할 마음을 내는가?"

하니, 김응남이 아뢰기를,

"적의 편지는 매우 통분합니다. 심지어 상께 글을 올리겠다고 하니 더욱 통탄스럽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체로 그 본의는 무엇인가? 화친을 하려는 것인가?"

하니, 김응남이 아뢰기를,

"호군 황혁(黃赫)송운(松雲) 【중 유정(惟正)이다. 】 만나고자 할 뿐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두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본의는 무엇인가?"

하니, 김응남이 아뢰기를,

"금대부(金大夫) 【이름은 희팔(喜八)이다. 】 보내려고 하다가 장희춘(蔣希春)에게 저지되자 이 두 사람을 요구하는데 그들의 본의는 실로 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왜적이 이번에도 많이 왔겠지?"

하니, 김응남이 아뢰기를,

"지금 군사를 쉬게 할 리는 없습니다. 옛날 김성일(金誠一) 【통신사(通信使) 김성일이다. 】 사신으로 갈 때 신만이 보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지난해 황신(黃愼)이 갈 때 신이 또 보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을 조정에 있는 진신(縉紳)이라면 누군들 모르겠습니까? 신이 지난번 병중에 올린 사직 차자(辭職箚子)에서도 이 조목을 언급했었습니다. 예부터 강화(講和)란 제대로 성공시킨 사람이 없었습니다. 신이 화친하는 일에 대해서 확고부동하게 다른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은 그것이 성공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화친 논의는 사람의 마음을 해이하게 만들고 사기를 저상(沮喪)시킬 뿐입니다. 옛사람의 말에 ‘화의(和議)는 천하 충의로운 사람의 기상을 빼앗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송(宋)나라 휘종(徽宗)과 흠종(欽宗) 때에 군사의 수가 10만은 넉넉히 되었는데도 화의에 해이해져서 진군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형세로 보아 믿을 만한 것은 없지만 자강(自强)할 수 있다면 적을 섬멸하기가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지금은 앞이나 뒤에 보장(保障)할 견고한 지역이 없습니다. 지난번에 해주(海州) 관고(官庫)의 빙고(氷庫)에 있던 무기에 사람들이 불을 질렀으니, 민심을 극도로 경계할 만하고 시세 또한 염려스럽습니다. 고금 천지에 어찌 이렇게 민망하고 박절한 일이 있겠습니까?"

하자, 상이 이르기를,

"이것은 해주 목사가 선정(善政)을 하지 못한 까닭이라고 하였다. 비변사에서는 이제서야 화친의 논의가 그릇됨을 깨달았단 말인가. 매우 온당하지 못하다."

하니, 김응남이 삼가 사죄하면서 아뢰기를,

"신이 비변사에서 봉직하고 있으니, 만 번 죽어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하자, 상이 매우 기뻐하지 않았다. 상이 이르기를,

"나주 목사(羅州牧使)가 결원(缺員)이데 누가 맡을 만한 사람인가? 안진(安璡)은 어떠한가?"

하니, 김명원(金命元)이 아뢰기를,

"신이 젊었을 때부터 그를 아는데 느슨한 사람입니다."

하고, 이조 참판 이정암(李廷馣)이 아뢰기를,

"무변(武弁)중에서는 나주를 다스릴 만한 합당한 사람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니, 문관 중에서 장수의 재능이 있는 사람으로 의망(擬望)함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문관 중에서 감당할 만한 사람이 있는가?"

하자, 아뢰기를,

"배응경(裵應褧)입니다."

하였다. 김응남이 아뢰기를,

"배응경남중(南中)에서 공로가 있었습니다."

하고, 윤두수(尹斗壽)가 아뢰기를,

"공주(公州) 역시 궐원인데 이암(李岩) 【이암은 외척인데 청주 목사(淸州牧使)가 되었을 때, 사사로 백성들의 전결(田結)을 줄여 자기의 사용물로 삼았다. 공부(公賦)는 비록 줄어 들었지만 보고하는 사람들은 저축을 많이 했다고 칭찬하였다. 그래서 윤두수가 힘써 추천한 것이다. 】 담당할 만합니다."

하고, 이산해(李山海)가 아뢰기를,

"공주는 가장 중요한 곳이니, 반드시 적임자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원균(元均)의 아우인 원전(元㙉)은 어디에 있는가? 공로가 있는 사람이고 또한 장사(壯士)이다."

하니, 이덕형(李德馨)이 아뢰기를,

"이순신(李舜臣)이 당초 원균을 모함하면서 말하기를 ‘원균은 조정을 속였다. 열두 살짜리 아이를 멋대로 군공(軍功)에 올렸다.’라고 했는데, 원균은 말하기를 ‘나의 자식은 나이가 이미 18세로 활쏘고 말타는 재주가 있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비난하였는데, 원균은 바르고 이순신의 이야기는 군색하였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4책 85권 2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159면
  • 【분류】
    군사(軍事) / 외교-왜(倭) / 인물(人物) / 왕실-국왕(國王) / 정론-정론(政論) / 사상-불교(佛敎)

○巳時, 上命招大臣及備邊司有司堂上, 引見于別殿。 上曰: "蔣希春來言, 賊勢近復何如?" 應南曰: "渠未目覩, 但云倍於前日耳。" 上曰: "邊將蔽掩尤甚。 蔚山郡守拒戰不利, 而朝廷邈不聞知。 人臣何以生心欺罔耶?" 應南曰: "賊書極爲痛憤。 至於獻書上前, 尤極痛心。" 上曰: "大槪其意何歟? 欲和耶?" 應南曰: "欲見護軍 松雲 【僧惟政。】 耳。" 上曰: "欲見二人之意, 何爲?" 應南曰: "欲遣金大夫, 【名喜八。】希春所沮。 求此二人, 其意實有所求也。" 上曰: "倭賊, 今亦多來矣。" 應南曰: "今無息兵之理。 昔者誠一 【通信使金誠一。】 之行也, 臣獨以爲不可送。 上年黃愼之去, 臣亦以爲不可送, 在廷縉紳, 誰不知之? 臣頃於病中辭職箚子, 亦及此一款矣。 自古講和, 未有能成者。 臣於和事, 斷斷無他, 只知不克成而已。 今者和說, 使人心懈怠, 士氣沮縮。 古人云: ‘和議, 褫天下忠義之氣。’ 時, 兵足以十萬, 而懈於和, 不得進戰。 今雖無形勢之所恃, 若能自强, 殄滅何難? 況今前後地, 無保障之固。 頃者海州官庫氷窖軍器, 人火出焉。 民心極可惡, 時勢亦可慮。 古今天地, 安有此悶迫事乎?" 上曰: "是海州牧使, 不善政之故云矣。 至於備邊司, 今乃覺其和事之誤耶? 暫爲未穩。" 應南拜謝曰: "臣待罪備邊, 萬死無惜。" 上甚不悅。 上曰: "羅州牧使有窠, 誰可任者? 安璡何如?" 金命元曰: "臣自少知之, 弛緩者也。" 吏曹參判李廷馣曰: "羅州武弁中, 不得可人, 文官之將才者, 擬之何如?" 上曰: "文官有可堪者乎?" 曰: "裵應褧。" 應南曰: "應褧有功於南中。" 尹斗壽曰: "公州亦有闕, 李岩 【岩, 戚里人, 曾爲淸州牧使時, 岩私減民結, 以爲自用物。 公賦雖縮, 而聞者以多貯稱之, 故斗壽力薦焉。】 可以當之。" 李山海曰: "公州最重, 必須得人。" 上曰: "元均之弟, 今何在? 有功之人, 而身且壯士也。" 德馨曰: "舜臣當初, 擠陷元均曰: ‘欺罔朝廷。 以十二歲兒子, 冒屬軍功’ 云, 而則曰: ‘之子年已十八, 有弓馬才’ 云。 兩人相詰, 則元均直而舜臣之說窮矣。"


  • 【태백산사고본】 54책 85권 2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159면
  • 【분류】
    군사(軍事) / 외교-왜(倭) / 인물(人物) / 왕실-국왕(國王) / 정론-정론(政論)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