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위무사 황신의 장계
경상도 위무사(慶尙道慰撫使) 황신(黃愼)이 장계에,
"당일에 우병영(右兵營)의 아병(牙兵) 송충인(宋忠仁)이 부산에서 돌아와 말하기를 ‘이달 12일에 청정(淸正)의 관하 왜선 1백 50여 척이 일시에 바다를 건너와 서생포(西生浦)에 정박했고, 13일에는 청정이 거느리는 관하의 왜선 1백 30여 척이 비를 무릅쓰고 바다를 건넜는데 풍세(風勢)가 순하지 못하여 가덕도(加德島)에 이르러 정박했다가 14일에 다대포(多大浦)로 옮겨 정박해 있는데 곧 서생포로 향한다고 한다. 평행장(平行長)이 송충인(宋忠仁)을 불러 말하기를 「조선의 일은 매양 그렇다. 기회를 잃었으니 매우 애석하나 이 뒤에도 할 일이 있다. 」고 하였다.’ 하였습니다. 수군이 차단하는 계책이 진실로 좋은 계책인데, 우리의 조치가 기일에 미치지 못하여 일의 기회를 그르쳤으니 매우 통한스럽습니다. 신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적 청정이 비록 이미 상륙했더라도 아직까지 영루(營壘)를 이루지 못했고 사졸이 새로 도착하여 돌과 재목을 나르는 왜적이 산과 들에 널려 있으니, 이 기회를 이용하여 급히 수군·육군의 방비를 신칙하여 몰래 군사를 내어 습격하고, 또 행장(行長)과 후히 사귀어 두 적이 서로 도모하게 하고 저들의 의구심을 인하여 계책을 행하면 우리의 뜻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만약 소굴을 만들고 적들의 세력이 더욱 성하게 되면 비록 백배의 힘을 들이더라도 실로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신은 우선 행장이 나오기를 기다려 형세를 보아가며 처리할까 합니다."
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3책 84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152면
- 【분류】군사(軍事) / 외교-왜(倭)
○慶尙道慰撫使黃愼狀啓:
當日右兵營牙兵宋忠仁, 自釜山回還言: "本月十二日, 淸正管下倭船一百五十餘隻, 一時渡海, 到泊西生浦; 十三日, 淸正率管下倭船一百三十餘隻, 冒雨渡海, 風勢不順, 到泊加德島, 十四日, 移泊多大浦, 將向西生云。 平行長招宋忠仁謂曰: "朝鮮事每每如此失機會, 可惜可惜, 然此後, 亦有所爲之事云。" 舟師把截之計, 固若善策, 而在我措置, 設不及期, 致誤事機, 極爲痛恨。 臣之妄料, 淸賊雖已下陸, 而目今營壘未就, 士卒新到, 搬石運材之倭, 散布於山野。 誠能趁此機會, 急飭水陸之備, 潛師以襲之, 且須厚結行長, 使兩賊相圖, 因彼致款, 將計就計而行之, 則我可以得志。 若巢窟已成, 彼勢旣盈, 則雖百倍其力, 而實未下手矣。 臣姑待行長出來, 觀勢周旋計料事。
啓下備邊司。
- 【태백산사고본】 53책 84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152면
- 【분류】군사(軍事)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