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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68권, 선조 28년 10월 22일 신유 3번째기사 1595년 명 만력(萬曆) 23년

평안도 군안 작성·얼음 위의 요새 설치·성 수비·포루 등에 대한 유성룡의 의견

겸사도 도체찰사(兼四道都體察使) 유성룡이 아뢰기를,

"평안도의 군병은 우의정 이원익이 감사로 있을 때에 이미 부서를 나누고 장수를 정하여 초관(哨官)·기총(旗摠)·대총(隊摠)을 두어 서로 통속하게 하고 포 쏘고, 창검 쓰는 기술을 가르쳐서 그 수효가 이미 많으니, 훈련을 거치지 않은 다른 도의 군사에 비하면 그 차이가 매우 큽니다. 이원익이 체직되어 돌아온 뒤에 연습하여 성취시키기를 옛규식을 폐하지 않고 잘 시행하는지 모르겠으며, 또 당초 분정(分定)한 초관·기총·대총을 모두 바꾸지 않았고 소속된 군사도 관연 이산(離散)됨이 없음을 보장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군사를 수치(修治)하는 조처는 단지 여기에 달려있으니 본도의 순찰사로 하여금 급속히 군안(軍案)한 책을 작성하여 훈련 도감에서 내려보낸 규례(規例)에 의거해서 마련하여 곧 올려보냄으로써 후일의 증빙자료로 삼게 하소서. 또 사변이 발생하여 조발(調發)할 때라도 마땅히 평상시의 부오(部伍)에 의하여 차차 조용(調用)할 것이요, 대오(隊伍)를 바꾸어 통속(統屬)을 떠나고 이 군사를 바꾸어 저 부대에 소속시켜 군사의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장수와 군사가 서로 알지 못하게 하여 다시 전일 문란하던 폐단을 답습, 군기(軍機)를 그르침이 없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강변은 형세가 가장 험요(險要)합니다. 우리 나라의 땅은 오랑캐의 땅과 서로 엇물려 있고 가운데 큰 강을 끼고 있는데 얼음이 언 뒤에 오랑캐의 기병이 얼음을 타고 돌진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벼랑이 험조(險阻)하고 계곡이 깊은 곳에 요새를 설치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만포(滿浦)고산리(高山里) 사이에 물길이 험한 곳이 있는데 적이 황성(黃城)을 경유하여 나오자면 반드시 이 길을 따라 벌등포(代登浦)로 나오게 됩니다. 고산리 아래 독로강 어귀, 위원(渭原)·임리(林里) 및 군(郡)의 뒤쪽 압록강 어귀, 산양회(山羊會) 동건강(童巾江) 어귀, 벽동(碧潼)·벽단(碧團)과 대소 길호리(吉號里) 등처가 모두 긴요한 곳이라 합니다. 이밖에도 반드시 지킬 만하고 웅거할 만한 곳이 있을 것이니, 주장(主將)이 임시하여 어떻게 조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얼음 위에 요새를 설치하는 일은 앞서 비변사의 아룀에서 대강 진달하였습니다. 대개 장강(長江)이 얼면 평탄한 길이 되어버리니 오랑캐가 말을 타고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으므로 중원에서는 요하(遼河)빙장(氷墻)328) 을 만듭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인력이 많이 들고 또 그 넓은 장강에 또한 곳곳마다 설치하기가 어려우니 강 어귀 산협(山峽)이 모인 곳에 두 언덕이 우뚝이 솟아 있고, 그 가운데 한 가닥의 길이 통한 곳이면 얼음 위를 가로 뚫어서 방책(防柵)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얼음 구멍에 가지 많은 나무를 벌여 세워 굳게 얼어 붙게 하여 온 강위에 6∼7겹을 설치하면 오랑캐의 기병이 감히 함부로 진격하지 못할 것이며, 우리 군사가 두 언덕으로부터 화기를 많이 발사하면 오랑캐를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곧 행할 수 있는 계책입니다. 대저 오랑캐 군사는 활 쏘기와 말 달리기에 능한 장기가 있고 화기에는 힘쓰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 군사가 조총·화전(火箭)·잡포(雜砲)를 많이 준비하여 미리 정밀히 연습하고 기회에 임하여 잘 사용하면 오랑캐의 군사가 아무리 많더라도 제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성을 지키는 방법에 있어서도 요령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성은 장벽(墻壁)과 성가퀴가 낮아서 적의 화살과 돌이 성위에 비오듯이 쏟아지면 성을 지키는 사람이 머리를 내밀지 못하므로 적이 반드시 성 아래에 바로 진격해 와서 성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오기도 하고 장추(長楸)로 성을 허물어뜨리기도 하여 잠깐 사이에 우리 군사가 제방(隄防)을 잃어 성을 지키지 못합니다. 중국인은 이 때문에 성벽에다가 반드시 현안(懸眼)을 만들어 성 아래의 적을 보는데 우리 나라의 성은 이러한 제도가 없습니다. 또 곡성(曲城)이 많지 아니하여 이를 방어하기가 극히 어렵습니다. 오직 큰 나무를 성 위에 가로로 가설하되, 2∼3 타첩(垜堞)의 거리로 떨어지게 하여 양쪽 머리를 밖으로 1척씩 나오게 하고 그 끝에 가로로 가설한 나무를 서로 연결하되 그 위에 방패(防牌)를 설치하고 지도리를 만들어 여닫게 하면 적의 화살과 돌을 막을 수 있고, 또한 성 아래의 적을 내려다 보고 치고 찌를 수 있습니다. 또 성의 제도가 굴곡이 진 곳에는 또한 방패를 설치하고 좌우와 전면에 구멍을 많이 뚫되, 마치 왜진(倭陣)의 토장법(士墻法)처럼 하여 대소의 포를 쏘는 것이 또한 묘법입니다.

고려 때에 박서(朴犀)구성(龜城)을 지킬 적에 적병이 생쇠 가죽으로 나무를 싸서 앞을 가리고 아래로 바로 진격해 오니 화살과 돌로는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박서가 쇳물을 녹여 쏟아부으니 잠깐 사이에 불탔습니다. 금(金)나라의 변성(汴城)이 몽고군에게 포위가 되었는데 몽고군이 바로 성 아래에 구덩이를 파므로 변성 성 위의 사람들이 쇠사슬로 진천뢰(震天宙)를 매달아 내리굴리자 성 아래에 불이 일어나 곧 무너졌으니 이것이 모두 성에 붙어 오르는 적을 막는 방법입니다.

무릇 장수된 사람은 예전에 이미 시행한 사적을 환히 알아서 계책이 먼저 정해지면 기계도 또한 예비할 수 있어 창졸간에도 조처에 실수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북 변성(邊城) 위에 반드시 고운 모래와 보드라운 재를 두게 한 것은 이를 뿌려 적의 눈을 못 뜨게 하여 감히 성에 오르지 못하도록 하려 한 것입니다. 이 계책은 장난에 가까우나 실로 유익하니 또한 준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강변의 여러 군읍에 용력이 있고 군사(軍事)를 잘 아는 토병(士兵)이 이따금 있으니, 어사가 내려갈 때에 이러한 사람을 모두 초치하여 주식(酒食)을 대접하면서 변방의 정황을 자세히 묻게 하고 병사(兵使) 또한 막하에 머물러 두어 체택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중에 군공이 있거나 심계(心計)가 있거나 재기(才器)가 있어 쓸 만하면 계문(啓聞)하여 포장(褒奬)하고 혹은 변보(邊堡)의 소임을 제수하여 변경 건아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도 해롭지 않습니다. 그 중에 김운성(金雲成)이 가장 공로가 있어 쓸 만한데 고산리 첨사(高山里僉使)에서 체직되었지만 이 같은 사람은 혹 별장으로 삼아 요해처를 지키게 하는 것도 불가할 것이 없습니다.

본도의 화약은 얼마나 저장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군사가 많으면 하루에 소용되는 수량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날 당염초(唐焰硝)를 의주·평양·영변(寧邊)에 나누어 둔 것이 수천 근이었습니다. 이것 또한 제때에 미쳐 다시 제련(製煉)하여 화약을 만들어 강변에 들여보내어야 합니다. 그런데 전해 듣건대, 의주에 있는 것은 오래도록 다시 제련하지 아니하여 반 이상이 녹아 버렸다 하니 참으로 애석합니다. 또한 모름지기 상고하여 서둘러 다시 제련하여 화약을 만들어서 강변 요해처에 나누어 보내어서 위급에 대비하도록 해야 합니다.

군기시 첨정 이원(李源)이 포루(砲樓) 만드는 것을 가르치는 일로 내려갔습니다. 우리 나라의 일은 그저 그럭저럭 날만을 보내므로 성과가 하나도 없습니다. 또 포루(砲樓)는 역사(役事)가 커서 쉽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다만 나무를 베어 기둥을 세우고 가운데 판벽(板壁)을 만들어 안으로부터 구멍을 내어 포를 쏘기에 편리하도록 해야 하며, 화공(火攻)이 두려우면 외면에 흙을 발라 벽을 만들어서 위급에 대비하는 계책을 하는 것이 가합니다. 만일 인력이 부족하면 도내의 승군(僧軍)을 적당히 조발하여 각처에 나누어 보내어서 양식대로 일시에 지음으로써, 늦어서 제때에 미치지 못하는 후회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포루를 완성한 곳에는 어사가 순시하고 또 포수로 하여금 쏘아보도록 하며, 성중 각처의 화포·화약·철환(鐵丸)의 다소를 살펴서 부족한 곳에 급속히 변통하여 나누어 보내야 합니다. 포루는 완성되었더라도 화포의 기구를 하나도 준비하지 않으면 장차 무엇에 쓰겠습니까. 창성(昌城) 청산 산성(靑山山城)의 군창(軍倉) 곡식의 다소와 구성(龜城) 편월 산성(片月山城)의 지형을 아울러 살펴서 치계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대저 조정에서 임시에 장수를 파견하는 폐단을 염려하여 서도(西道)의 일을 감사와 병사에게 오로지 위임하였으니, 일의 득실(得失)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습니다. 지금 어사가 가는 편에 각항의 내용을 명백히 알려 조정의 의도를 알리도록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41책 68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583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 [註 328]
    빙장(氷墻) : 얼음으로 만든 담.

○兼四道都體使柳成龍啓曰: "平安道軍兵, 右議政李元翼爲監司時, 已曾分部定將, 有哨官、旗總、隊總, 以相統屬, 敎之以砲殺之技, 其數已多, 比諸他道不經訓鍊之軍, 相去遠矣。 元翼遞來之後, 未知練習成就, 能不廢舊規與否; 且不知當初分定哨官、旗總、隊總, 皆未移易, 而所屬之軍, 亦果保無離散與否。 治兵條理, 只在於此。 令本道巡察使, 急速修正軍案一冊, 依訓鍊都監下送規模, 劃卽上送, 以憑後考。 且 雖事變調發之際, 當依平日部伍, 次次調用, 毋得換易隊伍, 離其統屬, 移此屬彼, 使軍心不定, 將卒不相知, 更蹈前日紊亂之弊, 以誤軍機爲當。 江邊形勢, 最爲險要。 我國之地, 與地, (大)〔犬〕 牙相錯, 中挾大江, 合氷之後, 騎雖乘氷馳突, 而山崖險阻, 洞壑成磎之處, 可以設險。 如滿浦 高山里之間, 有所灘, 賊由黃城以出, 則必從此路, 出於伐登浦高山里禿魯江口、渭原 林里及郡後鴨綠江口、山羊會童巾江口、碧潼碧團 大小吉號里等處, 皆係緊要云。 此外, 亦必有可守可據之處, 在於主將, 臨時處置如何? 氷上設險之事, 前於備邊司之啓略陳矣。 大槪長江若合, 則化爲坦途, 之馬足, 不可遮遏, 故中原於遼河, 爲氷墻, 此則人力多入。 且長江一望之地, 亦難處處設之。 惟於江口峽束之處, 兩岸斗絶, 而中通一條路, 則可以橫鑿, 品防於氷上, 而於氷穴, 列植多枝之木, 與氷水堅結, 滿江設爲六七重, 則虜騎不敢輕進, 而我軍從兩岸, 多發火器, 可以却。 此乃可行之策。 大抵虜兵, 長於弓馬, 而不事火器。 若我軍多備鳥銃、火箭、雜砲, 預爲精習, 而臨機善用, 則虜兵雖多, 似當制之。 至於守城之法, 亦有其要。 我國城子, 垜堞低淺, 賊之矢石, 雨集於城上, 則守城之人, 不得出頭。 賊必直進於城下, 或梯城以上, 或以長楸毁城, 頃刻之間, 我軍失於隄防, 而城不可守。 中國之人, 爲此於城垜, 必爲懸眼, 以見城下之賊。 我國城則無此制。 且曲城不多, 禦此極難。 惟當以大木, 橫設於城上, 相去二三垜, 使兩頭出外一尺, 其末, 橫木相連, 而上施防牌爲樞, 使之開閉, 則旣可以防賊矢石, 又可以下瞰城下之賊, 以施擊刺也。 且城制屈曲處, 亦當設防牌, 而左右前面, 多鑿孔穴, 如陣土墻之法, 以放大、小砲, 亦妙也。 高麗時, 朴犀開龜城也, 賊兵以生牛革, 裹木自蔽, 而直前城下, 矢石無可如何。 朴犀開鎔鐵液以灌之, 頃刻灰燼。 汴城, 爲蒙古所圍, 蒙古兵直坎城下, 城上人, 以鐵索, 懸震天雷以下, 火發於城下, 而卽爲糜爛。 此皆禦附城之賊之法也。 凡爲將者, 通知前古已行之迹, 計策先定, 則器械亦可預備, 倉卒不至失措也。 南、北邊城之上, 必置細沙、軟灰, 欲以眯賊目, 而使不敢登城。 此策近戲, 而實爲有益, 亦不可不備也。 江邊列郡土兵之勇力曉事者, 往往有之。 御史下去時, 此等人皆當招致, 饋以酒食, 詳問邊情。 兵使亦當留在幕下, 以備採擇。 其中有軍功, 有心計, 有才器可用, 則不妨啓聞褒奬, 或除邊堡之任, 以慰邊上健兒之心也。 其中金雲成, 最有功勞可用。 雖遞高山里僉使, 而如此等人, 或爲別將, 以守要害之處, 亦無不可。 本道火藥, 未知所儲幾何, 然若軍多, 則一日所用者, 其數不貲。 往日, 焰(焇)〔硝〕 分置於義州平壤寧邊者數千斤, 此亦當及時, 改煉劑藥, 入送于江邊, 而傳聞在義州者, 久未改煉, 太半消融, 誠爲可惜。 亦須相考, 督令改煉、合藥, 分(上)〔送〕 于江邊要害之處, 以擬緩急也。 軍器寺僉正 , 以敎作砲樓事, 下去, 我國之事, 悠悠度日, 一無見效。 且砲樓則役巨, 不可易爲。 只當斬木爲柱, 中爲板壁, 從內作穴, 使便放砲。 畏其火攻, 則外面塗土爲壁, 以爲救急之計可也。 若人力不足, 則道內僧軍, 量宜調發, 分送於各處, 依樣一時造作, 使無緩不及事之悔, 而已成之處, 御史巡視。 且令砲手試放, 又審城中火砲、火藥、鐵丸所在多少, 不足處, 急速推移分(上)〔送〕 。 若砲樓雖成, 而火砲器具, 一有不備, 則將何用焉? 昌城靑山山城內, 軍倉穀多少, 及龜城 片月山城地形, 竝爲看審, 馳啓爲當。 大抵朝廷慮臨時遣將之弊, 西道之事, 專委於監、兵使, 事有得失, 不可他諉。 今於御史之去, 以各項辭緣, 明白知委, 使知朝廷之意, 何如?"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41책 68권 29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583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