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변사에서 군국의 수용을 위한 작미(作米)와 훈련 도감 금군의 요미 마련책에 대해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전쟁이 일어난 이후로 군국(軍國)의 수용(需用)을 마련해 낼 길이 없습니다. 임진년부터 외방의 공물을 작미(作米)로 정하니, 백성이 내는 미곡이 많아져서 1결(結)에 혹 7∼8두에 이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뒤에 호조에서 작미(作米)를 항식(恒式)으로 정하여 2두씩을 내도록 하였으니, 민정(民情)이 원망하고 괴로와하는 지경에 이름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해조(該曹)에서 처치한 곡절이 혹 미진한 바가 있고 또 중국 사신과 장수들의 지대(支待)가 번거로와 민간에 별복정(別卜定)305) 함을 면할 수 없으며, 또 시장에서 무역하도록 독책(督責)하였으므로 사람들의 의논이 혹 그것을 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의심하기도 합니다. 지금 이 차사(箚辭)도 앞으로 계속하기 어려운 근심이 있을까 염려된다는 것이니, 지금 곡식이 천할 때에 해사(該司)로 하여금 금년에 납입해야 할 작미(作米)의 원수량을 기한 안에 독납(督納)하도록 하고, 이미 거두어 들인 뒤에 계속 시행할 것인지의 여부를 바야흐로 다시 의논하여 그 중에 변통할 것이 있으면 또한 뒤따라서 자세히 참작하여 구처해야 합니다.
훈련 도감에 소속되는 군사도 이미 액수(額數)를 정하였으니, 그 중에 금군(禁軍)으로 승진되어 금군의 요미(料米)로 6두를 받는 자는 더 지급해야 할 듯합니다. 그러나 양곡이 넉넉하지 못하여 충급(充給)하기가 어려운 형편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인원을 감하여 양곡을 더 주자니 군인의 수효가 너무 적어 모양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니 훈련 도감으로 하여금 호조와 협동해서 다시 상량(商量)하여 양곡을 계속 공급할 계책을 강구하게 하여 후회가 없도록 함이 마땅하겠습니다. 무예는 어느 한 쪽도 폐할 수 없으니 앞으로는 무사 및 포수·살수 등을 일체로 권장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서쪽 변경에 이미 근심스러운 단서가 있으니 우리의 비어하는 방도를 진실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안주 목사(安州牧使) 조호익(趙好益)은 비록 무장은 아니나 일찍이 사변의 초기에 군사를 모아 적을 토벌하였으니 이는 이미 시험해 본 사람이므로 바꿀 필요가 없고, 정주(定州)의 전 목사 김수남(金壽男)은 이미 그대로 잉임(仍任)하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밖에 요새를 지키고 형세를 이루는 등에 관한 일도 본도에 이문(移文)하여 거행하도록 신칙함이 마땅하겠습니다.
관서에서 연습하는 군사가 많지 않은 것은 아니니 서울의 포수를 뽑아 보낼 필요가 없고, 해서에 정예군을 이미 뽑게 하였으니 행장을 꾸려 기다리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러나 변경의 군량이 바닥이 났으므로 미리 첨방(添防)하기는 어렵습니다. 강화는 보장(保障)의 땅이어서 진실로 팔방을 공제(控制)하는 형세가 있으니 그 규모와 포치(布置)를 병조로 하여금 본사(本司)와 의논하여 사목(事目)을 마련해서 경기 관찰사에게 신칙하여 착실히 조치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겠으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상이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40책 67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565면
- 【분류】재정-공물(貢物) / 군사-중앙군(中央軍) /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
- [註 305]별복정(別卜定) : 어떠한 지방에서 나는 물건을 정례로 정해 놓은 것 외에 서울의 각 관아, 각도나 각군에 바치는 일.
○備邊司啓曰: "兵興以後, 軍國之需, 辦出無路。 自壬辰年, 外方貢物, 以爲作米, 民之所出米多, 一結或至七八斗。 其後, 戶曹定爲恒式, 令出二斗, 則民情無至於怨苦乎? 但該曹處置曲折, 或有所未盡, 且緣天使及唐將支待之煩, 未免別卜定於民間, 又致責貿於市上, 故人議或疑其難行。 今此箚辭, 亦慮有前頭難繼之憂, 趁此穀賤之時, 令該司, 將今年所納作米元數, 及期督納, 而旣捧之後, 可行與否, 方可更議, 其中可以通變處, 亦可隨後參詳區處也。 至於訓鍊都監所屬之軍, 已爲定額, 而其中陞授禁軍者, 受食禁軍之料, 受料六斗者, 似當添給, 而糧餉不敷, 勢難充給。 今欲減員而增糧, 則軍數太少, 無以成形。 令訓鍊都監, 協同戶曹, 更爲商量, 講求繼糧之策, 俾無後悔爲當。 武藝不可偏廢。 今後武士及砲、殺手等, 一體勸奬爲當。 西邊已有可虞之端, 在我備禦之方, 誠不可忽。 安州牧使曺好益, 雖非武弁, 曾於事變之初, 聚軍討賊。 此乃已試之人, 不須遞易, 定州前牧使金壽男, 已請仍任。 其他控扼形勢等事, 亦爲移文本道, 申勑擧行爲當。 關西鍊習之軍, 不爲不多, 不必抄送京中砲手; 海西精銳, 已令抄擇, 使之裝束待候則宜矣。 但塞上軍糧正竭, 亦難預爲添防也。 江華, 保障之地, 誠有控制八方之勢, 其規模布置, 令兵曹, 議于本司, 磨鍊事目, 申勑京畿巡察使, 使之着實措置宜當。 敢啓。"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40책 67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565면
- 【분류】재정-공물(貢物) / 군사-중앙군(中央軍) / 군사-군정(軍政)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