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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65권, 선조 28년 7월 2일 계유 4번째기사 1595년 명 만력(萬曆) 23년

사헌부가 올린 나라의 기반을 회복시키기 위한 시무 차자

사헌부가 【대사헌 김늑(金玏), 집의 신식(申湜), 장령 이철(李鐵)·정기원(鄭期遠), 지평 남이공(南以恭)·강첨(姜籤). 】 차자(箚子)를 올리기를,

"삼가 생각건대 《맹자(孟子)》에 이르기를 ‘우환에서 살고 안락에서 죽는다.’ 하였으니, 대개 안락이 죽게 하는 것이라면 1백 년 동안 안락했던 풍조의 화단이 더 이상 뻗치지 않을 것이고 우환이 살게 하는 것이라면 4년 동안 근로(勤勞)한 공효로도 삶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니 이는 필연적인 사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일을 끝내는 완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위급한 환란이 날마다 더 심해져 마치 물에서 헤엄치는 자가 점점 깊은 물로 들어가는 것과 같으니, 집사자가 장차 어떻게 계획을 세울 지 모르겠습니다. 대저 능묘가 연기에 휩싸이고 산하(山河)가 치욕을 당한 것은 천하에서 가장 원통한 것이고, 왜적이 바다를 점거하였는데 공수(攻守)의 계책을 잃은 것은 천하에서 가장 위태로운 것입니다. 천하에서 가장 원통한 일을 당한 처지에 천하에서 가장 위태로운 사태를 직면했으니, 마음을 가다듬고 기틀을 알선할 수 있는 자가 아니면 천하의 대업을 이룩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우환에 대해 깊이 생각하시는 것이 과연 마음에 부족함이 없으시어 살 수 있는 방도가 있다고 여기십니까?

대저 비색(否塞)함이 극도에 이르면 반드시 흥하게 되는 것은 천운(天運)이고 궁(窮)함이 극도에 이르면 반드시 돌아오는 것은 인정(人情)입니다. 그러므로 옛날 어진 임금은 비색함이 극도에 이르렀다 하여 스스로 단념하지 않았고, 궁함이 극도에 이르렀다 하여 스스로 의기 소침하지도 않으면서 자기를 반성하는 도리를 다하여 끝내 융흥(隆興)의 운수를 받았으니, 주(周)나라와 한(漢)나라의 중흥이 바로 그것입니다. 선왕(宣王)과 광무(光武)가 혼란한 시대에 힘없이 떠돌아 다니는 신세가 마치 진흙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끝내 천명을 돌이켜 구물(舊物)177) 을 수복한 것은, 대개 천명의 거취(去就)는 오직 인사(人事)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파천(播遷)한 후로 나라는 가시덤불에 싸였고 산천에는 시체가 즐비하며 온 세상이 잿더미가 되었으니 극도로 비색한 운수를 만나고 극도로 궁한 처지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밤낮으로 쇄신하고 분발하여 회복하려는 계획을 구함에 극도의 정성을 기울이고 있으니 융흥을 바랄 시기가 되었는데도 천심(天心)이 뉘우침이 없고 인모(人謀)도 훌륭하지 못하여 수습할 형세가 까마득히 보이지 않으니 신들은 망연 자실하여 또한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전하께서 서물(庶物)을 어루만짐에 덕으로 감싸지 않음이 없고, 여러 업무를 널리 재결함에 계책을 강구(講究)하지 않음이 없으시며, 군사를 기르고 군량을 조달하는데 그 방도를 잃지 않고, 재상을 임용하고 장수를 부리는데 그 방도를 얻으신 듯합니다. 그런데도 성의(誠意)가 드러나지 않고 위엄이 밝지 않아 민심이 태만하고 간사한 의논이 떼를 지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조정의 조치는 모두 안일로만 흘러 범범하게 세월만 보내고, 일을 함에 있어서는 주저하면서 시비를 따지는 사이에 앉아서 기회를 잃고 마니, 이것이 인사(人事)를 잘 닦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건대 회복의 기반은 뜻을 세우는 데 있고 회복의 실효는 정성을 다하는 데 있습니다. 뜻이란 마음이 가는 바로 옛 사람이 이르기를 ‘뜻이 있는 자는 일을 끝내 이룩한다.’ 하였고, 정성이란 진실하여 망녕됨이 없는 것으로 자사(子思)는 ‘정성이란 물(物)의 종시(終始)이니 정성스럽지 않으면 물이 없다.’ 하였습니다. 뜻이야말로 위대한 것이어서 뜻이 확립되면 삼태기의 흙으로 산을 만들 수도 있고 잔으로 물을 퍼서 바다를 이룰 수도 있는 것으로 천하에 이루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정성이야말로 지극한 것이어서 정성을 다하면 금석도 뚫을 수 있고 금수도 믿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천하의 물건이 나의 교화에 감화되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전하께서 참으로 이 뜻을 세우고 이 정성을 다하면 반드시 흥륭할 운세가 전하의 손에 들어올 것이며 중흥의 대업이 분명히 한번 마음 갖는 데에 이룩될 것입니다. 신들이 언관(言官)으로 있으면서 놀라운 생각으로 속이 타고 절박한 근심을 스스로 억제할 수 없기에 삼가 10여 조목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여 전하께서 채택하시는 데 도움을 드릴까 합니다.

대저 정치란 반드시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근본해야 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데는 학문에 힘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으므로, 옛 사람들은 경서의 강론을 제왕의 성절(盛節)로 삼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이는 대개 마음을 보존하고 정치를 하는 근본이 이 속에서 나오지 않음이 없기 때문인데, 더구나 이처럼 비색한 때에 모든 일이 처리하기 어려워 진퇴가 곤란하고 가부(可否)가 의심스러운 데이겠습니까. 만약 성현의 성법(成法)을 참고하여 사리(事理)의 당연함을 밝히지 못한다면 호리의 차이가 천리로 어긋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자(程子)가 ‘어려운 시기에 처하여 정당함을 지키고 변하지 않을 수 있는 자가 드물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학문을 강론하는 일은 세상이 혼란할 때에 더욱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불행한 시대를 만나 혼란한 와중에 고립되어 있으면서도 문학(問學)하는 아름다움을 잊지 않으시어 다시 경연(經筵)을 개설하고 유신(儒臣)들을 나오게 하여 의리를 강론하는 한편, 중요한 정무를 살피심에 모든 논의를 온당하게 하겠금 하셨으니, 근본이 어지럽혀지지 않아 길흉 존망을 알아 정도(正道)를 잃지 않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학문에 나아가는 요체는 중단함이 없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하늘의 건(健)함을 본받아 자강 불식(自强不息)하는 것이니, 잠시라도 계속하지 않으면 전일의 공로도 또한 내 것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밤낮으로 근신하며 두려워하는 것이 과연 자강 불식하는 도리에 부끄러움이 없으십니까? 더구나 학문하는 방법은 정밀하게 가리는 데 있으니, 만약 부정한 말을 때로 받아들이면 정밀하게 생각하는 심술(心術)에 혼잡스러움이 없지 않아 정도(正道)를 크게 해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밝게 분변하고 멀리 배척하여 그 뿌리를 단절해야 됩니다. 아, 어느 것인들 학문이 아니겠습니까마는 시무(時務)가 가장 급합니다. 만약 시무를 간절히 하지 않으면 어떻게 공효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지금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은 반드시 중흥(中興)했던 시대인데 당시 군신(君臣)의 행적이 서책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홍문관과 예문관의 신하에게 특별히 명하여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만을 뽑아 한 권의 책을 만들게 하소서. 그리하여 좌석의 오른쪽에 놓아두고 경학을 강구하는 여가에 때때로 펼쳐보며 조심스럽게 깊이 성찰하면 대본(大本)과 급무(急務)에 모두 결함이 없게 되어 학문하는 방법에도 내실을 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저 임금은 온 백성을 길러 백성의 부모가 되고 온 백성을 가르쳐 백성의 스승이 되어 한 시대의 사람을 거느리고서 대도(大道)로 함께 나가는 것이니, 그 가르치고 기르는 책임이 이미 중차대합니다만, 더욱 중차대한 것이 있습니다. 세자는 임금의 후계자인 동시에 나라의 근본이니 덕업(德業)을 성취시켜 후일의 임무를 부탁할 바탕을 이루신다면 전하께서 부모로서 기르시고 스승으로서 가르치는 것이 완벽하여 잘못됨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양(敎養)하는 방법은 궁료(宮僚)를 잘 선발하고 스승을 널리 취택하여 덕(德)을 기르고 도를 행하여 대업을 성취하게 하는데 불과하니, 그렇다면 격언(格言)을 깨우치고 정사(正事)를 수응하여 기질을 도야하고 성정(性情)을 함양케 하는 것은 다른 곳에서 구할 것이 아닙니다.

생각건대 대통(大統)의 후계가 이미 세자에게 있는데 보양의 기구는 대부분 소략합니다. 동궁의 관원이 다른 관직을 겸직하여 보양에 전념하지 못하면 궁료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고 세자를 가르친다는 명목만 걸어놓고 상관하지 않는다면 스승으로서의 책임을 모두 거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론은 과루(寡陋)함을 면치 못하고 과정(課程) 역시 단절되는 병통이 있어 장차 공업을 성취시키는 데에 미진한 점이 있게 될 것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이조에 신칙하시어 시강관(侍講官)을 신중히 선발하게 하는 한편 재상들에게 널리 문의하여 초야에 있는 어진 사람을 등용하여 학식 많은 노인이 서연에 참석하고 선비가 경서를 강론하여 스승을 높이고 벗을 친근히 하는 마음을 계발시키고 효·인·예·의(孝仁禮義)의 도를 돈독케 하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전후 좌우가 모두 단정한 사람들이어서 일상생활의 행동이 모두 법도에 맞게 되어 학문이 고명해지고 사업이 홍대(弘大)해질 것이니, 성왕(聖王)이 되는 공효(攻效)가 거의 여기에서 근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 일을 미루어서 왕자들을 가르친다면 또한 의방(義方)을 준수하여 처신(處身)하는 모든 도리를 잃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지난날 왕자가 불의한 짓을 하고 궁노(宮奴)가 작폐하자 대신을 책망하여 탄핵케 하셨으니, 이렇게 조처하신 전하의 마음이 역시 앞으로 흥복(興復)시킬 길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집니다. 황해도는 임금이 계신 곳에서 꽤 떨어져 있으므로 금령(禁令)이 소활하고 폐단이 많이 일어나 백성의 원망이 잦고 유언 비어가 자주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비록 시위(侍衛)하는 신하들이 소홀히 한 잘못으로 인하여 초래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된 것이 어찌 이유가 없겠습니까? 원컨대 중전(中殿)을 돌아오게 하여 서울로 모시고, 또 왕자로 하여금 공순한 태도로 학문에 열중하게 하면, 보양하고 가르치는 방법이 각기 내실(內實)을 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저 군국(軍國)의 사무는 본말(本末)이 호번(浩繁)하여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정사를 부지런히 해도 임금 혼자서는 다스릴 수 없으므로, 반드시 대신이 직접 맡아서 총괄하여 처리한 다음에야 일이 조리가 있고 기강이 자연 확립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이른바 비변사라는 곳은 대신과 여러 재상들이 한 관청에서 일을 공동으로 처리하느라 자리를 맞대고 앉아서 논의가 분분하고 그 부첩(簿牒)이 백 가지 천 가지도 넘지만, 그 실효를 따져보면 한두 가지도 못됩니다. 이는 대체로 직책을 맡은 것이 혼잡하고 일을 처리함이 잘못되는 데서 오는 실수인 것입니다. 만약 대신으로 하여금 모든 의논을 총섭하게 하고 제재(諸宰)는 각사(各司) 별로 분담시켜 일에 따라 지휘하게 함으로써 그 공효를 이루도록 하되, 만약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혹 격문(檄文)으로 불러 꾸짖기도 하고 혹 계품하여 치죄케 하여 그들로 하여금 부지런히 직무를 살펴 각자 자기의 재능을 다하게 하면 요강을 제설(提挈)하는 도를 거의 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천지(天地)가 서로 만나지 못하면 만물이 생기지 않고 군신(君臣)이 서로 만나지 못하면 정치가 흥성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대저 군신의 의리는 구차히 영합하는 데 있지 않고 오직 현군과 현신이 서로 만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에 《주역(周易)》에서 ‘대인(大人)을 보는 것이 이롭다.’고 한 것입니다. 정의(情意)가 융통하여 일체(一體)로 합하게 되면 팔 다리와 심복이 되고, 함께 모여 지기가 서로 통하면 바람이 범을 따르고 구름이 용을 따르듯하여 호오(好惡)가 능히 그 뜻을 옮기지 못하고 참소가 능히 그 뜻을 현혹시키지 못할 것입이다. 그런 다음에 임무를 맡겨 성공을 요구하면 치도(治道)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더욱 재신(宰臣)을 숭중(崇重)해 주시어 세세한 업무는 맡기지 말고 바른 말과 계책을 들어주고 써주시어 즐거움과 슬픔을 함께 하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정신이 모아져서 천지가 서로 융합하고 요체를 쥐고서 번잡한 업무를 처리하여 덕이 널리 퍼져 조정의 체통이 이로부터 높아질 것입니다.

《시경(詩經)》에 ‘문무(文武)를 겸비한 윤길보(尹吉甫)가 만방에 모범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모든 관리에게 모범이 되어 각각 직분을 다하고 밤낮으로 부지런히 임금을 섬기게 한다면 《중용(中庸)》의 ‘대신을 공경하고 여러 신하를 자기 몸처럼 여긴다’고 한 두 가지를 일거에 극진히 하여 중서성(中書省)에 위임하는 방법이 그 실효를 거둘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대저 총괄하는 권한은 원수(元帥)가 가장 크고 경리(經理)하는 임무는 방백(方伯)이 가장 절실하니 왕성 밖의 일은 모두 책임을 져야 하는데도, 원수부(元帥府)의 업무를 모두 등한시하여 포치(布置)한 절목(節目)을 오랫동안 거행하지 않고서 다만 진영의 장계만을 모아 임금에게 보내니, 이는 남을 위해 말을 전달하는 자일 뿐입니다. 또 일을 잘못 처리한 죄가 있으면 그의 위신이 이미 떨어져 한 자리 좌중도 진압하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남에게 호령을 하겠습니까. 각도의 순찰사(巡察使)나 선위사(宣慰使)로 말하면 재능이 부족하여 교련과 조달하는 일을 잘 주선하지 못하고, 혹은 제한된 관할 지역에 구애되어 다른 고장까지 미루어 돕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 잘 다스려지지 않는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니, 팔도의 혼란을 어느 때에 수습하겠습니까?

아, 명망과 공론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옛 사람들도 걱정한 바인데, 작위로 볼 때 우리 나라가 더욱 심합니다. 대신의 지위로서 재간과 명망으로 진압한 뒤라야 인심이 경동(警動)되는 바가 있고 사무도 처리할 수 있어 조리가 마땅하게 되고 모든 사람의 이목이 일신되어 남쪽 변방의 일도 거의 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난처한 일이 더욱 많은 이때 위급한 즈음에는 멀리서 제어하기 어려워 일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 호흡하는 사이에 달려 있으니 내려가 다스리는 시기를 지체해서는 안 됩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널리 중의(衆議)를 채택하고 명쾌하게 결단을 내려 체찰사의 총재(摠裁)하는 권한을 중히 하여 남쪽 백성들의 숙원에 부응해 주소서. 그렇게 되면 위명을 받들어 그 힘을 다해서 모든 조처가 온당하게 되고 기강이 저절로 확립되어 감사 이하가 각자 자기 직책을 충실하여 민심을 안정시키고 적의 마음을 두렵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밖의 둔전(屯田)과 연병(鍊兵)하는 일도 모두 조리(條理) 속에 있게 될 것입니다. 원수(元帥)로 말하면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폐단만을 더할 뿐이니, 그대로 존속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변방을 계획하고 대중을 진정하는 방법에 내실을 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저 병사와 수사 등 여러 진영의 장수들은 국가에서 간성(干城)으로 의지하고 있는 자들인데도 토끼 한 마리 잡을 만한 재능은 없고 빠져나갈 구멍만 찾는 쥐의 추태만을 가져 흉적이 접근해오면 조적(祖逖)의 채찍178) 을 잃어버리고 도발해 올 걱정이 조금만 늦춰지면 전단(田單)의 삽179) 을 내던지고 맙니다. 산골짜기에 임시로 진을 치고 나뭇가지로 울타리를 설치하는 짓도 아니하는가 하면 사사로이 군졸을 돌려보내어 적의 길을 모두 터놓아 주는 등 제멋대로 하는 것이 습성이 되고 전쟁에 관한 일은 말하기조차 꺼려합니다. 그러므로 벼슬이 높을수록 제몸을 아껴 겁많은 자는 금대(金帶) 중에서 나오는데 기세만은 대단하여 서로 버티어 장수들 사이에서 흔단이 일어나며, 적을 구경만 하고도 공을 도모하여 도리어 분쟁의 단서가 되고 있습니다. 비록 조정의 명령으로도 금단(禁斷)할 수 없어 결국 위치를 바꾸어 배치함으로써 멀리 피하게 하는데, 이것은 바로 여염의 필부가 싸움을 말리면서 두 사람만 떼어 놓는 것과 같은 격입니다.

더구나 제도상으로는 순찰사(巡察使)의 절제를 받는 몸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능멸하려는 계책을 품어 장황하게 분개한 어투로 여러 번 임금의 위엄을 범하였건만 조정에서도 어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기강이 이미 이 지경이 되었으니 장차 어떻게 장수를 잘 통솔하여 반드시 나의 쓰임이 되기를 바라겠습니까. 장수가 교만하고 군졸이 나태한 것은 병가(兵家)의 금기이니, 한 사람을 버려 천 사람의 쓰임을 얻는 것이 또한 오늘의 급무입니다. 그중에서 더욱 불량하고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를 가려 법에 의해 처단함으로써 군문(軍門)의 이목을 경동케 하는 것은 그만 둘 수 없는 일입니다.

아, 옛적의 장수들은 대부분 학식이 있었으므로 몸가짐을 반드시 삼가고 전쟁터에 나아가서는 반드시 용감스러워 세상에 제일가는 공로를 세웠습니다. 우리 나라 장수들은 병기만 잡아 보았을 뿐 책은 한번도 읽어보지 않아 문무(文武)의 업(業)이 판이하게 둘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리하여 한결같이 무식하기만 하여 어자(魚字)와 노자(魯字)도 분별하지 못하여 일을 당하거나 적을 대했을 때에는 혼자 망설이며 두려워서 꼼짝도 못하고 있으니, 저 변화 무궁한 진법(陣法)의 형태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렇다면 비록 초당(貂璫)180) 을 쓰고 있다 해도 한 명의 군졸에 불과할 뿐이니 어떻게 장수라고 하겠습니까.

원컨대 전하께서는 비변사에 특명을 내리시어 널리 공론을 채택하고 장수가 될 만한 인재를 선발하게 하소서. 그리고 그가 읽은 책을 기록하고 과목을 배정하여 강습을 시켜 등수에 따라 상과 벌을 주게 하면 장수의 자질이 크게 변화하여 괄목 상대하게 될 것이니, 어찌 오(吳)나라에만 여몽(呂蒙)181) 이 있겠습니까. 나아가 유신(儒臣)들도 병법을 익힌다면 더욱 원대한 계획이 되는 것이니 마땅히 진작시키는 규정을 만들어 일체를 거행하게 하면 장수를 제어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방법이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저 친민(親民)하는 관리로는 수령만한 자가 없으니, 백성의 고달픔과 즐거움이 모두 수령의 손에 달려 있는데도 자상한 자는 대체로 적고 못살게 구는 자가 너무도 많습니다. 혜택은 고갈되고 각종 명목의 세금이 잡다하여 온 집안의 비용을 가난하고 외로운 자에게 독촉하여 마련케 하고 상납하여 아첨하는 자금을 의지할 곳 없는 자에게 갈취하는가 하면, 귀중한 재화를 강제로 빼앗아 자기의 생업(生業)을 경영하고 토지와 가옥을 배치하여 공고(鞏固)한 자기의 터전을 만드느라 침탈하는 재앙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피부를 다 벗겨먹고 나자 이제는 고혈을 쥐어짜고 있으니, 길에 나뒹구는 시체의 정상이 참혹합니다. 조정에서도 권선 징악의 법을 명시하여 백성을 보호하는 기반을 마련하려고 범죄가 발각되는 대로 왕옥(王獄)에서 죄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논하는 관원이 사실을 밝히는 데 소홀하여 심상하게 신문하고 있으니, 생각건대 끝내는 모두 죄를 용서받고 안면을 바꾸어 다시 벼슬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요즘처럼 한다면 아(阿) 대부와 즉묵(卽墨) 대부182) 가 뒤섞여져서 똑같이 될 것이고 제 위왕(齊威王)의 정확(鼎鑊) 역시 억울하게 죽이는 도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어떻게 탐관 오리를 금지시켜 민심을 복종시키겠습니까.

원컨대 전하께서는 해조(該曹)에 엄히 명하시어 적임자를 널리 선발하게 하되 임명할 때에는 한결같이 공정을 기하여 자급(資級)을 불문하고 다만 그의 재간과 검소함을 제일로 삼게 하여 변방의 방어 지역이 아니면 모두 무관으로 임명하지 말게 하소서. 그리하여 명칭에 따라 실제적인 것으로 책임지워 각자 성의를 다하게 한 다음, 공로가 가장 두드러진 자는 임금의 병풍에 이름을 올리고 지나치게 탐학한 자는 장적(贓籍)에 넣으소서. 한번 상주고 한번 벌주는 것이 모두 정당하게 되면, 인재를 선발하여 백성을 편안히 하는 방법이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저 전쟁을 하는데 있어서는 군량이 우선이므로 옛 사람이 이르기를 ‘저축된 군량이 없으면 이는 영토를 버리는 것이다.’고 하였으니, 군량이 떨어지면 영토를 보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변란이 일어난 이후로 부고(府庫)는 잿더미로 화했고 전야는 쑥밭이 되어버려 한두 말의 식량도 마련할 길이 없게 되었으니, 그 많은 군량을 무슨 수로 조치하겠습니까. 이런 까닭에 조정에서 처리하는 방법으로 하책(下策)을 쓰지 않을 수 없었으니, 모속(募粟)을 권하는 문서가 열읍(列邑)에 빗발치고 독촉하는 사신이 제로(諸路)에 바쁘게 달리어 가난한 집도 빠뜨리지 않고 상공미(常貢米)를 내게 하고 권문 세가나 호족들에게도 대동미(大同米)로 군량을 징수하여 다방면으로 모집하고 아주 적은 것도 가리지 않았으니, 군량을 조달하는 방법은 미진한 점이 없었던 듯합니다. 그러나 더러 사사로이 사자(使者)의 수중에 들어가기도 하고 열읍의 백성들 사이에서 축이 났는데도, 호조에서는 군량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살피지 않고 방백은 군량이 많고 적음을 알지 못한 채, 멋대로 사용하고 되는 대로 낭비하여 나라의 용도로 쓰려고 보면 이미 하나도 없으니, 피폐된 집에서 강제로 징수하는 폐단은 많고 사가(私家)에 더해주는 폐해는 한이 없습니다.

아, 둔전(屯田)에 대한 일은 전일 조치한 방법과 비교해 보면 공사(公私) 양쪽에 모두 편리한 이익이 있긴 하지만, 중외(中外)가 농사를 힘써 짓지 못하여 가을에 수확한 것이 도리어 종자(種子)만큼도 되지 못하니 1년의 소득을 계산해보았자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명년의 농사를 잘지어서 국가의 수요를 보충하려고 하니, 이는 매우 긴급한 일입니다. 다만 공전(公田)의 이로움은 오직 민력(民力)을 빼앗지 않는 데 있으니, 진실로 스스로 진력하지 못하게 하면 생활이 곤궁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인정(人情)과 사세가 차츰 전일과 달라져서 파리한 노인까지도 농기구를 가지고 밭두둑에 올라가 생업을 도모하지 않는 자가 없으니, 비록 토지의 크고 작은 차이는 있으나 스스로 진력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 김매는 것은 각각 시기가 있는 것으로 몇 일만 늦어져도 그 시기를 잃기 때문에 농민들은 하루를 1년처럼 아쉬워합니다. 만약 책임을 맡은 자가 일을 진척시키는 것만 중시하고 이점을 살피지 않는다면 천시(天時)를 어기고 인심을 거슬려 공적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구나 직책을 게을리하고 비용만 허비한다면 되겠습니까.

대저 내외(內外)의 조달하는 책임을 맡은 자들이 대부분 아랫사람에게 빼앗아 윗사람을 도와주고 있는데, 이것이 비록 눈 앞의 일이 다급하여 부득이하게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은혜를 버리고 원망을 사서 소득이 손실을 보충할 수 없으니, 국가에서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잘 경리(經理)할 것을 생각하시어 반드시 적임자를 선발함으로써 공사(公私)가 서로 침해받지 않게 하고 경중(輕重)이 서로 평형에 어긋나지 않게 하소서. 그리하여 백성의 환심을 얻고 농사를 잘 짓게 하여 변방에 곡식을 저축하고도 남을 정도가 되면 국가와 백성을 이롭게 하는 방법이 내실을 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저 군대는 반드시 조련을 해야 정예스러워집니다. 옛 사람 중에 국가를 잘 보호한 자는 반드시 조련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았으니, 군대로 하여금 손으로는 무기 사용에 서툴지 않게 하고 몸으로는 동작하는 방법에 어둡지 않게 하며 귀와 눈으로는 종소리 북소리와 깃발의 지휘에 익숙하여 혼란하지 않게 하고 마음으로는 적의 목을 베고 죽이는 데 안정되어 겁내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갑작스러운 변고가 있어도 놀라 무너지는 데 이르지 않았으니, 이는 그 몸과 마음에 미리 작정된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는 난리를 평정하는 데 뜻이 간절하고 군대를 조련하는 데 마음을 두셔서 부박한 의논을 통렬히 배격하고 특별히 교국(敎局)을 설치하여 교사(敎師)에게 부탁하여 조련시키기도 하고 초관(哨官)에게 맡겨 통솔케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금원(禁苑)에 행차하시어 그들의 서투르고 익숙한 정도를 시험하여 순위를 매기고 상과 벌을 주어 권징하게 하였으므로 마을의 어린 아이들까지도 칼을 가지고 장난을 치니, 이 또한 10년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뜻입니다. 다만 떠돌이 군사들이 대부분 항오(行伍)에 섞이고 쓸데없는 군졸이 군량만 허비하고 있는데 증거할 만한 병적(兵籍)이 없어 정작 용감한 자들은 농촌에 묻혀 있고 군정(軍政)은 기강이 없어 출신(出身)한 무리가 평상에서 누워 쉬고 있습니다. 스스로 법망을 빠져나가 있는데도 단속할 길이 없어, 그들을 훈련시키는 것도 감히 바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막상 위급한 시기를 당하여 써먹을 수 있겠습니까?

아, 전투 기술을 익히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고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이 실로 어려운 일이니, 진실로 목숨을 바칠 뜻이 미리 정해지지 않았다면 어찌 위태로움을 무릅쓰고 전투에 참여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옛날 훌륭한 장수는 수중(手中) 병기의 예둔(銳鈍) 여하를 귀하게 여기지 않고 오직 마음 속의 용맹과 의리를 취하였으니, 이것은 대개 백성에게 전쟁에 임하여 반드시 목숨을 바치는 의리를 가르친 뜻인 것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옛 사람이 가르친 방법을 살펴보고 전일 궤산된 환란을 징계하여 은혜와 위엄을 병행토록 함으로써 부오(部伍)를 정비하고 모든 동작을 오직 상관의 명령에 따르게 하소서. 그리고 임금에게 충성하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도리와 윗사람을 공경하고 어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의리를 대략 뽑아서 책을 만들어 마치 향사 독법(鄕射讀法)의 준례처럼 수시로 가르치소서. 그렇게 되면 적을 토벌하고 원수를 갚아야 하는 이유가 귀에 익숙해지고 마음에 깨닫게 되어 적과 대전할 때 솜씨대로 무기를 사용할 수 있어 도망치거나 구차히 살아 남으려는 병통이 없어질 것이니, 군대를 교련시키는 방법이 내실을 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대저 하늘이 중흥의 운세를 열어놓을 때면 반드시 인재를 내게 마련인데 역대 이후로 모두 그러했으며 현재도 징험할 수 있습니다. 생각건대 전하께서는 난리를 당해 어진이를 생각하느라 측석(側席)하여 탄식하면서 만나지 못할까 염려하고 계시는데 어쩌면 인재를 얻기가 이다지도 어렵단 말입니까. 옛 말에 ‘구슬은 발이 없는데도 이르게 되는 것은 사람이 좋아하기 때문이다.’고 하였으니, 좋아하지 않는다면 모르거니와 좋아하기만 하면 이르지 아니함이 없으므로, 옛날 어진 임금은 인재가 없음을 걱정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이 지극하지 못할까를 걱정했던 것입니다.

후대에는 인재를 양성하지 못하여 인재가 없는데다가 전쟁으로 훌륭한 인재가 거의 죽어버리는 까닭에 그 시대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거의 없는 형편입니다. 그런데다가 또 임용할 때에도 그 방법이 잘못되어 혹은 충성을 다하도록 충분히 대접하지 못하거나 혹은 성과를 책임지도록 제대로 위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 고조(漢高祖)가 3명의 호걸을 논한 일도 대장군의 단(壇)을 쌓지 않았을 때에는 들리지 않았고, 문종(文種)과 범여(范蠡)에게 사방을 봉해주며 부탁한 일도 수레바퀴를 떠밀기 전에는 행해지지 않았습니다. 상과 벌이 정당성을 잃고 등용하고 축출하는 것이 정도에 어긋나면 시변(時變)을 정확히 아는 자로서 그 누가 경솔하게 나아가 화를 자초하는 행동을 하려 하겠습니까.

아, 인재가 태어나는 것은 지위와 문벌을 가리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연못에도 용(龍)이 숨어 있을 수 있고 텅빈 골짜기에도 난초가 필 수 있으니, 요는 미천한 사람 중에도 훌륭한 인재가 있을 경우 그를 뽑아 존중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재능이 있는 것은 마치 옥이 박옥[璞] 속에 있어 버리면 기와나 자갈에 불과하지만 갈고 닦으면 좋은 옥이 되는 것과 같으니 그 좋은 바탕을 인하여 닦아내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날의 제왕들은 위수(渭水) 가에서 구하기도 했고 시골 초려(草廬)에서 구하기도 했으며 아전 중에서 찾기도 했고 군졸 가운데에서 구하기도 하여 끝내 흥운(興運)을 도와 이룩하게 하여 천고에 아름답게 빛이 났던 것입니다. 만약 정성으로 구하여 적소에 등용하지 못했다면 강 태공(姜太公)은 끝내 낚시질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고 제갈 공명(諸葛孔明)은 농부로 늙었을 것이며, 소하(蕭何)와 조참(曹參)은 도필리(刀筆吏)로 곤궁하게 지냈을 것이고 오한(吳漢)과 가복(買復)은 포학한 무리로 궁핍하게 지내면서 천지간에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사람을 알아보는 총명을 미루고 어진 사람을 구하는 정성을 다하여 취할 만한 자가 있다면 세속 의논에 구애되지 말며 이미 공로가 있으면 남의 말에 미혹되지 마소서. 그리고 바로 이조에 명하시어 파격적으로 수용하기를 마치 훌륭한 목수가 수레바퀴 만들 만한 재목은 수레바퀴를 만들고 통을 만들 만한 재목은 통을 만드는 것처럼 적소(適所)에 임용하면, 당대의 인재로 당대의 일을 완성할 수 있어, 인재를 구하여 적소에 등용하는 방법에 내실을 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저 직언(直言)을 구하는 이유는 임금 자신의 시청(視聽)을 통하게 하여 천하의 옹폐(雍蔽)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귀와 눈이 가리워지면 몸이 가는 곳마다 넘어질 것인데, 더구나 험준한 곳을 만나서 안전할 자가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이러한 난세를 만나 모든 어려움이 중첩되어 있으니, 앞에는 독사가 있고 뒤에는 깊은 구덩이가 있는 형세여서 매우 위험한 처지를 당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사방을 널리 살피는 총명으로 전철(前轍)를 따른다 하여도 혹 위험한 길에서 넘어지는 것을 면하지 못할텐데 더구나 꼭 이처럼 한다고 할 수 없는 것이겠습니까.

전하께서 위엄을 낮추어 널리 나무하고 꼴 베는 자들의 말도 채택하고 신하들을 대면하여 메아리처럼 수응해 주신다면 언로(言路)가 열리는 것이 성문 안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온순하고 나약한 풍조가 만연되어 한갓 순종하는 습성만 있을 뿐, 임금이 허심 탄회하게 받아들이는 아름다움을 이루게끔 도와주지 못하고 있으니, 이는 조정에 있는 신하가 책임져야 할 것이지만 전하께서도 직언을 구하는 요령을 다하지 못한 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 옛적에 직언을 구하는 자는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또 즉시 시행했고, 시행할 뿐만 아니라 또 즉시 상을 주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중인(中人) 이하도 두려워하여 주저하는 바 없이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았으므로 여러 훌륭한 말들이 모두 모여들어 모든 업무가 잘 처리되었으니, 이는 실로 직언을 들어준 결과인 것입니다. 전하께서도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직언을 잘 들어주고 계십니까? 우선 한 가지 일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번에 대관(臺官)이 글을 올려 억울하게 죄받은 자를 신원(伸冤)해 주기를 청한 것은 무도한 흉적이 이미 진신(縉紳) 가운데에서 나왔고 망극한 간인(奸人)이 스스로 함정을 파놓았으므로 횡액에 걸려들어 지하에서 원통해 하는 자가 말할 수 없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늘에 호소해도 들어주지 않고 인심이 크게 붕괴되어 있는 상황에서 위로하여 응답해 주는 길은 오직 누명을 씻어주는 한 가지 일에 있으니, 말씀드린 내용은 꼭 시행하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대신에게 명하여 ‘명백하게 상의하여 아뢰라.’ 하신 분부로 보면 그 말을 진정 받아들이신 것이라 하겠는데, 조정의 의논이 귀일되고 난 뒤에도 끝내 시행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직언을 시행하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원컨대 전하께서는 국사에 어려움이 많음을 굽어 살피시고 여론이 혹시 답답해 할까 깊이 두려워하시어 직언을 다하도록 유도하고 채택된 말은 반드시 시행하는 한편 상을 주어 직언을 하도록 하고 말하지 않는 자에게 벌을 주신다면, 따르기만 하던 습관이 거꾸로 충언을 하게 되어 모든 일의 실정이 모두 전하의 눈 앞에 모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간언을 따르고 어기지 않는 방법이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저 인심의 동요가 적국의 침입보다 더 참담하여 잠깐 사이에 흥폐(興廢)가 즉시 판가름나고 맙니다. 그러므로 주 선왕(周宣王)의 수고로운 자를 위로하고 찾아오는 자를 받아들이는 정치가 측신 수행(側身修行)하던 때보다 먼저 행해졌고 등우(鄧禹)의 힘써 인심을 기쁘게 하라는 말183) 이 장책(杖策)하던 날 첫 번째로 나왔으니, 이는 백성을 어루만져 편안하게 하는 도는 잠시라도 늦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대를 잘못 만난 백성들이 이러한 병란을 당해 휘두르는 칼날에 찔려 온몸은 상처 투성이고 시체가 즐비한 가운데에 고자(孤子)와 과부가 온 나라에 가득하여 굶주리고 파리한 상태가 극도에 이르렀는데 군량 수송까지 독촉하니, 아마도 연못의 기러기가 슬피 운다는 비유184) 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백성들이 근심하고 원망하는 소리가 이미 저 하늘에 닿아 배반할 마음을 그 눈섭만 보아도 살필 수 있으니, 어찌 오늘날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남쪽의 장졸(將卒)들은 오랫동안 전쟁터에 머물러 있으므로 편안만을 추구하고 사기가 저하되어 마치 하상(河上)에서 소요하던 정(鄭)나라 군대 꼴을 면치 못하였으나, 풍우를 무릅쓰고 산이나 물가에 머물고 있으니, 풍찬 노숙(風餐露宿)의 고통이 심하다 하겠습니다.

인정(人情)을 곡진하게 표현한 것은 시(詩)보다 간절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동산(東山)185) 은 혼인(婚姻)의 즐거움을 기술하였고 체두(杕杜)186) 는 부모의 걱정을 서술하였으니, 애처롭고 측은한 마음이 자기가 직접 당한 정도만이 아닙니다.

아, 백성들의 마음이 지극히 어리석으면서도 영특하여 감발(感發)되는 단서(端緖)가 그림자나 메아리보다 빠르므로, 산동(山東)에서 조서를 반포하자 늙고 쇠약한 자들이 지팡이를 짚고 나섰으며 봉천(奉天)에서 글을 내리자 포악한 군졸이 귀순하였으니, 전환시키는 기틀이 실로 멀리 있지 않습니다. 참으로 인자스런 말이라면 종이 한장으로도 충분하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마음으로 마음을 감동시키기 때문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때때로 근신(近臣)을 보내어 은지(恩旨)를 선포함으로써 살아갈 방도를 지시하고 윗사람을 받드는 도리를 일깨워 주소서. 급하지 않은 징수는 더 견감해 주고 명목없는 세금도 덜어주면 백성들이 마음으로 기뻐할 것이며, 자기 옷을 벗어 입혀주는 마음으로 전쟁의 고통을 위로하고 공적을 상고하고 재능을 시험하여 상과 벌을 시행하면 장졸(將卒)들이 마음으로 기뻐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임금의 말씀이 간절하고 임금의 모습이 지척에 있는 듯할 것이며 인성(仁聲)이 귀에 가득하고 혜택이 배에 가득하여, 마치 아버지가 자식을 가르쳐서 자식이 의리를 아는 것과 같고 하늘이 만물을 덮어서 만물이 봄기운을 느끼는 것 같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상하간에 정의(情意)가 충만하고 군신이 신의(信義)로 결속되어 인심을 격려하는 방법에 내실을 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저 나라가 나라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은 형정(刑政)이 있기 때문이니 만약 형정이 시행되지 않는다면 기강이 무너져 장차 국가가 망하게 될 것입니다. 주(周)나라의 충후(忠厚)함과 한(漢)나라의 관후(寬厚)함과 송(宋)나라의 인후(仁厚)함은 아름다운 치화(治化)의 결과가 아닌 것이 없었는데도 말세에 이르러서 점점 쇠퇴해지자 난망(亂亡)이 닥치어 스스로 진작시키지 못하게 되었으니, 혹 이를 계승하려는 자는 관용과 위엄을 병행하여 조화있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나라는 1백여 년 동안 태평 시대를 누리면서 편안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냄에 따라 인정이 너무 지나쳐 도리어 공의(公義)를 가리웠고 법을 사용할 때는 오직 관용만을 숭상했으며 구태 의연한 폐습이 오래도록 국정을 방해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난리를 당하자 패망하는 상태로 전락되면서 시들고 쇠약한 증세가 날로 더욱 고질화되어, 안으로는 조정에서 밖으로는 지방에 이르기까지 인심이 태만해지고 호령이 시행되지 않아 형관(刑官)은 법을 멋대로 악용하고 간리(姦吏)들은 권력을 남용함으로써 부정이 유행하고 상벌의 시행이 정당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복수할 것을 잊고 국가를 배반한 무리와 적에게 아첨하고 화해를 요구하는 무리들도 오히려 형벌을 모면하기까지 하니, 다른 것이야 무엇을 더 말하겠습니까?

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상을 베풀 때에는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것이므로 훌륭한 일을 한 백성이 있으면 조속히 상을 줘야 하고, 싫어하는 형벌을 베풀 때에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므로 죄를 범한 공경(公卿)이 있으면 시급히 벌을 줘야 하는 것이니, 순(舜)이 사흉(四凶)을 주벌한 것은 천하의 대족(大族)을 먼저 친 것이었습니다. 이제 고관이라 하여 용서해주고 난처하다고 하여 용서해주고 사실과 다르다고 하여 용서해주고 오래 지체되었다 하여 방면해 준다면 천하에 죄줄 만한 사람이 없게 될 것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명쾌히 결단을 내려 위엄과 신의를 크게 반포함으로써 모든 신하와 국중(國中)을 결속시키소서. 그리하여 상벌의 시행을 한결같이 명령대로 하여 시우(時雨)가 적셔주듯 은혜로써 권면하고 추상같이 엄숙한 위엄으로써 진작시켜 준다면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일에 임하여 온 나라의 일이 한번의 지시만으로도 이룩될 수 있을 것이니, 정사를 닦고 기강을 진작시키는 방법에 내실을 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저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은 인륜이 있기 때문이니, 만약 인륜을 밝히지 않으면 사람의 기강이 무너져 끝내 금수가 되고 말 것입니다. 순(舜)이 인륜을 밝히고 우(禹)가 사람의 기강을 닦은 것은 모두 인심을 선하게 하고 치도를 일으키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여러 대에 걸쳐 태평시대를 누렸으므로 문물이 융성하고 교화의 도구가 모두 잘 설치되어 선비들은 예법으로 자신을 단속하고 백성들은 충효로 자신을 면려하였으며, 관혼 상제의 법도가 옛날에 뒤지지 않았고 임금을 버리고 어버이를 소홀히 하는 말은 세상에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효도로써 다스리는 정치 아래에서는 인륜에 죄를 얻은 자가 드물었었는데, 난리를 겪은 이후로 금방(禁防)이 크게 훼손되어 함부로 행동하는 마음을 품고 법에 어긋나는 말을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 한 몸만 걱정할 줄 알았지 슬하에 길러준 은혜는 생각하지 않아, 언덕과 구렁에 쌓여 있는 시체도 버려진 채 매장하지 않고 상복을 입고서도 닭곰탕 먹는 것을 가리지 않게 되었는데, 유식한 자도 더러 이와 같이 하는 판에 더구나 어리석은 백성이겠습니까. 효자의 가문에서 충신을 구할 수 있는 것인데, 그 어버이에게 이처럼 박대한다면 의리를 따라 나라에 목숨을 바칠 사람은 눈을 씻고 보아도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 삼대(三代)의 가르침은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이니, 또한 임금께서 법으로 금지하고 인도하는 데 달려 있을 뿐입니다. 옛날 악의(樂毅)가 어진 자의 마을을 정표하고 왕촉(王蠋)의 묘(墓)에 봉분을 만들자187) 제(齊)나라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복종하였습니다. 병이지심(秉彝之心)은 사람마다 본래 갖고 있는 것이니, 비록 극도로 어둡게 가리워졌다 하더라도 어찌 감발(感發)시킬 단서가 없겠습니까.

원컨대, 전하께서는 선한 자를 표창하고 악한 자를 벌주며 선량한 사람과 간사한 사람을 정표하고 구분하소서. 그리하여 충신과 효자 및 열녀 등을 유사에게 명하여 널리 공론을 채집하고 보고 들은 것을 참작하여 그 중에서 절의가 더욱 뛰어난 자를 취해 정부에 보낸 다음 사실대로 조사하여 그 마을을 정표, 인심을 격동시키게 하고, 혹 따르지 않는 자는 모두 본법(本法)으로 그 잘못의 경중(輕重)을 나누어 반드시 벌을 주게 한다면 인륜을 돈독히 하여 풍속을 이루는 방법에 내실을 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저 방어하는 계책은 반드시 그 지세(地勢)를 살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밖을 견고히 하여 근본을 호위하고 중앙에 자리하여 지방을 제어하는 것이 국가를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비결입니다. 민가에서 도적을 방비할 때에도 반드시 울타리를 먼저 견고하게 해야 합니다. 이는 방문 밖에 울타리가 없어 곧바로 문으로 들어온다면 그 형세가 이미 절박하여 꾀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호남과 영남은 나라의 울타리로서 대처하는 계책이 당연히 제일 먼저 있어야 할 것인데, 결딴난 그대로 방치하고 수습하지 않으니, 밖을 견고히 하여 근본을 호위하는 방법이 어디에 있다고 하겠습니까.

사람들의 말에 ‘국가에서 호남과 영남을 소홀히 하고 평안도를 소중히 여긴다.’ 하니, 조정 의논이 비록 반드시 이와 같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말이 또한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저 왜적의 뜻이 한갓 우리 나라에 있을 뿐만이 아니니, 서울 서쪽이 모두 충돌할 지역에 들어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만약 혹시라도 울타리가 무너져 도적이 방문 밖을 둘러싼다면 비록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 전라도와 경상도 두 지방은 적이 침입하는 제일의 요로(要路)에 해당하니 떠나고 머무는 것을 개의치 말고 모두 튼튼히 수비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고 살아남은 백성들을 보완하여 국경을 지키는 군대에 채우려고 먼 지방에 있는 자로 하여금 감발을 하고 가게 한다면, 갑절로 고달퍼져 팔도(八道)가 모두 피곤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본도(本道)의 군사 한 명이 다른 곳의 1백 명을 당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특별히 신칙하시어 민병(民兵)을 어루만져 그 부역을 관대하게 하고 그 훈련을 독려하는 한편 피곤하고 쇠약한 군대를 진작시켜 기세를 전환시키도록 하소서. 그러면 두 도(道)의 군사가 반드시 훌륭한 군대로서 사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열읍(列邑)의 산성도 모두 수비해야 하는데 세력이 분산되면 힘이 약하고 큰 환란이 닥치면 지탱하기 어려우니, 반드시 여러 진영 중에서 산과 물로 둘러 싸인 지형을 취하고 천연적으로 이루어진 험준한 요해처를 선책하여야 합니다. 그리고는 군사를 모집하고 군량을 저축하여 3개의 큰 진영을 만든 다음 이름난 장수로 하여금 지키게 하면서 모든 군무를 정비하여, 차츰 난공 불낙의 기지를 이루어 나간다면 적이 산 아래에서 공격해 올 때 우리는 백이(百二)의 이로운 형세를 갖게 되는 셈이니 저들이 격파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안과 밖의 지역에 모두 순망 치한(脣亡齒寒)의 걱정이 없게 되어 적을 방어하고 근본을 견고하게 하는 방법에 내실을 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저 마정(馬政)188) 이 잘 수행되느냐의 여부에 한 국가의 흥망이 달려있으므로 사마(司馬)의 이름이 주(周)나라의 관직에 있고 국군(國君)의 부(富)를 물으면 말의 수로 대답하였으니, 이는 육지에서의 용도로는 말만큼 국가의 큰일에 관련되는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도 각 목장(牧場)에 감목관(監牧官)을 설치하고 제도(諸道)에 우관(郵官)을 보냈는데, 제주도는 기북(冀北)189) 에 뒤지지 않으므로 말을 공물로 바치게 하여 임금의 명을 전달하고 정벌하는 용도에 모두 모자란다는 탄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병난을 한 번 겪은 뒤로는 흉적에게 모두 빼앗기고 중국 군대에게 약탈당하는가 하면 지방의 쇄마(刷馬)들은 너무 혹사를 당한 나머지 죽어버렸으며 굶주리고 피곤해진 마졸(馬卒)도 먹여 기르기 어려운 걱정이 있게 되었으니 울어대는 말 울음190) 이 어찌 삼군(三軍)의 기개를 진작시키겠으며 살찌고 큰 말이 들판에 서있는 장엄한 모습을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쇠미해진 시대를 당해서는 말 사육하는 일을 더욱 급선무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위 문공(衛文公)은 초구(楚丘)로 옮기고 나서 7척이 넘는 말이 3천 마리나 되는 것을 칭송하였고,191) 진 덕공(秦德公)은 서융(西戎)에 복수를 하고서192) 사마(駟馬)가 매우 살찐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구업(舊業)을 다시 회복시킨 자로 말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니, 전하께서도 마정(馬政)에 유의하심을 또한 늦출 수 없는 것입니다. 아, 말을 기르는 공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권면하는 방법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견수(汧水)와 위수(渭水) 사이에서 말이 크게 번식하자193) 읍(邑)을 봉해준 일이 있었고, 내외(內外)의 마구(馬廐)에 소임을 다하자194) 개부(開府)를 더해 준 일이 있었으니, 포상(褒賞)을 넉넉히 하여 큰 성과를 요구한 것이 이보다 더할 수 없습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현재의 말 숫자를 조사하여 국적(國籍)에 올리라 명하시고 재상들 중에서 국사에 마음을 다하는 자를 골라서 사자(使者)의 호칭을 띠고 이를 거느리게 하소서. 또 말 숫자를 나누어 부지런하고 근실한 사람에게 맡겨 진(秦)과 당(唐)에서 했던 것처럼 수초(水草)가 무성한 곳에 가서 기르게 하고, 번식시킨 숫자를 비교하여 상벌을 시행하면 군마(軍馬)가 풍성해져 적을 토벌하는데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농가의 소가 모두 탕진되어 밭갈이 할 때에 사람이 대신하여 멍에를 메고 있는 형편인데 경향(京鄕) 각지에서는 도살(屠殺)을 지금까지 중지하지 않고 있으니, 아, 이제 씨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장차 어떻게 농사를 지어 백성들의 식량과 군량을 공급한단 말입니까. 만약 엄하게 금지하여 서로 고발하게 하고 각자 본율(本律)로써 상과 벌을 주어 목양(牧養)의 방법을 중히 여기게 하면 내실을 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들이 이미 쓸데없는 문자로 앞에서 번거롭게 진언하였는데, 다시 한 나라의 인심을 무너뜨리고 회복의 대업을 파괴하는 것이 있으므로 부득이 후미에 나열합니다. 대저 변고를 당한 이후로 모든 일과 뜻에 성실한 자세가 없어져 의리는 난리를 싫어하다 보니 굽혀져 게으른 마음이 틈을 타고 일어났고, 적을 토벌할 형세는 궁해져 구차한 계책이 절로 발생하였습니다. 기미(羈縻)하자는 주장이 이미 중국 관원에게 들어갔고 화친해 주자는 요청이 중국 조정에 진달되어 자니(紫泥)195) 로 일본을 봉해주고 용절(龍節)196) 이 바다를 향하게 되어 관사와 길에서 접대하느라 온 나라가 분주합니다. 아, 우리 나라의 일은 이미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하늘을 거스린 흉악한 왜놈들이 도리어 중국에게 포용되었으니, 이 또한 천운(天運)에 관계되어 면할 수 없는 것입니까?

전하께서 누차 몹시 분개하는 교서를 내려 우선 편안한 것만 취하려는 의논을 통렬히 배척하였으니, 그 늠름한 대의(大義)는 신명(神明)과도 따질 수 있는 것이었는데, 형세가 이미 이 지경에 이르러 막을 수 없는 것이 마치 흘러간 물이 돌아오지 않는 것과 같이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재상들 중에도 이를 발론하는 자가 있는데 나약한 모든 자들이 서로 화답하여 훌륭한 계책이라 지칭하니, 복수에 대한 의리는 도리어 분수 밖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화친하자는 말이 있으면 모두가 귀를 기울이고 정벌하자는 말이 있으면 모두가 입을 다문 채 다만 구차하게 목숨만을 보전하려고 왜적이 바다를 건너갈 날짜만 기다리고 있으니, 이 어찌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할 수 있으며 회복의 사업을 도모한다 할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이미 통솔의 권한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끝내 사설(邪說)을 배척하여 정도(正道)로 돌리지 못하시니 이는 성의에 혹 부족한 점이 있어서일 것입니다. 만약 전하께서 회복할 뜻을 가다듬고 혁연(赫然)히 변동시키고자 하시어 이는 참으로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라고 하신다면, 모든 신하와 백성 중에 그 누가 바람에 풀이 쓸리듯 따르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흉적이 그냥 머물 기미가 있는데도 중국 사신의 뜻은 그저 화친을 성사시키는 데에만 급급하니, 그 사이에 처리하기 어려운 걱정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름지기 실정을 참작하고 의리에 의거하여 미리 계획을 정함으로써 임시(臨時)해서 잘 조치하여 정도를 잃지 않게 하고, 사설(邪說)을 만들어 내는 자의 범죄한 사실을 드러내어 왕법으로 다스리고, 원수와는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으로 교서를 짓게 하여, 온 나라에 반포하면 조종(祖宗)을 저버림이 없을 것이고 후세에 할 말이 있게 될 것입니다.

앞서 아뢴 말이 비록 현재의 폐단을 다 열거하지는 못하였지만 적게는 중흥의 정치를 해치는 것들이며 크게는 중흥의 대업을 파괴하는 것들이니, 전하께서 만약 그 폐단을 바로잡고 내실을 기하려고 한다면, 요량하는 근본이 한 마음속을 벗어나지 않고서 운용(運用)의 묘(妙)를 만유(萬有) 중에 징험할 수 있을 것인데, 어찌 남을 기다려서야 시행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러나 전복된 형세를 만회하고 안전한 기반을 수립하는 것은 크나큰 변혁이니, 천지를 되돌이킬 만한 큰 뜻과 지극한 정성이 아니면 중흥의 업적을 이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조그마한 회초리로 치려고 하니, 또한 종(鍾)을 치는 법에 어긋납니다. 대저 종은 슬퍼서 치면 슬프게 울리고 성내어 치면 거세게 울리는데, 이것은 성의가 그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니, 어루만져 편안히 해주는 정치를 할 때에 어찌 슬퍼서 치지 않겠으며, 공격하고 수비하는 정책을 행할 때에 어찌 성내어 치지 않겠습니까. 종을 칠 때에 또 그 방법을 다하지 않고서 종소리가 크게 나기만을 바란다면 한갓 세월만 허비하고 성공하기 어려운 근심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무(光武)는 지도를 펼쳐들고 모든 고을을 평정하지 못한 것을 탄식하였고, 소열(昭烈)은 넓적다리를 매만지며 공업을 이루지 못한 것을 슬퍼하여 울었습니다. 대개 세월은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이니 두 임금이 고민한 것이 애처롭다 할 수 있습니다. 송(宋)나라의 신하 이강(李綱)은 6가지 일을 아뢰었는데 세월을 아끼자는 말이 그중에 하나197) 였습니다. 신들이 전하에게 간절히 바라는 것도 이강의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전하께서 만약 저희들의 몽매한 말을 채택하시어 뜻을 세워 회복의 기반을 개척하고 성의를 다하여 회복의 실효를 거둔다면, 전하께서 하고자 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종계 변무(宗系辨誣)의 일로 증거할 수 있습니다. 조종(祖宗)이 모함을 당한 억울함을 가지고 한 몸의 끝 없는 아픔으로 여겨 중국 조정에 애절하게 호소함으로써 반드시 누명을 씻기를 구하였고, 중국을 받드는 정성을 시종 한결같이 하여 수백 년된 해외(海外)의 지극한 원통함을 끝내 멀고 먼 하늘에까지 통하게 하였으니, 만약 전하의 뜻이 부지런하지 않고 정성이 지극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천하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성사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 전복의 환란이 이미 전하의 몸에 당했으니 회복하려는 뜻은 반드시 전하의 손에 달려 있는데, 이미 물러나시려는 마음을 지니시어 여러 번 권서(權署)198) 의 명을 내렸으므로, 인심이 놀라고 민망하게 여겨 모든 일이 산란되고 있습니다. 상제(上帝)가 살펴보시고 어김없이 보응할 텐데 그렇다면 어찌 경계할 바가 아니겠습니까.

원컨대 전하께서는 더욱 복수하려는 정성을 다하고 반드시 자신에게 반구(反求)하는 노력을 다하소서. 그리하여 역량을 키워 모든 사람에 모범이 되고 총명을 키워 모든 사람의 뜻을 살피고 인심(仁心)을 키워 백성을 무육(撫育)하고 지혜를 키워 일의 기미를 살피고 용맹을 키워 적의 정벌(征伐)을 도모하고 의리를 키워 복수를 기약하시면 근본이 맑아지고 모든 일이 다 성공할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쏠리는 곳에 천명을 도모할 수 있으니, 이른바 회복의 기반과 회복의 실효가 모두 이뤄질 것이며, 전하께서 우환 중에서 살 길이 열리게 된다는 것도 진실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신들은 비록 임금을 속인 죄로 다스린다 하여도 또한 달게 받겠습니다. 《시경(詩經)》에 ‘떠내려 가는 배가 어느 곳에 정박할지 알지 못하는 것 같아 걱정하는 마음에 잠 못이루네.’ 하였는데, 만 번 죽어야 할 이 몸이 외람되게 구사(驅使)가 되어 조그마한 보답도 하지 못하여 몽매(夢寐) 간에도 깜짝 놀라 깨곤 하니, 세월이 지남에 따라 얻어진 것이라고는 다만 옷깃 가득히 젖어드는 눈물뿐입니다. 옛날에 제갈 양(諸葛亮)이 그 임금을 경계시키며 아뢰기를 ‘폐하께서도 마땅히 스스로 모획(謀劃)하십시오.’ 하였고, 끝으로 ‘출사표(出師表)를 쓰노라니 눈물이 떨어집니다.’ 하였습니다. 임금에게 기울이는 간절한 정성이야 어진 자와 어리석은 자의 차이가 없는 것이니, 아련한 저희들의 정성으로서야 어찌 전하에게 바라는 것이 많지 않겠습니까. 채택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니, 상이 답하기를,

"차자(箚子)를 살펴보니, 국가를 걱정하는 정성과 국가를 위해 모획(謀劃)하는 지혜가 지극하여 감격을 금할 수 없다. 의논하여 처리하겠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이 한 편의 차자는 실로 마음속 깊이 충성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니, 들어 시행하면 병을 치료하는 좋은 약에 비할 정도만이 아니다. 그러나 의논하여 처리하겠다는 것보다는 개정하여 시행하겠다는 것이 낫다. 비변사에 일단 차자를 내려보내자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 구구 각각이어서 아름답고 훌륭한 계책이 마침내 수포로 돌아가 만 가지 중에 한 가지도 도움되는 바가 없었으니, 참으로 탄식할 일이다.


  • 【태백산사고본】 39책 65권 1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521면
  • 【분류】
    농업-축산(畜産) / 사법-재판(裁判) / 윤리-강상(綱常) / 역사-편사(編史) / 역사-고사(故事) / 교통-마정(馬政) / 정론-간쟁(諫諍) / 정론-정론(政論) /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친(宗親) / 군사-병법(兵法) / 군사-군정(軍政) / 군사-병참(兵站) / 인사-임면(任免) / 인사-선발(選拔)

  • [註 177]
    구물(舊物) : 고토(故土).
  • [註 178]
    조적(祖逖)의 채찍 : 진(晉)나라 때 유곤(劉琨)이 말하기를, "내가 아침까지 창을 베고 자는 것은 오랑캐를 무찌르려고 하는 것인데, 항시 조적이 나보다 먼저 채찍을 잡을까 두렵다."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여러 장수들이 조적처럼 국가를 위해 마음을 다하는 자가 없음을 이르는 말. 《진서(晉書)》 유곤 열전(劉琨列傳).
  • [註 179]
    전단(田單)의 삽 : 전국 시대 제(齊)나라 장수 전단이 연(燕)나라와 전투할 때 직접 삽(鍤)을 들고 사졸들과 노고를 함께 한 고사. 《사기(史記)》 전단 열전(田單列傳).
  • [註 180]
    초당(貂璫) : 담비 꼬리와 금 고리로 만든 무관의 관.
  • [註 181]
    여몽(呂蒙) : 삼국(三國) 시대에 손권(孫權)이 여몽에게 학문하기를 권했는데 그후 노숙(魯肅)이 여몽과 대화를 나누어 보고나서 ‘이제는 학식이 뛰어나 전일의 여몽이 아니다.’고 칭찬하자, 여몽은 ‘선비가 이별한 지 3일이면 괄목 상대(刮目相對)한다.’고 하였다. 《삼국지(三國志)》 54 여몽전(呂蒙傳).
  • [註 182]
    아(阿) 대부와 즉묵(卽墨) 대부 : 탐관 오리와 청백리의 대명사. 전국 시대 제(齊)나라 위왕(威王) 때 아(阿) 대부는 상부에 뇌물을 바쳐 평판이 좋았고 즉묵 대부는 그렇게 하지 않아 탄핵을 받았는데 위왕이 사실을 조사하고는 아 대부를 잡아 삶아 죽였다는 고사. 《자치통감(資治通鑑)》 주기(周記).
  • [註 183]
    등우(鄧禹)의 힘써 인심을 기쁘게 하라는 말 : 한(漢)나라 때 등우가 광무제(光武帝)에게 "영웅을 맞아다가 민심을 기쁘게 하고 고조(高祖)의 사업을 계승하라."고 한 일. 《자치통감(資治通鑑)》 한기(漢紀).
  • [註 184]
    연못의 기러기가 슬피 운다는 비유 : 난리를 겪은 백성들의 딱한 사정을 연못에서 우는 기러기에 비유한 말. 주(周)나라가 쇠하여 모든 백성들이 이산(離散)하였는데 선왕(宣王)이 위로하고 안정시키자 백성들이 기뻐하며 고생했던 시절의 실정을 읊은 시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홍안(鴻雁).
  • [註 185]
    동산(東山) : 《시경(詩經)》 편명(篇名).
  • [註 186]
    체두(杕杜) : 《시경(詩經)》 편명(篇名).
  • [註 187]
    악의(樂毅)가 어진 자의 마을을 정표하고 왕촉(王蠋)의 묘(墓)에 봉분을 만들자 : 전국 시대 연(燕)나라 장수 악의가 제(齊)나라를 점령한 다음 세금을 감면해주고 어진 자의 마을을 정표(旌表)하였으며 왕촉(王蠋)의 무덤에 봉분을 만들어 주었다. 《사기(史記)》 악의전(樂毅傳).
  • [註 188]
    마정(馬政) : 말을 기르는 국가의 행정.
  • [註 189]
    기북(冀北) : 중국 기주(冀州)의 북쪽으로서 말이 많이 생산되는 곳.
  • [註 190]
    울어대는 말 울음 : 말이 매우 많고 성대함을 이르는 말. 주(周)나라가 쇠하자 선왕(宣王)이 안으로는 정치를 닦고 밖으로는 오랑캐를 물리쳐 옛 국토를 회복하고 동도(東都)에서 제후들을 회합하자 군대와 말이 매우 많았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거공(車攻).
  • [註 191]
    위 문공(衛文公)은 초구(楚丘)로 옮기고 나서 7척이 넘는 말이 3천 마리나 되는 것을 칭송하였고, : 춘추 시대 위나라가 오랑캐들에게 침략을 당하여 멸망했다가 초구로 옮겨 궁실(宮室)을 짓고 성실한 마음으로 농업과 학문을 권장하니 국가가 부강해져 7척(尺)이 넘는 말(馬)이 3천 필이나 되었다 한다. 《시경(詩經)》 용풍(鄘風) 정지방중(定之方中).
  • [註 192]
    진 덕공(秦德公)은 서융(西戎)에 복수를 하고서 : 춘추 시대 진나라 덕공이 서융에 복수를 하고 옛적에 없었던 살찌고 많은 사마(駟馬)를 갖게 되었다 한다. 《시경(詩經)》 진풍(秦風) 사철(駟驖).
  • [註 193]
    견수(汧水)와 위수(渭水) 사이에서 말이 크게 번식하자 : 진(秦)나라의 비자(非子)가 주(周)나라의 효왕(孝王)을 섬기며 견수와 위수 사이에서 말을 키웠는데 말이 크게 번식하자 효왕이 진읍(秦邑)을 봉해준 일. 《사기(史記)》 진 본기(秦本記).
  • [註 194]
    내외(內外)의 마구(馬廐)에 소임을 다하자 : 당(唐)나라 현종(玄宗)이 왕모중(王毛仲)으로 내외 한구사(內外閑廐使)를 삼자, 왕모중은 자기 임무를 잘 수행하여 많은 말과 소를 번식하니 현종이 기뻐하여 개부(開府)를 더해 준 일. 《자치통감(資治通鑑)》 당기(唐紀).
  • [註 195]
    자니(紫泥) : 황제의 칙서.
  • [註 196]
    용절(龍節) : 사신들이 가지고 다니는 용의 형상의 부절.
  • [註 197]
    이강(李綱)은 6가지 일을 아뢰었는데 세월을 아끼자는 말이 그중에 하나 : 송(宋)나라 이강이 6가지 일을 아뢰었는데, 1. 보필(輔弼)을 신임할 것. 2. 인재를 공선(公選)할 것. 3. 사풍(士風)을 변혁시킬 것. 4. 세월[日力]을 아낄 것. 5. 인사(人事)를 곡진(曲盡)히 할 것. 6. 천위(天威)를 두려워 할 것 등이다. 《송사(宋史)》 이강전 하(李綱傳下).
  • [註 198]
    권서(權署) : 왕세자에게 임시 전위(傳位)함.

○司憲府 【大司憲金玏、執義申湜、掌令李鐵ㆍ鄭期遠、持平南以恭ㆍ姜籤。】 (等)進箚(字)〔子〕 :

伏以, 《傳》曰: "生於憂患, 死於安樂。" 蓋安樂可以死, 則百年盈溢之禍, 已不可進, 而憂患可以生, 則四載勤勞之效, 尙亦可圖, 此理勢之所必至也。 然則今日之事, 訖可有濟, 而危迫之患, 日甚一日, 如游於水, 漸入其深, 將不知執事者之計, 竟出於何場也。 夫陵廟埋烟, 山河帶羞, 天下之至痛也; 鯨鯢據海, 攻守失策, 天下之至危也。 以天下之至痛, 而當天下之至危, 則非有所警動其心, 而斡旋其機者, 將不能濟天下之大業矣。 殿下之所以深於憂患者, 果無歉於心, 而有可生之道歟? 夫否極則必興, 天之數也; 窮極則必反, 人之情也。 故古之賢君, 不以否極而自畫, 不以窮極而自沮, 能盡反身之道, 竟膺將興之運, 若之中興是也。 方其擾攘之際, 流離(鎖)〔瑣〕 尾之身, 若不能自脫於泥露之中, 而終能圖回天命, 充復舊物者, 蓋其天命之去就, 惟繫於人事之如何耳。 殿下奔播之餘, 宅國荊榛, 川原骯骸, 天地灰燼, 則可謂遭否極之運, 而處窮極之地矣。 其日夜之振刷奮厲, 以求爲恢復之計者, 亦無所不用其極, 則興隆之望, 時則可矣, 而天心無悔, 人謀不臧, 收拾之勢, 渺無形像, 臣等茫然自失, 亦未知其故也。 殿下丕冒庶物, 而德無不包; 廣裁群務, 而策靡不講; 蓄銳調餉, 不失其方; 任相御將, 以得其道, 而誠意未形, 威靈不暢, 人心怠惰, 邪議朋興。 朝家處置, 一歸悠泛, 流光荏苒, 作事徘徊, 可否之間, 坐失機會, 此可謂人事之修乎? 竊念恢復之基, 在於立志; 恢復之實, 在於盡誠。 志者, 心之所之。 古人云, ‘有志者, 事竟成。’ 誠者, 眞實無妄, 故子思曰: "物之終始, 不誠無物。" 大哉志乎! 志旣立, 則土簣可以爲山, 杯勺可以成海, 而天下之事, 無不可做。 至哉誠乎! 誠之盡, 則金石可透, 豚魚可孚, 而天下之物, 無所〔不〕 囿。 殿下苟能立此志而盡此誠, 則必興之運, 將入殿下之手, 而重恢之業, 端在一轉移之間矣。 臣等待罪言地, 驚心燬室, 憫切之痛, 不能自已, 謹將十數條, 開列于左, 以備殿下之采擇焉。 夫爲治, 必本於治心, 而治心莫要於懋學。 故古人無不以講論經籍, 爲帝王之盛節, 蓋以存心, 出治之本, 無非從此中來也。 況此蹇屯之時, 百事難處, 進退或至於狼跋, 可否多涉於狐疑? 若無以考聖賢之成法, 明事理之當然, 則毫釐之差, 未免千里之謬。 故程子, "凡處難, 能守正而不變者鮮矣。" 然則講學之功, 尤不可〔不〕 做於世亂之時也。 殿下遭時不幸, 孤立於奔電沸海之中, 而亦不忘問學之美, 復開經幄, 登進儒臣, 商確義理, 盪摩機務, 凡百論議, 要歸之至當, 則本源之地, 無所波蕩, 抑可以知吉凶存亡, 而不失其正矣。 然進學之要, 貴無作輟, 故君子, 體天之健, 自强不息, 蓋其食息不繼, 則前日之功, 亦不得爲我之有矣。 殿下之所以日乾夕惕者, 果無愧於不息之道歟? 況爲學之道, 擇之在精, 若不正之說, 有時混進, 則其精思心術, 亦不能無雜, 而大爲正道之蝥蠹矣。 要當明辨而斥遠之, 以絶其根柢可也。 噫! 孰非爲學, 而時務最急。 若非切時, 何以爲功? 今之可鑑者, 必在於中興之世, 而君臣行事之迹, 昭在方策。 伏願殿下, 特令館閣之臣, 取其切要者, 裒成一通, 置之座右, 講究經學之暇, 時時披閱, 惕然深省, 則大本急務, 幷無虧缺, 而爲學之道, 可得其實也。 夫人君, 字萬民而爲之父, 敎萬民而作之師, 率一世之人, 而偕之人道, 則其敎養之責, 旣重且大, 而又有所至重且大者。 東宮, 君之副而國之本也。 輔成德業, 爲他日付托之地, 則殿下之父字而師敎者, 可謂親切而無間也。 然其敎養之方, 不過妙選宮僚, 廣擇賓師, 毓德履道, 做成大業, 則所以警發格言, 酬應正事, 而陶鎔氣質, 涵養性情者, 不可他求也。 意謳歌之地, 已係根本, 而輔養之具, 率多踈略。 官兼而不能專, 則宮僚之任, 或未盡也; 名存而不相關, 則賓師之貴, 皆未擧也。 是故, 講論未免於寡陋, 課程亦患於斷續, 將就之功, 或有未至。 伏願殿下, 申勑銓曹, 愼擇侍講之員, 廣詢宰從, 竝擧在野之賢, 黃髮登席, 白衣橫經, 以發其隆師、親友之心, 以敦其孝仁、禮義之道, 則左右前後, 莫不端方, 動容周旋, 皆中規繩, 學問高朗, 事業弘大, 作聖之功, 殆將濬源於斯矣。 若推而長之, 以敎誨王子, 則亦可使遵守義方, 而皆不失行己之道矣。 頃日有以王子之不義, 宮奴之作弊, 責大臣以擧劾。 殿下此心, 亦足以爲興復之路頭也。 之一州, 夐阻轂下, 禁防闊絶, 弊端滋蔓, 民怨多興, 訛言屢驚。 此雖侍衛之臣, 有失於省約, 以速其罪, 而其所以致此者, 亦豈無所自乎? 願回中殿, 進御京城, 且令王子, 折節就學, 則輔養敎誨之道, 無不各得其實也。

夫軍國之務, 源委浩繁, 而宵(肝)〔旰〕 之中, 不能獨理, 則必有大臣身任而摠治之, 然後事有條理, 而綱紀自立。 今之所謂備邊司, 則大臣諸宰, 共一廳事, 聯茵密坐, 論議(電)〔雷〕 同, 較其簿牒, 則不啻千百, 而求其實效, 則未見一二, 蓋其任職多失於混雜, 而應務亦傷於膠擾也。 若使大臣, 總攝群議, 諸宰以司釐而分之, 隨事指揮, 以責其效, 如有不職者, 或檄召而責之, 或啓稟而治之, 使之俯首察任, 各盡其才, 則提綱挈要之道, 庶幾盡之矣。 噫! 程子曰: "天地不遇, 則萬物不生; 君臣不遇, 則政治不興。" 夫君臣之義, 不在於苟合, 而唯貴於相遇, 故利見大人。 情意融通, 合爲一體, 則肱股心膂也; 聚爲同氣, 則風虎雲龍也。 好惡不能移其意, 讒間不能惑其志, 然後委任責成, 而治道著矣。 伏願殿下, 更加崇重, 不責細務, 言聽計用, 休戚與同, 聚精會神而天地交泰, 操約制煩而德施斯普, 朝廷之體, 自此而尊矣。 《詩》云: "文武吉甫, 萬邦爲憲。" 若儀刑百辟, 而各盡其職, 夙夜匪懈, 以事一人, 則《中庸》之所謂敬大臣、體群臣者, 一擧兩盡, 而委任中書之道, 可得其實也。 夫摠檢之權, 莫重於元帥, 而經理之任, 莫切於方伯。 閫外之事, 皆以當責, 而帥府之務, 皆係等閑, 布置節目, 久成寥落, 唯收聚陣狀, 飛遞天門, 是爲人傳語者也。 且罪在誤事, 其身已輕, 尙不能坐鎭一席, 其何以號令於人乎? 其如巡宣各道者, 或患於才分之不足, 而未周於敎鍊調給之地, 或拘於界封之有限, 而多失於推移補綴之勢。 凡事之不理者, 其道非一, 則八路之板蕩, 顧何時而收拾乎? 噫! 名論之輕, 古人患之, 而視其爵位, 我國尤甚。 以大臣之重, 因其才望而鎭之, 然後人心有所警動, 事務有所稟裁, 而條理得宜, 萬目改覩, 南邊之事, 庶有可濟。 況難處之患, 此時尤多, 緩急之際, 勢難遙制, 事機之失, 在於呼吸, 往釐之期, 固不可滯也。 伏願殿下, 廣採衆議, 快擧宸斷, 重體察摠裁之權, 副南人信宿之望, 則仰戴威命, 展宣其力, 綜理得宜, 綱維自擧。 監司以下, 各恭其職, 而人心可懷, 賊膽可寒, 自餘屯田鍊兵之事, 皆當在條理之中矣。 至如元帥, 己繫筌蹄, 而只益其弊, 固不須仍存也。 然則籌邊鎭衆之道, 可得其實也。 夫兵、水使、諸陣之將, 國家之倚以爲干城者, 而無《置兔〔罝兔〕之才, 有首鼠之態, 兇鋒若近, 則失祖逖之鞭, 寇患稍退, 則釋田單之鍤。 假陣山谷, 枯柴不設, 私放軍卒, 賊路皆淸, 習成自便, 諱言兵事, 故官高自愛而怯生金帶, 氣滿相抗而釁起虓虎, 玩寇圖功, 轉成爭端。 雖以朝廷之令, 亦不能禁斷, 終乃換置而遠避之, 此乃閭閻匹夫, 救人之鬪而兩解之者也。 況制度之於巡察, 在節制之中, 而心懷陵駕之計, 張皇忿辭, 累干宸嚴, 而朝議亦莫之誰何。 威綱旣如此, 則將何望馭將之有術, 而必我用乎? 將驕卒惰, 兵家所忌, 則棄一人而得千人之用, 亦今日之所急也。 取其尤無良不聽令者, 依律處斷, 以警動轅門之耳目, 在所不得已也。 噫! 古之爲將者, 率皆知書, 故持身必謹, 臨陣必勇, 而立不世之勣矣。 若我國之人, 則手一把弧矢, 目不經書籍, 文武之業, 判而二之, 故一向貿貿, 魚魯莫辨, 臨事當敵, 私意逗撓, 彼鵝鵲風雲之狀, 又奚能知之? 然則雖貂璫在身, 而不過一軍卒耳, 烏足謂之將哉? 伏願殿下, 特令備邊司, 廣采公議, 選揀其才堪爲將者, 錄其所讀之書, 排日講習, 隨其等第, 而賞罰行焉, 則將才丕變, 便可括目。 豈獨下之有阿蒙哉? 至於儒臣講兵, 尤有遠大之期。 應作振作之規, 一體擧行, 則御將養才之道, 可得其實也。 夫親民之官, 莫如守令, 則苦樂之判, 皆係其手, 而慈祥者蓋寡, 掊克者寔繁, 惠澤枯渴, 色目騷屑, 闔門之俸, 督辦於靡孑, 媚事之資, 取給於無告, 拏取貨寶, 營造産業, 排置田舍, 堅植鞏基, 侵剝之患, 無所不至。 毛膚已盡, 繼以膏血, 溝壑之塡, 可謂慘矣。 朝廷亦將明示勸懲, 以爲保民之地, 故隨其見犯, 致究王獄, 而議罪之官, (矢)〔失〕 於閱實, 尋常訊問, (意)竟皆原宥, 轉頭換面, 還占仕路。 若必如今日之爲, 則即墨, 混爲一道, 而齊王之鼎鑊, 亦不過枉殺之器耳。 將何以戢貪鄙, 而服人心哉? 伏願殿下, 嚴飭該曹, 廣選其人, 差除之際, 一循公道, 不問資級, 唯以幹儉爲最, 而非邊垣防禦之地, 則皆勿以武弁差授。 循名責實, 各盡其情, 茂績最著, 名登御屛, 貪虐已甚者, 罪淪贓籍, 一賞一罰, 皆得其當, 則擇人安民之道, 可得其實也。

夫行師之道, 糧餉居先, 故古人云: "若無儲蓄, 是棄封疆。" 蓋其糧道或絶, 則不可以保有區宇也。 自變故以來, 府庫灰塵, 田野蓬藋, 則斗斛之資, 無路可辦, 餽餉之煩, 何計能措? 是以朝廷經理之方, 不得不出於下策。 勸募之牒, 雲飛列邑, 管督之使, 星馳諸路, 常貢作米之令, 不遺下戶, 大同軍糧之徵, 無間巨室, 多方調聚, 涓滴不擇, 給餉之道, 似無不盡, 而或私入於使者之手中, 或逋欠於列邑之民間, 版曹不察其出入, 方伯未會其多少, 隨風聚散, 逐節紛挐, 求之國用, 已成亡羊, 則勒徵殘戶之患濫觴, 附益私家之弊漏巵。 噫! 屯田一事, 比諸前頭措置之方, 頗有公私兩便之益, 而中外之耕, 失於力作, 秋來所(獲)〔穫〕 , 反愧種子, 較其終歲之所得, 第未知幾何耶? 今欲大擧明年之耕, 以補軍國之需, 此固至緊之務也。 但公田之利, 唯在於不奪民力, 苟不能自盡其力, 則生理窮矣。 今則人情事勢, 稍與前日不同, 至於癃羸之人, 亦莫不扶犁上隴, 以圖生業, 雖其得地有廣狹, 而自盡其力則一也。 況春耕夏耘, 各有時分, 數蓂纔謝, 或失其節, 故農民之情, 惜日如年。 若受任者, 惟以就事爲重, 而不恤於此, 則違天時、拂人情, 而將不能底績。 矧敢曰怠棄其職, 而虛費所需者乎? 大抵內外調度之責, 多出於捐下益上, 則是雖迫於目前, 爲此不得已之計, 而抛恩取怨, 得不補失, 殆非國家之所願聞也。 伏願殿下, 俯軫經理, 必得其人, 公私不至於相侵, 輕重不違於相權, 得民歡心, 廣濟田功, 而非獨塞下之有積, 則利國利民之道, 可得其實也。 夫兵必得鍊而精, 故古人之善保國者, 必急於敎訓, 使其手不踈於擊(制)〔剌〕 之器, 使其身不迷於坐作之方, 使其耳目, 習於鍾鼓旌旗之間, 而不亂其心志, 安於斬刈殺伐之際而不懾, 故雖有倉卒之變, 而不至於驚潰, 蓋其心身之豫定也。 殿下志切撥亂, 銳意鍊卒, 痛排浮議, 特設敎局, 或托敎師而操鍊之, 或付哨官而統率之, 侍御禁苑, 課其生熟, 等第賞罰, 以爲勸(徵)〔懲〕 , 至於閭家小兒, 亦以刀劎爲戲, 此亦十年敎訓之意也。 但不根之兵, 多廁行伍, 無用之卒, 虛耗糧料, 兵籍無徵, 而勇銳之人, 栖遲在畝; 軍政無統, 而出身之徒, 偃息在床。 自脫羈靮, 無以要束, 則訓敎之方, 非所敢望, 而其可致用於緩急乎? 噫! 習兵非難, 而忘身實難。 苟非死綏之志, 有所前定, 則安能冒危, 而必用其兵乎? 是故, 古之善將者, 不貴其手中之兵刃, 而唯取其心上之勇義, 蓋敎民必死之義也。 伏願殿下, 審古人敎訓之方, 懲前日潰散之患, 使恩威竝行, 部伍齊整進退趨蹌, 唯上所令, 而略將忠君孝親之道, 親上死長之義, 抄作書記, 隨時敎詔, 如鄕射讀法之例, 則其所以討賊復讎者, 竝耳熟而心喩, 當敵用兵, 下手相應, 而無退遁偸生之患矣。 然則敎鍊軍兵之道, 可得其實也。

夫天啓中興, 必生其才, 歷世皆然, 在今可徵。 念惟殿下, 當亂思賢, 側席興嘆, 悶悶焉如不得見之, 是何才難之至此極耶? 古語云: "珠玉無脛而至者, 以人好之也。" 是惟不好, 好之則無不至, 故古之賢君, 不患無才, 而患所以好之者未至也。 叔季失養, 人才(渺)〔眇〕 然, 而兵火所觸, 梗楠摧折, 當世之所存者, 蓋無幾矣, 而任用之際, 又不得其方, 或不能優容而盡其效, 或不能委任而責其成, 帝三傑之論, 未聞於築壇之下, 四封之托, 不行於推(穀)〔轂〕 之中。 賞罰失宜, 進退乖方, 其如的見時變者, 孰肯輕出其身, 自取顚隮乎? 噫! 人才之生, 不擇其地, 故尺澤可以藏龍, 空谷可以栖蘭。 要在揚其側陋而崇長之矣。 人之有才, 如玉之在璞, 擲之則瓦礫, 琢之則圭璋, 要在因其美質而拂拭矣。 是以古之帝王, 或求之渭陽, 或求之草廬, 或求之(掾)〔椽〕 吏, 或求之行伍, 而終能贊成興運, 彪炳千古。 若不能心誠求之, 各得其用, 則太公終爲漁釣, 孔明老於耕犂, 困於刀筆, 困於椎埋, 而乃天地間無用物也。 伏願殿下, 推知人之明, 渴求賢之忱, 如有可取, 則不泥於俗論, 旣有所效, 則無惑於人言, 乃令銓曹, 破格收用, 如良梓之竝蓄輪桶, 則一世之才, 可了一世之事, 而求才致用之道, 可得其實也。 夫求言, 所以通一人之視聽, 而決天下之壅蔽也。 若耳目塗塞, 則身之所嚮, 顚沛隨至。 況遇險, 而能得其全安者乎? 殿下, 際此亂世, 衆難交集, 前有虺蛇, 而後有坑塹, 則可謂遇險之甚者也。 雖四目之明, 可追於前軌, 而或不免顚躓於危途, 況未必如此者乎? 殿下降屈明威, 博採芻蕘, 登對臣僚, 酬應如響, 則言路之開, 不須在城門之閉矣。 第以朝著之間, 巽懦成風, 徒有將順之習, 而未贊虛受之美。 此則在廷之臣, 當受其責, 而亦恐殿下之求言, 或未盡其要也。 噫! 古之求言者, 不徒受之, 而又從而行之; 不徒行之, 而又從而賞之, 故中人以下, 亦得以無所畏沮, 而敷陳其心腹, 衆善畢集, 而百務皆擧, (比)〔此〕 固聽言之致也。 殿下之所以求言者, 其亦有得於斯乎? 姑以一事言之, 頃者臺官貢章, 請申冤枉, 蓋其不道之兇, 旣出縉紳, 而罔極之奸, 自設機穽, 則其橫罹羅織, 而閉冤泉壤者, 固不可勝言。 籲天莫聞, 人心大崩, 慰答之望, 唯在於昭雪之一擧, 則其所陳列, 當在必行之中矣。 旣命大臣, 商(礭)〔確〕 啓稟, 斯固受其言也, 而及其廷議歸一, 竟無着落, 其可謂行之者耶? 伏願殿下, 俯軫國事之多艱, 深懼輿情之或鬱, 誘之盡言, 擇言必行, 賞之使言, 不言有罪, 則巽順之習, 反成苦口, 而凡百事情, 皆萃於殿下之目前矣。 然則從諫弗咈之道, 可得其實也。 夫人心之擾, 慘於敵國, 立就之間, 興廢立至, 故周宣勞來之政, 先行於側身之時, 鄧禹務悅之言, 首發於杖策之日, 以其懷綏之道, 不可晷刻之或緩也。 民生不辰, 際此兵燹, 亂刃之下, 瘢瘡在身, 積骸之中, 孤寡滿國, 飢疲已極, 飛輓相迫, 則蓋不止澤鴻之哀鳴矣。 其愁怨之聲, 已格彼蒼, 向背之心, 可察其眉, 豈非今日之大可憂者乎? 況南邊將卒, 久在征戍, 偸安老師, 雖未免河上之逍遙, 而山栖水處, 雨沐風櫛, 其暴露之苦極矣。 曲盡人情, 莫切於《詩》, 故《東山》述婚姻之好; 《杖杜〔杕杜〕敍父母之憂, 所謂哀傷惻怛, 不啻在己者也。 噫! 蠢動之心, 至愚而靈, 感發之端, 捷於影響。 山東布詔, 老羸扶杖; 奉天下書, 悍卒歸順。 轉移之機, 亶不在遠, 苟得仁言, 一紙有裕, 此無他, 以心而感心也。 伏願殿下, 時遣近臣, 宣布恩旨, 指示謀生之路, 開陳奉上之義, 益減其不急之徵, 又蠲其無名之斂, 則民人之心, 悅矣; 推解衣之心, 慰橫戈之苦, 考績試才, 行賞試罰, 則將卒之心, 悅矣。 然則天語丁寧, 龍顔咫尺, 仁聲盈耳, 實惠滿腹, 如父之敎子, 而子能知義; 如天之覆物, 而物皆知春。 上下之間, 情意融貫, 君臣之際, 信義固結, 而激勵人心之道, 可得其實也。 夫國之所以爲國者, 以其有刑政也。 若刑政不擧, 則綱紀痿蹶, 而將爲魚爛之歸矣。 如之忠厚, 之寬厚, 之仁厚, 非不有治化之美, 而至其季世, 漸就陵替, 迫於亂亡, 而不能自振, 其或繼此者, 不可無寬猛之相濟耳。 我國昇平百年, 恬憘度日, 人情太勝, 反掩公義, 用法之際, 惟尙寬縱, 因循之習, 久(防)〔妨〕 國政。 及其遇亂, 輾轉摧敗, 萎(薾)〔苶〕 之證, 日至沈痼, 內而朝廷, 外而方域, 人心怠慢, 號令不行, 刑官玩法, 姦吏弄柄, 私意流行, 賞罰乖當, 如忘讐背國之徒, 媚賊要好之類, 尙逭刑章, 則他尙何言哉? 噫! 施其所樂者, 自下而上, 故氓庶有善, 則不終朝而賞隨之; 施其所畏者, 自上而下, 故公卿有罪, 則不終朝而罰隨之。

虞舜之誅四凶, 所以擊天下之大族也。 今日, 官高而赦之, 勢難而赦之, 無情而赦之, 久滯而赦之, 則是天下無可罪之人矣。 伏願殿下, 快揮乾斷, 誕布威信, 要束諸臣, 下及國中, 信賞必罰, 一如所令, 勸之以恩, 而如時雨之潤, 振之以威, 而如秋霜之肅, 則大小之人, 竦心趨事, 擧國之事, 可輸一指, 然則修政振紀之道, 可得其實也。 夫人之所以爲人者, 以其有彝倫也。 若彝倫不明, 則人紀斁絶, 而終爲禽獸之歸矣。 如大之明於人倫, 夏后之肇修人紀, 皆所以淑人心而興治道也。 我國, 累世熙洽, 文物亨泰, 敎化之具, 無所不張, 士以禮法自律, 人以忠孝自勵, 冠婚喪(制)〔祭〕 之式, 不讓於古, 遺君後親之說, 不容於世, 故孝理之下, 鮮有得罪於彝倫者, 而亂離以來, 禁防大毁, 懷不逞之心, 倡無法之說, 唯知身上之患, 罔念膝下之恩, 原隰之裒, 未入於虆梩, 衰麻之食, 不擇於雞臛。 有識(當)〔尙〕 或如此, 況於蚩蚩之氓乎? 孝子之門, 可求忠臣, 而薄於其親如此, 則赴義死國之人, 蓋難拭目也。 噫! 三代之敎, 皆所以明人倫, 則亦在人君防禁而導率耳。 昔樂毅表賢者之閭, 封王蠋之墓, 而人悅服。 秉彝之心, 人所固有, 雖其昏蔽之極, 而豈無感發之端乎? 伏願殿下, 彰善(痺)〔癉〕 惡, 旌別淑慝, 如忠臣孝子及烈女之類, 令有司, 博採公議, 參以聞見, 取其節義之尤著者, 屬之政府, 從實勘覈, 表厥宅里, 以激動人心, 而其或不率者, 竝以本法, 分其輕重而必罪之, 則厚倫成俗之道, 可得其實也。 夫防守之策, 必審其地勢, 故固外而衛其本, 宅中而制其末, 乃保國之要訣也。 凡人家之備盜賊者, 亦必先固其藩籬。 蓋其房戶之間, 無所蔽障, 而直叩其扃鐍, 則其勢已迫, 而不能爲之計矣。 湖、嶺之南, 乃國家之藩籬也。 經理之策, 在所當先, 而任其蕩敗, 罔可收拾, 烏在其固外而衛其本耶? 人之言曰: "國家輕二南, 而重關西。" 朝議雖未必如此, 而人言亦不無所自。 蓋讐賊之意, 不徒在於我國, 則京城以西, 皆係必衝之中, 如或藩籬失守, 而賊環其房戶, 則雖有智者, 亦無如之何。 噫! 二方, 最當賊路, 不問去留, 皆在必守。 若不然, 保完遺氓, 以實其防戍, 而使遠道之人, 裹足而來, 則勞費倍極, 而八路皆困。 此其本道之兵, 一以當百也。 伏願殿下, 別加警飭, 撫戢民兵, 寬其力役, 督其訓習, 振作疲頓, 轉振氣勢, 則兩道之兵, 必有爪牙之用矣。 且列邑山城, 皆所當守, 而勢分則力弱, 患大則難支。 必於諸陣之中, 取其地勢之襟帶者, 擇其天塹之控扼者, 聚兵蓄糧, 作三大陣, 使名將鎭守之, 整飭諸務, 漸成不拔之基, 則賊搏山下, 而我有百二之勢, 彼不能破矣。 然則腹背之地, 無唇亡之患, 而禦敵固本之道, 可得其實也。 夫馬政之修否, 關一國之興替, 故司馬之名, 著於《周官》, 而國君之富, 數馬以對, 蓋其地用, 莫如馬, 以繫國家之大務也。 我國設監牧於各場, 遣郵官於諸道, 而耽羅一域, 無讓冀北, 則以爲庭實, 以爲傳命, 以爲征伐, 而皆無乏用之歎矣。 一經兵亂之後, 盡沒於兇賊, 被掠於軍, 刷出閭里, 隨斃於濫駄, 飢疲馬卒, 亦患於難喂, 則蕭蕭馬鳴, 豈能作三軍之氣, 而駉駉牡馬, 寧或見在坰之盛乎? 況當衰替之時, 牧事尤所當急, 故侯徙居楚丘, 而稱其騋牝之三千; 人復讐西戎, 而誇其駟牡之孔阜。 興復舊業者, 未嘗不以此爲重, 則殿下之留意於馬政者, 亦有所不可緩也。 噫! 牧馬之功, 不能自成, 而必有所勸勵之方, 故之間, 馬大蕃息, 而有茅土之封, 內外之閑, 爲使盡職, 而有開府之加, 所以優其褒賞, 而責其大效者, 蓋無以加矣。 伏願殿下, 命刷現數, 聚爲國籍, 擇其諸宰中盡心國事者, 稱使以領之, 又分其馬數, 屬諸勤謹之人, 而就養於水草茂暢之地, 如故事, 較其生息多寡, 以爲賞罰, 則軍馬之盛, 可以着鞭於討賊矣。 且田家之牛, 一皆蕩盡, 農畝之耕, 代人以駕, 而京外屠殺, 至今不止, 吁亦盡之矣。 民食軍餉, 將何所作農而爲資耶? 若申其嚴禁, 許令相告, 各以本律, 爲之賞罰, 重其牧養之道, 可得其實也。

臣等旣以無用文字, 瀆陳於前, 復有壞一國之人心, 而敗恢復之大業者, 不得不覶縷於後焉。 蓋變故以後, 事玩情狃, 義屈於厭亂, 而怠心遽乘, 勢窮於討賊, 而苟計自生, 羈縻之說, 已迫於官, 而許款之請, 至煩於皇朝, 紫泥東封, 龍節指海, 館待路候, 擧國駿奔。 噫! 我國之事, 已無可言, 而逆天之兇, 反入於大國之包容, 此亦關於天運, 而不得免者耶? 殿下屢下憤切之敎, 痛排姑息之議, 大義澟然, 可質神明, 而勢已至此, 罔可防制, 如水之流, 滔滔不返。 如宰執之人, 亦或有倡之者, 百雌相和, 指爲良籌, 復讐之義, 反成分外, 語到和好, 衆耳先傾, 言及攻戰, 萬口皆閉, 唯將苟保之首領, (翅)〔翹〕 望渡海之日月, 此可謂有人之心, 而可圖恢復之業乎? 殿下旣有導率之權, 而終不能斥其邪而反之正, 則抑恐誠意之或有所未盡也。 若殿下益勵恢復之志, 而赫然變動, 是誠在我云爾, 則凡厥臣民, 又孰無風草之偃乎? 況兇賊有去留之機, 而使之意, 唯急於成事, 則此間難處之患, 尤不可不慮。 必須參情據義, 豫定謀畫, 臨時善措, 不失其正, 而又將倡成邪說者, 彰其所犯, 置諸王法, 以不共戴天之義, 命撰敎書, 布告中外, 則庶可以無負於祖宗, 而有辭於永世矣。 從前所陳之說, 雖未足以盡當今之弊, 而小可以害中興之政, 大可以壞中興之業。 殿下若欲矯其弊而盡其實, 則揣摩之柄, 不出於一心之中, 而運用之妙, 可驗於萬有之表矣。 寧有所須待於人而爲之者耶? 然而回蕩覆之勢, 而竪全安之基, 乃變(草)〔革〕 之大者也。 非有大志至誠, 足以旋轉其乾坤, 則不能成改紀之績, 而殿下欲以寸筳撞之, 其亦有乖於擊鍾之道矣。 夫鍾, 悲而擊之則哀; 怒而擊之則武, 誠意之入也。 當撫綏之政, 則何不悲而擊之, 當攻守之策, 則何不怒而擊之耶? 擊之, 且不能盡其道, 而望其聲之大應, 則徒費時日, 而有難成之患矣。 是故, 光武披圖, 而歎難郡國之未定; 昭烈撫髀, 而泣功業之不建。 蓋日月逾邁, 若不云來, 則二君之所以憂悶者, 可謂慼矣。 李綱, 條陳六事, 而愛惜日力, 乃居其一。 臣等之眷眷於殿下者, 亦出於李綱之意也。 殿下若俯採聾瞽之說, 立其志而啓恢復之基, 盡其誠而得恢復之實, 則殿下所欲爲者, 顧未有不效者矣。 請以 宗系辨誣之事證之, 將祖宗被誣之冤, 爲一已窮天之痛, 哀籲皇朝, 必求昭雪之地, 奉天之忱, 終始不二, 能以數百年海外之至痛, 而竟徹於九萬之蒼蒼。 若非殿下志勤而誠至, 則安能濟此天下之至難者乎? 今者顚覆之患, 旣當殿下之身, 則重恢之意, 必在殿下之手, 而旣有退托之心, 累煩權署之命, 人情駭悶, 百爲渙散。 上帝監臨, 報應不爽, 則豈非可戒者乎? 伏願殿下, 益盡其復讎之誠, 而必極其 反身之功, 大其量以軌群物, 大其明以照衆情, 大其仁以育民生, 大其智以察事幾, 大其勇以圖討賊, 大其義以期復讎, 則本源澄澈, 衆功皆集, 人心所趨, 天命可圖, 所謂恢復之基, 恢復之實, 無不畢擧, 而 殿下之生於憂患者, 端在於此矣。 如曰未然, 則臣等雖伏欺罔之罪, 亦所甘心。 《詩》云: ‘譬彼舟流, 不知所屆。 心之憂矣, 不遑假寐。’ 萬死餘生, 濫叨驅使, 補無涓埃, 夢寐亦驚, 歲月所得, 唯有涕淚盈襟耳。 昔諸葛亮, 陳戒於其主曰: ‘陛下亦宜自謀’, 終之以 ‘臨表涕(零)〔泣〕 ’, 則傾陽寸忱, 無間賢愚, 耿耿孤誠, 寧不厚望於 殿下哉! 取進止。

上答曰: "省箚, 憂國之誠, 謀國之智至矣。 不任感(惕)〔惕〕 。 當議而處之。"

【史臣曰: "一篇箚辭, 實出肝膽忠誠, 擧以行之, 不啻若治病之良劑也。 然與其議而處之, 孰若改而用之? 一下備邊, 僉意異同, 善謨喜策, 終歸寥落, 無補於萬一, 良可歎也。"】


  • 【태백산사고본】 39책 65권 1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521면
  • 【분류】
    농업-축산(畜産) / 사법-재판(裁判) / 윤리-강상(綱常) / 역사-편사(編史) / 역사-고사(故事) / 교통-마정(馬政) / 정론-간쟁(諫諍) / 정론-정론(政論) /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친(宗親) / 군사-병법(兵法) / 군사-군정(軍政) / 군사-병참(兵站) / 인사-임면(任免) / 인사-선발(選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