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에서 명사의 경성 체류시의 접대 대책에 대해 건의하다
호조가 아뢰기를,
"삼가 접반사의 장계를 살펴보고 또 형편을 헤아려 보건대, 명사가 경성에 머무르는 기간은 반드시 수 개월에 그치지 않을 것인데, 신들은 계책이 궁하고 힘이 다하여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해사의 모든 물건은 한결같이 탕진되었고 이번에 접대 도감에서 마련한 것이 10일을 지공할 수 있는 것인데도 현물이 없어 부족한 물건이 또한 많습니다. 대체로 현재 군자감에 남아 있는 미곡과 두태는 모두 1만 4천여 석인데 1개월의 급료는 3천여 석 전후로서 수시로 달라져 일률적으로 정할 수 없습니다. 요즈음에는 명사가 와서 경비가 이루 헤아릴 수 없고, 더구나 양향청(糧餉廳)의 1개월간 잡비는 1천 4백여 석인데 저축한 것은 거의 동이 나서 며칠 못가 모두 없어질 지경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거느린 장관(將官)과 가정(家丁)·군병(軍兵)이 모두 5백여 명이고, 말이 5백여 필이며, 관전병(寬典兵)이 또 3백여 명이라고 하니, 1개월간 지공하는 데 드는 미곡과 두태는 대개 1천 6백여 석이 됩니다. 그러나 근래에는 당인(唐人)의 출입이 일정하지 않아 짐작하여 결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각도의 전세(田稅)의 작미(作米)와 신공(身貢) 및 사신을 접대할 잡물을 서찰을 보내어 재촉하기도 하고 혹은 곧바로 이문(移文)을 발송한 것이 수없이 많습니다마는, 민력(民力)이 이미 고갈되어 전혀 상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해운 판관(海運判官) 조존성(趙存性)과 본조 정랑(本曹正郞) 최동망(崔東望)의 이문(移文)을 보니, 법성(法聖) 【포구(浦口) 이름이다. 】 에서 처음 운반한 미곡과 두태는 모두 1만 3천 7백여 석으로 이달 2일에 배를 띄웠고, 아산(牙山)에서 두 번째로 운반할 미곡과 두태는 모두 5천 8백여 석으로 23일 경에 나누어 싣고자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천리를 조운하여 한강에 도착하는 숫자는 꼭 맞는다고 보장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을 제외하고는 달리 조치할 만한 일이 없으니 오늘의 급선무는 쓸데없는 관원을 줄여서 경비를 절약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그러나 계하(啓下)한 이후에도 해조가 아직까지 거행하지 아니하여 금군(禁軍) 중에는 재주 없고 용렬한 사람이 헛된 이름으로 소속되어 있는 자가 평시보다 배나 되는데, 깨끗이 없애도록 여러 차례 청하였으나 오래도록 액수(額數)를 정하지 아니하여 낭비가 여전합니다. 대체로 전혀 소관(所管)이 없는 부서가 늠료(廩料)만 허비하며, 비록 소관이 있는 부서라고 하더라도 사무는 한가한데 인원이 많아서 공론이 모두 온당치 않게 여기고 있습니다. 아동 포수(兒童砲手)는 미리 양성하는 것이 절실하기는 하나 현재 적을 방어하고 있는 군사가 아닌 듯하고, 출전한 장사(將士)의 처(妻)에 대한 급료도 장사를 위로하고 기쁘게 해주는 좋은 뜻이기는 하나 군량을 잇기가 어려운 형편이니 이것도 의논할 소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환시(宦寺)의 숫자가 60명에 가까운데 문을 지키고 청소하는 일은 한 사람이 10가지 일을 겸할 수 있습니다. 청컨대 유사(有司)로 하여금 적당하게 줄이어 군량을 이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아뢴 대로 하라. 그러나 아동 포수와 출전한 사람의 처에 대한 급료는 감할 수 없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7책 62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484면
- 【분류】재정-국용(國用) / 왕실-의식(儀式) /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
○戶曹啓曰: "伏見接伴使狀啓, 且以事勢料之, 天使留京, 必非數月而已, 臣等計窮力竭, 罔知所爲。 該司百物, 一樣蕩竭, 今者接待都監磨鍊者, 十日所供, 而亦多無形不足之物。 大抵軍資監時遺在米、太, 竝一萬四千餘石, 而一朔散料上下三千餘石, 隨時各異, 不可槪定。 近日則天使方臨, 經費萬億, 況糧餉廳一朔雜用之數, 多至於一千四百餘石, 而儲畜垂竭, 指日將盡, 而天使所率將官、家丁、軍兵, 竝五百餘名、馬五百餘匹、寬典兵又三百餘名云, 一朔支糧米、太, 大槪一千六百餘石, 而近來唐人之出入加減, 甚無常數。 亦難懸定。 各道田稅、作米、身貢及天使支待雜物, 或下書催促, 或直發文移, 不知其數, 而民力已竭, 頓不上納。 今見海運判官趙存性、本曹正郞崔東望移文, 法聖, 【浦名。】 初運米、太竝一萬三千七百餘石, 今月初二日發船牙山, 再運米、太竝五千八百餘石, 二十三日間, 亦欲分載云, 而千里漕運, 到江之數, 亦難保其必準。 此外他無可措之事, 今日之務, 莫急於汰冗省費, 而啓下之後, 該曹尙不擧行, 禁軍之庸劣無才、虛名圖付者, 亦倍平時, 而累請淸汰, 久不定額, 浪費猶前。 夫以全無所管之司, 虛費廩料, 雖有所管之司, 務閑而員多, 物議皆以爲未便。 兒童砲手, 雖切於預養, 似非目前禦敵之卒; 赴戰將士妻料, 亦是慰悅將士之盛意, 而軍餉難繼, 則此亦可議。 宦寺之額數, 亦近六十, 守門掃除之任, 一人可兼十事。 請令有司, 量宜汰去, 以爲可繼之道, 何如?" 上曰: "依啓。 兒童砲手, 赴戰人妻料, 不可減也。"
- 【태백산사고본】 37책 62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484면
- 【분류】재정-국용(國用) / 왕실-의식(儀式) /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