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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61권, 선조 28년 3월 23일 병신 3번째기사 1595년 명 만력(萬曆) 23년

훈련 도감에서 각지역의 훈련 대책에 대해 건의하다

훈련 도감이 아뢰었다.

"교사(敎師)들을 각도에 나누어 파견하는 일을 어제 습진(習陣)이 파한 뒤에 다시 모두 모여 상의하였으나 의논이 분분하여 논쟁이 그치지 않았는데, 여러모로 개유하고 이렇게 마련하여 아룁니다. 다만 교사들이 지금 내려간다 할지라도 우리들이 성심으로 접대를 해야만 착실히 일을 보겠다는 사람이라면 한갓 가고 오며 폐나 끼칠 뿐일 것이니, 그 점이 매우 우려됩니다. 근면하고 성실한 관원을 특별히 가려 뽑아 대동하고 내려가게 하면 주선하고 경영(經營)하는 바가 있겠으나 역시 합당한 사람을 얻기가 쉽지 않으니 다시 헤아려보고서 차후 아뢰겠습니다.

황해도에는 연병(鍊兵)할 수 있는 형태를 대강 갖추고는 있으나 교사가 머물 곳이 없습니다. 며칠 전 그곳의 형편을 정광적(鄭光績)에게 물으니, 다행히 보내주기를 청할 경우 서울에 있는 사람 한두 명을 파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 무예가 절묘한 사람을 특별히 서울에 머물러 있게 하면서 각 초(哨)의 군병(軍兵)을 교육시키려 하신다면 파총(把總) 양귀(楊貴)진백기(陳伯奇)가 그 중에선 으뜸입니다. 어제 다시 청하여 각자의 무예를 시험해 보니, 양귀는 쌍도(雙刀)와 언월도(偃月刀)에서 가장 잘하고, 창선(搶筅) 등 여러 기량에선 진백기가 나은 것 같았습니다. 대개 이번에 온 교사들은 무예가 특별히 절묘한 사람은 별로 없고 모두 왕대귀(王大貴)와 비등하였는데 혹은 그만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절병(浙兵)117) 의 각종 무예는 원래 손놀림과 발놀림을 익숙하게 하고 담력의 단련을 힘쓸 뿐이어서 특별한 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 건장한 사람은 잘 운용하여 보기에 좋은 것같았습니다. 지금 살수병(殺手兵) 중 창선을 다루는 사람은 드물다고 하더라도 보(譜)를 아는 사람은 더욱 적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각보(各譜)를 정밀하게 가르쳐서 익숙하게 단련시키면 법식에 어긋나는 폐단은 자연히 없어질 것입니다. 그 요체는 오직 자주 상벌을 보여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부지런히 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전라도 땅에는 중국인이 많으니 광주나 나주 같은 곳에서 모집하여 훈련을 잘하면 큰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이(李二)장육삼(張六三)의 계책이 이러하기는 하나 이 두 사람은 영진법(營陳法)을 모릅니다. 섭대조(葉大潮)는 무예가 뛰어나고 전에 척계광(戚繼光)의 군중에서 종사하여 보고 들은 일이 많을 것이니, 섭대조에게 먼저 전라도로 가서 교육한 뒤에 경상도로 가게 하면 어떠하겠습니까?

서울에서 화전(火箭)과 화기(火器)를 만드는 사람은 진 천총(陳千總)의 휘하 장정 오천명(吳天明)오수인(吳守仁)인데 진응룡(陳應龍)보다 못하지 않으므로 응룡경상도로 파견하였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37책 61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467면
  • 【분류】
    군사-병법(兵法)

  • [註 117]
    절병(浙兵) : 절강성에서 온 중국 병사.

○訓鍊都監啓曰: "敎師分道派遣事, 昨日習陣罷後, 更爲齊會商議, 則議論紛起, 爭詰未定, 多般措辭開諭, 如是磨鍊以啓矣。 但敎師等, 今雖下歸, 而在我欲誠心接待, 着實看事之人, 則徒貽弊往來而已, 此極可慮。 所當別擇勤幹官員, 帶同下去, 有所料理經營, 而恰當之人, 亦未易得。 更爲商量, 隨後以啓。 黃海道粗有鍊兵之形, 而敎師無留住之處。 頃日問其形止於鄭光績, 幸若請送, 則在京人一二員, 可派遣矣。 其中武藝絶妙(乏)〔之〕 人, 欲特留京城, 敎訓各哨軍兵, 則把總楊貴陳伯奇爲其類之冠。 昨日措辭, 請觀更試各藝, 則楊貴最善於雙刀、偃月刀, 至於(搶)〔槍〕 筅諸技, 陳伯奇似勝。 大槪今來敎師等, 別無武藝特妙之人, 俱是王大貴等夷, 而或有不及者, 兵各樣武藝, 元以鍊手、鍊足熟之, 而鍊心膽爲務而已, 似無別法。 其中驍健者, 則善爲運用, 觀見似好矣。 今殺手各兵, 雖(鮮)〔解〕 操(搶)〔槍〕 筅, 而知譜鮮少。 但當精敎各譜, 使至於鍊熟, 則自然無齟齬之弊。 其要則惟在頻示賞罰, 勤而不懈耳。 全羅道唐人多, 如羅州等處, 善爲招集訓鍊, 則可以大擧。 李二張六三, 雖執籌如此, 而二人不解營陣之法。 葉大潮, 武藝勝人, 曾從事於戚繼光軍中, 多有所聞見之事。 葉大潮先往全羅敎訓後, 及於慶尙則何如? 京城造火箭、火器之人, 則陳千總親丁吳天明吳守仁, 不讓於陳應龍、故應龍派分慶尙道矣。


  • 【태백산사고본】 37책 61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467면
  • 【분류】
    군사-병법(兵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