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선조실록 60권, 선조 28년 2월 30일 계유 6번째기사 1595년 명 만력(萬曆) 23년

대신·비변사 당상·등을 인견하고 가등청정의 제거·왜적 서계 문제 등을 논의하다

상이 별전에 나아가 대신 및 비변사 당상·양사·옥당을 인견하였다. 영의정 유성룡(柳成龍), 좌의정 김응남(金應南), 우의정 정탁(鄭琢), 행 판윤(行判尹) 김명원(金命元), 호조 판서 김수(金睟), 행 대사헌 홍진(洪進), 병조 판서 이항복(李恒福), 참판 윤선각(尹先覺), 우승지 이덕열(李德悅), 홍문관 응교 황시(黃是), 사간원 헌납 이철(李鐵), 홍문관 수찬 김용(金涌), 주서 신성기(辛成己), 가주서 김정룡(金廷龍), 검열 윤휘(尹暉)·이정혐(李廷馦)이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청정의 일에 대하여 급히 선전관을 보내어 망령되이 움직이지 말게 하려 한다. 나의 생각은 그러한데, 여러 의논은 어떤지 모르겠다."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금일의 사세를 보니, 비록 백방으로 생각해도 선책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들은 각기 소견을 말해 보라."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청정은 정말 호랑이 같은 자입니다. 3∼4월 사이에 중국 사신이 만일 나오지 않는다면 반드시 도전해 올 염려가 있을 것입니다. 매번 수길에게 군사를 증원하여 바다를 건너 보내라고 청한 자가 청정입니다. 만일 청정을 제거하려면 기회를 잃을 수 없고, 그 일을 또한 막기 어려울 것 같기에 어제 상의하여 그처럼 아뢰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상교(上敎)의 말씀을 삼가 보니 실로 매우 윤당합니다. 또 적중의 일은 멀리서 헤아릴 수 없거니와, 투항해 온 사람이 과연 청정의 심복이라면 도모해 볼 만한 일일 것 같은데, 도모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로 인한 관계가 매우 중대하니, 상교가 지당합니다."

하고, 김응남이 아뢰기를,

"신의 소견도 유성룡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청정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죽이려면 죽일 수 있겠지만, 죽이면 필시 큰 일이 생길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생각은 이러하다. 모든 일은 반드시 빈틈없이 한 연후에야 될 것이다."

하였다. 정탁이 아뢰기를,

"자고로 꾀를 가지고 승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청정행장과 틈이 있고 둔병(屯兵)한지 이미 오래이며 또한 그를 원망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투항해 온 자가 과연 청정의 심복이라면 그 일은 이루어질 것 같으니, 장수로 하여금 기회를 잃지 않게 하는 것이 가합니다. 조정에서는 장수만 잘 택할 뿐이니, 천리 밖에서 적을 헤아린다는 것은 참으로 불가합니다. 만일 청정을 제거한다면 10만 병력을 덜 수 있으니, 신의로써 적을 대항할 수는 없습니다. 단 일이 만일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참으로 성상의 염려하시는 바와 같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치밀하게 생각할 일이다. 만일 중국이 돌보아주지 않는다면 그 뒤의 상황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저 적은 계략으로는 깨뜨릴 수 있어도 병력으로는 겨룰 수 없다. 중국의 병력도 아무 때나 빌 수는 없는 것이다. 항왜가 바친 계책을 보면 비록 심하게 어긋난 일은 아니나 반드시 먼저 우리 나라의 형세를 세운 연후라야 비록 그 계책을 행하더라도 저 적이 성세를 믿고 깔보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김명원이 아뢰기를,

"중국에서 행장과 기미책을 하였고 청정과는 하지 않았으니, 비록 청정을 제거하더라도 중국에서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제거한 뒤에 곤란한 일이 있을까 싶다. 또 이른바 ‘격성(激成)’이란 것은 계책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반격받는다는 것을 이름인가?"

하자, 김수가 아뢰기를,

"비록 죽이더라도 만일 우리 나라 사람이 한 줄 알면 반격한다는 말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어찌 모를 리가 있겠는가."

하였다. 유성룡이 아뢰기를,

"청정이 만일 재침해 온다면 중국이 강화했다 해서 사살하지 않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상하의 의견이 각각 다르니, 각기 할 말을 다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유성룡이 아뢰기를,

"신들의 생각은 오직 죽이지 못할까도 염려되거니와 죽이기 쉽지 않을 것이 염려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계책이 행해진다면 죽이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왜인은 꾀를 잘 내는 자들이니, 앞에 예병(銳兵)을 풀고 뒤에서 발사하면 죽일 수 있다. 단 우리 군사가 붙잡히게 된다면 그때에는 말할 수 없는 일이 있을 것이다. 붙잡히지 않을 리가 만무하다. 우리 나라는 작은 일도 본디 숨길 수 없는데 그들이 자중지변이라 여기고 우리 나라를 의심치 않을 리 있겠는가."

하자, 김명원이 아뢰기를,

"그럴 리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다만 그 계책을 이미 행했을까 염려스럽다."

하니, 정탁이 아뢰기를,

"비록 선전관을 보내더라도 미치지 못할 듯싶습니다."

하였다. 유성룡이 아뢰기를,

"청정을 만일 제거하면 수길이 비록 거만 무례하나 반드시 그 기가 꺾일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청정을 제거하면 수길의 형세가 과연 약해지고 여러 적진이 흩어지겠는가?"

하자, 유성룡이 아뢰기를,

"옛날에 진평(陳平)아보(亞父)종리매(鍾離昧) 등을 이간하여 떠나게 만들자 항우(項羽)의 운세가 떠나버렸습니다. 수길이 신하로서 청정 같은 자는 쉽게 얻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김명원이 아뢰기를,

"청정을 죽이면 도당이 흩어질 것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하고, 정탁이 아뢰기를,

"10만의 병력으로도 쉽게 잡을 수 없는 자를 다섯 사람으로 잡을 수 있다면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호조 판서의 생각은 어떠한가?"

하니, 김수가 아뢰기를,

"중국은 비록 청정을 제거했다는 말을 들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그를 제거한 뒤에 중국이 좋아하겠는가, 좋아하지 않겠는가?"

하니, 홍진이 아뢰기를,

"비변사의 뜻을 신은 알지 못하겠습니다마는, 만일 이루어진다면 참으로 좋아할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적의 정세를 알지 못하여 매번 속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청정의 제거를 행장이 기뻐할지도 알 수 없고, 이 항왜의 뜻도 알 수 없습니다. 스스로 청정에게 원한을 품고 그런 계략을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또 그런 계략은 서로 싸울 때 행하는 것은 가하거니와, 기미책을 쓰고 있을 때에는 방해가 될 것 같습니다. 청정의 제거를 행장이 쾌하게 여기지 않으면 중국에서도 그릇되게 여길 것입니다. 병가의 일은 신이 본디 알지 못하나, 신의 망령된 생각은 이와 같습니다. 단 이 거만 무례한 자가 제거된다면 수길의 기세는 꺾일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병조 판서의 생각은 어떠한가?"

하니, 이항복이 나아가 아뢰기를,

"소신의 생각에는 청정을 잡지 못할 것으로 여깁니다. 항왜가 혼자 가지 못하고 반드시 우리 군사와 함께 가려고 할 것인데, 우리 군사는 결코 함께 갈 수 없으니, 다섯 항왜의 힘으로는 결코 청정을 잡지 못할 것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만일 청정이 죽을 때가 왔다면 요행이겠다."

하였다. 이항복이 아뢰기를,

"행장이 비록 청정과 틈이 있더라도 수길이 만일 청정의 죽음을 들으면 반드시 행장으로 하여금 원수를 갚게 할 것인데, 행장이 어찌 수길의 말을 듣지 않겠습니까. 신의 생각에는 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여깁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는 별도의 생각이 있다. 고언백김응서 등은 공을 다투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 김응서가 품명(稟命)하지도 않고 오가며 서로 만나서 강화하는 것을 공으로 여긴 때문에 고언백이 또 적을 죽여 공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다. 변장들이 공을 다투는 것은 매우 좋지 못하니,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우리 나라의 변장 중에 어찌 계려(計慮)를 가진 자가 있겠는가."

하였다. 유성룡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는 일을 할 수 없으니, 믿는 것은 중국뿐입니다. 위에서 내리신 전교가 만전하기는 하나, 실제로 청정이 우리 나라를 범하게 될 것이라면 어찌 다른 일을 염려해서 사살하지 않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말은 그렇지 않다."

하였다. 유성룡이 아뢰기를,

"기미책의 일은 반드시 속히 중국 사신을 청한 연후에야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심유경(沈惟敬)이 나온 뒤에 자문을 보내 중국 사신을 청한다면 늦을 듯싶으니, 속히 의정하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하고, 김수는 아뢰기를,

"이시발(李時發)이 말하기를, 심유경은 마땅히 오래지 않아서 나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고, 이덕열은 아뢰기를,

"누국안에게 자문을 속히 지어주되 행장의 서신을 기재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일 자문 속에 싣는다면 중국 조정에서는 반드시 수호(修好)하는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하고, 정탁은 아뢰기를,

"중국 사신이 나오지 않으면 왜적이 결코 물러갈 기약이 없을 것이니, 서로 버티는 날이 오래되면 의외의 환이 있을까 싶습니다. 기미책도 이루어지기 어려울 듯하니, 왜장의 서신을 자문 중에 싣더라도 불가할 것이 없습니다."

하고, 김수는 아뢰기를,

"이덕열의 말이 옳은 것 같습니다. 이시발의 말을 들으면, 권율행장의 술을 마시고 두 도를 떼어주기로 허락하였다가 주지 않으니, 매우 정직하지 않다고 하였답니다. 이런 말을 행장진 유격에게 했다면 중국 사람들은 모두 왜적과 통하는 일을 알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혹자가 권율을 치죄할 것을 말하는데, 서서히 살펴서 할 것이다. 김응서와 왜인이 문답한 글을 진 유격에게 빼앗겼다 하니, 우리 나라의 일은 이처럼 엉성하다."

하니, 김수가 아뢰기를,

"이시발이 그 글을 보다가 진 유격의 가정(家丁)에게 빼앗겨서 지금 진 유격의 여장 속에 들어 있다고 합니다."

하고, 유성룡은 아뢰기를,

"이 같은 문서는 서로 주고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나라의 일은 원래 이와 같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참판도 말해보라."

하니, 윤선각이 아뢰기를,

"신의 소견은 대개 유성룡과 같습니다. 어젯밤에 전교를 보니, 신들의 생각이 미치지 못할 바이고 계책도 바로 만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때문에 다시 회계하였습니다. 무릇 의논이란 반드시 자세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행장청정의 죽음을 바란다고 했는데 신의 생각에는 그렇지 않다고 여깁니다. 비록 혐의가 있다 하지만 청정이 만일 죽으면 행장은 반드시 동요할 것입니다. 우리의 일로 논하면, 김응서고언백이 비록 서로 용납하지 못하나 만일 아무가 해를 입는다면 아무가 어찌 능히 안심하겠습니까. 청정이 비록 죽는다 해도 여러 진은 반드시 물러가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중원이 바야흐로 행장과 청정 등을 통하여 기미책을 쓰는데, 하루아침에 청정을 제거한다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이다. 중원이 항상 우리 나라에 책임지우려 하나 계제를 얻지 못하고 있는데, 만일 이 거사를 듣는다면 반드시 모든 것을 우리 나라에 책임지울 것이다. 중원이 만일 압록강(鴨綠江)만 지키고 우리 나라를 돌보지 않는다면 비록 강화를 하려고 해도 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청정 하나를 죽임으로써 일이 끝난다면 괜찮겠으나, 그렇지 않으면 어찌 염려할 큰일이 아니겠는가. 경들은 다시 자세하게 의논하라."

하니, 정탁이 아뢰기를,

"처음에 신들의 뜻으로 아뢰었으나, 어제 상교를 받드니 극히 윤당하였습니다. 이밖에 다른 의논이 없습니다."

하고, 유성룡은 아뢰기를,

"병가(兵家)에서 응변하는 것은 마치 바람을 붙잡고 그림자를 포착하는 일과 같은 것이지만 혹 이루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고언백의 이 계책이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고는 참으로 알 수 없으나 병가의 입장에서 보면 틈탈 만한 기회인 것 같은데, 단 중국의 기미책 때문에 어렵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왜정(倭情)에 대한 주문사(奏聞使)를 각각 차견해야겠는가?"

하니, 김수가 아뢰기를,

"반드시 연소한 사람을 차출하여 빠른 말을 태워서 달려보내야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주문(奏聞)의 끝맺음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먼저 진 유격의 자문 및 박진종의 서계에 의거하여 ‘저 적이 중국 사신을 고대함은 실로 성심에서 나온 것이나 전일 공갈을 받았다는 이유로 곧 물러가지 않으니, 하루를 물러가지 않으면 우리 나라에 하루의 피해를 끼치는 것이 매우 크다.’라는 등의 말을 가지고 낱낱이 들어서 주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왜적의 서계(書契)는 주문에 싣지 않아야 할 것 같다. 우리 나라는 결코 왜적의 서계를 받을 수 있는 이치가 없다. 중국이 어찌 왜적의 서계를 본 뒤에야 적의 실정을 알겠는가."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누국안이 받아 왔으니, 곧바로 그 서계를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숨겨두고 고하지 않으면 솔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가 받고 고하지 않으면 숨겨둔 것이 되겠지만 누국안이 비록 싸가지고 왔어도 우리는 받지 않았으니, 어찌 숨겨둔 것이라 하겠는가."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누국안 등이 김응서가 서로 통한 일을 다 알고 있는데, 어찌 왜적의 서계를 받지 않는 것으로써 누국안을 속여넘길 수 있겠습니까. 또 누국안진 유격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과연 그런 일이 있는가?"

하니, 이항복이 아뢰기를,

"누국안이 말하기를 ‘행장이 「진 유격이 전에 진영에 왔을 때 배 몇 척을 보내달라고 빌었기 때문에 내가 배를 보낼 것처럼 말했다. 」고 했다.’ 하며 이것으로 진 유격을 나무라고 있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누국안이 이것을 병부에 말해 주지 않겠는가? 만일 그렇다면 병부에서 반드시 진 유격의 자문을 허위로 여길 것이다."

하였다. 김수가 아뢰기를,

"진 유격행장이 서로 맹서한 글이 있었는데, 누국안이 그 글을 보고 박진종에게 말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맹서한 것은 무슨 일인가?"

하자, 윤선각이 아뢰기를,

"알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고, 김수가 아뢰기를,

"담 상공(譚相公)도 역시 진 유격과 틈이 있는데, 당초에 진 유격이 오래도록 거창(居昌)에 머문 것은 역시 형세를 살펴보려는 뜻에서라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수길이 중국 사신을 청하는 데는 반드시 속셈이 있을 것인데, 중국 사신이 오면 곤욕스런 일을 당할 줄 어찌 알겠는가. 만일 그렇다면 중원은 반드시 우리 나라에 죄를 돌릴 것이다."

하니, 이항복이 아뢰기를,

"중국 사신은 한 필부일 뿐인데, 무슨 욕을 당하겠습니까."

하자, 상이 이르기를,

"어찌 그렇겠는가. 중국 사신을 구류해 놓고, 하고 싶은 것을 더욱 요구하지 않겠는가."

하니, 이항복이 아뢰기를,

"중원이 어찌 사신이 잡혀 있다 해서 따르지 않을 일을 따르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왜적의 서계를 보내야 할지, 안 보내야 할지를 의정하라."

하니, 이항복이 아뢰기를,

"비록 왜적의 서계를 보내더라도 의리에 해롭지 않을 듯싶습니다. 신들의 생각에는 보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누국안이 이미 가지고 왔으니,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 유격도 말하기를 ‘너희 나라가 보내지 않으면 내가 마땅히 가지고 갈 것이다.’ 하였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진 유격이 가지고 가면 무방할 것이다."

하니, 김수가 아뢰기를,

"그것은 역정낸 말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양 포정(楊布政)은 어떻게 나오는가?"

하니, 김수가 아뢰기를,

"진 유격이 말하기를 ‘양 포정은 스스로 자신을 천거해서 나온다.’ 하였습니다. 또 어제 진양기(陳良璣)를 보고 나오는 이유를 물었더니, 답하기를 ‘조정이 비록 심유경(沈惟敬)을 보냈으나 왜적의 실정과 귀국의 사정을 파악하지 못한 때문에 보낸 것이다.’ 하고, 어느 때에 돌아갈 것인가를 물었더니, 답하기를 ‘왜적이 다 철수해 간 뒤에 돌아갈 것이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진양기의 교련법은 전의 교사와 같은가?"

하니, 김수가 아뢰기를,

"전의 교사보다 조금 나은데 매우 성실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만일 그렇다면 두 가지를 다 배우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

하니, 김수가 아뢰기를,

"대개는 대동 소이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교사를 각도로 나누어 보내야 할 것인데 나누어 보내기가 어려울 것 같으니, 진 유격으로 하여금 나누어 보내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나누어 보낸다면 좋겠으나, 그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근자에 들으니, 중국 사람이 왕래하며 쇄마(刷馬)를 독촉할 때, 반드시 먼저 명주를 징수하므로 연로에서 감당하지 못한다 합니다. 모처(某處)로 나누어 보내서 사졸을 훈련시키게 했으면 좋겠으나, 송대빈(宋大斌)의 작폐 같은 경우 소관의 무리들이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왕년에 훈련 절목(訓鍊節目)을 나누어 보냈는데, 수령들이 버리고 사용하지 않으니, 한 장의 공문서(空文書)가 되었을 뿐입니다."

하고, 정탁은 아뢰기를,

"비록 평상시에 있어서도 1년에 두 번 수령을 바꾸면 그 고을은 반드시 폐읍이 되고 마는데, 이때를 당해서 겨우 부임하자마자 금방 파직 또는 체직이 되곤 합니다. 그러니 이후로는 풍문에 의하여 탄핵하는 것을 허락치 말아서 자주 바꾸지 않는다면 혹 백성에게 이로울 것입니다. 성주 목사(星州牧使) 조호익(曺好益)은 백성을 잘 다스리므로 사방의 백성들이 날로 모여드니, 참된 순리(循吏)093) 입니다. 조정에서 순리를 포장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유성룡이 아뢰기를,

"신이 앓고 있는 질병이 날로 위증해 갑니다. 몸을 돌보려는 것이 아니라 단 일을 처리함에 혼미하여 금시 잊게 되니, 죽기 전에 본직을 갈아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영상이 이때 만일 사퇴하면 국사가 어떻게 되겠는가. 조리하여 행공함이 마땅하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심유경이 요동 군사 8백 명을 거느리고 온다 하니, 그 까닭을 모르겠다."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왜적이 비록 철수해 간다 하더라도 반드시 배로 운반할 것이니 일시에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심유경은 우리 나라 군사가 살해할까를 염려하고 또 중국 군사의 위엄을 보이려고 한 때문에 이처럼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오는 듯싶습니다. 그러나 식량이 고갈되었으니, 어떻게 접대하겠습니까. 사람들은 모두 작미(作米)를 가지고 말들을 하는데 작미도 또한 폐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모미(牟米)를 대신 받는다 하더라도 반드시 받은 연후에야 지탱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김응남은 아뢰기를,

"들으니, 전라도의 나주(羅州)와 남원(南原)에 약간 저장된 곡식이 있고, 그 밖의 전주 같은 큰 고을에도 단지 2천 석만 있을 뿐이라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정암(李廷馣)이 어찌 그와 같이 하는가?"

하니, 윤선각이 아뢰기를,

"이정암은 무사(無事)를 주로 삼기 때문에 능히 조곡(糶穀)을 거두어 들이지 않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이같이 한 것은 백성의 유리를 방지한 것이다."

하였다. 김수가 아뢰기를,

"각읍의 일들은 모양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령 중에는 혹 풍요와 사치함을 누리고 일을 벌이기를 좋아하는 자가 있으니, 어찌 이같이 놀라운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적발해서 치죄해야 하겠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비변사가 전에 기축 원왕(己丑冤枉)094) 에 대한 일을 말했는데 나는 어렵게 여겼었다."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큰 난리 후에는 반드시 큰 사면(赦免)이 있어야 인심을 위로해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고, 정탁이 아뢰기를,

"유체(留滯)시키지 말고 괘히 결단하여 사면하면 천지(天地)와 신인(神人)의 마음을 크게 위로하고 중흥(中興)의 길에 도움이 있을 것입니다. 을사 원왕(乙巳冤枉)095) 도 소급해서 설원하여 전대의 공업을 빛나게 하였는데, 하물며 성조(聖朝)에 있었던 일이겠습니까."

하고, 홍진은 아뢰기를,

"불행히도 역적이 진신(縉紳) 사이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사대부들이 횡액을 많이 입었습니다. 교유(交遊)를 삼가지 못한 죄는 있겠으나, 어떻게 그들이 흉악을 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답하지 않았다. 【당시 사대부들 중 간사한 정철(鄭澈)의 무함한 화를 입어 통분을 머금고 원통하게 죽은 자가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성상이 그 원왕을 이미 통찰하고서도 능히 우로(雨露)의 은택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대개 참적(讒賊)이 먼저 들려준 말이 아직도 의혹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 【태백산사고본】 36책 60권 52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454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군사-통신(通信) / 군사-병법(兵法)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인사-임면(任免)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註 093]
    순리(循吏) : 청렴하고 선량한 관리.
  • [註 094]
    기축 원왕(己丑冤枉) : 1589 선조 22년 정여립(鄭泣立)의 모반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은 것을 말함.
  • [註 095]
    을사 원왕(乙巳冤枉) : 1545 명종 원년에 왕실의 외척인 대윤(大尹) 윤임(尹任)과 소윤(小尹) 윤원형(尹元衡)의 반목으로 이루어진 옥사에서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은 것을 말함.

○上御別殿, 引見大臣及備邊司堂上、兩司、玉堂。 入侍, 領議政柳成龍、左議政金應南、右議政鄭琢、行判尹金命元、戶曹判書金睟、行大司憲洪進、兵曹判書李恒福、參判尹先覺、右承旨李德悅、弘文館應敎黃是、司諫院獻納李鐵、弘文館修撰金涌、注書辛成己、假注書金廷龍、檢閱尹暉李廷馦。 上曰: "淸正事, 急遣宣傳官, 使之勿爲妄動。 予意則然矣, 僉議未知如何?" 柳成龍曰: "見近日事勢, 雖百爾思之, 未得善策矣。" 上曰: "卿等各言所見。" 成龍曰: "淸正, 固是虎狼之人也。 三四月之間, 天使若不來, 則挑戰之患, 必有之矣。 每請秀吉, 加兵渡海者淸正。 若萬一除得淸正, 則機不可失, 而似難阻之, 故昨日相議, 如是啓之矣, 伏見上敎之辭, 則實甚允當。 但賊中之事, 不可遙度, 而來降之人, 果是淸正腹心, 則似可圖之, 而圖之不成, 則機關甚重, 上敎至當。" 金應南曰: "臣之所見, 亦與成龍無異矣。" 上曰: "非謂賊不可殺也。 殺則殺矣, 殺之則必生大事, 故予意則如是。 凡事必詳盡, 然後可也。" 鄭琢曰: "自古以計制勝者多矣。 臣意淸正行長有隙, 而屯兵旣久, 且多怨詈之人。 來降者果是腹心之人, 此事似乎成矣。 使將帥不失機會, 可也。 朝廷則擇將而已, 千里料敵, 固是不可。 若除一淸正, 則可減十萬兵勢, 不可以信義待賊也。 但事若不成, 則誠如聖慮也。" 上曰: "詳細料之。 若天朝不復顧念, 則不可說不可說也。 此賊, 可以計破, 不可爭衡。 天下之兵, 亦不可時時借之。 觀降之獻策, 則雖不甚齟齬, 而必先立我國之勢, 然後雖行此計, 彼賊不爲憑(淩)〔陵〕 矣。" 金命元曰: " 天朝之羈縻, 與行長爲之, 不與淸正爲之。 雖除淸正, 天朝不以爲異矣。" 上曰: "除去後, 恐有難事。 且所謂激成者, 計不成, 而激成之謂乎?" 金睟曰: "雖殺之, 若知我國人所爲, 則激成之謂也。" 上曰: "寧有不知之理乎?" 成龍曰: "設使淸正, 若復侵犯, 則以天朝講和, 而不射殺乎?" 上曰: "上下所見各異, 各盡言, 可矣。" 成龍曰: "臣等之意, 惟恐不殺, 而恐殺之不易也。" 上曰: "其計若行, 則殺之必矣。 倭人善爲謀者, 前發銳而後發射, 則可以殺矣, 但我軍被捕, 則不可說也。 萬無不爲被捕之理。 我國小事, 固不能隱。 委以自中之變, 而有不疑我邦之理乎?" 命元曰: "無是理也" 上曰: "只恐已行其計也。" 鄭琢曰: "雖發遣宣傳官, 恐無及也。" 成龍曰: "淸正若除, 則秀吉雖桀驁, 必挫氣矣。" 上曰: "淸正若除, 則秀吉之勢果孤弱, 而諸陣散落乎?" 成龍曰: "昔, 陳平間去亞父鍾離昧等, 而項羽之勢已去。 秀吉之臣, 如淸正者, 不易得也。" 命元曰: "殺淸正, 則徒黨散落必然矣。" 鄭琢曰: "以十萬之兵, 固不易捕, 而只以五人捕之, 則如此機會, 其可失乎?" 上曰: "戶判之意, 如何?" 曰: " 天朝雖聞淸正除去之言, 而不以爲異矣。" 上曰: "除去後, 天朝以爲好乎? 不以爲好乎?" 洪進曰: "備邊司之意, 臣則不知矣, 若成則固好矣。 我國不知賊情, 每每被瞞。 淸正之除, 行長爲喜之意, 不可知, 此降之意, 亦不可知。 無乃自作元隻, 而致有此謀乎? 且此計, 行於相戰之時則可, 當此羈縻之時則似妨。 淸正之除, 行長不以爲快, 則天朝亦以爲非矣。 兵家之事, 臣固不知, 而臣之妄意如此。 但此桀驁之將, 爲除去, 則秀吉之奪氣則有之矣。" 上曰: "兵判之意, 如何?" 恒福進曰: "小臣之意, 淸正不能捕也。 降不能獨去, 必欲與我軍偕去, 我軍決不可偕送, 以五之力, 決不能捕矣。" 上曰: "若當淸正之死時, 則可以僥倖矣。" 恒福曰: "行長雖與淸正有隙, 秀吉若聞淸正之死, 則必使行長報怨, 行長豈不能聽秀吉之言乎? 臣意以爲難行矣。" 上曰: "予別有意思, 高彦伯金應瑞等, 有爭功之心而致然矣。 應瑞不爲稟命, 往來相會, 以和爲功, 故彦伯亦欲殺賊而爲功。 邊將爭功, 甚是不好, 不可不慮也。 且我國邊將, 豈有計慮者乎?" 成龍曰: "我國之事, 不可爲矣。 所恃者天朝。 自上下敎, 固出於萬全, 然實使淸正犯我, 則豈慮他事, 而不射乎?" 上曰: "此言則不然矣。" 成龍曰: "羈縻之事, 必須速請天使, 然後庶可成矣。 或云: ‘沈惟敬出來之後, 咨請天使(而)〔則〕 恐緩, 速爲議定可也。’" 曰: "李時發云: ‘沈惟敬當不久出來矣。’" 李德悅曰: "婁國安處, 咨文宜速製給, 而行長之書, 不必載也。 若載咨文中, 朝必以爲修好矣。" 曰: "天使不來, 賊決無退去之期。 相持日久, 則恐有意外之患。 羈縻下策, 亦恐難成。 書雖載咨文中, 未爲不可。" 曰: "德悅之言, 似是矣。 聞時發之言, 則權慄行長之酒, 許割以二道而不與, 甚不直矣。 以此等語, 行長說於陳遊擊, 則天朝之人, 皆知通之事矣。" 上曰: "或謂治罪權慄者, 而徐當察爲。 應瑞問答之書, 爲陳遊擊所奪云, 我國之事踈矣。" 曰: "李時發見其書, 而爲家丁所奪, 至今在於遊擊匣裏云。" 成龍曰: "若此文書, 不必相送往來矣。 我國之事, 固如是矣。" 上曰: "參判亦言之。"尹先覺曰: "臣之所見, 槪與成龍同矣。 昨夜見傳敎之辭, 則臣等計慮之所不及, 而策是萬全, 故更爲回啓矣。 凡議論, 必須詳盡。 行長幸其淸正之死者, 臣意有不然矣。 雖曰有嫌, 而淸正若死, 行長必動。 以我事論之, 則應瑞彦伯, 雖不相得, 若某被害, 則某豈能安心乎? 淸正雖死, 諸陣必不退去矣。" 上曰: "中原方通行長淸正等而羈縻矣, 一朝除去淸正, 則必有後患。 中原常欲委之於我國, 而未得其便。 若聞此擧, 則必盡委於我國矣。 天朝若只守鴨江, 不顧我邦, 則雖欲和之, 不可得也。 若殺一淸正, 而事畢則可, 若不然, 則豈非可慮之大者乎? 諸卿更詳盡議之。" 曰: "初以臣等之意啓之, 昨承上敎, 極爲允當。 此外無他。" 成龍曰: "兵家應變, 皆如捕風捉影之事, 而或有成之者。 彦伯此計, 成與不成, 固不知之, 以兵家觀之, 似有可乘之機, 而但以天朝羈縻之事難之也。" 上曰: "情奏聞使, 各差遣之乎?" 曰: "必差年少之人, 輕騎馳送。 可也。" 上曰: " 奏聞結尾, 何以爲之乎?" 成龍曰: "先據陳遊擊咨文及朴振宗書啓, 陳其彼賊苦待天使, 實出於誠心, 而以前日喫哄之故, 未卽退去。 一日不退, 則一日之害於小邦者, 甚大。 將此等語, 枚擧奏聞可也。" 上曰: "之書契, 似不載於奏聞。 於我國, 決無容受書之理, 而天朝豈見賊書而后, 知賊情乎?" 成龍曰: "婁國安, 旣已受來, 直上其書可矣。 掩置不告, 則似爲不直。" 上曰: "我受之而不告則掩置矣, 婁國安雖齎來, 而我則不受, 豈謂掩置乎?" 成龍曰: "婁國安等盡知應瑞相通之事, 豈以不受書, 瞞過婁國安乎?" 且曰: "國安陳遊擊不相好矣。" 上曰: "果有是乎?" 恒福曰: "婁國安云: ‘行長言曰: 「陳遊擊, 前者來營時, 乞送船隻若干, 故我故爲送船者然。」 以此咎陳遊擊。" 上曰: "婁國安無乃以此, 說與兵部乎? 若然, 則必以遊擊之咨爲虛矣。" 曰: "遊擊與行長, 有相誓之書, 婁國安見而言於朴振宗處矣。" 上曰: "所盟者何事?" 先覺曰: "不可解見云矣。" 曰: "譚相公, 亦與遊擊有隙。 當初遊擊之久留居昌, 亦是觀勢之意云。" 上曰: "秀吉之必請天使, 必有其意。 天使來而安知遭窘辱之事乎? 若然則中原必以我邦歸罪矣。" 恒福曰: "天使, 一匹夫耳。 何辱之爲?" 上曰: "豈其然乎? 無乃拘留天使, 益求所欲乎?" 恒福曰: "中原豈以天使之被執, 從其不從之事乎?" 上曰: "書送與不送, 議定。" 恒福曰: "雖送書, 恐不害於義理, 臣等之意, 送之宜當。 婁國安旣爲持來, 不可不送。 陳遊擊亦曰: ‘爾國不送, 則俺當持去’ 云矣。" 上曰: "遊擊持去則無妨。" 曰: "此則逆情之言矣。" 上曰: "楊布政, 何以出來?" 曰: "陳遊擊云: ‘布政自薦出來。’ 且昨見陳良璣, 問出來之由, 則答曰: ‘朝廷雖遣沈惟敬, 而未悉倭情及貴邦事情, 故發送矣。’ 問 ‘何時還去?’ 答曰: ‘盡捲退, 然後還去’ 云。" 上曰: "陳良璣之法, 與前敎師同乎?" 曰: "與前稍益, 蓋似乎多誠之人矣。" 上曰: "若然則無乃有兩不學之理乎?" 曰: "大槪大同小異。" 上曰: "敎師當分送諸道, 而似難分遣, 使陳遊擊分遣爲當。" 成龍曰: "若分遣則可矣, 而此事甚難。 近聞唐人往來, 責出刷馬之時, 必先徵紬匹, 一路不勝支當云。 若某處分遣, 訓鍊士卒則可矣, 而如宋大斌之作弊, 則所管之(車)〔軍〕 , 不勝支當矣。 且往年分送訓鍊節目, 而守令等棄而不用, 不過爲一張空文矣。" 曰: "守令雖在平時, 一年再易, 則必爲棄邑。 當此之時, 僅得差遣, 旋卽罷遞。 自今以後, 不許風聞擧劾, 不爲數易, 則庶或利民矣。 星州牧使曺好益, 善於治民, 四境之民日集, 眞循吏也。 自朝廷褒奬循吏爲當矣。" 成龍曰: "臣之所患疾病, 日益深重。 身不暇顧, 但處事昏耗, 前忘後失。 伏願未死之前, 遞改本職。" 上曰: "領相此時若辭退, 則國事如何? 宜調理行之。" 上曰: "沈惟敬, 兵八百率來云, 未知其故。" 成龍曰: "賊, 雖或捲退, 必用船運, 不能一時以歸, 故惟敬慮其我兵之厮殺, 且欲示天兵之威, 故恐爲是帶來。 但糧餉匱竭, 何以支待? 人皆以作米爲說, 而作米亦不可廢。 雖以牟米代受, 必受之, 然後可以支當矣。" 應南曰: "聞全羅道羅州南原稍有儲穀, 而其餘如全州巨邑, 只有二千石云矣。" 上曰: "李廷馣, 豈如是乎?" 先覺曰: "廷馣, 以無事爲主, 故不能(俸)〔捧〕 糶矣。" 上曰: "如是則妨于民也。" 曰: "各邑之事, 皆不成形, 然守令或有豐侈好事者。 安有如此駭愕之事乎?" 上曰: "摘發治罪可矣。" 上曰: "備邊司前言己丑冤枉事, 予則以爲難矣。" 成龍曰: "大亂之後, 必有大赦然後, 可以慰悅人心矣。" 曰: "勿爲留滯, 夬決赦宥, 則大慰天地神人之心, 而有補於中興之道矣。 乙巳冤枉, 亦且追雪, 以光前烈。 況事在聖朝者乎?" 曰: "不幸逆賊起於縉紳間, 故士大夫多被橫罹。 不謹交遊之罪則有之, 豈知其渠之包藏乎?" 上不答。 【當時士大夫使奸澈構捏之禍, 含痛冤死者, 非 止一二也。 聖上固巳洞燭冤枉, 而不能沛雷雨之澤者, 蓋由讒賊先入之言, 尙爲之致惑也。】


  • 【태백산사고본】 36책 60권 52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454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군사-통신(通信) / 군사-병법(兵法)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인사-임면(任免)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