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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60권, 선조 28년 2월 29일 임신 7번째기사 1595년 명 만력(萬曆) 23년

가등청정을 제거하는 문제를 신중히 할 것을 전교하다

정원에 전교하기를,

"청정을 제거하는 일에 대하여 비변사에서는 해볼 만한 일인 것처럼 여기니, 이는 무슨 견해인가. 또 일이 만약 이루어지지 않으면 격변할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일이 이루어지면 더욱 격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나라는 위급한 고비에 놓여 있다. 그나마 서로 몇 해를 버티어 오늘까지 보존하게 된 것은 중국이 돌보아 주기 때문일 뿐이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그런 일을 하려 하니, 어찌 한심하지 않은가. 설령 청정이 죽는다 해도 일본에 어찌 청정의 무리가 없겠는가. 족히 수길(秀吉)의 하늘을 찌를 듯한 군사 위세를 격발시킬 것이다. 경들은 수길을 어떤 사람으로 보고 이같은 일을 하려고 생각하는가. 아침에 청정을 죽이면 수길이 저녁에 반드시 바다를 건너와서 우리 나라를 초토화할 것이다. 하물며 중국에서 바야흐로 봉왜를 준허하여 선유하려는 즈음에 우리 나라에서 이런 일을 하여 공연히 말도 안 될 일들을 야기할 수 있겠는가.

석 상서(石尙書) 등이 이 소식을 들으면 반드시 진노하여 돌보아주지 않을 것이고, 그 사이에 간악하고 음험한 무리들이 불측한 말을 지어낼 것이니, 우리 나라의 일은 여기에서 결판이 나고 말 것이다.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이렇게 될 경우 비록 손을 모아 강화를 빌려 한들 될 수 있겠는가. 이는 청정 하나를 제거하고 멸망의 화를 사는 것인데, 비상한 기책(奇策)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또 우리 나라 사람을 왜적의 모습으로 위장한다 했는데, 이것은 매우 가소로운 일이다. 사람의 모양은 비록 변장할 수 있으나 화살 모양도 변경할 수 있겠는가. 만일 왜인이 화살을 가져다 보면 어찌 모를 리가 있겠는가. 또 보낸 우리 나라 사람 중에서 한두 명이라도 붙잡히는 일이 어찌 꼭 없으리라고 보장하겠는가. 모습을 위장해서 그 행적을 숨기려 하는데, 결코 그럴 수 있는 이치는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비록 사수를 보내지 않고 단지 왜인만 보내서 도모하더라도 숨겨질 리가 만무하니, 이는 조금도 의심할 것이 없는 것이다. 옛날 공손술(公孫述)이 몰래 잠팽(岑彭)을 죽였으나 과연 이익이 있었던가092) .

그러나 나는 본디 풍상에 시달려 근일에는 형해(形骸)만 유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호소할 곳이 없어, 오직 일신에 대해 가소로와할 뿐이다. 이 같은 존망의 일에 대하여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 같은 일이 다행히 이루어져서 안정된다면 만세의 복일 것이다. 내 말이 비록 경험없는 말이나 어찌 해될 것이 있겠는가. 만일 일이 낭패되면 장차 국가가 어떻게 되겠는가. 원컨대 경들은 깊이 생각하고 방관하지 말라. 그 일을 하든 안 하든 간에 서둘러 선전관을 파견해서 급히 달려가 병사에게 전유(傳諭)케 하라.

나의 마음인들 어찌 청정의 고기를 씹어먹고 그 가죽을 깔고 자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천하의 일은 기회를 잘 헤아려서 낭패되지 않기를 기해야 하고, 소장부들의 일시 요행을 기대하는 그런 생각을 따라서는 안 된다. 이 뜻을 비변사에 말하라. 지금 비록 밤이 깊었으나 즉시 전교하라. 또 청정을 제거하는 일은 바로 국가의 존망이 달린 막중한 일이다. 정원은 중요한 지위에 있으면서 어찌 그에 대한 의견이 없겠는가. 마땅히 긴밀하게 도와야 할 것이다. 지금은 비록 입직한 관원만 있으나, 이 일이 매우 급하니, 속히 의견을 적어서 아뢰라."

하였다. 좌부승지 유영순(柳永詢)과 동부승지 정숙하(鄭淑夏)가 회계하기를,

"고언백이 장계한 일은, 신들의 생각에는 위망의 기틀이 경각간에 매인 것이어서 결코 시험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설령 다행히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반드시 국가의 무궁한 걱정을 끼칠 것인데, 더구나 이루어질 리가 만무한데이겠습니까. 청정행장은 원래 틈이 있습니다. 청정은 항상 행장에게서 강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분개하고 있는 터이니, 이 적이 일부러 심복을 보내 거짓 투항한 체하여 몰래 도모하자는 의견을 보여서 우리 나라의 의중을 떠보게 한 다음, 흔단을 야기하여 거의 이루어져 가는 강화의 일이 깨지기를 바라는 처사가 아니라고 어찌 장담하겠습니까. 신들은 처음 이 장계를 보고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놀랐습니다. 한 말씀 계달하려고 하였으나 황공하여 머뭇거리면서 우선 묘당(廟堂)의 방략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는데, 지금 상교를 받드니, 감격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성상의 생각한 바가 여간 깊지 않으신데, 신들이 어찌 그 사이에 군더더기말을 더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고언백의 장계 중에 ‘원수(元帥)에게 치보(馳報)하여 지휘를 기다린다.’는 말이 있으니, 원수가 아마 잘 처리하였을 것입니다. 만일 불행히도 지휘를 잘못했다면 그 화는 장차 헤아릴 수 없을 것인데, 기일이 이미 임박해서 형세상 어떻게 중지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상교(上敎)대로 급히 선전관을 파견하여 달려가서 효유할 것을 즉시 대신 및 비변사 당상을 불러 의논해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6책 60권 50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453면
  • 【분류】
    군사-통신(通信) / 외교-왜(倭)

  • [註 092]
    공손술(公孫述)이 몰래 잠팽(岑彭)을 죽였으나 과연 이익이 있었던가 : 동한(東漢)의 공손술이 왕망(王莾) 때 스스로 촉왕(蜀王)이 되어 한때 기세를 떨쳤으나 한 광무(漢光武)의 장수인 잠팽(岑彭)에게 공격을 받아 국세(國勢)가 위급해졌다. 그는 궁여지책으로 자객을 보내서 잠팽을 죽였지만 끝내는 한장(漢將) 오한(吳漢)에게 패하여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傳于政院曰: "淸正之事, 備邊司有若可爲者然, 是何見也? 又以爲: ‘事若不成, 則激變’ 云, 予則以爲成尤激變。 今我國之勢, 危如一髮, 而其所以相持數年, 保有今日者, 只由天朝之顧護耳。 今忽作此, 豈不寒心? 假使淸正雖死, 日本豈無淸正? 徒足以激秀吉滔天之兵勢耳。 卿等以秀吉爲何如人, 而料之如此乎? 朝殺淸正, 秀吉夕必渡海, 盡赤東土矣。 況天朝方準封宣諭之際, 我國有此作爲, 惹起許多不可說之事乎? 若石尙書等聞之, 必震怒, 不得顧護, 而其間奸險之輩, 仍做出不測之言, 我國之事, 於玆判矣。 不忍言, 不忍言。 此時雖欲攅手乞和, 其可得乎? 是除一淸正, 而買滅亡之禍, 可謂非常之奇策乎? 且以我國人, 扮作形云, 是甚可哂。 人形, 雖可變, 而矢形其可變乎? 若人取矢而見之, 寧有不知之理? 所遣之人, 一二被獲, 亦安保其必無? 欲變形而掩其迹, 決無此理。 不但此也, 雖不遣射手, 只遣而圖之, 萬無掩匿之理, 此則少無可疑。 昔, 公孫述潛殺岑彭, 果有益乎? 但予素是病風, 近日則只存形骸, 無處訴悶, 惟自笑一身而已, 如此存亡之機, 何敢料之? 若此事幸成而得安, 則萬世之福也。 予言雖不驗, 有何害乎? 萬一敗事, 將置國家於何地? 願諸卿深思, 勿爲放過。 爲不爲中, 急遣宣傳官, 刻日馳去, 傳諭於兵使。 淸正之賊, 以予之心, 寧不欲食其肉而寢其皮? 然天下之事, 揣摩機變, 期不敗事, 未可徇小丈夫一時僥倖之志也。 此意言于備邊司。 今雖夜深, 卽卽傳敎。 且淸正事, 是國存亡莫重之事, 政院在樞要之地, 豈無意見? 所當密贊機猷。 今雖只在入直, 此事甚急, 斯速書啓意見。" 左副承旨柳永詢、同副承旨鄭淑夏回啓曰: "高彦伯狀啓之事, 臣等之意, 危亡之機, 係於呼吸, 決不可試之。 假使幸成, 必貽國家無窮之患。 況萬無得成之理乎? 淸正行長, 有隙素矣, 常以和事之成, 出於行長爲憤。 安知此賊, 故遣心腹之人, 詐爲乞降之狀, 佯示陰圖, 以試我國之情, 惹起釁端, 冀敗垂成之事乎? 臣等始見此狀啓, 聚首驚顧, 欲達一言, 惶恐趑趄, 姑待廟算, 今承上敎, 不勝感激。 聖慮所及, 超出尋常萬萬, 臣等豈容贅議於其間哉? 第彦伯狀啓中, 有馳報元帥, 以待指揮之語, 元帥想已善處。 萬一不幸, 指揮失宜, 則其禍將不可測, 而日期已迫, 勢未及止之。 然依上敎, 急遣宣傳官, 星夜馳諭事, 卽刻大臣及備邊司堂上, 命招議處何如?" 傳曰: "依啓。"


  • 【태백산사고본】 36책 60권 50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453면
  • 【분류】
    군사-통신(通信)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