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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59권, 선조 28년 1월 24일 정유 3번째기사 1595년 명 만력(萬曆) 23년

비변사가 남도의 군량이 부족한 일로써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상께서 ‘지금 좌병사(左兵使)의 서장을 보건대, 포로되어 갔다 나온 사람이 도로 적진에 들어가서 경주(慶州)에 주둔하고 있는 제장(諸將)들의 군병이 미약함과 군량이 핍절한 상황을 청정(淸正)에게 말하였다니, 극히 놀랄 일이다. 군사 기밀이 누설됨이 대부분 이와 같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전교하셨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신들도 장희춘(蔣希春)에게 들으니, 장희춘의 말이 ‘이번에 적진에 들어갔더니, 왜장이 반기면서 제가 착용하고 있는 이엄(耳掩)026) 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들으니, 그대가 조정에서 하사받았다 하던데, 이것이 바로 그 이엄인가?」 하고, 또 말하기를 「하사받은 말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가 탄 말인가?」 하였다.’ 합니다. 이것으로 본다면 왜적이 아는 것은 제장들의 진중의 일뿐만이 아니라 경성의 동정까지도 일일이 세밀하게 듣고 있으니, 왜적이 가장 먼저 정탐하는 것입니다. 지금 또 우리 나라 사람들이 왜적과 친밀하여 그들과 서로 왕래하는가 하면, 상호간에 물건을 사고 팔고 하며 조금도 방어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요즘 군량이 떨어진 상태가 저번 때보다 더욱 심하므로 진중에 와서 붙어 있는 사람들을 태반이나 나눠 보내어 그들 마음대로 가게 맡겨 두니, 그들은 이미 굶주림에 허덕이는 실정인데 어느 땅에서 생활 근거를 얻어 살아나가겠습니까. 도로 적에게 들어가는 길 밖에 없을 것입니다. 장희춘이 또 말하기를 ‘전번에 유인해 나온 우리 나라 사람 90여 명이 병사(兵使)의 진중으로 투항해 오자 병사는 식량이 없다는 이유로 경주 부윤(慶州府尹)에게 보냈는데 부윤은 또 식량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곳으로 떠밀어버리므로 그들은 왔다갔다 하는 동안에 지칠대로 지쳤고, 10여 일이 지난 오늘날에는 점점 흩어져간다.’ 하니, 처참하기가 이보다 더 심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을 지금 마땅히 도원수 및 병사 이하 제장들에게 은밀히 유시하여 엄히 단속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일을 적중에서 즉시 듣고 있는데, 만일 방편을 찾아 법을 마련해서 금하지 않고 갑자기 ‘조정의 영이 있으니 이후로는 왜적과 상통하지 말라. 범하는 자는 죄를 줄 것이다.’고 한다면, 서로 통하는 폐단을 아예 금하지 못할 뿐더러, 적이 분을 머금고 독을 부리는 데에 이것 또한 하나의 구실이 될 것입니다.

대개 군사의 일에 대한 신축(伸縮)과 동정(動靜)은 오로지 장수가 임기 응변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인데, 일마다 만일 조정이 멀리서 지시하는 것을 기다려 시행한다면 적기에 미칠 수 있겠습니까. 도원수는 좌·우도에 있는 제장들을 통제하는 권한을 겸하였으니, 지휘하고 경계하는 책임이 모두 그 손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원수가 있는 장소가 좌·우도와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막중한 처리 권한을 무장에게 전위(專委)하였다 하니, 사세가 위급하여 순식간에 변경되는 이 판국에 만일 실수라도 있게 된다면 그 뒤에는 수습하려 해도 수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일이 바로 신들이 주야로 염려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입니다.

고언백(高彦伯)의 장계를 보면, 군량의 일이 더욱 민박합니다. 홍이상(洪履祥)의 장계를 보면 절약함으로써 군량을 이어갈 계획을 하고자 한다고 하였는데, 의도는 불가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평시에 있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가하거니와 지금은 적의 형세가 이와 같아 충돌의 변이 어느 때에 있을지 모르는 판인데, 가령 겨울의 방수(防戍)를 조금 쉬게 함으로써 군량을 절약하겠다고 한다면, 진중의 군사는 모두 불러 모은 오합지졸이어서 한번 흩어진 뒤에는 강자는 적에게 붙고 약자는 구렁텅이에 쓰러져 죽을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흩어져 토적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뒷날 급변을 막을 때 식량이 있어서 그들을 다시 불러 모으려 한들 불러 모을 수 있겠습니까. 홍이상의 계획은 군량을 잇기 어려운 면만 본 것이지 흩어진 군사를 모으기 어려운 면은 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일은 성패에 관한 중대한 일이므로 신들도 어떻게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당초 본사가 조치한 경상 좌도의 양곡에 대한 계책은, 전년의 전세(田稅)는 얼마, 노비 신공미(奴婢身貢米)027) 는 얼마, 상번 군사 번가미(上番軍士番價米)028) 는 얼마인가를 파악하고 이것을 각읍에서 바친 현재의 수량과 통산하여, 그것이 몇 명 군사의 몇 달 양식으로 지급하기에 족한가를 안 다음에, 또 각진(各陣)에서 뽑아낸 출전 민정(出戰民丁) 중에서 방수(防戍)를 면제받으려고 자원해서 바친 쌀, 병·수영(兵水營)에 항시 들어가 방수하는 군병 중에서 자원하여 바친 쌀, 그리고 이밖에 다소 모곡(募穀)하여 얻어진 것 등 여러 가지를 수합하여 조리 있게 정리한 다음, 도사(都事)로 하여금 좌도의 일을 관장하여 각 고을의 태만을 살피게 하는 동시에 각진(各陣)의 여러 장수들이 저지르는 부정의 폐단을 살피게 하고, 그래도 오히려 부족하면 좌도의 군사는 호서와 관동의 곡식을 운반해다가 그 수량을 보충하고 우도의 군사는 호남의 곡식을 운반해다가 그 수량을 보충하도록 하였으니, 이 계획은 빈틈없이 세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는 또 환자(還上)로 바친 수량이 있지 않습니까.

공문의 전달은 도로에 연락 부절하는데도 성밖에서는 봉행하는 것을 보지 못하겠고 질서는 날로 문란하고 민력은 더욱 곤궁하며 곳곳에 있는 군졸들은 모두 굶주림으로 흩어진다고 와서 알려대니, 앞일을 장차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것이 신들이 더욱 통민해 하는 일입니다. 지금은 별로 다른 계책은 없으니, 다시 이런 사연과 고언백의 서장 내용으로써 홍이상과 도원수에게 하유하여 사세를 참작해서 조치를 극진히 하며 여러 장수들과 서로 논의하여 최선책에 따라 잘 처리함으로써 큰일에 대처하도록 하는 것이 온당합니다.

병란이 일어난 지 4년째 되는 오늘날에도 오히려 끝날 기약이 없으니, 이후로 군량을 이을 계책은 어떻게 해볼 수가 없습니다. 금년에 다행히 서로 버티고 군사를 움직이지 않아서 전년처럼 농민이 약간 경작할 수 있다면 각진에서 마땅히 힘써야 할 것은 오직 둔전(屯田) 관리 한 가지 일뿐인데, 종자 얻는 일이 어렵습니다. 그곳의 제장 중에 김태허(金太虛) 등이 거느린 울산(蔚山)의 군사는 모두가 온갖 풍파를 겪은 병사들인데, 다른 지역에 붙여 있어 그 굶주림이 다른 진의 군사보다 더욱 심하므로 보기에 참혹하다 합니다. 그 상황을 말하자니 눈물이 흐릅니다. 그러니 공명 고신(空名告身)과 면천 면역첩(免賤免役帖) 수백여 장을 작성하여 김태허 등 여러 장수에게 보내어 그들로 하여금 약간의 종자를 마련하게 하고 군인을 거느리고 경작에 힘쓰게 하는 것이 또한 긴급한 일입니다. 듣건대, 그곳 여러 장수들도 같은 생각이라 하니, 급히 작성해서 내려보내는 것이 온당합니다.

군량을 담당하는 사람은, 전에는 도사(都事) 정사신(鄭士信)을 시켰는데 정사신은 이미 체직되었고, 지금은 이준(李埈)을 시켰는데 역시 사고없이 부임했는지 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 또 듣건대, 홍이상의 종사관(從事官) 정협(鄭協)도 어미의 병 때문에 나왔다 하니, 양곡에 대한 일을 관리할 사람이 없는 듯싶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별도로 부지런하고 직무에 마음을 기울이는 문관 한 사람을 뽑아 정협 대신 급히 달려가 좌도의 일을 전담케 하고, 우도는 그대로 서성(徐渻)에게 책임지워 조치케 하는 것도 온당할 것 같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런 일은 속히 지휘하여 그들로 하여금 힘써서 제때에 하게 해야 한다. 또 지금 장희춘(蔣希春)의 말을 들으니 더욱 놀랍다. 매사가 이와 같으니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일도 모두 도원수의 책임이다. 대개 여러 장수들이 전에 비해 더욱 해이해져 방심하는 듯하니, 옛사람이 이른바 ‘도적에게 아양떨며 말하기를 「도적은 장차 나를 사랑할 자다. 」라고 한다.’는 격이 아닌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5책 59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423면
  • 【분류】
    군사-통신(通信) / 군사-군정(軍政) / 외교-왜(倭)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군사-병참(兵站)

  • [註 026]
    이엄(耳掩) : 귀덮개. 곧 모피(毛皮)로 만든 방한구.
  • [註 027]
    노비 신공미(奴婢身貢米) : 노비가 신역 대신 공납한 쌀.
  • [註 028]
    상번 군사 번가미(上番軍士番價米) : 지방 군사로서 중앙에 번드는 대가로 공납한 쌀.

○備邊司啓曰: "今見左兵使書狀, 則有被擄出來人, 還入賊中, 言於淸正慶州諸將, 軍孤糧絶之狀, 極爲駭愕。 軍機漏通, 事多類此, 不覺寒心事, 傳敎矣。 此事臣等亦聞於蔣希春希春之言曰: ‘今番入賊中, 則將喜以指其所(著)〔着〕 耳掩曰: 「聞汝受賜於朝廷云, 此其耳掩耶?」 又曰: 「賜馬安在? 乃汝所乘馬乎?」 以此觀之, 則之所聞知, 不但諸將陣中之事也。 雖京城動靜, 無不一一詳聞也。 賊最先偵探。 今又我國之人, 與賊蕩狎無間, 與之往來, 互相市易, 略無防禦。 近日則軍糧乏絶, 滋甚於曩時, 陣中來屬之人, 太半分遣, 任其所之。 其人旣爲飢餓所迫, 則何地資生? 不過還入賊中矣。’ 希春又言: ‘頃日誘引出來我國之人九十餘名, 來投於兵使陣, 兵使以無食, 送于慶州府尹, 府尹又以無食, 推調於他處, 往來困頓, 已經十餘日, 漸就耗散’ 云。 其爲痛慘, 莫此爲甚。 此事今當密諭於都元帥及兵使以下諸將, 使之嚴加約束。 然我國之事, 賊中無不卽聞, 若不爲方便設法禁之, 而遽曰: ‘朝廷有令, 此後勿與賊相通, 犯者抵罪’ 云, 則交通之弊, 初不能禁, 而賊之含憤肆毒, 此亦一階也。 大抵軍中之事, 伸縮動靜, 專在於將帥臨機默運之如何, 事事若欲待朝廷遙制而爲之, 則其可及乎? 都元帥兼統左、右道諸將之權, 凡所指揮申飭, 皆在其手。 傳聞元帥所在, 與左、右道絶遠, 而以莫重機關處置之事, 專委於武將之身。 當此事機危迫, 呼吸變遷之際, 脫有疎虞, 則後雖欲收拾, 其可得乎? 此臣等之晝夜痛慮悶念, 而不知所出者也。 且觀高彦伯狀啓, 則軍糧之事, 尤爲悶迫。 洪履祥狀啓, 欲撙節裁損, 以爲繼餉之計, 意非不可, 但在平時, 則猶之可也, 今則賊勢如此, 而衝突之變, 又未知在於何日。 假使冬月防戌稍歇, 而陣中之軍, 皆是團聚召募之兵也。 一散之後, 强者投入於賊中, 弱者顚死於丘壑, 不然則散爲土賊。 後日防急之時, 雖有食而更欲召募, 其可得乎? 履祥之計, 亦有見於糧餉之難繼, 而未見於散軍之難集也。 此等之事, 皆係大叚成敗之數, 臣等亦罔知所措。 當初本司措置慶尙左道糧餉之策, 則大槪以前年田稅幾何, 奴婢身貢作米幾何, 上番軍士番價作米幾何, 以此通融, 各邑捧上現在之數, 知其足支幾軍幾月之糧, 然後又以各陣抄出赴戰民丁, 自願納米免防者及兵、水營常時入防之軍, 願爲納米者, 此外多少間募粟所得者, 秩秩收合, 使有條理, 然後使都事, 專當左道之事, 督察各官怠慢, 而兼察各陣諸將橫濫之弊。 此猶未足, 則左道之軍, 輸運湖西、關東之穀, 添補其數; 右道之軍, 輸運湖南之穀, 添補其數。 其所經歷措置, 可謂不遺餘力, 此外又豈無還上所捧之數乎? 文移絡繹於道路, 而國門之外, 未見捧行, 頭緖日紊, 而民力益窮, 處處軍卒, 皆以飢餓潰散來告, 前頭之事, 將若之何? 此臣等之尤所痛悶者也。 今別無他策, 更以此等辭緣及高彦伯書狀曲折, 下諭于洪履祥及都元帥, 令其參酌事勢, 極盡措置, 與諸將互相論議, 從長善處, 以處大事爲當。 兵火四年, 尙無了期, 此後繼糧之策, 尤無可奈何。 今年幸以相持不動, 如前年農民稍得耕作, 則各陣所當致力者, 惟在於屯田一事, 而亦以得種爲難。 其處諸將, 如金太虛者, 所率蔚山之軍, 皆是百戰之士, 而寄寓他境, 飢餒益甚於他陣之軍, 所見慘惻云, 言之令人淚下。 空名、告身及免賤、免役帖數百餘丈, 成送于太虛等諸將, 使之粗辦種子, 率其軍人, 力於耕種, 此亦急切之事, 而聞其處諸將之意亦然, 急速下送爲當。 軍糧次知之人, 前則使都事鄭士信爲之, 士信己遞, 而今則李埈爲之, 亦未知無故赴任與否。 且聞洪履祥從事官鄭協, 亦以母病出來云, 糧餉之事, 恐無句管之人。 自此別遣勤幹盡心職事文官一人, 爲鄭協之代, 急速馳去, 專管左道之事, 而右道則仍責徐渻措置, 亦似宜當。 敢啓。" 答曰: "依啓。 如此等事, 斯速指揮, 使之用意(著)〔着〕 力, 及時爲之。 且今聞蔣希春之言, 則尤爲駭愕。 凡事如此, 何事可爲? 此等事, 亦皆元帥之責也。 大槪諸將等, 比前尤爲解弛, 有若放心者然。 其無乃近於古人所謂, ‘媚盜曰: 「盜將愛我者’」 乎?"


  • 【태백산사고본】 35책 59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423면
  • 【분류】
    군사-통신(通信) / 군사-군정(軍政) / 외교-왜(倭)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군사-병참(兵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