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유성룡이 병으로 사직을 청하다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차자를 올리기를,
"신은 전부터 질병에 걸려 있었는데 나라가 상란(喪亂)을 겪으면서부터 해마다 병세가 침중해져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삼가 우로(雨露) 같은 성상의 은혜를 입어 실낱같은 목숨을 연장할 수 있었습니다만, 심신(心神)이 혼몽하여 사려에 전도 착란됨이 많습니다. 이따금 비변사 낭청이 혹 공사(公事)를 가지고와서 물으면 신은 혼몽한 중에 되는 대로 대답을 해주고는 있는데, 또한 스스로 허술하고 망령되어서 국사(國事)를 그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늘 걱정스럽고 두렵게 여기고 있습니다만 해결해 나갈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근일 적정(賊情)을 주문(奏聞)하는 일에 이르러서는 신이 일찍이 호 참장(胡參將)의 서첩(書帖)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이는 바로 국가의 큰일이니 그 조처도 마땅히 주밀하고 자상하게 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대체로 우리 나라는 바야흐로 누란(累卵)의 위태로움에 처해 있는데 밖으로 구적(寇賊)들에게 위세를 떨치지 못하고 안으로 중국 장수들에게 환심을 잃었다가, 만일 하늘이 뉘우치지 않아서 변고 밖에 또 다른 변고가 발생한다면 일은 차마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 같기에 병을 참고 계초(啓草)를 작성하여 어리석은 생각을 주달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성교(聖敎)를 받들고는 가슴을 치고 머리를 두드리며 피눈물을 흘리면서 죽기를 기구하였지만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성교에 괴설(怪說)과 이론(異論)이 있다고 하신 것에 대해서는 신은 그것이 어떤 일인지 모르겠으나 진주(陳奏)하는 일에 대해 부회한 것은 신이 한번 아뢴 것이 실로 수죄(首罪)가 되는 셈입니다.
신은 삼가 생각하건대 대신(大臣)의 직임을 동량(棟樑)이라 이르는데, 기둥이 흔들리고 들보가 내려앉으면 그 집은 반드시 쓰러지고 말기 때문에 썩은 나무로는 기둥을 삼을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신은 혼미한 데다가 어리석고 용렬하여 최하의 인품을 가진 사람입니다. 종전에도 나라를 그르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구차스럽게도 모진 목숨이 끊어지지 않아 다시 이 직임에 무릅쓰고 있게 되었으니 어떻게 적의 침구를 꺾고 나라의 수모를 막아서 국론을 유지시킬 수 있겠습니까. 지금 천운이 간난(艱難)하여 국세가 거친 해파(海波)에 부닥쳐 있는 상황인데 영상의 자리에 신 같은 자를 앉아 있게 하시니, 국가가 다시 몇 번이나 실패를 견디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옛날 원호(元昊)115) 가 변방에서 소요를 일으켰을 때 대신이 병을 앓으면서 그 자리에 있자, 간관이 ‘정부(政府)는 병을 요양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신은 혼미하고 용렬한 데다가 병으로 직사(職事)를 전폐한 지가 여러 달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조처가 없으니, 또한 공론이 실행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라건대 성자(聖慈)께서는 빨리 신의 본직(本職)을 삭제하시고 다시 어진 인재를 가려 정승을 삼아서 시국(時局)의 어려움을 구제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경(卿)이 병석에 누우면서부터 밤낮 우려했었는데 요즘 점차 차도가 있다는 말을 듣고 비로소 천의(天意)의 소재를 알게 되었고 왜적의 평정쯤은 걱정거리도 못 된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 사직소(辭職疏)가 어찌하여 이르렀는가. 한번 보고는 가슴이 뛰어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였다. 혼매한 나의 심사를 경은 아마 살필 수 있을 터인데도 오히려 이해해 주지 않으니, 다른 사람이야 말할게 뭐 있겠는가. 이것이 내가 두렵고 민망 절박하여 마치 돌아갈 데가 없는 곤궁한 사람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심병(心病)이 날이 갈수록 더욱 극심해지고 정신도 날이 갈수록 더욱 쇠모해지고 지려(志慮) 또한 날로 더욱 폐색해짐으로 인하여 일의 처리가 날로 더욱 전도되고 언어도 날로 더욱 착오를 일으키고 있다. 이와 같은 처지인데도 억지로 왕위에 무릅쓰고 있다는 것은 진실로 이렇게 해야 할 이치가 없는 일임은 물론, 사세를 참작하여 헤아리지 못하고 분개한 말만을 하고 있으니 망령됨이 더욱 심하다. 대신의 도리는 일시의 사세를 헤아려 힘써 국가를 보존할 계책을 마련하고 널리 간난을 구제하는 것을 그 직임으로 삼아야 하는 것인데, 어찌 구구하게 일시적인 계책에만 집착해서야 되겠는가. 옛날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사신을 보내어 오(吳)나라를 치하(致賀)하였던 것은 바로 이런 뜻에서였다. 그러므로 지금 이 일은 경에게는 옳은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옳지 않은 일이다. 내 말에 따라 아울러 급히 주문(奏聞)하여 거행한다면 국가에 진실로 유리하게 될 것이니, 이것이 어찌 한 사람의 사정(私情)이겠는가.
바라건대 경이 편안한 마음으로 침착하게 생각한다면, 오늘 나는 반드시 경의 은덕(恩德)을 입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기 몸을 미루어 남을 헤아리는 것이 사물의 본정(本情)인 것이다. 나는 물러가야 할 몸인데도 물러가고자 하면 경은 안 된다고 하여 그 일을 이루지 못하게 하면서 경은 국가의 안위가 걸려 있는 몸으로서 도리어 사직하고 물러가고자 하여 누차 언사에 나타내고 있으니, 어찌하여 자기를 처우함과 남을 처우함이 이렇듯 다르단 말인가. 불가하지 않은가. 사직하지 말라. 요즈음 같은 장마철에 더위와 습기에 더욱더 조섭을 잘 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51권 44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284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註 115]원호(元昊) : 서하(西夏) 이낭소(李曩霄)의 본명. 성품이 웅의(雄毅)하고 큰 지략이 많았음. 종조(從祖) 계봉(繼捧)이 송(宋)나라에서 조씨(趙氏)로 사성(賜姓)했으므로 조원호(趙元昊)라고도 불렀다. 그는 송나라에 칭신(稱臣)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다가 보원(寶元:송 인종(宋仁宗)의 연호) 1년(1038)에 참호(僭號)하고 흥주(興州)에 도읍을 정했었다. 《송사(宋史)》 권485 하국 상(夏國上).
○領議政柳成龍上箚曰:
臣早嬰疾病, 自經喪亂, 積憂傷心, 連年重病, 幾至死域。 伏蒙雨露如天之恩, 得延絲線之命, 而心神昏霧, 思慮所及, 率多顚錯。 往往備邊司郞廳, 或公事來問, 臣昏眩之中, 信以答說, 而亦自知踈漏謬妄, 致誤國事, 尋常憂懼, 不知所出。 至於近日奏聞賊情事, 臣曾得胡參將書帖, 私心以爲: ‘此乃國家大事, 處置所當周詳。’ 蓋以我國, 方有累卵之危, 若外不振於寇賊, 內失懽於天朝將士, 萬一天心未悔, 變故之外, 又出變故, 則事有不忍言者, 忍病作啓草, 以達愚意。 今朝伏承聖敎, 拊膺叩首, 泣血稽顙, 求死不得。 所敎怪說異論者, 臣未知何事, 而陳奏遷就之事, 則臣之一啓, 實爲罪首。 臣竊念大臣之任, 謂之棟樑, 棟撓樑壞, 家必覆敗。 故曰: "朽木不可以爲柱。" 臣昏庸、愚劣, 最居人下, 從前誤國, 非至一再, 而苟延頑喘, 更冒此任, 其能望其折衝禦侮, 維持國論乎? 當今天步艱難, 海波橫潰, 鼎軸之地, 顧使如臣者居之, 未知國家更堪幾敗耶? 昔元昊擾邊, 大臣有病居其位, 諫官以爲: "政府非養病坊。" 今臣昏劣, 病廢職事, 至於累月, 而尙無處置, 亦可以知公議之不行也。 伏望聖慈, 亟命鐫臣本職, 改卜賢材, 以濟時艱。
答曰: "自卿患病, 夙夜爲憂, 近聞漸差, 始知天意有在, 賊不足平矣。 辭職之疏, 胡爲而至? 一覽瞿然, 無以爲懷。 夫寡昧心事, 卿或可察, 而尙不見諒, 他人何說? 此予所以憂惶悶迫, 如窮人無所歸。 心病日益轉劇, 精神日益消耗, 志慮日益茅塞, 處事日益顚倒, 言語日益昏謬。 如是而强爲冒居, 誠無是理。 不能參量事勢, 徒發憤憤之言, 其妄尤甚矣。 至於大臣之道, 揣摩一時事勢, 務以圖存國家, 弘濟艱難爲任, 寧區區於一切之計哉? 昔孔明遣使賀吳, 卽此意也。 故今此之事, 在卿則可, 在予則不可。 可依予言, 竝急奏聞擧行, 則於國誠爲有利, 此豈一人之私哉? 願卿平心安意而思之, 則今日予必蒙卿恩德矣。 且以己而恕人, 事之情也。 予以當退之身, 欲退則卿以爲不可, 俾不得行, 而卿以安危之身, 反欲辭退, 累形於言, 是何處己, 與處人異也? 無乃不可乎? 宜勿辭。 近日淫霖暑隰, 切願更加善攝。"
- 【태백산사고본】 30책 51권 44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284면
- 【분류】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