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룡을 인견하여 사직을 만류하고 이어 중국군의 철병을 둘러싼 문제를 논의하다
상이 편전(便殿)으로 나아가 유성룡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나에게 민망하고 박절한 뜻이 있는데 영상이 따르려 하지 않고 도리어 미안한 말을 하면서 사퇴하기를 요구하니, 내가 매우 민망스럽다. 【민망하고 박절한 뜻이란 바로 상이 내선(內禪)하겠다는 뜻이다. 상이 누차 선위(禪位)하겠다는 전교를 내렸기 때문에 성룡이 국정을 담당한 수상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러므로 차자(箚子)를 올려 물러갈 것을 요구하면서 상의 뜻을 시험한 것이다. 】 국사가 이지경에 이르렀으니 시종 힘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집에 있는 대신은 의당 출사하도록 하겠으나 밖에 나가있는 대신은 한편으론 해주에 가 있고, 다른 한편으론 전주에 가 있는데 이 두 곳에는 대신이 없어서는 안 되니 사세상 불러오기가 어렵다." 【좌의정 윤두수는 저궁(儲宮)을 모시고 전주에 가 있었고, 우의정 유홍은 중전(中殿)을 모시고 해주에 가 있었다. 】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신은 지혜도 남만 못하고 기백(氣魄)도 허약한데다가 난리를 만난 뒤로는 심병(心病)이 날로 더하여 술취한 사람처럼 정신이 흐릿합니다. 신하는 죽는 날까지 충성을 바치는 것이니 일신은 족히 걱정할 것이 없으나 국사에 대해서는 어찌하겠습니까. 신이 매양 민망하고 박절한 생각을 진달하려 하였었으나 황공스러워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중국군의 철병을 나는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다. 당초 5천 명만을 요청하였고 그 뒤 다시 청병(請兵)을 하지 않은 탓으로 중국 조정에서는 이곳의 위급한 상황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이제 이렇게 철병하는 것이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이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사 천사(司天使)가 중국 조정에 돌아가서 이곳의 사정을 주달하면 다시 군대를 조발하여 구원하러 오리라는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 왜적이 끝내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를 모르겠다."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해외의 추류(醜類)가 온 나라의 무리를 동원하여 침구하여 와서 아직도 둔취하고 있으면서 전혀 돌아갈 뜻이 없는 것은 틀림없이 내년 봄에 전라도를 침범하려는 계략입니다. 신의 생각에는 들을 깨끗이 비우고 험고한 데에 웅거하여 적이 물러가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복병(伏兵)으로 추격하면 거의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원수 권율은 중국군이 철병한 뒤에 문득 스스로 군대를 거두어 이미 전라도로 넘어왔으니 유정(劉綎)이 어찌 혼자서 팔거(八莒)에 유진(留陣)하고 있겠습니까. 유정이 전라도로 들어간다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방수(防守)하는 사람이 없어 적이 마구 짓쳐들어 올 것인데 그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병조 판서 이덕형(李德馨)도 입시하였다가 아뢰기를,
"지금 듣건대, 오 유격(吳遊擊)이 파면되었다고 합니다. 이 장수는 평양의 전투에서 많은 공로를 세웠는데 이제 파면되었으니 매우 억울한 일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에서 글을 올려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낙 총병(駱總兵)이 떠나는 것이 내 마음에 매우 서운하니 내가 게첩(揭帖)을 보내어 머무르기를 청하고자 하는데 어떻겠는가?"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그가 병부(兵部)의 명에 의해 철병하는 것이라면 머무르기를 청하는 것이 어려울 듯합니다."
하였다. 상이 또 전유형(全有亨)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내가 그대를 장수로 삼아 군사를 훈련시키게 하려 하는데 그대는 훈련시킬 수 있겠는가?"
하니, 유형이 이르기를,
"어찌 스스로 잘 훈련시킬 수 있다고 장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장수를 기용하는 도리는 위임(委任)에 있는 것이니 남에게 제재를 받게 될 경우에는 그 재능을 발휘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스스로 절제(節制)하고자 하는가? 옛날에도 천자로서 필부와 벗을 한 이가 있었으니 비하(卑下)하다는 것으로 혐의하지 말고 계모(計謀)가 있거든 다 말하라. 오늘은 밤이 깊었으니 뒤에 다시 인견하겠다."
하고, 일배주(一杯酒)를 내리니, 유형이 아뢰기를,
"신이 비록 기복(起復)011) 은 하였습니다만 술을 마시는 것은 신이 감히 할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유형은 일개 미천한 선비로서 한번 광간(狂簡)한 말을 진달하여 마침내 임금의 인견을 받았으니 상께서 어진이를 좋아하는 마음이 독실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갓 그의 과장한 언사만을 듣고 실제로 행한 것이 없는데도 갑자기 읍재(邑宰)에 제수한 것은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이 자가 국가의 안위에 관계되는 사람이 아닌데도 상소를 올려 자신의 현능함을 과시하여 마침내 기복이 되어 태연히 최복(衰服)을 벗고 왕정(王庭)에 몸을 바친 신하가 되었으니 사은(私恩)은 이미 대의(大義)에 의해 굽혀진 것이다. 군신의 분의가 지엄한데 어찌 군부가 내려주는 술을 사양하고 마시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고도 스스로 부득이하여 기복하였다고 하니 어찌 통분스럽지 않은가. 이미 기복되고 나서 감히 군부의 앞에서 일배주를 사양하였으니 군신의 의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 【태백산사고본】 28책 47권 5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202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군사-군정(軍政)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역사-편사(編史)
- [註 011]기복(起復) : 관리(官吏)의 경우 상중(喪中)에는 벼슬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국가의 필요에 의하여 상제의 몸으로 벼슬에 나오게 하는 것을 말함. 기복 출사(起復出仕).
○上御便殿, 引見柳成龍。 上曰: "予有悶迫之志, 領相不肯從之, 反爲未安之言, 欲求辭退, 予深悶焉。 【悶迫之志, 乃上內襌之志也。 上屢下傳禪之敎, 故成龍以當國首相, 不知所爲, 只自涕泣而已, 上箚乞退, 以試上意。】 國事至此, 幸終始竭力, 在家大臣, 宜出仕也。 在外他大臣, 則一在海州, 一在全州, 此兩處不可無大臣, 勢難召來。" 【左議政尹斗壽, 陪儲宮在全州, 右議政兪泓, 陪中殿在海州。】 成龍曰: "臣智不及人, 而氣魄亦且虛弱, 喪亂之後, 心病日甚, 昏若醉人, 臣子以死爲限, 一身不足恤, 其於國事何? 臣每欲以悶迫之情陳達, 而惶恐未能爲。" 上曰: "天兵之撤歸, 予意不以爲怪。 當初只請五千兵, 厥後不復請兵。 天朝不知此間危急之狀, 故今乃撤歸矣。" 成龍曰: "今日所可望者, 司天使若還朝, 奏達此間事情, 則庶幾更發兵來救也。" 上曰: "不審此賊, 畢竟如何?" 成龍曰: "海外醜類, 擧國來寇, 尙且屯據, 頓無歸志者, 明春必犯全羅道。 臣意則淸野據險, 以待賊退, 伏兵追擊, 庶幾可矣。 都元帥權慄, 當此天兵撤回之後, 輒自捲兵, 已踰全羅, 劉綎豈能獨留八莒乎? 劉若入全羅, 則自釜山至京城, 無防守者, 賊必長驅, 誰能禦之。" 兵曹判書李德馨(曰)亦入侍曰: "今聞吳遊擊革職云。 此將於平壤之戰, 多有功勞, 今乃革免, 則亦甚冤枉也。" 上曰: "我國未可措辭伸枉耶? 駱摠兵之去, 予甚缺然。 予欲作揭帖請留, 何如?" 成龍曰: "彼若以兵部之命撤歸, 則似難請留。" 上又引見全有亨。 上曰: "予欲以爾爲將訓士, 爾能訓鍊乎?" 有亨曰: "豈可自許以能訓乎? 但用將之道, 在於委任, 若受制於人, 則難展其才。" 上曰: "然則爾欲自爲節制乎? 古有以天子友匹夫者。 勿以卑下爲嫌, 如有謀盡言之。 今夜已深, 後當更見", 賜一杯酒。 有亨曰: "臣雖起復, 至於飮酒, 則臣不敢也。"
【史臣曰: "有亨一賤士也。 一進狂簡之說, 終致前席之對, 自上好賢之心, 可謂篤矣, 而只聽其言辭之夸大, 未有實行, 而遽授以邑宰, 無乃太過乎? 渠非關國家安危之人, 而陳疏自衒, 終得起復, 恬然釋衰, 委質王庭, 私恩已屈於大義。 君臣之分至嚴, 豈有拒君父之賜酒, 而不飮之理乎? 且自以謂不得已而起復, 豈不痛哉? 旣已起復而敢於君父之前, 以巵酒爲辭, 君臣之義, 安在哉?"】
- 【태백산사고본】 28책 47권 5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202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군사-군정(軍政)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