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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44권, 선조 26년 11월 16일 병인 5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선위하고자 한다는 봉서를 대신들에게 내리다

봉서(封書) 한 장을 도승지 심희수(沈喜壽)에게 내리면서 이르기를,

"이 봉서를 대신들에게 내리라."

하였다. 그 봉서의 대략에,

"과인(寡人)이 왕위에 있은 지 20여 년 동안에 지성으로 사대(事大)해 온 것에 대해 황천(皇天) 후토(后土)는 진실로 내 마음을 알 것이다. 불행히도 역적(逆賊)이 창일하여 나라를 잃고 서쪽으로 파천(播遷)했다가 다행히 황제의 위령(威靈)을 힘입어 환도(還都)하게 되었는데, 온갖 병이 얽히고 설켜 감당하지 못할 듯싶다. 세자(世子)가 영예(英睿)하고 배신(陪臣) 중에 현명한 사람이 많이 있으니 족히 봉번(奉藩)544) 하게 될 것이다. 이에 선위(禪位)하고자 한다. ……"

하였다. 이어 비망기(備忘記)로 이르기를,

"이 봉서를 소매속에 간직했다가 연회가 끝날 즈음에 승지에게 보이고 나서 장 도사(張都司)에게 친히 주려고 했는데, 뜻밖에 장 도사가 갑자기 일어나므로 나도 창황하여 주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이 일은 이미 마음에 맹세했으므로 끝내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오늘 송 경략이 한 말을 보건대 매우 불칙했다. 나의 죄는 진실로 주벌을 받아야 하지만 배신들을 무슨 까닭으로 베려 하는가? 이른바 ‘구인(句引)’이라는 것은 또한 무슨 말인가? 천하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지금 내가 물러나지 않는다면 반드시 후회가 있게 될 것이다. 바라건대 경들은 국가를 위해 침착한 마음으로 선처해 간다면, 나 한 사람만 경들에게 두터운 은혜를 받는 것일뿐만 아니라 사직(社稷)에 대한 충성도 큰 것이 되니, 구구하게 고집할 생각을 하지 말라.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견디지 못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44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124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註 544]
    봉번(奉藩) : 번방(蕃邦)으로서의 할 일을 해감.

○以封書一道, 下于都承旨沈喜壽曰: "此封書, 下于大臣。" 封書大略曰: "寡人在位二十餘年, 至誠事大, 皇天后土, 實知予心。 不幸逆賊滔天, 失國西遷, 幸荷皇靈, 得還故國, 而百病纏身, 恐不能堪。 世子英睿, 陪臣多有賢者, 足以奉藩, 玆欲禪位云云。" 仍備忘記曰: "此封書, 懷于袖中, 宴畢, 將示于承旨, 親呈于都司, 不意都司突起, 予亦蒼黃不呈而還來。 但此事已誓于一心, 終不可不爲。 且今日, 觀經略所言, 極爲不測。 予罪固當誅, 陪臣何故而欲斬之耶? 所謂句引者, 亦何謂耶? 天下安有是事? 今予不退, 必有後悔。 請卿等爲國家, 平心善處, 則不獨予一人受厚恩於卿等, 其忠於社稷大矣。 勿爲區區固執之慮, 不勝涕泣祈懇之至。"


  • 【태백산사고본】 25책 44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124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