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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44권, 선조 26년 11월 10일 경신 1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임금이 영부사 심수경과 영의정 유성룡을 인견하다

사시(巳時)에 상이 편전에 나아가 대신 영부사(領府事) 심수경(沈守慶)과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을 인견했는데 좌승지(左承旨) 장운익(張雲翼), 주서(注書) 홍준(洪遵), 대교(待敎) 심흔(沈忻), 검열(檢閱) 박동선(朴東善)이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내가 답답하고 절박한 일이 있다. 내선(內禪)532) 에 관한 일인데 앞서 이미 다 말했기 때문에 다시 말할 것이 없거니와 내가 잊고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요사이 장 도사(張都司)가 나왔기 때문에 접대하지 않을 수가 없기도 하고 배릉(拜陵) 또한 다하지 않을 수 없기에 과연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10년을 서로 고집한다 하더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에 오늘은 친히 불러 이르는 것이니, 경들은 평온한 마음으로 생각해보고 즉시 시행하라."

하였다. 심수경이 나아와 아뢰기를,

"이 일에 대해 전에 여러 번 전교하시기는 했지만 오늘 전교하시는 뜻을 신(臣)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장 도사가 마침 왔으므로 그에게 고하고 싶다."

하였다. 심수경이 아뢰기를,

"배릉을 아직 다 하지 못하셨고 왜적도 아직 물러가지 않았는데 지금이 어찌 퇴손(退遜)하실 때이겠습니까. 해주(海州)에 계실 때에도 신이 이런 뜻으로 계달했었습니다. 세자(世子) 책봉(冊封)도 아직 주청(奏請)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전위(傳位)하시는 분부를 내리심은 매우 미안한 일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가 퇴위(退位)하면 왜적도 물러가게 될 것이고 반드시 세자를 책봉한 다음에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였다. 심수경이 아뢰기를,

"조종조(祖宗朝)부터도 이러한 예는 없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조종조의 구규(舊規)를 꼭 준수할 것은 없다. 옛부터 세자를 책봉하기 전이라고 해서 어찌 전위하는 일이 없었겠는가."

하였다. 우성룡이 아뢰기를,

"소신은 지난해 7월부터 먼 외방(外方)에 있었기 때문에 해주에 오셨을 때 여러 번 전교하신 것을 미처 듣지 못했었습니다마는, 이는 진실로 더없이 중대한 일입니다. 이처럼 국가가 어렵고도 위태한 때를 당해서는 군신 상하가 힘을 다해 조처하여 적을 물러가게 해야 합니다. 혹 성체(聖體)가 편치 못하시다면 오히려 이러한 계획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어렵게 꾸려가는 즈음에 어떻게 이런 더없이 중대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요사이 오래도록 이런 전교가 없으셨기에 조정이 모두 안심하고서 단지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될 것만 염려했었는데, 지금 전교를 받드니 매우 미안합니다."

하니, 상이 소지(小紙) 한 장을 보이면서 이르기를,

"이 글을 장 도사(張都司)에게 주려는데 대신들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고난 다음 내가 친서(親書)하여 주겠다."

하였다. 심수경이 아뢰기를,

"상께서 장 도사에게 주려고 하시지만 장 도사는 정식 사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게 주는 것은 미안한 일입니다."

하고, 유성룡은 아뢰기를,

"장 도사는 곧 관량관(管糧官)이요 사신이 아니므로 이러한 말을 들려줄 수 없습니다. 국사는 지극히 중대한 것이니 다시 더 생각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다른 일은 논할 것 없다. 기력이 지탱하기 어려워 그저 형체만 남아 있으니 이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사신이 여기 왔으니 미리 말하는 것이 좋다."

하였다. 성룡이 아뢰기를,

"이런 시기에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국사가 아직도 격을 갖추지 못했는데 이는 얼마나 중한 명령인데 이렇게 하십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오늘 하지 않으면 내일 해야 하고 이달에 하지 않으면 새 달에는 해야 하는 것이 마치 물이 반드시 동쪽으로 흐르는 것처럼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앞서도 이미 말했었다. 그런데도 경들은 곧이 듣지 않았었는가? 내관(內官)이 여기 있으니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털로 몸을 싸고 있어 비록 전부(顚仆)되지는 않지만 반신을 움직이지 못하고 눈은 살필 수가 없고 귀는 들리지 않아서 명령이 전도되고 언어가 착란되니, 하루 하루 기무(機務)가 더욱 번다해져 더더욱 지탱할 수 없다. 승지가 여기 있으니 어찌 모르겠는가. 나는 다른 생각은 없고 다만 빨리 물러나야 할 뿐이다."

하였다. 장운익(張雲翼)이 아뢰기를,

"이 시점에서는 성체(聖體)를 이양(頣養)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국가의 회복이 더욱 중요한 일이니 국가를 회복한 다음에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승지는 말하지 말라."

하였다. 유성룡이 아뢰기를,

"도사는 곧 송 시랑(宋侍郞)이 보낸 사람인데, 어떻게 이러한 일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즉시 거행해야 한다. 그렇게 한 다음 세자가 남쪽에 내려가는 것이 합당하다. 내가 미열(迷劣)하지만 어찌 아무 것도 모르겠는가."

하였다. 성룡이 아뢰기를,

"성상께서는 여기에 계시고 세자께서는 남쪽에 내려가는 것이 합당할 듯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는 하루가 급하다."

하였다. 성룡이 아뢰기를,

"이처럼 어려운 때에 당해서는 대신들이 국사를 담당해야 하는데 윤두수(尹斗壽)는 남쪽에 내려가고 신 혼자 이를 담당하고 있으므로 밤낮으로 생각해 보아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매양 사퇴(辭退)하려고 하면서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모름지기 다른 사람을 가려 정승을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또 이런 전교를 받들고 보니 더욱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일은 경이 정승으로 들어온 뒤에 말한 것이 아니라 정주(定州)에 있을 때에 말한 것으로 하늘도 알고 있다."

하였다. 수경이 아뢰기를,

"올해도 이미 다 되었습니다. 적세를 기필할 수는 없지만 서서히 국세가 회복되는 것을 보아가면서 해도 안 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가 이대로 있으면 적이 그대로 있게 되고 내가 물러서면 적도 물러갈 것이다."

하였다. 성룡이 아뢰기를,

"이렇게 전교하시는 것을 군하(群下)들이 알 수가 없습니다마는 누군들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국가의 한 명맥이 겨우 보존되어 종사(宗社)가 막 회복되었으니 이 때에는 마땅히 격려하여 수습해야 할 것인데 이처럼 물러가려 하시니 매우 근심스럽고 답답합니다."

하고, 이어 눈물을 흘리면서 아뢰기를,

"소신(小臣)이 불행히도 대신의 반열에 있으면서 이런 전교를 받들고 보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고, 수경도 눈물을 흘리면서 아뢰기를,

"신은 노병(老病)이 이미 극도에 이르렀으므로 마땅히 물러갔어야 하는데 그대로 있다가 또 이런 전교를 받들고 보니 너무도 민망하고 절박합니다."

하고, 성룡은 아뢰기를,

"오늘날의 형세는 마치 배를 타고 바다로 들어가다가 갑자기 풍파를 만나 배가 침몰하게 된 것과 같습니다. 신이 정승의 자리에 있으면서 또 이런 전교를 받들게 되니 죽고만 싶습니다. 군신(群臣)들이 태만하여 모든 일이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는다면, 아무 일을 아무가 잘 하지 못한다 하면서 일에 따라 책망하셔야 할 것이요, 이같은 미안한 전교를 내릴 것은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예로부터 유사(有司)들이 태만한 것 때문에 퇴손(退遜)한 임금이 있었는가? 병 때문에 감당할 수 없어서이다. 지금 그대로 있다가는 전과 같은 환난을 다시 만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중국 조정에서 나를 죄주더라도 어떻게 추급(追及)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성룡이 아뢰기를,

"송 경략(宋經略)의 자주(咨奏) 내용에, 그의 말대로 시행하지 않는다고 하는 뜻이 있었기 때문에 마지 못하여 대신이 내려갔습니다. 동궁(東宮)께서도 내려가야 할 것인데 날씨가 이처럼 추우니 도중에 낭패스러운 염려가 있게 될까 싶습니다. 단지 이 때문에 우려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또 이런 전교가 계십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일은 그만둘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상지(相持)할 것도 없다. 내가 한편으로는 중국 사신에게 말하고 한편으로는 내선(內禪)하는 예(禮)를 거행하겠으니 제반 일들을 조처해야 할 것이다. 말만 하고 그칠 수는 없다. 하루를 그대로 있으면 하루의 근심을 더 끼치게 된다. 이는 마치 황하가 동쪽으로만 흐르는 것과 같아 기필코 하고야 말겠다. 잠시 동안인들 내가 어찌 잊겠는가."

하였다. 성룡이 아뢰기를,

"국사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가 물러나면 국사도 좋아지게 될 것이다."

하였다. 수경이 아뢰기를,

"이는 금명간에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배릉(拜陵)도 다하지 못하셨으니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는 일각이 바쁘다. 이제는 배릉해야 하겠기에 경들에게 미리 말하는 것이다. 나는 곧 번신(藩臣)이다. 조사(詔使)나 칙사(勑使)를 논할 것이 없이 황제가 차출하여 보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온편하지 못할 것이 뭐 있겠는가."

하였다. 수경이 아뢰기를,

"마땅히 주문(奏聞)해야 하는 것이요, 장 도사(張都司)에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신의 생각에는 세자를 책봉한 다음 전위(傳位)하시는 것이 매우 온당하다고 여겨지는데 다시 더 생각하소서. 다만 듣건대 성체(聖體)가 편치 못하시다니 조리를 하셔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감기 증세라면 그래도 조리할 수 있겠지만 전부터 마음에서 난 병인데 어떻게 조리할 수 있겠는가."

하였는데, 수경이 아뢰기를,

"비록 1∼2개월이라도 조리하셔야 합니다. 반드시 올해 안에 해야 할 일도 아니거니와 하든지 않든지 간에 장 도사에게 말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중국 사신을 인접하여 말씀을 나누는 동안에 병을 들어 말로 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겠습니다마는 문서로 보이는 것은 할 일이 못됩니다."

하였다. 아룀이 끝나자 차례로 물러갔다.

사신은 논한다. 2백 년 동안 신성(神聖)들이 서로 전해오던 큰 왕업(王業)을 전하(殿下)의 몸에 이르러 경솔하게 버리고 파월(播越)했다가 다행히 하늘의 위령(威靈)을 힘입어 구물(舊物)을 회복, 환도하기는 했다. 그러나 전하로서는 통렬하게 자신을 각책(刻責)하는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전위(傳位)하겠다는 분부야말로 간담(肝膽)에서 나온 것이니, 대신들로서는 마땅히 상께서 정사를 떠나 손위(遜位)하려는 지극한 뜻을 몸받는 것이 또한 하나의 도리였을 것이다. 더구나 동궁(東宮)이 인자하다는 소문이 여망(輿望)에 흡족했었으니, 명을 받들어 즉위(傳位)하여 하늘과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안되게 하는 것이 무슨 옳지 못할 것이 있겠는가. 그런데 누구 하나 계책을 정하여 승순(承順)하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전하의 아름다운 뜻이 마침내 헛된 데로 돌아가게 만들었으니 나라에 사람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25책 44권 7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120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역사-편사(編史)

  • [註 532]
    내선(內禪) : 임금이 생존해 있으면서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것.

○庚申/巳時, 上御便殿, 引見大臣。 領府事沈守慶、領議政柳成龍、左承旨張雲翼、注書洪遵、待敎沈忻、檢閱朴東善入侍。 上曰: "予有悶迫之事。 內禪事, 前已盡言, 更無可言。 予非忘而不言。 近以張都司出來, 不可不接待, 拜陵亦不可不盡爲, 故未果言之。 雖十年相持, 不可不爲, 故今日親招言之。 卿等平心思之, 卽爲施行。" 沈守慶進曰: "此事, 前者累次傳敎, 而今日傳敎之意, 則臣未之思也。" 上曰: "張都司適來, 故欲告之。" 守慶曰: "拜陵時未盡爲, 賊亦未退。 此豈退遜之時? 臣在海州時, 亦達此意。 封世子, 時未奏請, 而遽下傳位之(數)〔敎〕 , 極爲未安。" 上曰: "予退則賊退矣, 不必封世子後爲之。" 守慶曰: "自祖宗朝, 亦無此規。" 上曰: "祖宗朝舊規, 不必遵守。 自古未封世子前, 豈無傳位之事乎?" 柳成龍曰: "小臣, 自前年七月以後在外, 遠未聞知, 入海州, 累度傳敎, 此實莫大之事。 當此國事艱危之時, 君臣上下, (勠)〔戮〕 力措置, 使賊退去。 若或聖體愆和, 則猶可爲此計也, 而艱難補綴之時, 豈爲如此極重之事乎? 近日久絶此敎, 朝廷皆得安心, 只以不察職爲慮。 今承傳敎, 極爲未安。" 上以一小紙視之曰: "欲以此書, 呈張都司, 不可不言于大臣。 見後, 予當親書以呈。" 守慶曰: "自上雖欲呈張都司, 都司非天使, 呈之未安。" 成龍曰: "都司, 乃管糧官, 非天使也, 不可聽此言。 國事至重, 更加三思。" 上曰: "不論他事, 但氣力難支, 形體徒存, 此事不可不爲。 天使來此, 預言可也。" 成龍曰: "此時此事, 臣未之思也。 國事尙未成形, 此何等命令, 而如此爲之乎?" 上曰: "今日不爲, 明日爲之; 今月不爲, 來月爲之。 如水必東, 不得不爲。 前已言之, 卿等不信聽乎? 內官在此, 亦知之矣。 予以毛裹身, 雖不至於顚仆, 而半身不運, 眼不察物, 耳不聽言, 號令顚倒, 言語錯亂。 一日機務極煩, 尤不可支吾。 承旨在此, 豈不知之? 予無他意, 但當速退而已。" 張雲翼曰: "此時, 頤養聖體雖重, 恢復爲尤重。 國家恢復後, 爲之可也。" 上曰: "承旨勿言。" 成龍曰: "都司, 乃宋侍郞所遣之人, 豈可言此事乎?" 上曰: "卽爲擧行可也。 如此後, 世子南下爲當。 予雖迷劣, 豈不知之?" 成龍曰: "自上在此, 而世子南下, 似爲便當。" 上曰: "予則一日爲急。" 成龍曰: "當此艱難之際, 大臣擔當國事, 而尹斗壽南下, 臣獨當此, 夜以繼朝, 罔知攸爲。 每欲辭退而不得, 須擇他人爲相可也。 今又承此傳敎, 尤不知所爲。" 上曰: "此事, 非卿入相後言之, 在定州時言之, 天亦知之。" 守慶曰: "今年已盡。 賊勢, 雖不可必, 而徐觀國勢恢復後爲之, 未爲不可。" 上曰: "予在則賊在; 予退則賊退。" 成龍曰: "如此傳敎, 群下未能知之, 孰不震懼? 國家一脈僅存, 宗社初復, 此時所當激勵收拾, 而退托如此, 極爲憂悶。" 仍泣曰: "小臣不幸, 在大臣之後, 承此傳敎, 罔知所爲。" 守慶亦泣曰: "臣老病已極, 所當退去而仍在, 又承此敎, 極爲憫迫。" 成龍曰: "今日之勢, 如乘舟入海, 卒遇風波, 舟楫將沈, 而臣在相位, 又承此敎, 欲死不得。 群臣如有怠慢, 凡事莫治, 則某事某不能爲之, 所當隨事責之, 不必如此下未安之敎也。" 上曰: "自古安有以有司怠慢之故, 而退遜者乎? 以病不能堪。 今若仍在, 如前禍亂, 不無更逢之理。 此後則皇朝雖罪予, 豈可追乎?" 成龍曰: "經略於咨奏中, 有不行其言之意, 故不得已大臣下去矣。 東宮亦將下去, 而日寒如此, 恐有中路狼狽之患。 只以此爲憂慮, 不意又有此傳敎矣。" 上曰: "此事, 不可但已, 亦不可相持。 予一邊當告于天使, 一邊禪禮。 諸事措備可也。 不可徒以言語而已。 一日仍在, 貽一日之憂。 如水必東, 必爲之後已。 一擧足之間, 予豈忘之?" 成龍曰: "國事, 何以爲之乎?" 上曰: "予退則國事當好矣。" 守慶曰: "非今明可爲之事, 拜陵亦未盡爲, 徐爲之可也。" 上曰: "予則一刻爲急。 今當拜陵, 故預言于卿等爾。 予乃藩臣。 不論詔使、勑使, 而皇帝差來人處言之, 有何不便?" 守慶曰: "所當奏聞, 不須告于張都司。 小臣意, 封世子後傳位, 極爲穩當。 更加三思, 但聞聖體不平云, 可以調理爲之。" 上曰: "傷寒證, 猶可調理, 自古心病, 豈可調理?" 守慶曰: "雖一二月, 亦可調理爲之。 非必於今年內爲之, 爲不爲間, 非可通於張都司也。 與天使接話間, 以病言之, 猶可也, 以文書示之, 非所當爲也。" 啓訖, 以次退。

【史臣曰: "二百年神聖相傳丕丕之基, 至殿下身, 輕棄播越, 幸賴天之靈, 雖能復舊物還舊都, 而殿下之痛自刻責, 爲如何哉? 傳禪之敎, 出自肝膈, 爲大臣者, 所當體上至意, 遜位倦勤, 是亦一道也。 況春宮仁譽, 洽於輿望, 承命卽祚, 少慰天人之心, 有何不可, 而無一人定策從順, 使殿下美意, 終歸虛地, 其可謂國有人乎?"】


  • 【태백산사고본】 25책 44권 7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120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