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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44권, 선조 26년 11월 2일 임자 3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영의정 유성룡이 세자가 남으로 가는 일에 대해 아뢰다

영의정 유성룡이 아뢰기를,

"삼가 성상의 분부를 받들건대 신들은 답답하고 절박한 마음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대가(大駕)가 내려가는 일은 성지(聖旨)에 언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세로 말하더라도 세자께서 진주(進駐)하여 군사들을 독무(督撫)해야 하는 것이요, 성상께서는 도성(都城)에 계시면서 나라의 근본이 튼튼해지게 하시는 것이 사리에도 순조롭습니다. 다만 동궁(東宮)의 증세가 길에 오르실 수 있는지를 몰라서 민망합니다. 신 이덕형(李德馨) 【천품이 수미(粹美)하고 재기(才器)가 숙성했으며, 또 글을 잘하여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았다. 】 일찍이 듣건대 ‘제독(提督)이 안주(安州)에 있을 적에 정창연(鄭昌衍)에게 「송 경략(宋經略)이 기필코 세자를 남쪽으로 내려가게 하려 하니, 본국(本國)에서는 우선 그의 뜻에 순응하는 것으로 답해주고, 거기에 내려가서 조처하는 일은 사세에 따라서 해야 한다. 」 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도 송 경략의 뜻에 저촉될까 싶습니다마는 더욱 난처하게 되겠기에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제 ‘세자가 병이 있지만 병을 무릅쓰고 해주(海州)에서 내려오고 있다.’고 답하고, 세자께서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서울로 돌아와 사세를 보아 가면서 점차로 내려 가도록 도모하는 것이 합당할 듯합니다."

하니, 상이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44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118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

    ○領議政柳成龍啓曰: "伏承聖敎, 臣等不勝憫迫之至。 大駕前進事, 則非徒聖旨所不及, 以事勢言之, 世子進駐撫軍, 而自上留駐舊都, 以固邦本, 於理爲順。 只未知東宮證勢, 可堪登途與否, 以是爲憫耳。 臣德馨 【天質粹美, 才器夙成。 且以文雅, 見推流輩。】 (胃)〔曾〕 聞, 提督在安州, 言於鄭昌衍曰: ‘經略必欲世子南行, 本國姑當順其意答之, 而往彼措處事, 自當隨勢爲之。’ 云。 此言亦恐觸忤經略之意, 益致難處而然也。 今以世子, 雖有疾病, 自海州力疾前進之言, 答之, 而世子似當從速還京, 觀勢漸圖前進宜當。"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25책 44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118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