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 선위하지 말기를 청하다
정원이 아뢰기를,
"신들이 어제 삼가 성상의 비답을 보건대, 전지(傳旨)를 즉시 봉행하지 아니하여 의리를 크게 어겼다고 꾸짖으셨는데, 신들은 서로 돌아보고 민망스러워하며 말할 바를 몰랐습니다. 신들은 외람되이 성상을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국세가 위태롭게 되어 그 위험이 날로 임박해지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는데, 성상께서는 위에 계시면서 분발하여 왜적을 쳐 회복을 도모할 생각은 않고 오직 겸허한 마음으로 물러날 생각만을 가지고 큰 계책을 그르치고자 하시니, 이것이 바로 신들이 명을 거역하는 데 대한 벌도 피하지 않으면서 아뢰는 이유입니다.
삼가 오늘의 사세(事勢)를 살펴보건대, 왜적은 해안(海岸)에 주둔해 있으면서 아직도 물러갈 기약이 없으며, 백성의 시체는 구렁을 메우고 있는데도 구제할 대책이 없으며, 심지어는 원릉(園陵)이 치욕을 당하고 종사(宗社)가 화를 입기까지 한 것은 보기에 놀랍고 가슴이 두근거려 차마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하늘에 계신 조종께서 전하에게 기대하는 바가 어떠하겠으며 백만의 생령들이 전하에게 바라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지금은 바로 전하께서 창을 베고 잠을 자며 쓸개를 맛보아야 할 때이지 진실로 임금의 자리를 내놓고 한가롭게 물러날 시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속히 시행하라는 하교를 여러 번 내리시어 위아래가 서로 버틴지가 이미 열흘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심정이 민망 절박하게 여기고 있고 모든 기상(氣象)이 참담한 시름 속에 있으니 이는 민심을 진정시키고 화합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깊이 더 생각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그대로 있으면 국사를 다시 그르치게 될 것이고 물러나게 되면 시사(時事)를 잘 처리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구차스럽게 그대로 있으면서 스스로 처신을 잘못하게 되면 수욕(羞辱)만 남길 것인데 국가에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다시 말하지 말라."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상이 2백 년 조종(祖宗)의 기업(基業)을 당저(當宁)452) 에 이르러서 남김없이 다 멸망시켜 놓고 겸퇴(謙退)하면서 다시는 백성의 윗자리에 군림하지 않고자 하여 하루아침에 병을 이유로 총명하고 인효(仁孝)한 후사(後嗣)에게 대위(大位)를 물려주려고 하니, 그 심정은 진실로 서글프나 그 뜻은 매우 아름다운 것이다. 진실로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겠는가. 대신(大臣)으로서는 눈물을 흘리며 봉행하더라도 잘못됨이 없을 것인데 어찌하여 백관을 인솔하고 끈질기게 설득하고 극력 간쟁하여 반드시 승락을 받고서야 그만두려 하는가. 왜적이 물러가기 전에 그 일을 시행하려 하면 우선 왜적이 물러가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간쟁하고, 왜적이 물러간 다음에 그 일을 시행하려 하면 우선 환도(還都)하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간쟁하고, 환도한 다음에 그 일을 하려 하면 중국의 조사(詔使)가 공관(公館)에 있으므로 할 수가 없다고 하고, 조사가 돌아간 다음에 그 일을 하려 하면 세자[儲宮]가 어려서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세월을 끌며 말을 바꿔 임금과 신하 사이에 마치 어린아이가 서로 희롱하는 것처럼 하였으니 이것이 도대체 무슨 사리(事理)인가. 당시에 세자의 나이가 이미 약관(弱冠)이었고 학문도 고명(高明)하였으며 덕망도 이미 성숙하였으니 대위(大位)를 이어받는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난을 평정하고 화를 종식시켰을 것인데, 계속 어린 세자[沖嗣]라고 하였다. 옛부터 약관의 어린 세자가 언제 있었던가. 끊임없이 간쟁하여 상의 훌륭했던 생각을 중지시켰으니 매우 애석한 일이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42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95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역사-편사(編史)
- [註 452]당저(當宁) : 현재의 임금을 가리키는 말. 본래는 임금이 조회 때에 서 있는 곳을 말한다. 《예기(禮記)》 곡례(曲禮).
○政院啓曰: "臣等昨者, 伏覩聖批, 責以不卽奉傳旨, 大違義理。 臣等相顧悶默, 不知所言。 臣等忝在近密, 目見國勢岌岌, 危亡日迫, 而聖明在上, 尙不奮發討賊, 以圖恢復, 惟欲謙沖退遜, 以誤大計。 此臣等所以不避方命之誅, 而有所復逆者也。 竊念今日事勢, 賊屯海岸, 尙無退遁之期; 民塡丘壑, 未有賑救之策。 至於園陵之辱, 宗社之禍, 駭目警心, 有不忍言。 當此之時, 在天祖宗之責於殿下者, 爲何如?, 百萬生靈之望於殿下者, 果如何耶? 此正殿下枕戈嘗膽之秋, 固非釋位退閑之日, 而累下速施之敎, 上下相持, 已近一旬, 群情悶迫, 氣象愁慘, 非所以鎭定保合者也。 更加三思。" 傳曰: "仍冒則國事再敗, 禪退則時事可爲。 因仍苟且, 不能自處, 徒貽羞辱, 於國何益? 願勿更言。"
【史臣曰: "上以二百年祖宗基業, 至于當宁, 而覆滅無餘, 謙沖退遜, 不欲更臨億兆之上, 一朝引疾, 欲禪大位於聰明仁孝之嗣, 其情誠可悲, 而其意則甚義矣。 苟非明斷, 曷有此擧? 爲大臣者, 雖出涕而奉行, 未爲不可也, 何乃倡率百僚, 苦陳力爭, 必得允兪而後已乎? 賊未退, 而欲爲此擧, 則爭之以姑竢賊退; 賊已退, 而欲爲此擧, 則爭之以姑待還都; 還都而欲爲此擧, 則曰詔使在館, 不可爲; 詔使已還而欲爲此擧, 則曰儲宮南下, 不可爲, 遷延時月, 變幻辭說, 君臣之間, 有同嬰兒之相戲, 此何等事理耶? 時世子, 春秋已弱冠, 學問已高明, 德業已成就, 雖承大位, 足以(我)〔除〕 亂熄禍, 而指以爲沖嗣, 自古安有弱冠沖嗣耶? 爭之不已, 使盛意中沮, 深可惜也。"】
- 【태백산사고본】 24책 42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95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