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가 선위의 명을 거두기를 청하다
세자가 새벽에 대궐에 나아가 땅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면서 아뢰기를,
"신이 민망 절박하고 답답한 심정에서 날마다 혈성(血誠)으로 대궐 뜰에서 호소하였으나 오래도록 유음(兪音)은 받지 못하였고 성지(聖旨)는 더욱 엄하니 두려움에 떨려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어제 성상의 비답을 보건대, 심지어 ‘병이 들어서 감당할 수가 없게 되면 자식으로서는 마땅히 부모의 마음으로 마음먹어야 한다.’고까지 하셨는데, 꿇어앉아 재삼 읽으니 감격하여 눈물이 흐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이 어리석다고 하더라도 부모의 마음을 받들어 따르는 것이 곧 자식된 직분임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성상의 명을 감히 따를 수가 없었던 것은 실상 종사(宗社)와 생민(生民)을 위하고 성상을 위하는 지극한 정성에서 나온 것인데, 날이 갈수록 천청(天聽)은 더욱 막연하게 되고 있으니, 가슴 조이며 안절부절하다가 통곡할 뿐입니다. 어리석은 신의 용렬하고 불초한 점과 시세의 어렵고 위태로운 점에 대해서는 전후 남김없이 모두 말씀드렸으므로 성상께서는 반드시 충분하게 알고 계실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매양 민망 박절함으로 인하여 천위(天威)를 번거롭혀 드렸습니다. 물러와서 생각해보니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는 입장입니다만 그보다 더 중한 것이 있기 때문에 죽는 한이 있어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번의 유음(兪音)을 받지 못하면 만번 죽는 한이 있어도 결단코 그만둘 수가 없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슴속에 있는 진심으로 다시 감히 우러러 번거롭게 호소하는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미미한 정성이나마 통촉하시어 특별히 가엾게 여기시어 속히 윤허하여 주신다면 이는 병들어 죽게 된 목숨이 천지 부모의 은혜에 의해 보존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종사(宗社)와 신민(臣民)에 있어서도 매우 다행스러울 것입니다.
신은 앓던 병이 다시 극심해져서 심신(心神)이 이미 저상되어서 기(氣)가 막히고 말도 어눌하여 민망스럽고 망극한 심정을 다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간곡한 정성을 제대로 아뢰지 못하여 성상의 마음을 돌릴 수가 없을 것으로 여겨져 머리를 들고 대궐문을 우러르며 애절하게 눈물만 흘릴 뿐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이러한 심정을 굽어 살피시어 세 번 더 깊이 생각하셔서 속히 윤허의 명을 내리심으로써 국가의 무궁한 복이 연장되게 하소서. 신은 민망 절박하여 간절히 비는 마음을 감당할 수 없어 땅에 엎드려 아룁니다."
하니, 사양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42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95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戊(子)〔午〕 /世子晨詣闕下, 伏地涕泣而啓曰: "臣將危迫悶鬱之情, 日日瀝血哀號天庭, 而兪音久閟, 聖旨益嚴, 惶恐震慄, 罔知所爲。 伏覩昨日聖批, 至以病不能堪, 人子當以父母之心爲心爲敎。 跪讀再三, 不勝感泣。 臣雖無狀, 豈不知承順父母之心, 乃人子職分也? 至於聖命, 有不敢將順者, 實出於爲宗社、爲生民、爲聖上之至誠也, 而日復一日, 天聽逾邈, 撫心踧踖, 痛哭而已。 愚臣之庸劣不肖, 時勢之艱難危急, 前後陳達, 盡擧無遺, 仰惟震聽, 必已厭聞, 而每因悶迫, 冒瀆天威, 退伏竊思, 求死不得。 然而所重有甚, 死且不避。 未蒙一兪, 雖萬死, 而斷不可已也。 玆欲更刳肝膽, 仰煩籲呼, 伏乞聖慈, 洞燭微誠, 特垂矜憐, 亟下兪允, 則非但病餘殘命, 得保於天地父母之恩, 其於宗社、臣民, 無不幸甚。 臣舊病還劇, 心神已喪, 氣塞語澁, 未能畢布竭悶罔極之悃, 恐或誠懇莫白, 未回天意, 翹首閶闔, 徒切血泣焉。 伏願聖明, 曲察微衷, 熟加三思, 亟賜兪命, 以延國家無彊之福。 臣無任悶迫懇祝之至, 伏地以聞。" 答曰: "毋辭。"
- 【태백산사고본】 24책 42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95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