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독 접반사 이덕형이 찰원에게 남쪽 왜적의 섬멸을 청할 일로 보고하다
제독 접반사(提督接伴使) 이덕형(李德馨)이 【8월 26일. 】 치계하였다.
"지난 24일 제독(提督)이 찰원(察院)을 따라 평양에서 출발하여 저녁에 숙천(肅川)에서 유숙하고 어제 안주(安州)를 지나 가산(嘉山)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번에 찰원이 모든 일을 자세히 살피려고 왔으니 우리 나라에서 말을 잘해서 왜적이 전처럼 둔취해 있다고 알려 주어 끝까지 구활(救活)하여 달라고 간청할 좋은 기회입니다. 중국에서 다시 살려준 은혜와 제독의 공덕을 극진히 설명하여 그 말을 마치 진사(陳謝)하는 것처럼 하면서 끝에 가서 남쪽 지역의 왜적의 실정까지 언급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풀이 마르고 활이 강하게 된 다음에 다시 이 총야(李摠爺)448) 의 힘을 빌어 변방의 화근(禍根)을 영원히 뿌리뽑아 마침내 바닷가의 백성을 구활시켜 달라고 요청하면 제독이 보더라도 다른 말을 못할 것입니다. 이를 주선하는 문제는 조금도 늦출 수가 없으며 그 책임은 찰원을 접반(接伴)하는 자에게 있는 것이므로, 신이 어제 가산에 도착하여 이축(李軸)·정창연(鄭昌衍) 등과 상의하여 품첩(稟帖)을 올리거나 상서(上書)를 해보도록 권했더니, 이축은 큰일에 방해가 될까 걱정도 되고 또 조정의 명령도 없었으니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고집을 부리며 망설였습니다. 그래서 신(臣)이 여러 가지로 권유하는 한편, 동행한 여러 사람과 정문(呈文)을 초안하여 주고서 기어이 계품(啓稟)하게 하였습니다."
사신은 논한다. 이덕형(李德馨)은 약관(弱冠)에 수재(秀才)로 등용되었다. 이산해(李山海)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화패(禍敗)를 면할 수 있었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42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93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註 448]이 총야(李摠爺) : 이여송을 가리킴.
○提督接伴使李德馨 【八月二十六日】 馳啓曰: "去二十四日, 提督隨察院, 發自平壤, 夕宿于肅川, 昨日過安州, 入嘉山。 今番察院, 欲詳察凡事而來。 我國善爲措辭, 告以賊徒依舊屯聚, 懇請終始救活, 此其會也。 若極陳天朝再造之恩及提督之功德, 其辭若陳謝者然, 終及南方賊情, 請於草枯、弓勁之後, 更借李摠爺, 永殄邊禍, 終活海上遺民, 則提督見之, 亦無異辭。 將此周旋, 不可少緩, 而責在於察院之接伴, 故臣於昨日到嘉山, 與李軸、鄭昌衍等商議, 勸乞稟帖或上書, 則李軸以爲大事恐有害, 且無朝命, 不可擅爲, 固執留難。 臣多般勸諭, 與同行諸人, 作呈文草給之, 期於必稟矣。"
- 【태백산사고본】 24책 42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93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