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의정 윤두수 등이 명을 거두기를 청하자 심질을 이유로 거절하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와 우의정 유홍(兪泓)이 백관을 인솔하고 아뢰기를,
"신들이 구구하게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신명(神明)에게 질정할 수도 있습니다만, 성상께서는 거짓말을 한다고 꾸짖기도 하시고 약속을 어겼다고도 하시니, 더욱 더 황공하고 민망스러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날 정주(定州)에서 있을 적에 여러날 복합(伏閤)하여 힘을 다해 호소할 적에는 말이 번거롭게 될까 조심되었었는데, 마침 왜적이 물러갈 때까지 기다리시겠다는 하교가 계셨으므로 서로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물러나왔던 것입니다. 신하가 임금이 물러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은 진실로 매우 이치에 어긋나는 것인데 더구나 어느 때라고 기일을 정할 수가 있겠습니까. 성상께서는 겸손을 일삼지 마시고 인심을 위안시켜 주소서."
하니, 답하기를,
"오늘의 일은 조금도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옛날에 문천상(文天祥)이 ‘예로부터 제왕(帝王)에서부터 장상(將相)에 이르기까지 멸망하거나 주륙을 당한 일이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는가.’ 하였다. 예로부터 임금이 나라를 잃고 피난한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다행히 회복이 되고 나서 왕위(王位)를 사양하고 피한 사람이 있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나의 뜻이 과연 그런 데에 있는 것이겠는가. 병세(病勢)가 날로 악화되어 깊이 고황(膏肓)에까지 들어가서 죽음에 임박하여 조석(朝夕)에 달려있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심질(心疾)이 더욱 심하여 이제는 미친 증세로 변하였으며 그 동안 놀라왔던 증상은 차마 다 말할 수가 없다. 무릇 미친 증세가 있는 사람은 약으로 다스릴 수가 없는 것이어서 반드시 인사(人事)를 사절하고 문을 닫고 홀로 있으면서 몸은 마른 나무처럼 되게 하고 마음은 불꺼진 재처럼 되게 한 지 10여 년 뒤에 가서야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증세를 끝내 다스릴 수가 없게 되어 갈수록 더욱 심해질 것인데, 더구나 서무(庶務)를 재결(裁決)하고 군기(軍機)를 책응(策應)하기를 기대하는 일이 이치에 있을 수 있겠는가. 내가 민망하게 여기는 정사(情事)는 단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오늘 생각하고 내일도 생각하고 이달에도 생각하고 다음 달에도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반복하면서 생각해봐도 끝내 그대로 있을 수가 없다. 이대로 미루어 나가면서 즉시 결정짓고 물러가지 않는다면 뒷날의 일이 더욱 더 차마 말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속히 시행하도록 하고 다시는 번거롭히지 말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42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92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左議政尹斗壽、右議政兪泓, 率百官啓曰: "臣等區區憂國之心, 可質神明, 而自上或責以食言, 或敎以違約, 尤不勝惶駭悶迫之至。 向在定州, 累日伏閤, 力竭於籲呼, 辭蹙於瀆冒, 適因姑竢賊去之敎, 相與感泣而退。 夫臣許君退, 固是拂理之甚者, 而況指期以某時乎? 伏願聖明, 毋事撝謙, 慰安人心。" 答曰: "今日之擧, 非有一毫他意。 昔文山有言: ‘自古帝王, 以及將相, 滅亡誅戮, 何代無之?’ 自古人君之喪國奔竄者多矣, 幸而恢復, 未聞有辭位而避者。 予意果在此乎? 惟其病(熱)〔勢〕 日痼, 深入膏肓, 死亡之迫, 必在朝夕, 其中心疾尤重。 今變爲狂疾, 其間可駭可愕之狀, 不忍更擧。 夫狂疾之人, 不可以藥力療之。 必須謝絶人事, 閉門獨處, 枯木其形骸, 死灰其心神, 然後可以收效於十數年之後。 不然則其證終不可瘳, 愈往而愈甚。 況望其裁決庶務, 策應軍機, 寧有是理乎? 予之情事之悶, 只在於此。 今日而思之, 明日而思之, 今月而思之, 翌月而思之, 思之又思, 反覆思之, 終不可冒處。 若因仍苟且, 不卽決退, 則他日之事, 尤不可忍言。 願速施, 毋庸更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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