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암이 명군의 남원성 주둔, 왜적의 구례 침입, 왜적 후퇴 등을 알리다
전라도 관찰사 이정암(李廷馣)이 치계하였다.
"7월 12일에 보낸 병사(兵使) 선거이(宣居怡)의 치보(馳報)에 ‘전후에 내려온 중국 장수 낙 참장(駱參將)·송 유격(宋遊擊)·사 총병(査總兵)·이 도독(李都督)·고 유격(高遊擊)·오 지휘(吳指揮)·여 상공(呂相公)과 이달 10일 영남(嶺南)에서 온 이 총병(李總兵)·조 총병(祖總兵)·갈 유격(葛遊擊)·곡 유격(谷遊擊)·장 유격(張遊擊)·방 도사(方都司)·이 참장(李參將) 등 14명이 모두 남원성(南原城) 안으로 들어왔다. 병사는 순변사(巡邊使)와 함께 힘을 합하여 성을 지키고 있었는데 병사가 중국 장수들을 따라 당일 출발하자, 우리 나라의 난민(亂民)들이 왜인(倭人)의 형상으로 가장하여 빈 틈을 타서 도적질을 하기 때문에 열읍(列邑)에 행회(行會)하여 진정시키도록 하였다. 낙 참장·송 유격·오 지휘·여 상공 등은 군대를 인솔하여 추후에 행군하기로 하고, 사 총병이 남원을 출발하여 5리쯤 행군했을 때에 구례(求禮)에서 달려오는 중국 군사 30여 명이 왜인의 수급(首級) 20여 급을 베어 가지고와서 중국 장수에게 바쳤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 구례 현감 이원춘(李元春)의 치보에 ‘진주(晉州)의 적이 본현(本縣)을 침입하여 여염과 관사(官舍)를 분탕질하고 화곡(禾穀)을 베어 가지고는 즉시 돌아갔다. 그러나 인물(人物)이 흩어지고 더러는 왜인의 포로가 되어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포로가 되었다가 도환(逃還)한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진주에서 승전 했으면 속히 돌아오라는 문서가 일본에서 왔기 때문에 왜적들이 동래(東萊)로 향하고 있다. 」고 하였다.’ 하였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41권 6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59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사법-치안(治安)
○全羅道觀察使李廷馣馳啓曰: "七月十二日, 兵使宣居怡馳報: ‘前後下來天將, 駱參將、宋遊擊、査總兵、李都督、高遊擊、吳指揮、呂相公, 及本月初十日, 自嶺南來到, 李總兵、祖總兵、葛遊擊、谷遊擊、張遊擊、方都司、李參將等十四員, 皆入南原城中。 兵使及巡邊使, 同力守城, 兵使隨天將, 當日發行。 我國亂民, 假作倭形, 乘虛作賊, 故行會列邑, 使之鎭定。 駱參將、宋遊擊、吳指揮、呂相公等, 率軍追後行軍。 査總兵發自南原, 五里許行軍時, 自求禮, 天兵三十餘人馳來, 斬倭二十餘級, 持納于天將。’ 前求禮縣監李元春馳報曰: ‘晋州之賊, 犯本縣, 焚蕩閭閻、官舍, 刈取禾穀, 還卽出去, 而人物潰散, 或被擄掠, 時未還集。 被擄逃還人來言, 「日本出來文書, 晋州戰勝, 則斯速入來, 故倭賊等, 指向東萊」 云。’"
- 【태백산사고본】 23책 41권 6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59면
- 【분류】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 / 외교-명(明) / 사법-치안(治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