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선조실록36권, 선조 26년 3월 20일 을해 1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이증·홍성민 등이 평양에서 돌아와 중국군의 진병에 대해 아뢰다

아천군(鵝川君) 이증(李增)평양에서 돌아와 아뢰기를,

"신이 가지고 간 게첩(揭帖)을 역관(譯官) 한윤보(韓潤輔)를 시켜 올리면서 ‘국왕께서 뜻밖에 노야가 사실 아닌 지탄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움을 견디지 못하여 위문에 바쁜 나머지 먼저 게첩을 보내셨다. 주본은 초고가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미처 갖고 오지 못하였으나 곧 뒤따라 보낼 것이다.’ 하니, 제독이 답하기를 ‘주본을 받아보고 회보하겠다.’ 하였으며, 선전관 조인(趙認)이 가지고 온 주본이 도착되자 제독이 다 보고나서 ‘매우 좋다.’ 하고, 곧바로 종제(從弟) 이여오(李如梧)를 시켜 정 동지(鄭同知)064)조 지현(趙知縣)065) 에게 가져다 보였는데, 그 두 사람도 가작이라고 하였습니다. 제독이 ‘이번 이 주본은 조정에 올리겠다.’ 하고 나서 정·조 두 사람 및 아우 여매와 함께 앉아서 역관을 불러 말하기를 ‘너희 국왕이 나를 이렇게 공경하니 비록 시랑(侍郞)066) 의 명문(明文)이 없다 하더라도 모레에는 마땅히 진병할 것이다. 이 뜻을 한 배신(韓陪臣)067) 에게 말하여 국왕께 아뢰어 알리라.’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왜적를 돌려보내고 영파(寧波)의 옛길을 경유하여 진공(進貢)하기를 청한다면 너희 나라가 몇 년은 무사함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니, 그 사이에 갑병(甲兵)을 수련시켜 방어에 대비한다면 어찌 좋은 계책이 아니겠는가. 만약 왕자를 돌려보내지 않고 행여 이 길을 경유하여 진공하려고 한다면 나는 반드시 청정(淸正)을 죽이고야 말 것이다.’ 하므로, 신이 홍성민(洪聖民)·한응인 등과 함께 앞으로 진병의 일을 속히 결정하라고 제독에게 정문(呈文)하였습니다."

하였다. 익성군(益城君) 홍성민평양에서 돌아와 아뢰기를,

"제독 및 두 총병(摠兵)068) 에게 자문을 올렸더니, 제독이 ‘회자(回咨)를 보내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조금 있다가 송 시랑(宋侍郞)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바로 제독이 탄핵을 받은 내용이었습니다. 제독이 방안에서 친하고 미더운 장수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패문(牌文)을 꺼내 보이면서 ‘내일 의주로 돌아가겠다.’ 하므로, 신과 한응인·이원익(李元翼) 등이 하도 놀랍고 두려워서 민망하고 절박한 심정을 간곡히 진달하였더니, 제독이 패문을 도로 거두고 떠날 것을 곧 정지하였습니다. 이어서 신들을 마루 위에 오르게 하고서 탄핵받게 된 사유를 피력하는데, 개탄하는 뜻이 언사와 안색에 드러났었습니다. 신이 특히 진병을 청하니, 답하기를 ‘내가 계속 군사를 내어 동쪽으로 갈 것이다. 내 아우 여백(如栢)은 내일 당장 떠날 것이고 나는 유정(劉綎)의 군병이 강을 건너기를 기다려 곧 가서 왜적을 소탕하고 조선을 회복시킨 뒤에야 바야흐로 돌아갈 것이다.’ 하였으며, 자문을 올리던 날에는 제독이 미소를 지으며 ‘시랑이 오지 않았는데도 당신네 국왕이 나를 공경하고자 하던가?’ 하였는데, 이 말이 비록 농담이기는 하나 그 말뜻을 살펴보면 자신에게 경의를 다한 것을 기뻐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주 재신을 보내어 자문을 올려서 청하소서."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36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666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왕실-종친(宗親)

  • [註 064]
    정 동지(鄭同知) : 정문빈(鄭文彬).
  • [註 065]
    조 지현(趙知縣) : 조여매(趙汝梅).
  • [註 066]
    시랑(侍郞) : 경략.
  • [註 067]
    한 배신(韓陪臣) : 한응인(韓應寅).
  • [註 068]
    두 총병(摠兵) : 사대수·장세작.

○乙亥/鵝川君 李增, 還自平壤, 啓曰: "臣齎奉揭帖, 令譯官韓潤輔進呈曰: ‘國王, 不意聞老爺被不情之彈, 不勝駭嘆, 急於慰問, 先送揭帖。 奏文, 則撰稿未完, 未及齎來, 隨當委送。’ 提督答曰: "當得見奏稿回報矣。’ 宣傳官趙訒, 齎奏稿來到, 提督覽訖曰: ‘甚好。’ 卽使從弟李如梧, 將示鄭同知趙知縣二人, 亦稱佳作。 提督曰: ‘今此奏文, 趁奏朝廷。’ 云。 提督, 與二公及弟如梅同坐, 招譯官曰: ‘爾國王敬我, 雖無侍郞明文, 明明當進兵。 此意說與韓陪臣, 啓知國王。’ 且曰: ‘賊送還王子, 請由寧波舊路進貢, 則爾國可保數年無事, 其間修鍊甲兵, 以爲備禦, 則豈非善策? 若不還王子, 或要由此路進貢, 則我當必殺淸正而後已。’ 云。 臣與洪聖民韓應寅等, 將速決進兵之事, 呈文于提督矣。" 益城君 洪聖民, 還自平壤啓曰: ‘提督, 兩摠兵前呈咨文, 提督以爲, 當回咨以送。 俄而有札自宋侍郞處來, 乃提督被彈事也。 提督在房內, 與親信將佐涕泣, 卽出牌文曰: ‘明日, 當回義州。’ 臣與韓應寅李元翼等驚懼, 懇達悶迫之情, 提督還收牌文, 卽停行。 仍進臣等於堂上, 歷陳被彈之由, 慨嘆之意, 見於言色。 臣特以進兵爲請, 則答曰: ‘吾當陸續發兵而東。 吾弟如栢, 明當發去, 則待劉綎兵越江, 卽起程, 蕩滅賊, 恢復朝鮮而後, 方可回去也。’ 當咨文進呈之日, 提督微笑曰: ‘侍郞不來, 爾國王欲敬我耶?’ 此雖戲言, 觀其語意, 以致敬爲喜。 頻遣宰臣, 呈咨以請。"


  • 【태백산사고본】 19책 36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666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