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제독이 평양 싸움에서 조선 사람을 베어 수급을 바쳤다는 일을 해명하다
중국의 이과 급사(吏科給事) 양정란(楊廷蘭)이 상소하여 이 제독이 평양의 싸움에서 조선 사람을 잡아다 베어 수급을 바친 일을 논하자, 이 제독이 글을 올려 스스로 해명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이 조선에 주둔하며 군사와 말을 휴양하여 기회를 보아 진격하여 왕경을 수복하려고 하는데, 문득 저보(邸報)를 보니, 이과 급사 양정란의 주본에 ‘평양의 승첩에서 왜노가 우리에게 유인되어 목을 벤 것이 1천여 명이었는데 반은 조선 사람이고, 불에 타고 물에 빠진 자가 1만여 명이었는데 모두 조선 사람이었다.’ 하고, 또 ‘벽제의 싸움에서 군사와 말이 과반이나 죽었는데도 겨우 십분의 일로 보고하였으니, 이는 다 경략과 서로 공모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은 다 읽기도 전에 마치 가시 방석에 앉은 것 같았으며, 장사들도 몰래 엿듣고 사기를 잃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저 상벌은 조정에 있고 이목은 조선에 있으며, 공론은 천하 후세에 있습니다. 신으로서는 오직 석고 대죄(席藁待罪)할 뿐 어찌 감히 말을 하겠습니다. 하지만 기망한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이므로 입다물고 묵묵히 있을 수 없습니다.
신이 지난해에 명을 받들고 서쪽으로 영하(寧夏)를 정벌하러 갔을 적에 더위와 습기가 번갈아 침노하여 일이 이루어진 뒤에 차츰 병이 생기므로 서쪽을 평정하고 개선하면 문을 닫고 사람을 사절하여 입에 군사의 말을 담지 않고 오직 태평 성대의 일개 산신(散臣)이 되면 족하겠다고 생각하였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왜보(倭報)가 급히 닥쳐 도문(都門)에 들어오기도 전에 갑자기 동쪽을 정벌하라는 명이 내려졌으므로 세 번이나 간곡히 사양하여도 윤허받지 못하였습니다. 본 병부(兵部) 석 상서(石尙書)가 여려 차례 대의로써 신을 책망하고 신의 아비 또한 여러 차례 나라에 보답하라고 신을 북돋았습니다. 신이 이 때문에 병을 무릅쓰고 명을 받들며 스스로 판단하기를, 적이 평정되면 황제를 뵈올 기약이 있고 적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조정으로 돌아갈 날을 기약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요양(遼陽)에 이르자 왜보는 더욱 극렬하고 인심은 더욱 뒤숭숭하여 싸움을 말하는 자도 있고 강화를 말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오직 경략만은, 왜노가 참람되게 천정(天正)이라는 연호를 쓰고 조선을 함몰하여 중국을 엿보고 있으니 큰 돼지나 뱀 같은 자들이어서 만약 싸우지 않고 강화한다면 끝내 그들의 마음을 복종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굳센 의논이 바로 신의 의견과 합치되었습니다. 길을 떠날 적에 신 등에게 당부하기를 ‘예전에 조빈(曹彬)이 강남(江南)을 항복받을 때 한 사람도 함부로 죽이지 않아서 만고에 일컬어졌다.’ 하고, 다시 고시문 수백 장을 발부하였는데, 그 가운데 많은 내용이 있었으나 오직 조선의 인민을 죽이거나 조선의 부녀자를 간음하는 자는 반드시 용서없이 목을 베라는 것이었습니다. 신은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피를 마셔 군사들에게 맹서하고서 오직 명을 받들기에 근실하자 조선의 국왕은 향을 피워 하늘에 빌고 나서 자문을 띄워 신에게 사례하고 조선의 신민들은 모두 길에 나와 향을 피워 하늘에 빌고 나서 조아리며 사례하였습니다. 가령 신이 그들의 자제를 죽이고 그들의 부형을 죽였다면 그들은 관백과 똑같은 원수로 볼 것인데 선뜻 신에게 감사하려 하였겠습니까.
예전에 악양(樂羊)이 중산(中山)을 칠 적에 비방의 글이 상자에 가득하였고, 마원(馬援)이 교지(交趾)를 평정할 적에는 참소하는 자가 발길을 이었었습니다. 예전의 명장도 그러했으니 어찌 유독 미련하고 어리석은 신만 그러한 것이겠습니까. 말이 여기에 이르고 보니, 이것이 어찌 하늘이 중국을 안정시키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몰래 왜노를 돕고 조선을 부흥시키지 않으려는 것인가 봅니다. 이것이 바로 신이 가슴을 치고 통탄하며 군부(君父)의 앞에 자세히 밝히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지금 신은 화독을 입어 후끈거리는 데다 지난날의 병이 악화되어 의원이 치료를 하지 못하며 수염과 머리는 온통 세었는데, 이에 또 이러한 진퇴 유곡의 때를 만났으니 밤낮으로 마음이 두근거려 참으로 끝내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황상께서는 강적이 앞에 있고 대병이 밖에 있어 병든 신하가 지탱하기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시어 별도로 훌륭한 장수를 가려 대체시키소서. 그리하여 신이 쟁기를 잡고 밭을 갈며 태평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하신다면 뒷날의 여생은 황상께서 재생시켜주신 은덕이겠습니다. 신은 간절하고 엄숙하게 명을 기다릴 뿐입니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36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664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天朝吏科給事楊廷蘭, 疏論李提督 平壤之戰, 擒斬朝鮮人, 以獻首級事, 李提督上書自訟, 其辭曰:
臣駐兵朝鮮. 休養士馬, 方欲乘時進取, 克復王京, 忽接邸報, 見吏科給事楊廷蘭一本內開: "平壤之捷. 倭奴嘗我誘我, 斬級千餘, 半朝鮮之人, 焚溺萬餘, 盡朝鮮之民。" 又謂: "碧蹄之戰, 士馬物故過半, 而報者僅什之一, 皆與經略, 互相扶同。" 臣伏讀未終, 如坐針氈, 將士竊聽, 靡不喪氣。 夫賞罰在朝廷, 耳目在朝鮮, 公論在天下後世。 臣惟席藁待罪, 奚敢置喙? 但欺罔, 罪在不赦, 有不容緘口默默。 臣往歲, 奉璽西征寧夏, 暑濕交侵, 事襄之後, 漸致成痾, 意欲平西凱還, 杜門謝客, 口不言兵, 惟求爲聖世一散臣足矣。 不期倭報孔棘, 未入都門, 而遽有東征之命。 三疏懇辭, 未蒙兪允。 本兵石尙書, 屢以大義責臣, 臣父又屢以報國勖臣。 臣是以力疾受命, 自分賊平, 則朝天有期, 賊在則歸朝無日。 迨到遼陽, 倭報益劇, 人心益恐, 有言戰者, 有言和者。 惟經略謂倭奴僭稱天正年號, 陷沒朝鮮, 睥睨中夏, 蓋封豕長蛇也, 若不戰而和, 恐終無以服其心, 議論侃侃, 適與臣合。 及啓行, 面諭臣等曰: "昔曹彬下江南, 不妄殺一人, 千古稱之。" 復發告示數百張, 其言不一而足, 惟妄殺朝鮮人民及姦淫朝鮮婦女者, 必斬無貰。 臣率諸將, 歃血誓衆, 奉令惟勤, 朝鮮國王, 焚香祝天, 而移咨謝臣, 朝鮮人臣, 焚香滿道, 而叩首謝臣。 假使臣殺其子弟, 戮其父兄, 彼將以仇關白其仇之矣, 尙肯感臣而謝耶? 昔樂羊伐中山, 謗書盈篋, 馬援平交趾, 讒者接踵。 古之名將且然, 何獨頑鈍稚魯如臣耶? 興言及此, 豈天之未欲奠安中土耶? 抑或陰佑倭奴, 而不欲興復朝鮮耶? 此臣所以拊膺長痛, 而不得不嘵嘵于君父之前也。 目今臣被火毒沖薰, 前疾轉劇, 醫不奏功, 鬚髮頓白, 玆又値此進退惟谷之時, 夙夜怔營, 誠不知所終矣。 伏望皇上, 慮勁敵在前, 大兵在外, 病臣難支, 別選良將代臣。 臣得秉耒而耕, 歌詠太平, 則他日生還之年, 皆皇上再造之恩也。 臣無任隕越, 待命之至。"
- 【태백산사고본】 19책 36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664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