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35권, 선조 26년 2월 16일 신축 14/14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함경 평사 정문부가 길주성 전투에 대해 치계하다
국역
함경도 평사(咸鏡道評事) 정문부(鄭文孚)가 치계하였다.
"길주(吉州)에 머무르고 있는 적은 한 번 패한 뒤에는 견고한 성안에 들어가서 머리를 움츠리고 나오지 않습니다. 종성 부사(鍾城府使) 정현룡(鄭見龍), 경원 부사(慶源府使) 오응태(吳應台), 고령 첨사(高嶺僉使) 유경천(柳擎天)은 각자가 거느린 소속 도합 3천여 명을 거느리고 두 차례 성을 포위하고 종일토록 접전했는데 왜적 4백여 명이 성머리에 벌여 서서 죽기로써 방어하니 철환과 화살과 피아간 다같이 다쳐 형세가 쉽사리 함락시키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성밖 수백 보쯤 되는 곳 4∼5개 처에 군사를 나누어 매복하고 밤낮으로 망을 보다가 적이 나오면 토벌하여 잡았습니다. 3위장(衛將)들은 군사를 영동(嶺東)으로 이동하여 먼저 성책(城柵)에 있는 적을 섬멸하고 다음에 성안의 도적을 토벌하려고 했습니다. 마침 군사를 이동하던 날 영동의 왜적 2백여 명이 나와 바닷가의 민가에 불을 지르고 약탈을 했습니다. 좌위장(左衛將) 유경천이 복병장(伏兵將) 길주 토병(吉州土兵) 김국신(金國信)을 뽑아 보내 먼저 접전케 하는 한편, 대군에게 치보하여 3위가 일시에 내달아 돌격하였습니다. 그 가운데서 육진(六鎭)의 정병이 선병이 되어 접전하니 왜적이 패하여 달아났습니다. 3위가 쏘아 죽인 자 및 성중의 적으로 출몰시 잡아 죽인 것이 도합 1백여 급 된다고 합니다."
원문
선조 26년 (1593) 2월 16일
- 유몽인·남이공·황낙·신영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영의정 최흥원이 중국 장수가 동궁을 배알하기를 청하자 의논하라고 아뢰다
- 예조에서 중국 장수가 동궁을 배알할 때의 예를 상정했다고 승지 홍진이 아뢰다
- 최흥원이 동궁은 아직 중국의 책명을 받지 못하여 만날 수 없다고 답하라고 아뢰다
- 정원이 죄인 김덕회·김응관 등과 장물을 압송해 왔다고 아뢰다
- 위관이 적에게 심복 노릇을 한 김덕회 등을 형추하기를 청하다
- 사간원이 군량의 운반에 백관에 딸린 배종인도 동원하라고 청하다
- 비변사가 대신으로 하여금 중국군의 전진을 간청하게 하자고 청하다
- 비변사의 계사에 따라 호조가 올린 납속 사목
- 영의정 최흥원이 대가가 전진한 뒤 삼궁도 양곡이 비축된 삼현에 옮기라고 청하다
- 접반사 윤근수가 중국군의 진퇴 상황을 아뢰다
- 영남좌도 절도사 박진이 왜적을 베어 행재소에 보내오다
- 정희번이 임반에서 송 시랑이 북쪽의 왜적을 제거하고 전진하겠다고 했다고 아뢰다
- 함경 평사 정문부가 길주성 전투에 대해 치계하다
선조실록35권, 선조 26년 2월 16일 신축 14/14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함경 평사 정문부가 길주성 전투에 대해 치계하다
국역
함경도 평사(咸鏡道評事) 정문부(鄭文孚)가 치계하였다.
"길주(吉州)에 머무르고 있는 적은 한 번 패한 뒤에는 견고한 성안에 들어가서 머리를 움츠리고 나오지 않습니다. 종성 부사(鍾城府使) 정현룡(鄭見龍), 경원 부사(慶源府使) 오응태(吳應台), 고령 첨사(高嶺僉使) 유경천(柳擎天)은 각자가 거느린 소속 도합 3천여 명을 거느리고 두 차례 성을 포위하고 종일토록 접전했는데 왜적 4백여 명이 성머리에 벌여 서서 죽기로써 방어하니 철환과 화살과 피아간 다같이 다쳐 형세가 쉽사리 함락시키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성밖 수백 보쯤 되는 곳 4∼5개 처에 군사를 나누어 매복하고 밤낮으로 망을 보다가 적이 나오면 토벌하여 잡았습니다. 3위장(衛將)들은 군사를 영동(嶺東)으로 이동하여 먼저 성책(城柵)에 있는 적을 섬멸하고 다음에 성안의 도적을 토벌하려고 했습니다. 마침 군사를 이동하던 날 영동의 왜적 2백여 명이 나와 바닷가의 민가에 불을 지르고 약탈을 했습니다. 좌위장(左衛將) 유경천이 복병장(伏兵將) 길주 토병(吉州土兵) 김국신(金國信)을 뽑아 보내 먼저 접전케 하는 한편, 대군에게 치보하여 3위가 일시에 내달아 돌격하였습니다. 그 가운데서 육진(六鎭)의 정병이 선병이 되어 접전하니 왜적이 패하여 달아났습니다. 3위가 쏘아 죽인 자 및 성중의 적으로 출몰시 잡아 죽인 것이 도합 1백여 급 된다고 합니다."
원문
원본
선조 26년 (1593) 2월 16일
- 유몽인·남이공·황낙·신영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영의정 최흥원이 중국 장수가 동궁을 배알하기를 청하자 의논하라고 아뢰다
- 예조에서 중국 장수가 동궁을 배알할 때의 예를 상정했다고 승지 홍진이 아뢰다
- 최흥원이 동궁은 아직 중국의 책명을 받지 못하여 만날 수 없다고 답하라고 아뢰다
- 정원이 죄인 김덕회·김응관 등과 장물을 압송해 왔다고 아뢰다
- 위관이 적에게 심복 노릇을 한 김덕회 등을 형추하기를 청하다
- 사간원이 군량의 운반에 백관에 딸린 배종인도 동원하라고 청하다
- 비변사가 대신으로 하여금 중국군의 전진을 간청하게 하자고 청하다
- 비변사의 계사에 따라 호조가 올린 납속 사목
- 영의정 최흥원이 대가가 전진한 뒤 삼궁도 양곡이 비축된 삼현에 옮기라고 청하다
- 접반사 윤근수가 중국군의 진퇴 상황을 아뢰다
- 영남좌도 절도사 박진이 왜적을 베어 행재소에 보내오다
- 정희번이 임반에서 송 시랑이 북쪽의 왜적을 제거하고 전진하겠다고 했다고 아뢰다
- 함경 평사 정문부가 길주성 전투에 대해 치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