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 평사 정문부가 길주성 전투에 대해 치계하다
함경도 평사(咸鏡道評事) 정문부(鄭文孚)가 치계하였다.
"길주(吉州)에 머무르고 있는 적은 한 번 패한 뒤에는 견고한 성안에 들어가서 머리를 움츠리고 나오지 않습니다. 종성 부사(鍾城府使) 정현룡(鄭見龍), 경원 부사(慶源府使) 오응태(吳應台), 고령 첨사(高嶺僉使) 유경천(柳擎天)은 각자가 거느린 소속 도합 3천여 명을 거느리고 두 차례 성을 포위하고 종일토록 접전했는데 왜적 4백여 명이 성머리에 벌여 서서 죽기로써 방어하니 철환과 화살과 피아간 다같이 다쳐 형세가 쉽사리 함락시키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성밖 수백 보쯤 되는 곳 4∼5개 처에 군사를 나누어 매복하고 밤낮으로 망을 보다가 적이 나오면 토벌하여 잡았습니다. 3위장(衛將)들은 군사를 영동(嶺東)으로 이동하여 먼저 성책(城柵)에 있는 적을 섬멸하고 다음에 성안의 도적을 토벌하려고 했습니다. 마침 군사를 이동하던 날 영동의 왜적 2백여 명이 나와 바닷가의 민가에 불을 지르고 약탈을 했습니다. 좌위장(左衛將) 유경천이 복병장(伏兵將) 길주 토병(吉州土兵) 김국신(金國信)을 뽑아 보내 먼저 접전케 하는 한편, 대군에게 치보하여 3위가 일시에 내달아 돌격하였습니다. 그 가운데서 육진(六鎭)의 정병이 선병이 되어 접전하니 왜적이 패하여 달아났습니다. 3위가 쏘아 죽인 자 및 성중의 적으로 출몰시 잡아 죽인 것이 도합 1백여 급 된다고 합니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35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634면
- 【분류】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咸鏡評事鄭文孚馳啓曰: ‘吉州留賊, 一敗之後, 入據堅城, 縮頭不出。 鍾城府使鄭見龍, 慶源府使吳應台, 高嶺僉使柳擎天, 各率所部合兵三千餘, 再度圍城, 終日接戰, 而倭賊四百餘名, 列立城頭, 抵死防備, 鐵丸射矢, 彼我俱傷, 勢難卒拔。 故分兵設伏, 城外數百步許四五處, 晝夜伺候, 出則勦捕。 三衛將欲移兵嶺東, 先滅柵城之賊, 次及城中之寇。 適因移兵之日, 嶺東倭賊二百餘名, 出來臨溟村舍, 焚掠之際。 左衛將柳擎天定送伏兵將吉州土兵金國信爲先接戰, 一邊馳報大軍三衛一時馳突。 其中六鎭精兵, 爲先接刃, 倭賊敗奔。 三衛射斬及城中留賊出沒時捕斬, 合百餘級。’ 云。"
- 【태백산사고본】 18책 35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634면
- 【분류】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