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35권, 선조 26년 2월 16일 신축 9/14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비변사의 계사에 따라 호조가 올린 납속 사목
국역
호조가 비변사의 계사에 따라 아뢴 납속 사목(納粟事目)은 다음과 같다.
"향리의 경우, 3석(石)이면 3년간 역을 면제하고 14년에 이르도록 매석마다 1년씩 더하여 15석이 되면 당사자는 역이 면제되고, 30석이면 향리의 역을 면제하여 참하(參下)의 영직(影職)을 제수하고, 40석이면 그의 자식 두 명까지 역을 면하여 참하의 영직을 제수하고, 45석이면 상당한 군직(軍職)을 주고, 80석이면 동반의 실직(實職)을 제수한다. 사족(士族)인 경우, 3석이면 참하의 영직을 주고, 8석이면 6품 영직, 20석이면 동반 9품, 25석이면 동반 8품, 30석이면 동반 7품, 40석이면 동반 6품, 50석이면 동반 5품, 60석이면 동반 종4품, 80석이면 동반 정4품, 90석이면 동반 종3품, 1백 석이면 동반 정3품을 주고 원래 관직이 있는 자는 10석마다 품계를 올리며 자궁(資窮)인 자는 30석이면 당상관으로 올린다. 서얼(庶孽)인 경우, 5석이면 겸사복(兼司僕)·우림위(羽林衛) 혹은 서반 군직(西班軍職)의 6품을 주고, 15석이면 허통(許通)034) 하고, 20석이면 이전에 난 자식까지 허통하고, 30석이면 참하의 영직을 제수하고, 40석이면 6품 영직, 50석이면 5품 영직, 60석이면 동반 9품, 80석이면 동반 8품, 90석이면 동반 7품, 1백 석이면 동반 6품을 제수한다."
- [註 034] 허통(許通) : 서얼의 차별을 없앰.
원문
〔○〕 戶曹因備邊司啓辭, 以納粟事目啓曰: "鄕吏則三石, 三年免役, 至十四年, 逐石次次加一年, 十五石, 已身免役, 三十石免鄕, 授參下影職, 四十石, 幷其二子免役, 參下影職, 四十五石, 相當軍職, 八十石, 東班實職。 士族, 則三石, 參下影職, 八石, 六品影職, 二十石, 東班九品, 二十五石, 東班八品, 三十石, 東班七品, 四十石, 東班六品, 五十石, 東班五品, 六十石, 東班從四品, 八十石, 東班正四品, 九十石, 東班從三品, 百石, 東班正三品, 元有職者, 每十石陞品, 資窮者, 三十石, 陞堂上。 庶孽, 則五石, 兼司僕羽林衛, 或西班軍職六品, 十五石許通, 二十石, 幷前所生, 三十石, 參下影職, 四十石, 六品影職, 五十石, 五品影職, 六十石, 東班九品, 八十石, 東班八品, 九十石, 東班七品, 百石, 東班六品。"
선조 26년 (1593) 2월 16일
- 유몽인·남이공·황낙·신영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영의정 최흥원이 중국 장수가 동궁을 배알하기를 청하자 의논하라고 아뢰다
- 예조에서 중국 장수가 동궁을 배알할 때의 예를 상정했다고 승지 홍진이 아뢰다
- 최흥원이 동궁은 아직 중국의 책명을 받지 못하여 만날 수 없다고 답하라고 아뢰다
- 정원이 죄인 김덕회·김응관 등과 장물을 압송해 왔다고 아뢰다
- 위관이 적에게 심복 노릇을 한 김덕회 등을 형추하기를 청하다
- 사간원이 군량의 운반에 백관에 딸린 배종인도 동원하라고 청하다
- 비변사가 대신으로 하여금 중국군의 전진을 간청하게 하자고 청하다
- 비변사의 계사에 따라 호조가 올린 납속 사목
- 영의정 최흥원이 대가가 전진한 뒤 삼궁도 양곡이 비축된 삼현에 옮기라고 청하다
- 접반사 윤근수가 중국군의 진퇴 상황을 아뢰다
- 영남좌도 절도사 박진이 왜적을 베어 행재소에 보내오다
- 정희번이 임반에서 송 시랑이 북쪽의 왜적을 제거하고 전진하겠다고 했다고 아뢰다
- 함경 평사 정문부가 길주성 전투에 대해 치계하다
선조실록35권, 선조 26년 2월 16일 신축 9/14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비변사의 계사에 따라 호조가 올린 납속 사목
국역
호조가 비변사의 계사에 따라 아뢴 납속 사목(納粟事目)은 다음과 같다.
"향리의 경우, 3석(石)이면 3년간 역을 면제하고 14년에 이르도록 매석마다 1년씩 더하여 15석이 되면 당사자는 역이 면제되고, 30석이면 향리의 역을 면제하여 참하(參下)의 영직(影職)을 제수하고, 40석이면 그의 자식 두 명까지 역을 면하여 참하의 영직을 제수하고, 45석이면 상당한 군직(軍職)을 주고, 80석이면 동반의 실직(實職)을 제수한다. 사족(士族)인 경우, 3석이면 참하의 영직을 주고, 8석이면 6품 영직, 20석이면 동반 9품, 25석이면 동반 8품, 30석이면 동반 7품, 40석이면 동반 6품, 50석이면 동반 5품, 60석이면 동반 종4품, 80석이면 동반 정4품, 90석이면 동반 종3품, 1백 석이면 동반 정3품을 주고 원래 관직이 있는 자는 10석마다 품계를 올리며 자궁(資窮)인 자는 30석이면 당상관으로 올린다. 서얼(庶孽)인 경우, 5석이면 겸사복(兼司僕)·우림위(羽林衛) 혹은 서반 군직(西班軍職)의 6품을 주고, 15석이면 허통(許通)034) 하고, 20석이면 이전에 난 자식까지 허통하고, 30석이면 참하의 영직을 제수하고, 40석이면 6품 영직, 50석이면 5품 영직, 60석이면 동반 9품, 80석이면 동반 8품, 90석이면 동반 7품, 1백 석이면 동반 6품을 제수한다."
- [註 034] 허통(許通) : 서얼의 차별을 없앰.
원문
〔○〕 戶曹因備邊司啓辭, 以納粟事目啓曰: "鄕吏則三石, 三年免役, 至十四年, 逐石次次加一年, 十五石, 已身免役, 三十石免鄕, 授參下影職, 四十石, 幷其二子免役, 參下影職, 四十五石, 相當軍職, 八十石, 東班實職。 士族, 則三石, 參下影職, 八石, 六品影職, 二十石, 東班九品, 二十五石, 東班八品, 三十石, 東班七品, 四十石, 東班六品, 五十石, 東班五品, 六十石, 東班從四品, 八十石, 東班正四品, 九十石, 東班從三品, 百石, 東班正三品, 元有職者, 每十石陞品, 資窮者, 三十石, 陞堂上。 庶孽, 則五石, 兼司僕羽林衛, 或西班軍職六品, 十五石許通, 二十石, 幷前所生, 三十石, 參下影職, 四十石, 六品影職, 五十石, 五品影職, 六十石, 東班九品, 八十石, 東班八品, 九十石, 東班七品, 百石, 東班六品。"
원본
선조 26년 (1593) 2월 16일
- 유몽인·남이공·황낙·신영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영의정 최흥원이 중국 장수가 동궁을 배알하기를 청하자 의논하라고 아뢰다
- 예조에서 중국 장수가 동궁을 배알할 때의 예를 상정했다고 승지 홍진이 아뢰다
- 최흥원이 동궁은 아직 중국의 책명을 받지 못하여 만날 수 없다고 답하라고 아뢰다
- 정원이 죄인 김덕회·김응관 등과 장물을 압송해 왔다고 아뢰다
- 위관이 적에게 심복 노릇을 한 김덕회 등을 형추하기를 청하다
- 사간원이 군량의 운반에 백관에 딸린 배종인도 동원하라고 청하다
- 비변사가 대신으로 하여금 중국군의 전진을 간청하게 하자고 청하다
- 비변사의 계사에 따라 호조가 올린 납속 사목
- 영의정 최흥원이 대가가 전진한 뒤 삼궁도 양곡이 비축된 삼현에 옮기라고 청하다
- 접반사 윤근수가 중국군의 진퇴 상황을 아뢰다
- 영남좌도 절도사 박진이 왜적을 베어 행재소에 보내오다
- 정희번이 임반에서 송 시랑이 북쪽의 왜적을 제거하고 전진하겠다고 했다고 아뢰다
- 함경 평사 정문부가 길주성 전투에 대해 치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