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34권, 선조 26년 1월 29일 갑신 9/12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백성을 구제하고 경작하게 할 방법을 강구하게 하자 호조가 회계하다
국역
상이 이르기를,
"병란에 혈육을 잃은 나머지 겨우 살아남은 백성들이 장차 스스로 살아날 길이 없어 떠돌아다니며 주리고 곤고한 것이 팔도가 똑같이 그러하지만 경기·경상·함경 등의 도가 탕진한 것이 더욱 심하다. 이제 1월이 거의 다 지나가 농사일이 이미 닥쳤는데 지금 조처하지 않으면 농사일의 시기를 놓칠 뿐만 아니라, 생존한 백성들이 모두 아사하여 나라의 근본이 먼저 시들 것이다. 그런데도 널리 구제할 계책이 없으니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참으로 한심스럽다. 진휼하며 구제하고 갈며 씨뿌리는 등의 일을 가지고 상세하게 모두 강구하여 따로 사목(事目)을 만들어 팔도에 행이(行移)하여 급속히 거행하도록 하라."
하니, 호조가 회계하기를,
"전일 본조에서 양호(兩湖)의 쌀과 콩과 겉벼와 보리를 넉넉하게 배로 운반하여 오도록 계청한 것은 바로 굶주린 사람을 진휼하고 곡식을 파종할 밑천으로 삼으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양호의 곡식으로 기전(畿甸)의 백성들은 구제할 수 있으나, 함경도는 수로나 육로 모두 아주 멀리 떨어져 수송하는 즈음에 백성들이 먼저 피폐하게 되어 형세가 미칠 수 없을 것이니 매우 민망스럽고 염려됩니다. 만일 부득이하다면 강계의 미두(米豆) 각 2백 석과 서직피속(泰稷皮粟) 각 2백 석, 희천(熙川)의 미두 각 1백 50석과 서직피속 각 1백 석, 위원(渭原)의 미두 각 50석과 서직피속 각 50석, 이산(理山)의 미두 각 40석과 서직피속 40석, 벽동(碧潼)의 미두 각 50석과 서직피속 각 50석을 사람과 가축을 뽑아내어 함흥(咸興) 지역으로 수송하게 하고, 영변(寧邊)의 미두 각 30석과 서직피속 각 50석 및 덕천(德川)·개천(价川)의 미두 각 50석과 서직피속 각 60석을 정평(定平) 지역으로 수송하게 하며, 양덕(陽德)·맹산(孟山)의 미두 각 20석과 서직피속 각 30석, 성천(成川)의 미두 각 50석과 서직피속 각 40석, 삼등(三登)·강동(江東)의 미두 각 20석과 서직피속 각 30석을 덕원(德源)·문천(文川) 지역에 수송하게 하여, 정평과 문천에서 교부(交付)한 곡식을 함흥 이남에 나누어 지급하고, 함흥에서 교부한 곡식은 함흥 이북에다 나누어 지급하며, 전라도의 미두 각 6천 석, 겉벼 6천 석, 보리 4천 석을 경상도의 하동(河東) 등 지역에다 배로 운반하게 하고, 충청도의 미두 각 3백 석과 겉벼와 보리 각 2백 석을 편의에 따라 강원도 지역에 배로 운반하게 하여, 각도의 감사로 하여금 저축된 곡식이 있고 없음에 따라 파종과 진휼 두 가지를 알맞게 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 곡식을 운반하는 즈음에 만약 사목(事目)을 엄격하게 세워서 죄벌을 회피하기는 어렵다는 뜻을 보이지 않는다면 일을 간혹 심상히 처리할지도 모르니 각도의 감사에게 아울러 이문(移文)하게 하소서."
하였다.
원문
○上曰: "兵燹血肉之餘, 僅存之民, 將無以自活, 流離飢困, 八道同然, 而京畿、慶尙、咸鏡等道, 蕩敗尤甚。 卽今元月垂盡, 春事已迫, 若不及今揩處, 非徒農務失時, 孑遺生靈, 盡塡溝壑, 邦本先悴, 弘濟無策, 思之至此, 誠可寒心。 將賑救耕種等事, 詳盡講究, 別爲事目, 行移于八道, 急速擧行。" 戶曹回啓曰: "前日本曹, 以兩湖米豆租牟, 啓請優數船運而來者, 乃是欲作賑飢播穀之資也。 但兩湖之穀, 可以救畿甸之民, 而咸鏡道則水陸兩路, 俱爲絶遠, 諭運之際, 生民先瘁, 而勢不可及, 極爲悶慮。 如不得已, 江界米豆各二百石, 黍稷皮粟各二百石, 熙川米豆各一百五十石, 黍稷皮粟各一百石, 渭原米豆各五十石, 黍稷皮粟各五十石, 理山米豆各四十石, 黍稷皮粟各四十石, 碧潼米豆各五十石, 黍稷皮粟各五十石, 抄發人畜, 輸運於咸興地界, 寧邊米豆各三十石, 黍稷皮栗各五十石, 德川、价川米豆各五十石, 黍稷皮栗各六十石, 輸運於定平地界, 陽德、孟山米豆各二十石, 黍稷皮粟各三十石, 成川米豆各五十石, 黍稷皮粟各四十石, 三登、江東米豆各二十石, 黍稷皮粟各三十石, 輸運於德源、文川地界, 定平、文川交付之穀, 散給於咸興以南, 咸興交付之穀, 散給於咸興以北, 全羅道米豆各六千石, 租六千石, 牟四千石, 船運于慶尙道 河東等地界, 忠淸道米豆各三百石, 租牟各二百石, 隨便船運於江原道地界, 令各道監司, 隨其儲穀之有無, 播賑兩得其宜。 且運粟之際, 若不嚴立事目, 以示罪罰難逭之意, 則事或歸於尋常, 各道監司處, 竝移文。"
선조 26년 (1593) 1월 29일
- 양사와 옥당이 세자가 임시로 대리하라는 명령을 거두기를 청하다
- 영의정 최흥원이 백관을 거느리고 세자가 임시로 대리하라는 명을 거두기를 청하다
- 영의정 최흥원 등이 다시 아뢰자 왜적이 물러가면 선위하기로 약속하다
- 사헌부가 안주 목사 임발영의 체차를 청하다
- 명나라 군사와 왜적을 협공하고 수군은 해상에서 요격하라고 전교하다
- 송 시랑을 의주로 가서 맞이하는 일을 의논하라고 예조에 전교하다
- 비변사가 함경도의 왜적을 제어하도록 유성룡에게 하서하라고 청하다
- 비변사가 다친 명나라 군사를 내의를 보내 치료하게 하자고 청하다
- 백성을 구제하고 경작하게 할 방법을 강구하게 하자 호조가 회계하다
- 조릉사 이헌국 등이 봉심 조알하는 즈음의 예를 해조에게 강정케 하라고 청하다
- 비변사가 경성에 대신을 보내 종묘 사직을 봉심하고 부로를 위무하자고 청하다
- 도성을 안무하는 일을 맡을 대신을 의논하라고 전교하다
선조실록34권, 선조 26년 1월 29일 갑신 9/12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백성을 구제하고 경작하게 할 방법을 강구하게 하자 호조가 회계하다
국역
상이 이르기를,
"병란에 혈육을 잃은 나머지 겨우 살아남은 백성들이 장차 스스로 살아날 길이 없어 떠돌아다니며 주리고 곤고한 것이 팔도가 똑같이 그러하지만 경기·경상·함경 등의 도가 탕진한 것이 더욱 심하다. 이제 1월이 거의 다 지나가 농사일이 이미 닥쳤는데 지금 조처하지 않으면 농사일의 시기를 놓칠 뿐만 아니라, 생존한 백성들이 모두 아사하여 나라의 근본이 먼저 시들 것이다. 그런데도 널리 구제할 계책이 없으니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참으로 한심스럽다. 진휼하며 구제하고 갈며 씨뿌리는 등의 일을 가지고 상세하게 모두 강구하여 따로 사목(事目)을 만들어 팔도에 행이(行移)하여 급속히 거행하도록 하라."
하니, 호조가 회계하기를,
"전일 본조에서 양호(兩湖)의 쌀과 콩과 겉벼와 보리를 넉넉하게 배로 운반하여 오도록 계청한 것은 바로 굶주린 사람을 진휼하고 곡식을 파종할 밑천으로 삼으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양호의 곡식으로 기전(畿甸)의 백성들은 구제할 수 있으나, 함경도는 수로나 육로 모두 아주 멀리 떨어져 수송하는 즈음에 백성들이 먼저 피폐하게 되어 형세가 미칠 수 없을 것이니 매우 민망스럽고 염려됩니다. 만일 부득이하다면 강계의 미두(米豆) 각 2백 석과 서직피속(泰稷皮粟) 각 2백 석, 희천(熙川)의 미두 각 1백 50석과 서직피속 각 1백 석, 위원(渭原)의 미두 각 50석과 서직피속 각 50석, 이산(理山)의 미두 각 40석과 서직피속 40석, 벽동(碧潼)의 미두 각 50석과 서직피속 각 50석을 사람과 가축을 뽑아내어 함흥(咸興) 지역으로 수송하게 하고, 영변(寧邊)의 미두 각 30석과 서직피속 각 50석 및 덕천(德川)·개천(价川)의 미두 각 50석과 서직피속 각 60석을 정평(定平) 지역으로 수송하게 하며, 양덕(陽德)·맹산(孟山)의 미두 각 20석과 서직피속 각 30석, 성천(成川)의 미두 각 50석과 서직피속 각 40석, 삼등(三登)·강동(江東)의 미두 각 20석과 서직피속 각 30석을 덕원(德源)·문천(文川) 지역에 수송하게 하여, 정평과 문천에서 교부(交付)한 곡식을 함흥 이남에 나누어 지급하고, 함흥에서 교부한 곡식은 함흥 이북에다 나누어 지급하며, 전라도의 미두 각 6천 석, 겉벼 6천 석, 보리 4천 석을 경상도의 하동(河東) 등 지역에다 배로 운반하게 하고, 충청도의 미두 각 3백 석과 겉벼와 보리 각 2백 석을 편의에 따라 강원도 지역에 배로 운반하게 하여, 각도의 감사로 하여금 저축된 곡식이 있고 없음에 따라 파종과 진휼 두 가지를 알맞게 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 곡식을 운반하는 즈음에 만약 사목(事目)을 엄격하게 세워서 죄벌을 회피하기는 어렵다는 뜻을 보이지 않는다면 일을 간혹 심상히 처리할지도 모르니 각도의 감사에게 아울러 이문(移文)하게 하소서."
하였다.
원문
○上曰: "兵燹血肉之餘, 僅存之民, 將無以自活, 流離飢困, 八道同然, 而京畿、慶尙、咸鏡等道, 蕩敗尤甚。 卽今元月垂盡, 春事已迫, 若不及今揩處, 非徒農務失時, 孑遺生靈, 盡塡溝壑, 邦本先悴, 弘濟無策, 思之至此, 誠可寒心。 將賑救耕種等事, 詳盡講究, 別爲事目, 行移于八道, 急速擧行。" 戶曹回啓曰: "前日本曹, 以兩湖米豆租牟, 啓請優數船運而來者, 乃是欲作賑飢播穀之資也。 但兩湖之穀, 可以救畿甸之民, 而咸鏡道則水陸兩路, 俱爲絶遠, 諭運之際, 生民先瘁, 而勢不可及, 極爲悶慮。 如不得已, 江界米豆各二百石, 黍稷皮粟各二百石, 熙川米豆各一百五十石, 黍稷皮粟各一百石, 渭原米豆各五十石, 黍稷皮粟各五十石, 理山米豆各四十石, 黍稷皮粟各四十石, 碧潼米豆各五十石, 黍稷皮粟各五十石, 抄發人畜, 輸運於咸興地界, 寧邊米豆各三十石, 黍稷皮栗各五十石, 德川、价川米豆各五十石, 黍稷皮栗各六十石, 輸運於定平地界, 陽德、孟山米豆各二十石, 黍稷皮粟各三十石, 成川米豆各五十石, 黍稷皮粟各四十石, 三登、江東米豆各二十石, 黍稷皮粟各三十石, 輸運於德源、文川地界, 定平、文川交付之穀, 散給於咸興以南, 咸興交付之穀, 散給於咸興以北, 全羅道米豆各六千石, 租六千石, 牟四千石, 船運于慶尙道 河東等地界, 忠淸道米豆各三百石, 租牟各二百石, 隨便船運於江原道地界, 令各道監司, 隨其儲穀之有無, 播賑兩得其宜。 且運粟之際, 若不嚴立事目, 以示罪罰難逭之意, 則事或歸於尋常, 各道監司處, 竝移文。"
원본
선조 26년 (1593) 1월 29일
- 양사와 옥당이 세자가 임시로 대리하라는 명령을 거두기를 청하다
- 영의정 최흥원이 백관을 거느리고 세자가 임시로 대리하라는 명을 거두기를 청하다
- 영의정 최흥원 등이 다시 아뢰자 왜적이 물러가면 선위하기로 약속하다
- 사헌부가 안주 목사 임발영의 체차를 청하다
- 명나라 군사와 왜적을 협공하고 수군은 해상에서 요격하라고 전교하다
- 송 시랑을 의주로 가서 맞이하는 일을 의논하라고 예조에 전교하다
- 비변사가 함경도의 왜적을 제어하도록 유성룡에게 하서하라고 청하다
- 비변사가 다친 명나라 군사를 내의를 보내 치료하게 하자고 청하다
- 백성을 구제하고 경작하게 할 방법을 강구하게 하자 호조가 회계하다
- 조릉사 이헌국 등이 봉심 조알하는 즈음의 예를 해조에게 강정케 하라고 청하다
- 비변사가 경성에 대신을 보내 종묘 사직을 봉심하고 부로를 위무하자고 청하다
- 도성을 안무하는 일을 맡을 대신을 의논하라고 전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