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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32권, 선조 25년 11월 8일 갑자 3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좌의정 윤두수 등이 선위의 뜻을 거두기를 청하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 우찬성 최황(崔滉), 상산군(商山君) 박충간(朴忠侃), 공조 판서 한응인(韓應寅), 아천군(鵝川君) 이증(李增), 병조 판서 이항복(李恒福), 호조 판서 이성중(李誠中), 행 호조 참판(行戶曹參判) 윤우신(尹又新), 이조 판서 이산보(李山甫), 행 이조 참판 구사맹(具思孟), 형조 참판 이희득(李希得),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이노(李輅), 한성부 좌윤 정언지(鄭彦智), 공조 참판 박응복(朴應福), 병조 참판 민여경(閔汝慶), 예조 참판 이충원(李忠元), 병조 참의 유몽정(柳夢鼎)이 아뢰기를,

"신들은 모두 무상(無狀)한 자들로 국가가 패망하게 된 날을 당하여 충성을 다하고 직사(職事)를 다하여 수복할 계책을 돕지 못하고 성상께서 홀로 위에서 걱정하게만 하였으므로 항상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전일에 하교(下敎)를 받고는 머리를 모아 슬피 울며 누차 성청(聖聽)을 번거롭게 하였지만 성의가 부족하여 성상이 마음을 크게 돌리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러 또 이런 전교가 있게 되었으니 신들의 죄는 만번 죽어도 아까울 게 없습니다. 묘사(廟社)가 폐허가 된 지금이 어떤 때이며 구물(舊物)을 광복(光復)하는 일이 어떤 일입니까. 그런데도 한결같이 사양만 하시어 이미 모아진 인심을 다시 흩어지게 하고, 이룩된 국사(國事)를 또 무너뜨리십니까. 삼가 바라옵건대 성려(聖慮)를 굳게 정하시어 다시는 요동되지 말아 한편으로는 상하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중흥의 대업을 회복하시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전에 경도(京都)에 있을 때 옥당(玉堂)에 내린 비답에 인간사(人間事)에 뜻이 없다는 전교가 있었는데 경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물러나고자 하는 마음은 오늘에야 생긴 것이 아니고 벌써 오래 전부터인데 지금에 와서는 뜻을 잃고 마음을 잃고 집을 잃고 나라를 잃었으며, 마침내는 눈까지 잃어서 이미 어둡게 되고 말았다.

옛날 제(齊)나라에 맹인 재상 조정(祖珽)이 있었지만 어찌 맹인 임금이 있었는가. 거기다가 심질(心疾)이 날로 고질이 되어 불을 대하고도 춥다는 소리가 나오고 눈을 씹어도 오히려 열이 생긴다. 때로는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 달리며 혼미하여 동서를 구별하지 못해 좌우에서 모시는 자들이 모두 아연 실색을 하는데, 유독 경들만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병 가운데 한 가지만 있어도 백성들 위에 군림할 수가 없는 것인데 더군다나 몇 가지가 겸해 있고 허다한 죄악을 지은 자이겠는가. 내가 하루를 더 왕위에 있으면 백성들이 하루를 더 걱정하게 된다.

지금이 물러나기에 합당한 때이니 바라건대 경들은 불쌍하게 생각하여 속히 물러 나게 허락하라. 그러면 후일 지하에서 나라를 잃은 원통함은 마음에 비록 사라지지 않겠지만 물러나게 한 은혜로 반드시 눈을 감을 수 있게 될 것이니, 원컨대 경들은 더욱 불쌍하게 여겨 내 작은 뜻을 이루게 하라. 존호(尊號)에 대한 일은 전에도 전교가 있었지만 더욱 한번 웃을 거리도 되지 않는다. 당 덕종(唐德宗)의 고사(故事)161) 도 있으니 속히 없애는 것이 더욱 이치에 합당하다. 다시 회계(回啓)하지 말고 속히 시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32권 6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564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註 161]
    당 덕종(唐德宗)의 고사(故事) : 덕종은 대종(代宗)의 아들로 제9대 왕. 건중(建中) 원년(780) 1월에 연호를 고치고 군신들이 ‘성신 문무 황제(聖神文武皇帝)’란 존호(尊號)를 올렸다가 이희열(李希烈)·주자(朱泚)의 난이 일어나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흥원(興元) 원년(784) 1월에 전국에 사면령을 내리고 ‘성신 문무(聖神文武)’한 존호를 삭제하였다. 《당서(唐書)》 권7 덕종 본기(德宗本紀). 여기서는 선조 21년(1588) 3월에 이태조(李太祖)에 대한 잘못된 종계(宗系)가 중국에서 바로잡혀지고 새로 개정된 《대명회전(大明會典)》 전질을 보내오자 대신들이 선조에서 그 공을 돌려 존호를 올렸는데 선조가 그 존호를 삭제하자는 것임.

○左議政尹斗壽、右贊成崔滉商山君 朴忠侃、工曹判書韓應寅鵝川君 李增、兵曹判書李恒福、戶曹判書李誠中、行戶曹參判尹又新、吏曹判書李山甫、行吏曹參判具思孟、刑曹參判李希得、同知中樞府事李輅、漢城府左尹鄭彦智、工曹參判朴應福、兵曹參判閔汝慶、禮曹參判李忠元、兵曹參議柳夢鼎啓曰: "臣等俱以無狀, 當國家敗亡之日, 不能竭忠盡職, 仰裨收復之策, 徒使聖上獨憂於上, 心常惶慼, 不知所出。 前日伏承下敎, 聚首憫泣, 不得不累瀆聖聽, 只緣誠意淺薄, 未能大回聖心, 及至今日, 又有此敎, 臣等之罪, 萬死無惜。 廟社爲墟, 此何等時, 光復舊物, 此何等事。 而一向沖挹, 使人心已聚而還散, 國事垂成而又壞歟? 伏乞堅定睿慮, 勿復撓遷, 一以安上下之心, 一以恢中興之業, 不勝幸甚。" 上曰: "前在京都玉堂之批, 有無意人間之敎, 未審諸卿當能省得否? 欲退之心, 非自今日始, 所由來者有在矣, 至於今日喪志、喪心、喪家、喪國, 終至於喪明, 已成昏富, 昔齊有盲相祖珽, 寧復有盲君乎? 加以心疾日痼, 對火呼寒, 餐雪猶熟。 有時叫奔狂走, 迷莫知其東西, 左右侍者, 莫不愕然失色, 獨卿等未知耳。 有一于此, 皆不可以竊據民上, 況兼有之而有許多罪惡者乎? 在一日則, 貽一日臣民之憂。 今宜只合退謝, 惟望卿等, 倘可哀憐, 速卽許退。 則他日地下, 喪國之怨, 心雖未灰, 許退之惠, 目必得瞑矣, 願卿等更加憐許, 俾遂微志。 至於尊號一事, 前亦有敎, 尤不滿一哂。 有 德宗故事, 速可削減, 尤合事理。 不必更爲回啓, 只速施行。"


  • 【태백산사고본】 16책 32권 6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564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