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가 경상좌·우도의 전쟁 상황을 아뢰다
김수가 치계하였다.
"영덕 현령(盈德縣令) 안진(安璡)이 성을 지킨 상황을 보고하는 공문을 가지고 온 사람이 산길로 밤에만 걸어서 20일 만에 신의 처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좌도의 승패에 대하여 자세히 물어보니, 동해(東海) 일대 장기(長鬐) 이상으로 안동·청송·진보(眞寶)·봉화·예안(禮安)·영천(榮川)·예천·풍기(豐基) 이외의 언양(彦陽) 일로와 울산·경주·영천(永川)·신령(新寧)·의흥(義興)·의성·군위·비안(比安) 등도 이미 분탕되어 왜적들이 횡행하며 우마로 실어 나르는 짐바리가 도로에 끊이지 않고 있는데도 감사·병사·수사·방어사·조방장 등은 역시 간 곳을 알 수 없으며, 각처의 수령들도 모두 도망하여 숨었습니다. 우도는 거창·안음(安陰)·함양·산음(山陰)·단성(丹城)·하동·곤양(昆陽)·사천·진주 이외에는 모두 적의 침략을 겪었으며, 남해의 섬들은 비록 왜적의 난을 겪지는 않았으나 군량과 군기를 전라 좌수사(全羅左水使)가 【이 사실은 김성일의 서장 중에도 있다. 좌수사는 바로 이순신(李舜臣)이다. 】 먼저 스스로 불태워버려 이미 빈 성이 되었습니다. 성주(星州)의 적은 그 수가 많지 아니하여 조대곤(曺大坤)이 전력하여 잡았으며, 남쪽 변방을 침범한 왜적은 수사(水使) 원균(元均)이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서 힘을 합해 잡았습니다.
신은 비록 거느린 군졸은 없으나 의리상 차마 물러가 본도만 지킬 수는 없기에 군관과 수령 등 80여 명만을 거느리고 전라 감사(全羅監司) 이광(李洸)과 합세하여 함께 서울로 가기로 약속하고서, 달려 함양에 이르러 이광이 통보한 성교(聖敎)를 보니 ‘왜적이 경기 지역에 가득하므로 부득이 송도(松都)에 주차(駐箚)하여 사방을 호령하여 기어이 왜적들을 무찔러 섬멸하려고 하니 경은 경상우도에 비밀히 통보하여 급급히 경내의 군사를 총동원하여 와서 응원하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신은 삼가 성유(聖諭)를 읽고서 오장(五臟)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아 모르는 사이에 울음과 눈물이 함께 나왔습니다. 이달 18일에 곧장 전주에 이르러 지금 진위(振威)로 가고 있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27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507면
- 【분류】외교-왜(倭) / 군사(軍事)
○金睟馳啓曰: "盈德縣令安璡, 守城形止報狀持來人, 登山夜行, 二十日得到臣處。 詳問左道成敗, 則東海一帶, 長鬐以上安東、靑松、眞寶、奉化、禮安、榮川、醴泉、豐基外, 彦陽一路, 蔚山、慶州、永川、新寧、義興、義城、軍威、比安, 亦已焚蕩, 賊徒橫行, 牛輸馬載, 連絡道路, 監司、兵ㆍ水使、防禦使、助防將, 亦不知所去處, 各處守令, 擧皆逃竄。 右道則居昌、安陰、咸陽、山陰、丹城、河東、昆陽、泗川、晋州外, 其餘皆經賊鋒, 南海島, 則雖未經賊, 軍糧、軍器, 全羅左水使 【此事金誠一書狀中亦有。 左水使及李舜臣也。】 先自焚燒, 已爲空城。 星州之賊, 其數不多, 曹大坤專力措捕, 來犯南邊之賊, 水使元均率諸將, 合力措捕。 臣則雖無所率之軍, 義不忍退守本道, 只率軍官守令輩八十餘人, 約與全羅監司李洸合勢, 共向京師, 馳到咸陽, 伏見李洸所通聖敎, 有云: ‘倭奴充斥近畿, 不得已駐箚松都, 號令四方, 以期勦滅, 卿其密通于慶尙右道, 使之急急掃境來援。’ 臣伏讀聖諭, 五內焚裂, 不覺聲淚俱發。 本月十八日, 直到全州, 今向振威矣。"
- 【태백산사고본】 13책 27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507면
- 【분류】외교-왜(倭)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