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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27권, 선조 25년 6월 24일 임자 1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요동으로 가는 일을 대신들과 논의하다

상이 이르기를,

"요동으로 가든지 다른 곳으로 가든지간에 부질없이 의논만 할 것이 아니라 속히 결정하여 그 때를 당해서 갈팡질팡하는 폐단이 없도록 하라."

하니, 대신들이 아뢰기를,

"당초에 요동으로 가자는 계책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의논을 들은 뒤로는 신민들이 경악하였으나 달려가 하소연할 곳도 없었으니 그 안타깝고 절박한 실정이 난리를 만난 초기보다 심하여 허둥지둥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비록 왜적들이 가까이 닥쳐왔지만 하삼도가 모두 완전하고 강원·함경 등도 역시 병화(兵禍)를 입지 않았는데, 전하께서는 수많은 신민들을 어디에 맡기시고 굳이 필부(匹夫)의 행동을 하려고 하십니까.

그리고 명나라에서 대접하여 허락할는지의 여부도 예측할 수 없으며, 일행 사이에 비빈(妃嬪)도 뒤떨어져 갈 수 없는데, 요동 사람들은 대부분 무식하여 복색(服色)도 다르고 말소리도 전혀 다르니, 비웃고 업신여기며 무례(無禮)히 굴면 어떻게 저지하겠습니까. 비록 요동에 도착한다 하더라도 그곳의 풍토와 음식을 어떻게 견디시렵니까. 생각이 이에 이르자 눈물이 절로 흐릅니다. 요동으로 가는 문제는 신들은 결코 다시 의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명나라 병사들이 비록 많이 왔지만 우리 나라에서 향도하는 군사가 없어서는 안 되니 이 향도군을 모집하는 것도 시급합니다. 본주(本州)에 토병(土兵)들이 거의 1천 명쯤 되니, 지금 비록 무너져 흩어졌지만 만약 과거(科擧)로써 소집한다면 그들을 모으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병조(兵曹)에서 내일 활쏘는 것을 시험보이려고 하니, 상께서 당분간 여기에 머무르셨다가 다시 왜적의 소식을 들은 다음 수상(水上)을 경유하여 벽동(碧潼)에 이르러 며칠 머무르시다가 또 강계(江界)로 가 형세를 보고 또 설한령(薛罕嶺)을 경유하여 함흥(咸興)에 이르시는 것이 온당하겠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27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503면
  • 【분류】
    외교-왜(倭) / 외교-명(明) / 군사(軍事) / 왕실-행행(行幸) / 인사-선발(選拔)

○壬子/上曰: "或赴, 或赴他處, 不可徒爲議論, 急速處置, 俾無臨時蒼黃之弊。" 大臣以爲: "當初赴之計, 不知出於何處。 自聞此議, 臣民驚駭, 赴訴無地, 其爲悶迫, 有甚於遭亂之初, 遑遑不定。 今雖賊迫近, 而下三道皆爲完全, 江原咸鏡亦不被兵, 殿下以許多臣民付之何處, 而强爲匹夫之行乎? 且上國之許待與否, 亦不可料, 一行之際, 妃嬪亦不得落後, 則人率多無識, 服色旣殊, 語音頓異, 笑侮無禮, 其何以止之? 雖得達, 土風飮食, 其何以堪處? 思之至此, 不覺流涕。 赴之議, 臣等決不可更議。 且天兵雖多來, 我國不可無嚮導之軍, 此軍聚集亦急。 本州土兵, 幾一千名, 今雖潰散, 若以科擧召集, 此特一朝之事也。 兵曹明日欲爲試射, 自上姑留於此, 更聞賊勢, 由水上以行到碧潼, 留若箇日, 又向江界觀勢, 又由薛罕嶺, 到咸興爲便。" 答曰: "知道。"


  • 【태백산사고본】 13책 27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503면
  • 【분류】
    외교-왜(倭) / 외교-명(明) / 군사(軍事) / 왕실-행행(行幸) / 인사-선발(選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