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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27권, 선조 25년 6월 21일 기유 4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원균과 이순신이 한산도·당포에서 승전한 일에 대한 기록

이때 동래(東萊)가 이미 함락되어 왜적들이 계속 몰아쳐 곧장 진격하니 가는 곳마다 대적할 사람이 없었다. 대가가 이미 서로(西路)로 들어가자 황해도 이남에서 동래까지 오직 패전 소식만 들려오고 전혀 다른 소식은 없었다.

그런데 경상 우수사(慶尙右水使) 원균(元均)은 전라 좌수사(全羅左水使) 이순신(李舜臣)과 약속하여 한산도(閑山島)에서 회합하였다. 이때에 이순신이 전선(戰船) 80척을 거느리고서 마침내 이해 5월 6일에 옥포(玉浦) 앞바다로 나아가니, 적선(賊船) 30여 척이 사면에 휘장을 두르고 길다란 장대를 세워 홍기(紅旗)·백기(白旗)들을 현란하게 달았으며, 나머지 왜적들은 육지로 올라가 마을 집들을 불사르고 겁탈하였다. 왜적들은 수군(水軍)을 보고는 노(櫓)를 빨리 저어 진지(陣地)를 나와 아군(我軍)과 바다 가운데서 만났는데 아군이 적선 26척을 불살라 버렸다. 이튿날 다시 대전(大戰)을 전개하기로 약속하였는데, 대가(大駕)가 서쪽으로 행행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여러 장수들이 도착하지 않아, 그대로 서로 모여 통곡하고는 마침내 9일에 제각기 본진(本鎭)으로 돌아갔다.

29일에 순신과 원균이 재차 노량(露梁)에서 회합하여 적선 1척을 만나 불살라버렸는데, 조금 후에 보니 바닷가 한 산에 왜적 1백여 명이 장사진(長蛇陣)을 치고 있고 그 아래로는 전선 12척이 벼랑을 따라 죽 정박하고 있었다. 때마침 일찍 들어온 조수(潮水)가 벌써 빠져나가 바닷물이 얕아져서 큰 배는 나아갈 수 없었다. 순신이,

"우리가 거짓 퇴각하면 왜적들이 반드시 배를 타고 우리를 추격할 것이니 그들을 바다 가운데로 유인하여 큰 군함(軍艦)으로 합동하여 공격하면 승전(勝戰)하지 못할 리가 없다."

하고서, 배를 돌렸다. 1리를 가기도 전에 왜적들이 과연 배를 타고서 추격해 왔다. 아군은 거북선으로 돌진하여 먼저 크고 작은 총통(銃筒)들을 쏘아대어 왜적의 배를 모조리 불살라버리니, 나머지 왜적들은 멀리서 바라보고 발을 구르며 울부짖었다. 한창 전투할 적에 철환(鐵丸)이 순신의 왼쪽 어깨를 명중하였다.

2일에 당포(唐浦)에 도착하니 적선 20척이 강 연안에 죽 정박하였는데, 그 중에 큰배 한 척은 위에 층루(層樓)를 설치하고 밖에는 붉은 비단 휘장을 드리워놓고서, 적장(賊將)이 금관(金冠)에 비단옷을 입고 손에 금부채를 가지고서 모든 왜적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중위장(中衛將) 권준(權俊)이 배를 돌려서 노를 재촉하여 바로 그 밑으로 돌진하여 그 배를 쳐부수고, 적장을 쳐다보고 활을 쏘니 시위를 놓자마자 적장이 거꾸러졌다. 4일에 당포(唐浦) 앞바다로 나아가자 전라 우수사(全羅右水使) 이억기(李億祺)가 전선 25척을 거느리고 와 회합하니 여러 장수들이 기운이 증가되지 않는 이가 없었다.

5일에 외양(外洋)으로 나가다가 적선이 고성(固城) 당항포(唐項浦) 앞바다로 옮겨 정박하였다는 것을 듣고, 순신이 배 3척을 먼저 보내어 형세를 정탐하도록 하였는데, 겨우 바다 어귀를 나가자마자 바로 포(砲)를 쏘아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모든 군사들이 일시에 노를 재촉하여 앞뒤를 고기꿰미처럼 연결하여 나아가 소소강(召所江)에 이르니 적선 26척이 강 연안에 죽 벌여 있었다. 그 중에 큰배 한 척은 위에 3층 판각(板閣)을 설치하고 뒤에는 검은 비단 휘장을 드리우고 앞에는 푸른 일산을 세워 놓았으며, 휘장 안에는 여러 왜적들이 죽 나열하여 시립하고 있었다. 모든 군사들이 처음 한번 교전하고 거짓 패한 척하여 퇴각하니, 층각을 세운 큰배가 돛을 달고 먼저 나왔다. 모든 군사들이 양쪽에서 공격하니 적장이 화살을 맞고 죽었다. 그러자 모든 군사들이 승세를 타 불을 질러 적선 1백여 척을 소각해 버리고 왜적의 머리 2백 10여 급(級)을 베었으며 물에 빠져 죽은 적은 그 수효를 다 기록할 수 없었다. 6일에 잔여 왜적을 외양(外洋)에서 추격하여 또 한 척을 불살라버렸으며, 9일에 모든 군사가 전투를 중지하고 본진으로 돌아왔다.

7월 6일에 순신억기노량에서 회합하였는데, 원균은 파선(破船) 7척을 수리하느라 먼저 와 정박하고 있었다. 적선 70여 척이 영등포(永登浦)에서 견내량(見乃粱)으로 옮겨 정박하였다는 것을 들었다. 8일에 수군이 바다 가운데 이르니, 왜적들이 아군이 강성한 것을 보고 노를 재촉하여 돌아가자 모든 군사가 추격하여 가보니, 적선 70여 척이 내양(內洋)에 벌여 진을 치고 있는데 지세(地勢)가 협착한 데다가 험악한 섬들도 많아 배를 운행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아군이 진격하기도 하고 퇴각하기도 하면서 그들을 유인하니, 왜적들이 과연 총출동하여 추격하기에 한산(閑山) 앞바다로 끌어냈다.

아군이 죽 벌여서 학익진(鶴翼陣)을 쳐 기(旗)를 휘두르고 북을 치며 떠들면서 일시에 나란히 진격하여, 크고 작은 총통(銃筒)들을 연속적으로 쏘아대어 먼저 적선 3척을 쳐부수니 왜적들이 사기가 꺾이어 조금 퇴각하니, 여러 장수와 군졸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발을 구르고 뛰었다. 예기(銳氣)를 이용하여 왜적들을 무찌르고 화살과 탄환을 번갈아 발사하여 적선 63척을 불살라버리니, 잔여 왜적 4백여 명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가 달아났다.

10일에 안골포(安骨浦)에 도착하니 적선 40척이 바다 가운데 벌여 정박하고 있었다. 그 중에 첫째 배는 위에 3층 큰집을 지었고 둘째 배는 2층집을 지었으며 그 나머지 모든 배들은 물고기 비늘처럼 차례대로 진을 결성하였는데 그 지역이 협착하였다. 아군이 두세 차례 유인하였으나 왜적은 두려워하여 감히 나오지 않았다. 우리 군사들이 들락날락하면서 공격하여 적선을 거의 다 불살라버렸다. 이 전투에서 3진(陣)이 머리를 벤 것이 2백 50여 급이고 물에 빠져 죽은 자는 그 수효를 다 기록할 수 없으며 잔여 왜적들은 밤을 이용하여 도망하였다.

순신 등이 그의 군관(軍官) 이충(李沖)을 보내어 치계하고 수급(首級)을 바치도록 하니, 행조(行朝)에서는 상하가 뛸듯이 기뻐하며 경하(慶賀)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충이 오자 상이 영남(嶺南)의 일을 하문하니, 대답하기를 ‘감사(監司) 김수(金睟)가 함양(咸陽)에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소식이 통하지 않고 있습니다. 적이 직로를 따라 올라오기 때문에 좌·우도(左右道)가 두 조각으로 갈라져서 호령이 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였다. 】


  • 【태백산사고본】 13책 27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502면
  • 【분류】
    외교-왜(倭) / 군사(軍事)

○時, 東萊旣陷, 賊長驅直進, 所向無前, 大駕旣入西路, 黃海以南, 至于東萊, 惟聞敗報, 絶無他信。 慶尙右水使元均, 與全羅左水使李舜臣, 約會閑山島。 時舜臣以戰船八十艘, 乃於是年五月初六日, 進至玉浦前洋, 有賊船三十餘艘, 四面圍帳, 竪立長竿, 亂懸紅白旗, 餘賊登陸, 焚怯閭家。 賊見舟師, 促櫓出陣, 與我軍相遇於洋中, 我軍焚賊船二十六艘。 約以明日更擧大戰, 聞大駕西幸, 諸將不到, 仍爲相聚痛哭, 乃於初九日, 各還本鎭。 二十九日, 舜臣元均再會於露梁, 遇賊一船焚之, 俄見海邊一山, 有賊百餘長蛇而陣, 其下有戰船十二艘, 緣崖列泊。 時早潮已退水淺, 大舟不得進。 舜臣曰: "我佯退, 賊必乘船追我, 引出洋中, 巨艦合擊, 蔑不勝矣。" 回船未一里, 賊果乘船追之。 我軍令龜船突進, 先放大小銃筒, 盡燒其船, 餘賊遠望頓足叫呼。 方戰鐵丸中舜臣左肩。 初二日到唐浦, 賊船二十艘, 列泊江岸, 中有一大船, 上設層樓, 外垂紅羅帳, 賊酋着金冠錦衣, 手執金扇, 指揮諸賊。 中衛將權俊, 回船促櫓, 直衝其下, 撞破其船, 仰射賊酋, 應弦而倒。 初四日進至唐浦前洋, 全羅右水使李億祺, 領戰船二十五艘來會, 諸將無不增氣。 初五日出外洋, 聞賊船移泊於固城 唐項浦中洋, 舜臣先遣三船, 往探形勢, 纔出海口, 卽放砲告變。 諸軍一時促櫓, 首尾連亘, 魚貫而進, 至召所江, 賊船二十六艘, 擺列江岸, 中有一大船, 上設三層板閣, 後垂黑綃帳, 前竪靑蓋, 帳內諸賊, 擺列侍立。 諸軍初一交戰, 佯敗而退, 層閣大船, 懸帆先出。 諸軍挾擊, 賊酋中箭而死。 諸軍乘勝縱火, 焚賊船一百餘艘, 斬賊首二百一十餘級, 溺水死者不記其數。 初六日, 追餘賊於外洋, 又焚一船, 初九日, 諸軍罷兵還鎭。 七月初六日, 舜臣億祺會于露梁, 元均修緝破船七艘, 先來留泊。 聞賊船七十餘艘, 自永登浦, 移泊於見乃梁。 初八日, 舟師至中洋, 賊見我軍盛, 促櫓而歸, 諸軍追至, 則賊船七十餘艘, 列陣於內洋, 地勢狹窄, 且多險嶼, 難以行船。 我軍進退誘引, 賊果悉衆追之, 引出于閑山前洋。 我軍擺列爲鶴翼陣, 揮旗鼓譟, 一時齊進, 連放大小銃筒, 先破賊船三艘, 賊氣挫少却, 諸將軍吏, (勸)〔歡〕 呼踴躍。 乘銳崩之, 箭丸交發, 焚賊船六十三艘, 餘賊四百餘名, 棄船登陸而走。 初十日, 至安骨浦, 賊船四十艘, 列泊洋中。 其中一船, 上建三層大屋, 二船建二層屋, 其餘諸船, 鱗次結陣, 其地狹窄。 我軍再三誘引, 賊懼不敢出, 我軍出入搏戰, 幾盡燒之。 是役也, 三陣所斬二百五十餘級, 溺水死者, 不記其數, 餘賊乘夜而遁。 舜臣等遣其軍官李冲, 馳啓獻級, 行朝上下, 無不踴躍稱慶。 【冲之來也, 上問以嶺南之事, 對曰, 聞監司金睟在咸陽云, 而聲問不通。 賊由直路而上, 故左右道分爲兩界, 號令不通云。】


  • 【태백산사고본】 13책 27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502면
  • 【분류】
    외교-왜(倭)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