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승지 이충원 등을 가자하고 적의 형세, 민심의 동향 등을 묻다
도승지 이충원, 좌승지 노직(盧稷), 우승지 신잡(申磼), 좌부승지 민준(閔濬), 우부승지 민여경(閔汝慶)과 양사(兩司)의 장관에게 각각 한 자급씩 가자(加資)하였다. 이보다 먼저 어가가 벽제(碧蹄)에 이르렀을 때 호종하는 신하들에게 한 자급씩 가자 할 것을 명했으나 창졸간에 미처 하비(下批)하지 못했다가 지금에 와서야 행한 것이다. 상이 승지를 인견하고 이르기를,
"적세가 이러하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하니, 민여경이 아뢰기를,
"사태는 급박한데 대신이 없으니 더욱 민망스럽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특명으로 제수하려고 한다."
하니, 충원이 아뢰기를,
"좌·우찬성과 삼사의 장관을 모두 부르심이 어떻겠습니까?"
하자, 상이 부르라고 명했다. 상이 다시 이르기를,
"대신이 공석 중이니만큼 상규(常規)대로 할 수는 없다. 오늘 의논해서 정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이괵이 아뢰기를,
"할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하고, 최황(崔滉)은 아뢰기를,
"직차(職次)는 논하지 말고 합당한 사람을 고르기만 하면 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윤두수가 어떻겠는가?"
하니, 괵이 이르기를,
"윤두수는 재주와 기량이 있으니 어찌 합당치 않겠습니까."
하고, 김찬을 아뢰기를,
"대신을 천거하여 쓰는 것은 마땅히 상의 뜻에서 나와야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윤두수로 하고 그를 대신할 대장은 다른 사람으로 하라."
하니, 황(滉)과 충원(忠元)이 아뢰기를,
"겸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자, 상이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괵이 아뢰기를,
"위망(危亡)이 눈앞에 닥쳤는데 임금과 신하 사이에 무슨 숨길 것이 있겠습니까. 대저 인심을 수습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근래 궁인(宮人)들의 작폐가 심해졌습니다. 내수사(內需司) 사람들이 거짓 궁물(宮物)이라 칭탁하여 백성들에게 원망을 쌓고 있습니다. 오늘의 변이 생긴 까닭도 다 왕자궁(王子宮)에 있는 사람들의 작폐에서 연유된 것으로 인심이 원망하고 배반하여 왜(倭)와 한마음이 된 탓입니다. 듣기로는 ‘우리는 너희들을 죽이지 않는다. 너희 임금이 너희들을 학대하므로 이렇게 온 것이다.’라고 하였고, 우리 백성들도 ‘왜인도 사람인데 우리들이 하필 집을 버리고 피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였다고 합니다. 작폐한 내수사의 사람을 목베고 또 오랫동안 쌓인 평안도의 포흠(逋欠)을 면제해주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작폐한 사람을 하옥하여 신문한 뒤에 조처하라."
하였다. 괵이 아뢰기를,
"서울의 시장 사람들은 태연하게 옮기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상도 사람들이 다 배반하였는데 사실인가?"
하였다. 또 괵이 아뢰기를,
"김수(金睟)는 감사(監司)로서 도민의 원망을 받고 있으니 장차 보존할 수 없는 형편인데 대신(大臣)은 실성한 듯이 머리를 숙이고 앉아만 있으니 인심을 수습하기 어렵습니다. 김수는 체직시키는 것이 마땅하여 이광(李洸) 【전라 감사이다. 】 역시 하는 일이 없으니 놀라운 일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충청 감사 역시 멀리 공주로 피신했다고 한다. 유식한 사람도 오히려 이러한데 다른 사람을 어떻게 믿겠는가."
하였다. 유홍(兪泓)이 아뢰기를,
"듣건대 대가(大鴐)가 떠난다고 하는데 내행(內行)은 조용하게 먼저 떠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가가 떠난다는 말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하였다. 내관(內官) 이봉정(李奉貞)이 아뢰기를,
"나인(內人)들이 행장을 꾸리므로 그런 말이 나온 것입니다."
하니, 상이 금지시키라고 명하였다. 김찬(金瓚)이 아뢰기를,
"전에 작폐한 궁노(宮奴)를 수금(囚禁)하면 민심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시장 사람들의 배반은 작은 일이 아니다. 이는 무역(貿易)으로 인해 야기된 것이라고 하니 이 일은 한두 간인(奸人)이 한 짓이지, 어찌 모두 그랬겠는가?"
하였다. 홍인상(洪麟祥)이 아뢰기를,
"김공량(金公諒)이 【김공량은 총애를 받고 있는 김빈(金嬪)의 오빠로서 내외(內外)로 교통하여 외람된 짓을 마구 하므로 옥당이 차자를 올려 논박하였다. 】 작폐한 정상을 성상께서 어떻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요즈음 여항(閭巷)에서 원망하는 소리가 극도에 달하여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까지도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미열한 자이어서 분수에 넘치는 일이 없지 않다. 이외에 별다른 일이 있는가?"
하였다. 찬과 괵 및 인상이 아뢰기를,
"신들은 위급하고 어렵게 되자 비로소 아뢴 것입니다만 항간(巷間)에서는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고, 직(稷)은 아뢰기를,
"평소 말씀드리지 않고 지금에 와서야 말씀드리니 신들은 죽어 마땅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대들이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그러나 사람들의 말이 어찌 다 사실이겠는가. 그래 어떤 일을 저질렀다고 하던가?"
하였다. 괵이 아뢰기를,
"사람들은 모두 다 공량(公諒)을 목벤 뒤라야 일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옛날 임금 중에는 총애를 끊은 임금도 있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가 공량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다. 죄는 반드시 적중해야 하는 것인데 사람들의 말이 어찌 다 사실이겠는가."
하였다. 괵이 아뢰기를,
"민정(民情)이 이와 같은데 어찌 헛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인상은 아뢰기를,
"지금은 한 시가 급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개 공량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가?"
하였다. 인상이 아뢰기를,
"뇌물을 받은 일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일이 여기에 이르렀는데 숨겨서 되겠는가. 바깥에 나가 있는 재상도 오히려 친구의 청탁을 받았을 경우 소문이 퍼지는 법인데 공량은 별로 그런 일이 없다."
하였다. 찬과 괵 및 인상이 아뢰기를,
"성상께서는 모르시지만 공량이 참으로 그런 짓을 했습니다."
하고, 괵은 또 아뢰기를,
"종루(鍾樓)에 방이 붙었는데, 이산해와 공량이 서로 친밀하게 아첨하는 모습을 그린 방이었습니다. 이것은 미움받은 것이 극심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황윤길(黃允吉)은 평의지(平義智)가 간사하여 염려된다고 하였고 김성일은 족히 염려할 것이 없다고 하였는데, 수길(秀吉)이 중국을 병탄할 수 있다고 보는가?"
하니, 괵이 아뢰기를,
"그것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국운(國運)은 금년이 좋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축년006) 역옥(逆獄) 때 역적들의 공초(供招)에 ‘여립(汝立)이 늘 점치기를 경인년은 보통으로 길하고 임진년은 크게 길하다고 하였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금년 국운은 불길한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나의 실국(失國)은 다른 죄가 아니라 명나라에 충절을 다하느라고 미친 왜적에게 노여움을 산 것이다."
하니, 승지 이충원(李忠元)이 아뢰기를,
"전하께서 즉위하신 후 25년 동안 항상 정치에 골몰하시고 황음(荒淫)한 적이 없었으니 적세가 제아무리 치성해도 사대부(士大夫) 중 한 사람도 적에게 항복한 자가 없습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천의(天意)와 인심(人心)을 대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멀지 않아서 신들이 궁정(宮庭)을 깨끗이 청소하고 전하를 모시고 환도(還都)하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26권 3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485면
- 【분류】외교-왜(倭) / 군사(軍事)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왕실-행행(行幸) / 왕실-비빈(妃嬪) / 사법-탄핵(彈劾) / 사법-치안(治安)
- [註 006]기축년 : 1589 선조 22년.
○都承旨李忠元, 左承旨盧稷, 右承旨申磼, 左副承旨閔濬, 右副承旨閔汝慶, 兩司長官, 各加一資。 先是, 車駕至碧蹄, 命扈從諸臣皆加一資, 倉卒未及下批, 至是乃行。 引見承旨, 上曰: "賊勢如此, 奈何?" 閔汝慶曰: "事急而無大臣, 尤可悶也。" 上曰: "欲以特命爲之。" 忠元曰: "竝召左右贊成、三司長官, 何如?" 上曰: "命召。" 上曰: "大臣有缺, 不可以常規爲之。 今日議定, 何如?" 李𥕏曰: "有可爲之人乎?" 崔滉曰: "勿論職次, 只擇可合人。" 上曰: "尹斗壽, 何如?" 𥕏曰: "尹斗壽有才器, 豈不可合乎?" 金瓚曰: "擧大臣, 當出自上意。" 上曰: "以尹斗壽爲之, 其代大將, 以他人爲之。" 滉、忠元曰: "兼之可也。" 上曰: "然。" 𥕏曰: "危亡迫至, 君臣之間, 何可有隱? 大抵收拾人心爲上。 近來宮人作弊。 內需司人, 假稱宮物, 而積怨於民。 今日生變之由, 皆緣王子宮人作弊, 故人心怨叛, 與倭同心矣。 聞賊之來也, 言: ‘我不殺汝輩, 汝君虐民, 故如此。’ 云我民亦曰: ‘倭亦人也, 吾等何必棄家而避也?’ 請誅內需司作弊人, 且免平安道積年逋欠。" 上曰: "作弊人, 下獄推閱, 後處之。" 𥕏曰: "京中市民, 安居不移云。" 上曰: "慶尙道人皆叛云, 然耶?" 𥕏曰: "金晬監司結怨, 將不能保全, 而大臣喪性, 低頭而坐, 收合人心難矣。 金睟遞之爲當。" 李洸 【全羅監司。】 亦無所爲, 可駭。" 上曰: "忠淸監司, 亦遠避公州。 有識人尙如此, 他何可恃?" 兪泓曰: "聞有動駕之事, 內行則從容先發爲當。" 上曰: "動駕之事, 非予所言。" 內官李奉貞曰: "內人等束裝, 故有此言。" 上曰: "禁之。" 金瓚曰: "前頭宮奴作弊囚禁, 則民心可慰。" 上曰: "市民之叛, 非細事也。 因貿易如此云, 此事一二奸人爲之, 豈人人爲也?" 洪麟祥曰: "金公諒 【寵姬金嬪之娚也。 交通內外, 縱臾奸濫, 玉堂上箚論之。】 作弊之狀, 自上何以盡知。 近來閭巷怨極, 至有不可道之言。" 上曰: "迷劣者, 不無泛濫事矣。 更有何別樣事?" 瓚、𥕏、麟祥曰: "臣等急難始啓矣, 閭巷間, 則無不言之。" 稷曰: "平日不言, 而到今言之, 臣等合死。" 上曰: "渠何關? 但人言豈皆實也? 以爲做作何等事耶?" 𥕏曰: "人皆曰: ‘斬公諒, 然後事可爲也。’ 古之人君, 割愛。" 上曰: "予非護公諒也。 罪必適中, 人言豈可盡實?" 𥕏曰: "民情如此, 豈可謂之虛也?" 麟祥曰: "此時頃刻爲急。" 上曰: "大槪公諒做何事耶?" 麟祥曰: "納賂。" 上曰: "到此, 不宜有隱。 外間宰相, 猶受親舊請托, 鬼神在傍, 公諒別無此事。" 瓚、𥕏、麟祥曰: "自上不知, 而公諒從中爲之。" 𥕏曰: "貼榜於鍾樓, 畫李山海, 又畫公諒, 相爲親密, 獻諂鄙屑之狀, 見疾之甚, 故如此矣。" 上曰: "黃允吉以爲平義智奸詐可憂, 金誠一以爲不足憂, 秀吉亦有竝呑中國之理耶?" 𥕏曰: "此未可知也。 國運今年不吉, 故己丑治逆時, 逆黨供云: ‘汝立常卜云, 庚寅平吉, 壬辰大吉。’ 然則國運果不吉也。" 上曰: "予之失國, 非有他罪, 特以盡節天朝, 取怒於狂賊耳。" 承旨李忠元對曰: "殿下卽位二十五餘年, 憂勤政治, 無荒淫之失, 賊勢雖熾, 而士大夫無一人降賊者。 天意人心蓋可知矣。 臣等不久當灑掃宮庭, 奉殿下還都矣。"
- 【태백산사고본】 13책 26권 3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485면
- 【분류】외교-왜(倭) / 군사(軍事)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왕실-행행(行幸) / 왕실-비빈(妃嬪) / 사법-탄핵(彈劾) / 사법-치안(治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