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계 변무를 맞아 존호 올리기를 청하다
존호(尊號)를 올리는 일에 대해 다시 아뢰기를,
"저번에 신들이 온 나라의 공론을 가지고서 연일 궐문 앞에 엎드려 충곡(衷曲)을 피력하고 호소하였으나, 위로부터의 거절이 너무 확고할 뿐 아니라 정녕 간측(丁寧懇惻)하신 하교가 한두 차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신들이 머리를 맞대고 감격해 하며 서로 말하기를, 성상의 겸허하고 충화(沖和)하신 덕이 이처럼 지극한데, 우리의 강청이 10일이 넘는 것은 도리어 미안한 일이라 하고 말없이 물러선 뒤에 섭섭하여 맥이 빠졌으니, 신들의 정상도 진실로 서글픕니다. 근래 조정의 사대부가 일제히 나서서 말하기를 ‘성상의 성덕(盛德)과 신공(神功)이 천고에 뛰어나므로 의당 휘호(徽號)를 올려 그 아름다움을 천양(闡揚)해야 하는데, 조정이 성상의 뜻에만 순응하고 끈덕지게 나서지 않으니, 어찌 옳다고 하겠는가.’라고 하며, 기전(畿甸) 백성들이 저마다 나서는 것은 물론, 먼 지역의 시골 백성들도 일제히 나서기를 마치 조정의 사대부처럼 하니, 신들의 느리고 무능한 죄가 이제는 모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신들이 이미 죄를 안 이상, 서로 이끌고 다시 나아가 혈성으로 호소하여 상께서 들어주시기를 기대하는 것도 정리상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교(聖敎)의 간곡하심이 아무리 전날과 같다 하더라도 그대로 받들어 시종 겸손하신 지의(至意)을 받들지 못할 것 같습니다. 대체로 인심이 같은 데로 향하는 곳은 곧 공론이 있는 곳입니다. 인군의 존귀함으로도 이를 억제하거나 단절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따르는 것은 인심과 공론에 순종하는 것이 윗사람의 선무(先務)이어서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날의 인심을 성상께서도 이미 통촉하셨을 터인데, 어찌 그대로 순응하여 공론이 크게 펴지게 하기를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옛날 성제 명왕(聖帝明王) 중에 성덕(盛德)·대업(大業)이 있어도 오히려 공을 차지하지 않고 겸손해 하여 더욱더 복(福)을 받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 공렬(功烈)이 혹 방국(邦國)을 재조(再造)한 데까지 이르지 않았더라도 당시 군하(群下)의 기뻐하고 찬양하는 정성을 굳이 물리치거나 거절하지 않은 이도 있었으니, 이것 역시 하나의 정당한 도리인 것으로 그 사이에 별다른 도리가 개재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것이 신들이 더욱 민망해하고 공론이 더욱 답답해 하는 바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지금 또 이같이 청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일에 대해 털끝만큼이라도 감당할 만하다면 저번에 어찌 감히 그와 같은 대답이 있었겠는가. 지난번 경연에서도 가당치 않다는 뜻을 누누이 말하였는데, 의외에도 나의 뜻이 밝혀지지 않고 조정이 다시 그 일을 어지럽게 들고 나오니, 놀랍고 민박(悶迫)함을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나는 본디 불민한 사람으로 반생(半生)동안 신병을 지니고 있어 심질(心疾)이 더욱 심하기 때문에 평소 생각하는 것은 금궤(金櫃)속의 약일 뿐, 인사(人事)에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 만약 여러 날 고집한다면 반드시 광질(狂疾)이 발작할 터이니, 이는 조정이 인군을 사랑하는 뜻이 아닐 것 같다. 제발 제경(諸卿)의 덕을 힘입어 일찍 물러나 쉬었으면 하니, 더 이상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22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451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사(宗社)
○朔壬午/上尊號, 更啓曰: "頃者臣等將一國公論, 連日伏闕, 瀝悃叫呼, 自上非但拒之甚牢, 丁寧懇惻之敎, 不一再而已。 則臣等聚首感激, 相以爲, 聖上謙虛沖損之德, 若此之至, 而猶且强聒, 至浹旬日, 則抑有所未安者, 隱默姑退, 無不悵然自失, 臣等之情, 固亦悲矣。 近來朝中士大夫, 譁然齊奮, 乃曰: ‘我聖上盛德神功, 覓超千古, 今有徽稱, 以揚鴻休, 而朝廷唯將順聖意, 不爲之堅執, 其可乎哉?’ 邦畿之民, 譁然齊奮, 遠方窮巷之民, 又譁然齊奮, 如朝中士大夫焉, 則臣等駑緩疲軟之罪, 至是而無所逃矣。 臣等旣自知其罪, 則相率更詣, 血誠申籲, 以冀天聽之必回者, 亦情理之固然。 而聖敎之懃懇, 雖復如前日, 恐不得仰體奉承, 以遂終始謙遜之至意也。 大抵人心所同, 卽公議所在。 雖以人主之尊, 亦不得沮抑遏絶, 而黽勉俯循者, 豈不以順人心從公論, 爲居上之先務乎? 今日之人心, 聖明旣已洞燭, 則其可不思所以順之, 而使公議快伸耶? 抑前者聖帝明王, 有盛德大業, 而猶謙謙不自居, 以致受益之福者固美矣。 其或功烈之盛, 雖不至於再造邦國, 而一時群下, 忻忭贊敭之誠, 亦不得揮斥而固拒者有之, 亦有道理, 而不知復有他道理存乎? 其間此臣等之所益憫, 而公議之所益鬱也。" 答曰: "今又如是, 罔知所喩。 此事若少有耄分可堪之勢, 則前日詎敢有如彼之言? 至於頃日經筵, 又歷陳不當之意, 不圖微志未白, 朝廷又擾其爲, 驚愕悶迫, 難以盡言。 予素以不敏, 半生抱病, 其中心證尤甚。 平日所思者, 金櫃之藥而已, 人事不思也。 今若累日堅執, 必發狂疾, 恐非朝廷所以愛君之意也。 願更蒙諸卿之德, 早思休退, 勿更煩擾。"
- 【태백산사고본】 11책 22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451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사(宗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