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상 정유길이 2품 이상을 거느리고 존호 올리기를 청하자 윤허하지 않다
좌상 정유길이 2품 이상을 거느리고 존호 올리기를 계청(啓請)하니, 답하기를,
"지금 또 그 일을 계청하니, 너무도 황송하고 놀랍다. 종계(宗系)가 개정된 공로를 나에게 돌리고 과당한 계청까지 하고 있으니,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내가 언제 직접 경사(京師)로 달려가 황제 앞에 호소하여 악명을 씻고 돌아왔던가. 내가 언제 이곳에 앉아서 신모 기계(神謀奇計)를 운용하여 지휘한 계책이 있었던가. 나의 정성이 언제 하늘까지 닿은 감응이 있었던가. 나는 한가지 일도 한 것이 없고, 다만 조정이 적극 주선하고 사신이 충성을 다하여 이루어진 것이며, 실로 조종(祖宗)들의 여러 해 동안 쌓아 오신 공덕으로 이루어진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지금 나의 공으로 만들어 높이 받들어 스스로 전대(前代)를 능가하고 후세에 빛나게 한다면 삼척 동자도 비웃을 것이다.
내가 이 계청을 들은 뒤로 마치 신민들에게 죄를 지은 것 같아 사람을 대할 면목이 없다. 만약 이 일을 감행한다면, 이는 옛날에 스스로 참립(僭立)했던 자와 다름이 없다. 내가 비록 지극히 어리석으나 어찌 이를 차마 감행할 수 있겠는가. 후세에 있을 일은 그만두고라도 백세(百歲)059) 이후에 무슨 면목으로 조종(祖宗)을 뵐 수 있겠는가. 조종이 아래를 굽어보시고 귀신이 옆에 있는데, 어찌 감히 털끝만큼인들 거짓 겸사가 있겠는가. 대저 사람을 사랑하는 데는 그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 근본이다. 나는 본시 심질(心疾)이 있어 때 없이 발작하는데 지금 걱정과 병이 겹치고 있으며, 성격 또한 소졸(疏拙)하여 잡다한 일을 좋아하지 않은 지 오래이다. 그런데 어찌 원치 않는 일을 강요하여 번거로이 할 수 있겠는가. 경들이 혹 나를 사랑한다면 제발 다시 거론하지 말라."
하였다. 재차 아뢰니, 답하기를,
"너무도 민망스럽다. 만에 하나라도 감내할 만한 일이라면 어찌 감히 이처럼 굳이 사양하고 따르지 않겠는가. 설사 나에게 조그마한 공로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자식된 자의 직분상 해야 할 일인데, 어찌 자존(自尊)할 리가 있겠는가. 제발 다시 말하지 말라."
하였다. 세 차례 아뢰었으나, 역시 윤허할 수 없다고 답하였다. 영상 노수신은 신병으로 이 의논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22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449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사(宗社) / 외교-명(明)
- [註 059]백세(百歲) : 죽음.
○癸卯/左相鄭惟吉, 率二品以上, 啓請上尊號, 答曰: "今又來啓, 極爲惶駭。 以宗系得正, 歸之於余, 至有過當之啓, 莫知其故。 予親赴京師, 哀籲於帝前, 得雪而歸乎? 在此而運神謀奇計, 有指授之策乎? 又積誠動天, 能有以致之乎? 予無一於是, 不過朝廷周旋, 使臣盡忠, 幸而成事, 而其實祖宗積年之功德耳。 今乃掩爲己有, 高自標號, 自以爲軼前代輝後世, 尺童亦笑矣。 自聞此言, 有若得罪於臣民, 無面見人。 予若爲此, 是無異於古之僭號自立者? 予雖至愚, 豈忍爲此? 後世之事, 固不足道, 而百世之下, 將何面目, 歸見祖宗耶? 祖宗下臨, 神鬼在傍, 何敢一毫謙退? 凡愛人, 以安心爲本。 予素有心疾, 發作無常, 到今憂病相仍, 性且踈拙, 不樂塵事者久矣。 又可强其所不願, 以惱之耶? 諸卿儻或愛予, 願勿更言。" 再啓。 答曰: "極爲悶望。 萬分可堪, 則安敢若是牢拒而不從之乎? 設使予有微勞, 此乃人子職分內事也, 夫安有自尊之理乎? 願勿更言。" 三啓, 答曰: "不允。" 領相盧守愼, 病不參議。
- 【태백산사고본】 11책 22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449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사(宗社)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