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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5권, 선조 14년 1월 16일 신사 3번째기사 1581년 명 만력(萬曆) 9년

상이 성혼의 서울 생활을 위해 녹봉을 주라고 하니, 노수신이 주급으로 하라고 하다

상이 성혼의 서울 생활이 빈궁하다고 특별히 녹을 주라고 명하였다. 김우웅(金宇顒)이 아뢰기를,

"녹으로 명칭을 한다면 성혼은 반드시 직사에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양할 것입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임금이 백성에게 본시 주급(周急)하는 의리가 있는 것이니 이제 마땅히 그의 궁핍함을 주급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명칭이 바르게 되고 성혼도 사양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의 생각도 그렇다."

하고, 노수신(盧守愼)에게 물었다. 노수신이 아뢰기를,

"주급한다는 주(周) 자가 맹자에서 나왔는데 그것은 대체로 빈사(賓師)을 대우하는 예이니 너무 과중한 듯합니다."

하고, 김우옹은 아뢰기를,

"다만 현인을 돕는 뜻일 뿐입니다. 또한 백성이라고 한다면 반드시 빈사는 아닌 것입니다. 성혼은 벼슬에 나오지 않고 있으니 그저 백성일 뿐입니다. 주급한다고 하는 것이 매우 좋겠습니다."

하니, 상이 옳다고 하였다. 김우옹이 또 아뢰기를,

"연 소왕(燕昭王)이 곽외(郭隗)를 높이 예우하자 악의(樂毅)가 찾아왔습니다.016) 하물며 어진 선비를 얻어 높이 예우한다면 사방의 선비들이 어느 누가 기꺼이 조정에 들어오기를 원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에 대한 예우가 적절히 잘 된다면 보고 듣는 자에게 파급되는 영향이 작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15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370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 재정-국용(國用)

  • [註 016]
    연 소왕(燕昭王)이 곽외(郭隗)를 높이 예우하자 악의(樂毅)가 찾아왔습니다. : 연(燕)나라가 제(齊)나라에게 대패한 뒤 백성들의 추대로 연왕이 된 소왕(昭王)은 제나라에 보복(報復)하기 위하여 곽외(郭隗)의 계략에 따라 먼저 곽외를 예로 대우하니 어진이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이때 조(趙)나라 사람 악의(樂毅)가 오니 연 소왕은 그를 아경(亞卿)으로 삼았다. 《사기(史記)》 권80 악의열전(樂毅列傳).

○上以成渾在京貧乏, 特命給祿。 金宇顒曰: "以祿爲名, 則必以未供職爲辭。 臣以爲君之於氓也, 固周之. 今宜周其乏, 則名正, 而亦無辭矣。" 上曰: "予意亦然。" 問盧守愼, 守愼曰: "周字出《孟子》, 蓋待賓師之禮也, 恐太重。" 宇顒曰: "只是養賢之禮耳. 且謂之氓, 則非必賓師也. 未供職, 只是氓耳. 周之甚宜。" 上可之. 宇顒又言: "燕昭尊禮郭隗, 而樂毅至, 況得賢士, 而尊禮之, 四方之士, 孰不欣然願立於朝乎? 今待得宜, 則觀瞻所係不細矣。"


  • 【태백산사고본】 8책 15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370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 재정-국용(國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