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강에 이이가 《대학연의》를 강하고 공물와 요역의 폐단을 아뢰다
상이 석강(夕講)에 나아갔다. 이이(李珥)가 《대학연의(大學衍義)》를 진강(進講)하다가 안연(顔淵)이 극기 복례(克己復禮)의 항목을 물은 곳에 이르러서 이이가 아뢰기를,
"사람의 성품은 본래 선하여서 바로 순수한 천리(天理)이지만, 사욕의 가림이 되었기 때문에 천리로 회복하지 못하는 것이니, 만약 나의 사욕을 극복하여 제거한다면 그 성품을 온전히 할 것입니다. 안자(顔子)는 이치를 궁구한 것이 본디 밝아 천리와 인욕을 흑백처럼 분명히 보았기 때문에 바로 극기 복례에 종사하여 털끝만한 의심도 없었거니와, 지금 사람들은 전부터 한 궁리(窮理) 공부(工夫)가 없으니, 바로 극기(克己)하고자 하면 어떤 것이 사욕이고 어떤 것이 예(禮)라는 것을 알지 못하여 도리어 사욕을 천리로 여기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므로 격물(格物)·치지(致知)가 《대학(大學)》의 시공(始功)이 되는 것입니다.
또 옛날에는 공부를 하는데 많은 말을 하지 않고 극기 복례를 실지로 수행했기 때문에 이 네 글자만으로도 성인(聖人)이 될 수 있었거니와, 지금에는 언어만 너무 많고 실지의 공부가 없기 때문에 실효(實効)가 없는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안자가 ‘나를 문(文)으로써 넓히셨다.’고 하였는데, 그때 어떤 문이 있었는가?"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이 때에 이미 육경(六經)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초(楚)나라의 좌사(左史) 의상(倚相)이, 삼분(三墳)·오전(五典)·팔색(八索)·구구(九丘)113) 를 읽었다 하였습니다. 의상이 공자(孔子)보다 먼저 사람이었으니, 이 때에도 이미 읽을 만한 문(文)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후세처럼 많지는 않았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안자는 총명하고 슬기로울 뿐만이 아니라 자못 용기(勇氣)가 있었기 때문에 향진(向進)114) 하여 중지하지 않았으니 이를테면 ‘순(舜)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한 말이 바로 안자의 용감한 점이다."
하였다. 이이가 아뢰기를,
"상의 말씀이 매우 옳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그 학문을 성취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이 뜻이 독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상께서도 이미 이러함을 아셨으니, 뜻을 독실히 하여 용감하게 전진하신다면 이르지 못할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근래 상께서 매양 백성을 사랑하라는 전교를 내리시니, 아랫사람들이 누군들 감격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다만 그 마음만 있고 그 정사가 없으면 백성들이 은택을 입는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오늘날 민생(民生)이 과거에 비해 어떠한가?"
하였다. 이이가 답하기를,
"권간(權奸)이 국정을 담당할 때에 비교해 보면 가렴 주구(苛斂誅求)는 줄어든 듯하지만, 공부(貢賦)와 요역(徭役)의 법이 매우 사리에 어긋나서 날로 잘못되어 백성이 그 폐해를 입고 있으니, 만약 고치지 않는다면 비록 날마다 백성을 사랑하라는 전교를 내려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9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333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上御夕講。 李珥進講《大學衍義》。 至顔子克己復禮處, 珥曰: "人性本善, 純是天理, 只是己私爲蔽, 故天理未復。 若克去己私, 則全其性矣。 顔子窮理素明, 天理人欲, 如見黑白, 故直從事於克己復禮, 無毫髮未瑩之疑。 今人從前無窮理工夫, 直欲克己, 則不知何者爲己, 何者爲禮, 或有反以己私爲天理者矣。 此所以格物致知爲《大學》之始功也。 且古者做工夫不多說, 克己復禮, 便去實做故, 只此四字, 可以作聖。 今者言語儘多, 而元無實功, 故亦無實效矣。" 使上曰: "顔子云: ‘博我以文。’ 此時有何等文乎?" 珥曰: "此時, 己有六經。 且楚左史倚相, 讀三墳五典八索九丘, 倚相之生, 先於孔子, 則此時有文可讀。 但不若浮世之多耳。" 上曰: "顔子非徒明智, 儘是有勇, 故能向進不已。 如曰: ‘舜何人也; 予何人也。’ 此是顔子勇處。" 珥曰: "上敎甚當。 後世之人, 不能成就其學者, 皆是志不篤故也。 自上旣知其如此矣。 篤志勇詣, 則何所不至乎? 近日自上每發愛民之敎, 群下孰不感激乎? 但有其心, 無其政, 則民無蒙澤之效矣。" 上曰: "今日民生, 比曩時, 何如?" 珥曰: "比於權奸當國時, 則浚剝似減矣。 但貢賦徭役之規, 甚乖事宜, 日漸謬誤, 民受其害。 若不改轍, 則雖日下愛民之敎, 無益也。"
- 【태백산사고본】 6책 9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333면
- 【분류】왕실-경연(經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