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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5권, 선조 4년 9월 12일 신미 2번째기사 1571년 명 융경(隆慶) 5년

전라 감사가 영암·강진·해남의 공부(貢賦)를 덜어 줄 것을 청하다

전라 감사가 치계(馳啓)하였다.

"영암(靈巖)·강진(康津)·해남(海南) 세 고을은 양영(兩營) 사이에 끼여 있는 데다가 제주가 곧장 갈 수 있는 길목의 요충지여서 공부(貢賦)가 다른 고을보다 갑절이나 많습니다. 특히 을묘 왜변(乙卯倭變)을 겪은 뒤로는 방비에 대한 제반 일이 매우 많아 백성들이 심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세 고을에는 녹미(鹿尾)·녹설(鹿舌)·쾌포(快脯)가 생산되지 않으니 장록(獐鹿)이 많이 생산되는 제주에 옮겨 정하게 하소서. 교서관의 책지(冊紙)와 장흥고(長興庫)의 견양지(見樣紙)는 정공 도감(正供都監)018) 으로 하여금 일이 덜한 내륙 지방으로 옮겨 마련하게 하소서."


  • 【태백산사고본】 3책 5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236면
  • 【분류】
    재정-공물(貢物)

  • [註 018]
    정공 도감(正供都監) : 각 고을의 공물을 균등하게 징수하기 위하여 특별히 설치한 관직. 이이(李珥)의 《석담일기(石潭日記)》 선조(宣祖) 3년 11월 조(條)에 "정공 도감을 두었는데 이는 이준경(李浚慶) 등이 민폐를 구제하기 위하여 특별히 도감을 두어 삼공이 이를 관장하고 조정 선비로서 재주와 학식이 있는 사람을 뽑아 낭관에 충차하여 백성들을 이롭게 하려 한 것이다." 하였다.

全羅監司馳啓: "靈巖康津海南三邑, 介在兩營之間, 又當濟州直路要衝之地, 貢賦十倍於他官。 自乙卯經變以後, 防備諸事極多, 民甚困苦。 三邑不産鹿尾、鹿舌、快脯, 請移於濟州獐鹿興産之地。 校書館冊紙長、興庫見樣紙, 請令正供都監, 磨鍊移於內地事歇之地。"


  • 【태백산사고본】 3책 5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1책 236면
  • 【분류】
    재정-공물(貢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