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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32권, 명종 21년 3월 16일 정미 1번째기사 1566년 명 가정(嘉靖) 45년

송기수·김개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송기수를 예조 판서로, 김개를 형조 판서로,

사신은 논한다. 김개는 처음에는 청렴하고 근신한 사람으로 일컬어졌으나 만년에 가산을 영위하여, 앞뒤가 크게 어긋났다. 윤원형심통원이 재상으로 있을 때 김개가 소를 올려 상에게 병을 조리하는 방법을 권하면서 ‘침흥(寢興)을 시각(時刻)에 맞추고 기거(起居)를 편리에 따르며 관심되는 일은 일체 떨쳐버리고 백사의 집무는 삼공에게 맡기라.’ 하였으니, 그 혼암(昏暗)함이 어찌 여기에 이를 수 있단 말인가. 한 평생의 가식이 만년에 드러나고 말았으니 진실로 애석한 일이다.

이황을 겸 홍문관 예문관 대제학으로,

사신은 논한다. 이황은 학문이 정심하고 실천이 독실하며 문장과 절행이 일세의 표준으로 염정에 안착하여 영진을 좋아하지 않았다. 중묘조부터 누차 사직하고 누차 나왔고, 본가가 예안에 있다. 몸은 비록 물러나 있었으나 조정이 항상 그 자리를 비워 두어, 그를 맞이할 뜻을 보인 지가 10여 년이나 되었다. 전년에 돌아가기를 빌어 벼슬을 내놓고 본현 도산에 터를 잡아 그 안에 정사를 지은 뒤 속인을 사절하고 날마다 성리를 연구하는 데 전념하므로, 온 조야가 다 그 포부의 발휘를 갈망하였다. 상이 특별히 전의 벼슬인 동지(同知)로서 거듭 불렀으나 도중에 병이 발작하여 누차 되돌아가기를 간청하므로 상이 어의를 보내 문병하고 공조 판서를 탁배하였다. 홍섬도 일시의 물망이 그에게 집중된 것을 알고 문형의 자리를 간곡히 사양하였다.

유전 【남을 극해하려는 마음이 없고 총명이 남보다 뛰어났다.】 을 사간원 사간으로, 이후백을 홍문관 응교로, 민시중(閔時中)을 부응교로, 정철(鄭澈) 【천성이 염담하여 영위하는 일이 없고 추향이 일정하였다.】 을 사간원 헌납으로, 이인(李訒)·이제민을 홍문관 교리로, 김억령을 부교리로, 임수신(任壽臣) 【위인이 단아하고 집상(執喪)하는 데 예가 있었다.】 을 예조 좌랑으로, 이경명(李景明) 【위인이 강명 독립(剛明獨立)의 기개가 없다. 맨 처음 기대항의 추천을 힘입어 청현의 길을 통하였다.】황정식(黃廷式)을 사간원 정언으로, 이해수 【이탁의 아들로 천성이 정아하여 말이 적었다.】 를 홍문관 부수찬으로, 안용(安容)을 예문관 대교(待敎)로, 박인수(朴麟壽) 【천성이 본시 교만하고 탐음(貪淫) 방자하였다. 해주 목사(海州牧使)로 있을 때에 관적(官糴)을 원형의 전장(田庄)에 바치게 하였으니, 다른 일은 미루어 알 수 있으며, 송림(松林)을 다 벌채하고 온 창고 곡식을 훔쳐내니, 고을 사람들이 ‘의창이 텅 비고 수양산이 황폐하였다. [義倉浮海首陽南傾]’고 하였다. 그리고 역임하는 주진(州鎭)마다 관창(官娼) 중에 비록 지친(至親)이 사랑했던 사람이라도 반드시 모두 통음(通淫)하니, 어리석고 천한 전복(典僕)들도 모두 개·돼지로 여겨 침을 뱉지 않는 자가 없었다.】 를 장단 도호부사로, 박영준(朴永俊) 【위인이 약아서 일을 회피하고 몸을 사렸다. 일찍이 청렴 근신하다는 명예를 훔쳤으나 사실은 탐사(貪奢)·기응(嗜淫)하여 취할 만한 행실이 없다. 일생 동안의 행사가 거짓일 뿐이다.】 을 지중추부사로, 강섬을 동지중추부사로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32권 36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74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사학(史學) / 인물(人物)

    ○丁未/以宋麒壽爲禮曹判書, 金鎧爲刑曹判書。

    【史臣曰: ", 初以廉謹稱, 暮年營爲, 大戾前後。 方元衡通源爲相, 上疏, 勸上以調病之方曰: "寢興以時, 起居隨便, 關心之事, 一切屛去, 百司之務, 付諸三公。’ 何其昏暗之至此耶? 平生假飾, 末路敗露, 良可惜哉。"】

    李滉兼弘文館藝文館大提學。

    【史臣曰: "學問精深, 踐履篤實, 文章節行, 表準一世。 安於恬靜, 不喜榮進。 自中廟朝, 屢辭屢起。 家在禮安, 身雖退去, 朝廷尙虛其位, 以示願致之意者十餘年。 前歲懇乞方解, 卜地於本縣之陶山, 築精舍其中, 屛謝俗人, 日以硏窮性理爲事。 朝野想望, 庶幾展布。 上特申同知舊官以召, 登途病作, 屢請還歸。 上遣醫問疾, 擢長冬曹。 洪暹亦知時望所屬, 懇辭文柄。"】

    柳㙉 【無剋害之心, 聰明過人。】 爲司諫院司諫, 李後白爲弘文館應敎, 閔時中爲副應敎, 鄭澈 【恬淡無官, 所趨有向方。】 爲司諫院獻納, 李訒李齊閔爲弘文館校理, 金億齡爲副校理, 任壽臣 【爲人端雅, 執喪有禮。】 爲禮曹佐郞, 李景明 【爲人無剛明植立之氣。 初被奇大恒吹噓, 得通淸顯。】 (黃廷式)〔黃廷彧〕 爲司諫院正言, 李海壽 【鐸之子, 雅靜少言。】 爲弘文館副修撰, 安容爲藝文館待敎, 朴麟壽 【性本驕妄, 貪淫自恣。 曾爲海州牧使, 至捧官糴於元衡田庄, 他可推知。 盡伐松林, 傾倉偸竊, 邑人有義倉浮海首陽南傾之語。 所歷州鎭官娼, 雖至親所戀, 必盡通淫。 愚賤典僕, 莫不以犬豕唾之。】長湍都護府使, 朴永俊 【爲人巧黠, 善觀時(熊) 〔態〕, 避事謀身, 曾盜廉謹之名, 而其實貪奢嗜淫, 無行可取, 一生行事詐而已矣。】 爲知中樞府事, 姜暹爲同知中樞府事。


    • 【태백산사고본】 20책 32권 36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74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사학(史學) / 인물(人物)